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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의 독립과 위상 제고/ 김복근
-탑재가 늦었지만 뜻을 함께 해주시기 바랍니다.
시조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양과 질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루었다고 한다. 그러나 시조를 보는 외부의 시각은 의외로 차갑다는 사실을 목도 한다. 심지어 자괴감을 느낄 정도로 딱한 경우를 보기도 했다.
최근의 일이다. 무산 조오현 시조시인의 예술혼과 상생 화합 정신을 계승 선양하기 위해 무산문화대상을 제정 운영한다면서 무산 스님의 시조 정신을 훼손하는 일이 일어났다.
무산문화대상은 매년 한국의 문학, 예술, 사회문화의 발전을 선도해온 중진 문화예술가의 활동과 업적을 널리 표창하기 위해 문학 부문, 예술 부문, 사회문화 부문으로 나누어 분야별 수상자 1인을 선정하고, 상금 1억 원과 상패를 수여한다고 발표했다. 우리나라에서 시행하는 문화상의 규모로는 과히 파격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문학 부문은 시, 소설, 희곡, 아동문학, 문학평론 분야 등에서 우수한 작품을 발표하여 한국문학을 선도해온 중진 문인을 수상자로 선정한다는 대목에서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무산문화대상 문학 부문에 시조가 빠졌다.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무산 조오현 스님이 누구인가.
스님은 만해 한용운 스님의 사상을 널리 알리기 위해 만해사상실천선양회를 설립하고 만해대상, 만해축전을 개최하는 등 포교 분야에서 큰 업적을 쌓았다. 1968년 《시조문학》 추천으로 등단한 후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시조시인으로, 한글 선시의 개척자로 꼽힌다. 시조집 『심우도』, 『아득한 성자』 등을 펴낸 스님은 가람시조문학상, 정지용문학상, 현대시조문학상, 고산문학대상 등을 수상했다.
그렇다면 무산 조오현 스님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문화상에는 당연히 시조가 앞자리에 있어야 한다. 한국문학진흥법 제2조 1항에 의하면. 문학이란 사상이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한 예술작품으로서 시, 시조, 소설, 희곡, 수필, 아동문학, 평론 등을 말한다.〈개정 2021. 5. 18.〉라고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다. 글쓴이는 이런 내용을 《문학인신문》에 보도하고, 페이스북에 탑재했다. 많은 분이 전화와 답글로 호응했다.
이즈음 한국시조시인협회 이정환 이사장의 전화가 왔다. 「무산문화대상에 시조가 없다」는 글을 보았다면서 그 근거가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다. 《유심》 2023 겨울호 338~339쪽에 게재된 시행 공고를 복사하여 보내드렸다. 20여 분 후에 만해무산사상선양회에 전화하여 사실관계를 알아보았다는 문자가 왔다. 실무자가 전화를 받았는데, 시 속에 시조가 포함되어있다는 답을 하여 문학진흥법 이야기를 거론하였더니, 이사장과 회주 스님께 말씀드려 수정하겠다는 답을 했다고 한다. 다시 20여 분 후에 이사장과 통화하였는데, 역시 시 속에 시조가 포함되어있다는 말을 하여 장르를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고 했더니 수정하겠다는 대답을 하더라는 것이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보자.
2016년 10월 25일 부산문화재단에서 문화관광부가 주최하는 문학진흥 중장기대책 제3차 지역순회 토론회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 글쓴이는 「문학진흥에 대한 과제와 토론」이라는 주제로 토론하면서 문학진흥법 제1장 제2조 1항 '정의'에 '문학이란 사상이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한 예술작품으로서 시, 소설, 희곡, 수필, 평론 등을 말한다.'라고 규정돼 있다. 이 항의 잘못을 지적하면서 시조와 아동문학에 대한 장르 독립을 강조했다. 한국의 대다수 문학 장르의 갈래와 문학사에서는 시조와 아동문학을 독립된 장르로 구분하여 기술하고 있으며, 한국문인협회와 한국작가회의를 비롯한 각종 문학단체의 조직에서도 이들 장르는 독립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문학인 시조와 아동문학을 삽입해 문학진흥법 제1장 제2조 1항은 ‘문학이란 사상이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한 예술작품으로서 시조, 시, 소설, 희곡, 수필, 아동문학, 평론 등을 말한다.’라고 개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역설하여 실무자로부터 개정하겠다는 답을 받아냈다. 그리고 5년여가 지난 2021년 5월 18일 개정됐다.
경남 의령에서 시행하는 『천강문학상』의 경우 1회에는 시(시조) 소설 수필 아동문학으로 나누어 공모했다. 천강문학상운영위원회에서 글쓴이는 천강문학상의 목적은 곽재우 선생의 구국정신을 기리는 것인데, 시조가 빠지면 안 된다고 설득하여 조례를 개정, 2회부터 시조를 독립시켜 14회가 되는 지금까지 시행하고 있다. 2008년 진주에서 개최되는 개천문학상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심사차 갔다가 시조 부문이 시에 포함된 것을 보고, 역사와 전통을 생각하는 개천예술제라면 당연히 시조 부문을 따로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하여 독립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대산문화재단이나 아르코 문학나눔에는 아직도 시조는 시에 포함되어있으며, 각종 백일장과 공모 행사에서도 시조는 시에 포함되어있는 경우를 본다. 차제에 모든 문학 공모전이나 행사에서 시ㆍ시조가 대등한 위치를 확보하거나 앞서가기 위해 시(시조)로 표기되는 경우 괄호를 벗기고, 시조에 대한 장르를 분명하게 구분하여 그 위상을 구축했으면 한다.
대일항쟁기, 우리 선열들은 일제의 시조 말살 정책에 대응하여 민족적 시 형식인 시조를 다시금 창작하자는 시조부흥운동을 줄기차게 전개하였으며, 조선어 수난으로 옥고를 치르면서 시조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각고했다.
그런 시조가 문학진흥법과 무산문화대상, 각종 백일장과 공모전에서 빠지게 된 것은 시조의 미래에 대한 불편한 진실일 수밖에 없다. 사실 우리는 그동안 나름대로 시조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함에도 시조를 보는 시선은 차갑거나 무시하는 경우를 보면서 시조의 위상 제고와 권익 옹호를 위해 제2의 시조부흥운동이라도 전개하여 시조의 위상을 제고 하고, 외연 확장을 위해 노력했으면 한다.
시조가 이런 대우를 받게 된 것은 대학에 시조 강좌가 없어지고, 대북 개방정책 이후 교과서에 시조가 줄어들면서 야기됐다. 시조집을 펴내면서 시집이라고 하는 시조시인들의 사대주의적 행위도 무시당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대학에 시조 강좌 개설을 건의하고. 교육부와 교육과정 담당자, 교과서 집필위원에게 직접 시조 수록을 요청해야 하겠다. 아르코와 대산문화재단에 시조 독립을 건의하고, 한국문학번역원에도 시조 부문을 개설하여 시조 번역의 필요성을 알렸으면 한다. 시조시인은 시조에 대한 수월성을 발휘하여 자긍심을 갖고, 청자의 눈길을 끄는 시조를 창작해야 하며, 시조 단체와 시조 전문 잡지는 시조의 독립과 그 위상 제고를 위해 좀 더 다각적인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 줄 것을 기대한다.
(시조시학 2024 봄호 권두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