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큰)개불알풀·별꽃·개쑥갓 등은 ‘도심의 계절 알리미’
1. 제비 한 마리 왔다고 봄이 오나
제비는 대체로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해줍니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면 봄이 왔다는 인식이 여전합니다. 제비가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흥부를 벗어나게 했으므로 은연중 제비를 행운을 가져다줄 지도 모르는 새로 여겨왔습니다. 더구나 부러진 제비다리를 고쳐줬다는 것이 원인이었으므로 혹시 나에게도 다친 제비가 나타나지 않을까하는 흥부의 행운과 기적을 한번쯤은 떠올렸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관용구도 있습니다. ‘제비 한 마리 왔다고 봄이 오나.’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증권시장, 대치상황인 남북관계에 호재로 보이는 일이 발생했을 때 분석가들이 흔히 이런 말을 씁니다. 물론 분석대상으로 삼은 그 ‘사건’이 부정적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너무 낙관적이지도 않다는 뜻으로 쓰입니다. 말을 바꾸면 ‘봄이 오려면 제비 한 마리 가지고는 부족하다’일 수도 있습니다.
계절로도 그렇지만 많은 이들이 '상징적인 봄'을 기다립니다. 그 봄이 온다는 낌새 알아차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혹자는 특정한 일이 벌어진 한참 후에야 "아 이러려고 그 일이 발생했구나"라고 회상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속담은 구체적으로 제비가 오면 봄이 온다고 하니 친절합니다. 속담의 속성은 먼저 세상을 사신 분들이 겪었던 수많은 경험의 결과라고 본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2. 변산바람꽃·복수초·너도바람꽃을 찾아 나서다
최근 국립공원관리공단은 '계절 알리미 생물종' 50종을 선정해 발표했습니다. 참 친절합니다. 히어리 꽃 피면 초봄이라는 것이지요. 언론에는 50종 모두 소개하지 않아 국립공원관리공단 홈페이지에 가서 찾아봤습니다. 각 계절을 알리는 50종은 다음과 같습니다.
▶ 초봄(13종) : 히어리, 노루귀, 변산바람꽃, 복수초, 생강나무, 얼레지, 진달래, 애호랑나비, 빌로오드재니등에, 북방산개구리, 계곡산개구리, 노랑할미새, 제비
▶ 봄(10종) : 보춘화(춘란), 산벚나무, 피나물, 한계령풀, 할미꽃, 현호색, 호랑나비, 도롱뇽, 두꺼비, 뻐꾸기
▶ 초여름(8종) : 물레나물, 백운산원추리, 일월비비추, 큰까치수염, 모시나비, 길앞잡이, 꾀꼬리, 소쩍새
▶ 여름(8종) : 왜솜다리, 무릇, 산수국, 참나리, 제비나비, 참매미, 두견이, 솔부엉이
▶ 초가을(6종) : 고려엉겅퀴, 금강초롱꽃, 쑥부쟁이, 고추잠자리, 귀뚜라미, 검은딱새
▶ 가을(5종) : 구절초, 꽃향유, 산국, 억새, 늦반딧불이
변산바람꽃. 2016. 3. 8. 충남 금산군 진산면.
개복수초. 2016. 3. 8. 전북 완주군.
너도바람꽃. 2016. 3. 8. 전북 완주군.
청노루귀. 2016. 3. 8. 전북 완주군.
청노루귀. 2016. 3. 8. 전북 완주군.
그래서 저는 ‘초봄’을 확인하고 만끽하기 위해 지인과 함께 지난 8일 변산바람꽃과 복수초, 너도바람꽃, 청노루귀를 확인하러 나섰습니다. 당진에서 노루귀를 확인하려 했지만 보지 못했습니다. 물론 어느 양지바른 곳에 아무도 모르게 피고 졌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찾지 못했을 뿐입니다.
그동안 저는 변산바람꽃은 보지 못했습니다. 당진의 어느 집 마당에 핀 세복수초, 공원의 개복수초의 얼굴은 압니다. 그러나 야생에서는 예외였지요. 귀하다는 ‘청노루귀’도 마찬가지고요. 이 애들을 보려고 지인을 따라 나선 것입니다.
3. 꽃을 꺾는 것만 폭력인가
대전에서 아침 8시 50분에 출발했습니다. 이윽고 충남 금산군 진산면 어느 마을 산기슭, 변산바람꽃 자생지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이미 몇 분이 먼저 와 변산바람꽃을 카메라에 담기에 열중이었습니다. 지인은 아마 저분들 앞으로 우리가 갈 복수초 자생지에서 또 볼 것이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진짜 그랬습니다. 저야 뭐 어디에 매어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마음만 먹는다면 평일에도 꽃구경 나설 수 있습니다. 평일인데 많은 분들이 야생화 탐사에 나섰습니다. 아, 그분들도 저와 같은 상황일 수도 있겠군요.
전북 완주군의 어느 마을의 뒷산 골짜기로 접어들었습니다. 수목을 갱신하려는지 벌채가 한창이더군요. 지인은 이곳에 여러 번 오셨는지 이곳에 다릅나무가 있었다며 찾아보자고 하시더군요. 찾지는 못했습니다. 아니 굳이 찾으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조금 올라가니 복수초가 쫙 깔렸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복수초 ‘천지’라는 표현을 썼나 봅니다. 복수초는 ‘개복수초’로 보였습니다. 개복수초는 꽃과 잎이 같이 난다는 설명에 따른 동정이었습니다. 저는 약이 좀 올랐습니다. 당진에서 그렇게 찾았으나 한 포기 보지 못했는데 여기는 막말로 발길에 차이는 것이 복수초였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너도바람꽃이 함께 말이지요. 얼레지도 잎 하나 살짝 내밀었습니다.
청노루귀 자생지로 향했습니다. 지인께서는 아마 이곳은 복수초 자생지보다는 덜 알려져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도착해보니 많지는 않았습니다. 한 분이 먼저 와 있더군요. 이날 날씨가 흐리고 찬 기운이 돌아 노루귀는 꽃잎을 활짝 열지는 않았습니다. 게다가 꽃잎 색깔도 예상했던 것보다는 덜 파랬습니다.
한 가지 못된 버릇을 발견했습니다. 먼저 다녀간 어떤 분(들)이 원하는 구도를 얻기 위해서인지 노루귀를 파서 이동시킨 흔적입니다. 물론 저는 그렇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유명한 진실’이 있습니다. 야생화 입장에서 볼 때 원하는 개체를 찾기 위해 자생지를 빠대고 돌아다는 일 또한 뒤에 오는 이들은 보지 못하도록 꺾고, 옮기고 하는 것과 오십보백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들 옥만 할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하는 짓이 옳은 것인가 생각해 봤습니다.
진산면 변산바람꽃 자생지를 다시 떠올렸습니다. 변산바람꽃이 핀 자리 주위로 ‘새길’이 만들어졌습니다. 이곳에서 조금 있으면 만주바람꽃이 올라온다고 하네요. 새길이 난 자리가 만주바람꽃이 필 자리인지도 모르잖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새길은 만주바람꽃 자리를 아예 뭉개는 일이지요. 꼭 변산바람꽃 자리에서만 만주바람꽃이 개화하는 것은 아닐 것 같습니다. 이 판단이 맞다면, 이런 야생화탐사 관행이 지속된다면 아마 이곳에서 변산바람꽃이나 만주바람꽃을 찾아보기 힘들어 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 이유로 자생지에서 이리저리 쏘다니는 것도 자생지에 대한 폭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4. 도심에도 계절 알리미가 많다
사진을 정리하면서 변산바람꽃 자생지의 ‘새길’이 폭력의 흔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초봄 알리미를 보려고 먼 곳까지 가서 새길 다짐에 나도 힘을 보탰다는 점도 사실 유쾌할 수많은 없었습니다. 곰곰 생각해볼 일입니다.
개불알풀. 2016. 3. 9. 당진시 읍내동.
큰개불알풀. 2016. 3. 9. 당진시 읍내동.
별꽃. 양지바른 시멘트 계단 참 밑 틉에 터를 잡고 일찌감치 '도심 계절 알리미'를 자처하고 나섰네요. 2016. 3. 9. 당진시 읍내동.
개쑥갓. 전봇대 옆에 자리를 틀었네요. 2016. 3. 9. 당진시 읍내동.
황새냉이. 2016. 3. 8. 당진시 읍내동.
새포아풀. 2016. 3. 9. 당진시 읍내동.
어느 집 울 밖의 라일락도 꽃망울을 터트리며 초봄을 알리고 있네요. 2016. 3. 9. 당진시 읍내동.
수선화가 빼죽이 내밀었습니다. 얘는 집 주변에 심으니 도심의 계절 알리미 딱이네요. 2016. 3. 6. 당진시 대덕동.
지인과 약속이 있어 길을 나섰습니다. 어제는 날이 제법 쌀쌀했습니다. 그러나 바람막이가 있는 담벼락 밑 양지바른 곳에서는 앙증맞은 꽃들이 나도 ‘도심의 계절 알리미’라고 시위하고 있었습니다. 개불알풀, 큰개불알풀, 새포아풀, 별꽃, 개쑥갓, 황새냉이가 그 애들입니다. 어느 집 울타리 밖의 라일락도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었습니다.
복잡다단한 인간사회에서 ‘제비’ 한 마리가 왔다고 봄이 오는 것은 아니라는 판단은 대개 옳습니다. 그러나 자연에서는 거의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노루귀와 복수초, 변산바람꽃, 히어리 꽃이 피면 초봄임에 분명합니다.
도심에서 이들 보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도심의 계절 알리미를 차처하는 애들도 있습니다. 이 애들은 작기도 하지만, 복잡하고 바쁜 사람의 눈길이 거의 띄지 않습니다. 그러나 보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쉽게 눈에 띄는 꽃이 이 애들입니다. ‘알리미’는 멀리에만 있는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인간사 낌새도 그렇다고 여겨집니다.
첫댓글 초록의 잎이 하늘을향해 올라오는 상사화의 모습에서 힘찬 소생의 봄을 느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