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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증법의 개념
변증법 (辯證法)은 정명제와 반명제를 사용하여 이들 모순되는 주장의 합명제를 찾거나 최소한 대화가 지향하는 방향의 질적 변화를 일구어내는 논법이다.
동일률을 근본원리로 하는 형식논리에 대하여, 대립 또는 모순을 근본원리로 하여 사물의 운동을 설명하려고 하는 논법이다.
이는 서양 문명에 있어서 문법이나 수사법과 더불어 자유 인문 최초 삼개인문 중 하나이다.
고대와 중세 시대 동안 수사법과 변증법은 둘 다 (대화를 매개로 한) 설득을 목적으로 하였다.
변증법적 접근의 목표는 이견을 합리적인 토론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이들 중 하나인 소크라테스 방법은 하나의 전제가 모순에 도달한다는 것을 보여 전제를 제거하는 것이 진리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주장한다.
이견을 해결하는 다른 방법은 서로 경쟁 관계에 있는 정명제와 반명제의 전제를 부정하여 제삼의 길인 (합)명제에 도달하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문답법으로 통했으며, 엘레아의 제논이나 소크라테스에게는 철학적 방법 그 자체였다.
이 말은 그리스어의 dialektik?에서 유래하며, 원래는 대화술·문답법이라는 뜻이었다.
일반적으로 변증법의 창시자라고 하는 엘레아학파의 제논은 상대방의 입장에 어떤 자기모순이 있는가를 논증함으로써 자기 입장의 올바름을 입증하려고 하였다. 이와 같은 문답법은 소크라테스에 의해 홀륭하게 전개되고, 그것을 이어받은 플라톤에 의해 변증법은 진리를 인식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중시되었다.
소피스트가 부정(不正)을 정의(正義)라고 우기는 기변술(奇辨術)로 사용한 이후, 변증법을 적극적인 철학적 방법으로 삼는 용법과 기변술로서 부정적으로 다루는 용법이 대립한다.
플라톤은 내면화(內面化)된 이데아에 이르는 적극적 방법으로 삼았으나 아리스토텔레스는 논박(論駁)의 기술 또는 명제의 귀납적 탐구술이라 하여 부정적이었다.
중세에 와서는 흔히 논리학 그 자체를 가리킨다.
근대에 와서 칸트는 순수이성이 그 원리를 그르쳐 형이상학적 문제에 적용했을 때에 생겨나는 가상(假象)의 논리를 변증법이라 하여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이에 대하여 이성이 범하는 모순의 적극적인 의의를 포착한 사람은 헤겔이었다.
변증법이란 것을 인식뿐만 아니라 존재에 관한 논리로 생각한 것은 G.W.F.헤겔이었다. 헤겔은 인식이나 사물은 정(正)·반(反)·합(合)(정립·반정립·종합, 또는 卽自·對自·즉자 겸 대자라고도 한다)의 3단계를 거쳐서 전개된다고 생각하였으며 이 3단계적 전개를 변증법이라고 생각하였다. 정(正)의 단계란 그 자신 속에 실은 암암리에 모순을 포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순을 알아채지 못하고 있는 단계이며, 반(反)의 단계란 그 모순이 자각되어 밖으로 드러나는 단계이다. 그리고 이와 같이 모순에 부딪침으로써 제3의 합(合)의 단계로 전개해 나간다.
이 합의 단계는 정과 반이 종합 통일된 단계이며, 여기서는 정과 반에서 볼 수 있었던 두 개의 규정이 함께 부정되면서 또한 함께 살아나서 통일된다. 즉, 아우프헤벤(aufheben:止揚 또는 揚棄)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존재에 관해서도 변증법적 전개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존재 그 자체에 모순이 실재한다는 결과가 되기 때문에, 변증법은 모순율을 부정하는 특별한 논리라고 생각된다. 오늘날 변증법은 이와 같은 의미로 해석되는 것이 일반적이며, K.마르크스, F.엥겔스의 유물변증법(唯物辨證法)도 마찬가지로 해석된다.
그에게 있어서 변증법은 고정적 견해인 형이상학에 대립되는 인식의 방법이며 동시에 사유(思惟)의 자기운동과 자연·역사(歷史)의 모든 현실적 자기운동에 대한 보편적인 합법칙성 이법(合法則性理法)이었다.
그러나 헤겔은 자신의 내부에 있는 모순에 의해 대립을 낳고 그것을 지양함으로써 더 높은 차원으로 나아가는 이 운동을 관념론적 입장에서 개념의 자기 전개로 정착시켰다.
헤겔의 합리적인 핵심을 유물론의 입장에서 계승한 마르크스·엥겔스에 의해 변증법은 자연·사회·사유의 일반적 운동법칙(의 과학)으로서 확립되었다.
테제(These), 정립(定立)·명제(命題)
원래부터 정리된 하나의 주장. 변증법적 전개의 제1단계(추상적·오성적 규정). 안티테제(Antithese), 반정립(反定立)
정립이 내적 모순으로 낳은 대립명제(對立命題). 변증법적 전개의 제2단계(변증법적 부정적 이성적 규정).
진테제(Synthese), 합(合)·총합(總合)
정립·반정립의 모순의 통일. 변증법적 전개의 제3단계(사변적·긍정적·이성적 규정).
정(正)·반(反)·합(合)
헤겔의 변증법의 도식. 정립-반정립-총합, 또는 즉자적(卽自的) 단계-대자적(對自的)단계-즉자 및 대자적 단계라는 것과 같으며 그 자체의 운동의 과정.
즉자(卽自, an sich)
그 자체에 따른다는 것. 아직 분열 대립에 이르지 못한 변증법적 전개의 제1단계. 따라서 '즉자적(卽自的)'이란 원래 그 자체는 타와 관계 없다라는 것이나, 잠재적·무자각적인 것이 된다.
대자(對自, für sich)
자신에 대립하고 있는 것. 자기가 분열하고 대립하고 있는 변증법적 전개의 제2단계. '즉자'의 단계에서 이미 잠재적으로 포함되어 있던 모순이 노정된 단계로서, 즉자에 비하면 한층 자각적이다. 이 대립은 또한 '즉자 및 대자'의 단계에 이르러 통일되나, 그것은 즉자 때의 일체성(一體性)과는 달라서 자기 자신의 내용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참으로 자각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지양(止揚, aufheben)
양기(揚棄)라고도 한다. 독일어의 아우프헤벤(aufheben)에는 '보존하다. 보관하다'란 뜻과 '폐지하다. 폐기하다'라는 상반된 뜻이 있으며, 헤겔은 이를 독일어가 지니는 사변적 성격이라 하여 변증법 용어로 사용. 정립·반정립의 대립이 총합 단계에서 통일될 때에는 정립·반정립의 규정 존립이 부정되면서도 그 내용은 보다 고차적인 차원에서 보존되며, 개념이 더욱 구체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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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증법 (그리스어: διαλεκτική)
일반적으로 변증법(그리스어: διαλεκτική)은 정명제와 반명제를 사용하여 이들 모순되는 주장의 합명제를 찾거나 최소한 대화가 지향하는 방향의 질적 변화를 일구어내는 것이다. 이는 서양 문명에 있어서 자유 인문 최초 삼개인문 중 하나이다. (다른 두가지는 문법과 수사법이다) 고대와 중세 시대 동안 수사법과 변증법은 둘 다 (대화를 매개로 한) 설득을 목적으로 하였다. 변증법적 접근의 목표는 이견을 합리적인 토론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이들 중 하나인 소크라테스 방법은 하나의 전제가 모순에 도달한다는 것을 보여 전제를 제거하는 것이 진리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주장한다. 이견을 해결하는 다른 방법은 서로 경쟁 관계에 있는 정명제와 반명제의 전제를 부정하여 제삼의 길인 (합)명제에 도달하는 것이다.
변증법 (Dialectic)
1. 논리적 추론과 관계된 용어로서 역사적으로 매우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다.
원래 변증법은 '대화'(conversation)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플라톤(Plato's)의 초기 대화편에서 그가 구사하는 대화의 기술에 적용되었었다. 그대화에는 논리를 전개시키는 모종의 형태가 있었는데, 좁게는 이 대화의 형태를 가리키기도 하였다. 중세기 신학에서는 어떤 권위있는 저서로부터 한 의견을 따오고, 또 그에 대응할 만한 반대의 논거를 제시한 뒤, 마침내 그 두 의견의 모순을 절충할 결론을 제공하는 방법을 가리켰었다.
근세 철학에 있어서는 특히 헤겔(Hegel)의 논리학적 방법과 관련되어 사용되게 된다. 그는 어떤 명제를 제시하고, 그것이 그 반명제를 산출하며, 다시 이 둘을 절충시킨 합명제로 이끄는 것이 논리학의 본질이라 하였다. 헤겔은 이 논리가 실재 자체의 본질을 규명하는 단서가 되는 것으로 믿었고, 이를 역사에 적용시킨 것이 마르크스(Ka-rl Marx)의 변증법적 유물론에 큰 영향을 주었다. 마르크스는 동일한 법칙이 인류의 경제사에도 꼭같이 적요되는 것을 발견하였다. 신개혁주의 신학자들은 키에르케고르(Kierkegaard)의 영향 아래 변증법을 자기들의 신학체계 속으로 편입시켰다. 키에르케고르는 항상 두 개의 명백한 반대 개념-예를 들어 자유와 필연-을 관계시켜 생각하며, 하나가 다른 하나를 규정하게 하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그리하여 변증법은 역설(paradox)과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게 된다. 변증법을주장하는 학자들이 가지고 있는 전제는, 인간의 경험은 너무 복잡하여 모순과그 둘 사이의 긴장을 유지하지 않고는 결코 해명될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니버(Reinhold Niebuhr)는, 인간은 자유와 한계성을 둘 다 가지고 있는데,이 두 양상이 너무 밀접하게 연관이 되어 있어서 자유의 빛 하에서만 한계를 논할 수 있고, 한계의 빛 아래에서만 자유를 논할 수 있다 하였다.
2. 영어의 변증법이란 단어는 대화술을 가리키는 희랍어 dialektike techne에서 유래하였다.
이것이 지니는 매우 다양한 의미들 가운데서 어떤 공통적인 것을 찾을 수 있다면 변증법은 추론에 의해 진리를 추구하고 때로는 그것에 도달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적인 기술조차도 여러 사례들이 지니는 다양성에 적용시키기에는 너무나 모호하고 무가치하며 그리하여 일반적인 것을 찾는다는 변증법을 역사적 과정으로 보는 헤겔 철학과 마르크스주의의 관념에 대해서는 타당성을 잃고 만다. 하지만 이 용어가 지니는 보다 중요한 의미를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1) 논리적인 귀결을 조사함으로써 논박하는 방법
2) 궤변적인 추론
3) 분류 방법, 다시 말해서 유개념을 종개념으로 재차 논리적으로 분석하는 방법
4) 극히 일반적인 추상적 개념들을 연구할 때 어느 정도의 추론을 통해 특별한 사례나 가정으로부터 그것들에 접근해가는 방법
5) 단지 가능성만 있거나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전제를 사용하여 논리적으로 추론하거나 논쟁하는 방법
6) 형식 논리학
7) 초월적인 대상을 다루면서 경험의 세계로 넘어 나아가고자 할 때 이성이 범하게 되는 모순을 보여주는 망상 논리에 대한 비평
8) 정립과 반정립을 통해 그 상반되는 둘을 종합함으로써 사상이나 실재를 전개하는 논법.
2)의 의미는 아직도 널리 통용되고 있고, 이때의 변증법이란 말은 경멸적인 의미로 흔히 사용된다.
변증법의 여러 종류를 역사적인 순서로 간략하게 설명해 보자.
1. 소크라테스와 그 이전의 철학자들
변증법의 기원은 아리스토텔레스가 그 유명한 파라독스들의 주인인 엘레아의 제논을 그것의 창안자로 인정했기 때문에 주전 5세기로 볼 수 있다. 제논의 파라독스는 반대자들의 전제들로부터 모순된 귀결을 이끌어냄으로써 그것들을 논박하고 있다는 점에서 변증법의 현저한 예가 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리스토텔레스는 추측컨대 그 파라독스를 마음에 떠올렸을 것이다. 예컨대 아킬레스는 거북을 절대로 따라잡지 못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다라서 이러한 결론에 이르는 전제는 부정되어야 한다. 이 방법이 modus tollens라고 알려진 형식논리학의 법칙(만일 p가 q를 내포하고 q가 그르다면 p는 그르다)에 의거하고 있는 한에서, 제논은 논리학의 선구자이다. 그러나 그가 modus tollens 자체를 형식화헀다는 증거는 없고, 이같은 종류의 변증법을 뒷받침하고 있는 원칙들을 명백히 나타내는 일은 훗날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맡겨졌으며, 이로써 형식논리학이라는 학문을 창시하게 되었다.
반대자를 패배시키기 위한 간접적인 논리적 증명방법으로서의 변증법은 제논에 의해서 진지한 철학적 목적으로 사용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훗날 그것은궤변학자들의 수중에서 단지 논쟁에서 이기기 위한 도구가 되어버렸다. 그 예로서, 궤변학자 프로타고라스는 자신이 서투른 논법을 보다 뛰어난 것으로 만들수 있다고 언명했던 것이다.
그와 같은 목적에 사용되는 변증법은 논리나 철학보다는 오히려 수사학에 속한 것이다. 이같이 변질한 형태의 변증법은 플라톤과 그밖의 사람들에 의해서 eris(투쟁)에서 유래한 '논쟁'(eristic)이란 명칭이 붙여졌다. '논쟁'은 무가치한 변론과 궤변적인 속임수를 고의적으로 사용하기에 이르렀고, 이러한 것들은 플라톤에 의해서 그의 대화체 작품의[Euthydemus](이 책의 명칭은 논쟁법의 사용자로 그 안에 등장하고 있는 실제의 궤변학자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에서 조롱을 당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그의 저서 [De Sophisticis Elenchis](궤변적인 논박)에서 궤변학자들에게 응수할 만한 가치는 있다고 보았다. 물론 그는 논쟁과 변증법을 빈틈없이 구분하였으며, 변증법은 그에게 있어서 가치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몇몇 후대의 작가들이 증언했던 대로 만일 현재는 없어져버린 프로타고라스의 저서가 각 주제마다 두개의 상반된 진술(logoi)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주장으로 시작되었다면, 프로타고라스는 '논쟁'의 아버지로서보다는 오히려 중세 또는 헤겔의 변증법의 조상으로 간주될 만했다.
소크라테스는 궤변학자들과 입장이 반대이다. 그들과는 달리 그는 진리를 추구하노라고 공언했다. 그러나 플라톤의 대화체 작품에서 그에 대해 나타난 것이 정확하다고 본다면, 그는 논쟁에서 이기려 하지 않았으며 elenchus(문답법)라고 불리는 것이 그의 변증법에 있어서 주요 요소였다.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은 아마도 제논의 파라독스의 세련된 형태일 것이다. 이것은 반대자로 하여금 일련의 문답을 통해서 그의 원래의 명제로부터 그에 모순되는 귀결을 이끌어내도록 함으로써 논박하는 일종의 지연된 반대심문이다. 이것은 논리적으로 타당한 절차인데, 이는 논법 '만일 p 가 q를 포함한다면, q는 참되다(즉 p는 그르다)'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에게 있어서 변증법은 희랍어 단어의 글자 뜻 그대로 토론의 기술이었고 문답을 통해 진리를 구하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개념의 정의가 그에 의해 전형적으로 추구된 진리의 종류이고, 그는 elenchus에 또 하나의 기술, 즉 후에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epagoge라고 불리는 기술을 보충하였다. 이것은 반대자로 하여금 특정 사례에 대한 일련의 명제를 인정하게함으로써 귀납적 결과에 이르게 되는 방법이다. 이젠 변증법을 논의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소크라테스에게서 기인했다고 정당하게 말할 수 있는 두가지 혁신적인 것이 있다. 하나는 귀납적(epagogic) 논법이고 다른 하나는 보편적인 정의이다'라고 말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변증법에 대한 다른 개념을 가지고 있었고 elenchus는 제노에게서 유래되었기 때문에 그가 언급하고 있는 이 두가지는 이해했던 대로 소크라테스에 의해 변증법에 기여한 것들이다. 아무것도 모른다며 논박을 하지 않는 소크라테스의 아이러니 또는 허식은 소크라테스 변증법의 개인적인 특징이었고 후대에서의 발전에 아무것도 기여하지 못하였다.
2. 플라톤
플라톤의 중기 대화체 저서에서 역사상의 소크라테스엑 전형적인 것을 넘어선 변증법 개념의 발전을 찾아볼 수 있다. 비록 소크라테스가 주인공으로 나올지라도 그가 제안하는 것으로 묘사된 견해들은 추측컨대 플라톤의 것이다. 그곳에서 변증법은 인간의 기술 중에서 최상의 것은 무상의 철학적 방법으로 간주되어 있다. 그는 그것을 '말하자면 학문들 위에 놓인 관석'이라고 했다. [Cratylus]에서 플라톤은 변증가를 가리켜 '어떻게 질문하고 어떻게대답하는지 그 방법을 아는 사람'이라고 묘사했으며, 변증법을 문답법으로 보는 이같은 관점은 소크라테스 철학의 요소로서 그것에 대한 그의 변화하는 개념들을 꿰뚫고 있는 한줄의 실이다. 게다가 변증법은 항상 같은 주제를 다루었다.즉 그것은 각 사물의 불변의 본질을 추구했다. 그러나 플라톤이 변증법에 관련시킨 추론의 종류는 변화하는 것으로 보인다. 중기 대화체 저서에서 변증법은 가정에 대해서 모종의 조작을 가하는 것인 반면에, 후기의 저서(예컨대 Phaed-rus와 Sophist)에서는 대신 분리(diairesis)를 방법으로서 강조했다. 요컨대 분리란 유개념을 종개념으로, 보다 일반적인 개념을 보다 덜 일반적인 것으로 재차 분석하는 것이다. 이같은 방법을 통해 더 이상 분리가 불가능한 정의에 이르게 된다. 이 과정은 종합 도는 집합(sunagoge)이라는 반대과정에 의해 보완된다.
비록 플라톤이 변증법에 대해 언제가 극히 호의적인 태도로 이야기했다 해도 [Republic](VI-VII)에서 그가 그것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 내용은 절정에 달하고 있다. 그는 그것을 철인군주의 교육에서의 두드러진 특징으로 보고 있고,결국 지고의 형상, 즉 선(Good)의 형상에 관련시키고 있다. 그것은 확실성에도달해야 하고 가정의 필요를 극복해야 한다. 그러나 표현된 생각이 고상해짐에 따라 관련된 정밀과정도 점점 어느 정도 모호해지고, 매우 정확한 몇몇 단어에 대한 해석이 크게 논란을 일으키게 되었다.
만일 변증법이 토론의 과정이라면, 그것은 개인적인 사고에는 아무런 소용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플라톤에게 있어서 그 두가지에는 차이가 없다. '사고와 담화는 같은 것이다. 그러나 영혼이 그 자체와 주고받는 묵묵히 일어나는내적 대화는 특별히 사고라는 명칭을 지녀 왔다.' 하지만 플라톤의 가장 중요한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미 사고의 본질에 대해 다른 견해를 갖고 있었고 변증법에 단지 이차적인 역할을 부여하고 있다. '우리가 혼자서 연구하기보다는 타인과 함께 연구할 때 속이는 일도 훨씬 많은 정도로 발생한다. 이는 타인과 함께 하는 연구는 말을 수단으로 해서 이루어지지만 자기 자신의 마음 속에서 하는 연구는 완전히 대상 그 자체를 수단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변증법은 더 이상 학문의 방법이 되지 못하였다.
3. 아리스토텔레스 변증법
연습은 플라톤 학파의 주요 활동이었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주전 367년부터 플라톤이 사망한 347년까지 그 학파에 속했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Topics]가 이 변증법적 논쟁의 보조자료로 저술되었음이 명백하다. 그 책은 '모든 쾌락은 선하다'와 같은 주어진 명제를 확증하거나 뒤엎기 위해 논법을 찾도록 안내하는 안애서이며, [Topics]에서 예로서 사용된 특정 명제들이 플라톤 학파의 논쟁에서 유래한 것임은 의심할 나위 없지만, 그것들을 다루고 있는 방법들은 완전히 일반적이어서 같은 형태의 어떤 명제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따라서 [Topics]는 변증법을 최초로 체계적으로 설명한 책이었고,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실로 그 문제를 자신이 다루기 이전에 '그것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고 자랑할 만 했으며 궤변학자들이 체계적이지않은(atechnos) 교훈을 가르쳤다고 비난하였다. 보편화와 체계화를 지향한 결과 아리스토텔레스는 [Topics]에서 형식논리학의 여러 기본 원칙들(명제 해석학 에서의 일부와 관계논리학에서의 일부를 포함)을 발견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것들을 명백하게 형식화하지는 못했다. 이 [Topics]의 대부분은 논증의 이론으로서 변증법을 대신한 정교한 체계-형식논리학의 최초의 체계-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신의 [Analytics]에서 발전시킨 일종의 논법, (직언적인) 삼단논법을 발견하기 전에 쓰였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식논리학이 변증법을 대신하여 발전했을지라도,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여전히 변증법에서 유래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그가 플라톤의 분리 방식을 숙고한 결과로서 삼단논법을 발전시켰다는 주장이 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서 변증법의 두드러진 특성은 추론의 형태라기보다는 전제의 인식론상의 상태이다. 만일 전제가 모든 이 또는 대다수의 철학자들에게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견해라면 추론은 변증법적이고, 만일 전제가 단지 가능성이 있게 보이거나 추론이 부정확하다면 그것은 논쟁적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의 변증법은 매우 훌륭하다. 심지어 그것은 '가능성의 논리학'이라고도 불려 왔었다. 이 명칭은 변증법이 실상은 귀납적 추론을 포함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오해하기 쉬운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변증법이 엄격한 의미로서의 지식을 얻거나 학문을 하는 방법으로서는 충분치 못하다고 믿었다. 그 때문에 우리는 어느 것이 올바르고 자명한 전제에서 출발하는 타당성있는 추론인지 논증할 필요가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변증법의 가치는 세가지이다. 그것은 지적 훈련에 유용하고, 각자의 전제에 의거하여 타인과 토론하는 데 유용할 뿐만 아니라 학문의 입증하기 어려운 제일 원리들을 연구하는 데 유용하다. '변증법은 비평 과정으로서 모든 연구조사의 원리에서의 통로가 된다.'
4. 스토아 학파와 중세 학자들
메가라의 유클리데스(플라톤과 동시대의 인물)와 그의 후계자들은 메가라에서 유명한 논리학자들이었는데, 논리학에 있어서의 메가라 전통은 스토아 학파에게로 계승되었다. 스토아 학파의 논리학은변증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아마도 그들 전통의 창시자들이 제논의 파라독스에 관심을 가졌고 추론을 관련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주전 280-206년에살았던 크리시푸스의 지도 아래서 스토아 학파는 절정에 이르렀으며, 4세기 후에도 여전히 강한 세력을 떨쳤다. 이 시기에 '만일 신들이 변증법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크리시푸스이 변증법일 것이다'라는 속담이 생겨났다.
스토아 학파는 '변증법'으로 먼저 형식논리학을 전개했다. 거기에서 그들은 특히 현재 명제해석학이라고 불리는 것에 속하는 여러 추론방식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그들은 '변증법'이란 용러를 광범위하게 적용시켰다. 그리고 그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문법이론 연구와 의미관계 및 진실성에 대한 숙고를 포함하였다.
초기 스토아 학파 학자들의 특별한 관심사를 보여주는 이 넓은 변증법의 영역은 계속해서 그 학파의 특징이었고, 그러한 영역은 키케로에 의해 발아들여졌으며 아마도 세네카에 의해 지나치게 강조되었던 것 같다. 후자는 변증법이 '의미와 말, 즉 해당사항과 그것을 나타내는 표현의 두 부분으로 구분되었다'고 기술했다-dial-ektike in duas partes dividitur, in verba et significationes, id est in res quae dicuntur et vocabula quibus dicuntur.
중세에 들어와서도 '변증법'은 계속해서 논리를 가리키는 통상어로 사용되었다. 예컨대 중세에서 처음으로 나타난 논리에 대한 논문은 알퀸의 tica>였다. 그러나 logica라는 말도 사용되었는데, 실상 아벨라르두스는 한편의 와 한편 이상의 를 저술했던 것이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술이 알려지게 되자 스콜라 학파의 학자들은 변증법의 여러가지 개념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대학교 학위심사의 기초가 된 중세의 논쟁은 플라톤 학파의 논쟁이 부활한 것이거나 그것의 먼 후손으로 간주될 수 있다. 논객들은 주로 삼단논법을 사용하여 정립과 반정립을 밝히고 자기의 주장을 폈다.고대의 논쟁과의 차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론들이 신의 계시와 일치되지 않는 전제들을 포함했다는 것이다.
5. 칸트와 그의 후계자들
[Critique of Pure Reason]에서 칸트는 고대인들 사이에서 변증법은 실상 '착각의 논리'(Logik des Scheins)로 사용되었다고 맹렬히 주장하였다. 설명하기를 자신은 '착각의 논리'라는 말을 변증법적 착각에 대한 비평으로서 논리학에 적용시켰다고 하였다. 그는 선험적 논리학 저서제2부에 (선험적 변증론)이라 제명을 붙였다. 이새 종류의 변증법은 선험적 판단, 즉 경험의 한계를 넘어가는 체하는 판단들의착각을 드러내는 데 관여했다. 그러나 착각이란 자연스러운 것이며 불가피하기 때문에 그것을 완전히 몰아내기란 불가능하다고 그는 생각하였다.
비록 칸트가 자신의 선험적 변증론에서 순수이성의 이율배반을 네 벌의 정립과 반정립으로써 명백히 밝혔을지라도, 그는 이율배반에 대한 자신의 해결책을 종합이라고 부르지는 않았다. 독일 철학에 저 유명한 '정립.반정립.종합'을 도입한 사람은 칸트의 후계자 요한 고틀리프 피히테(Grundlage der gesamten Wissenschaftslehre, Jena und Leipzig, 1794)였다. 이 점에서 그의 뒤를 이은 사람은 쉘링이지 헤겔은 아니었다. 피히테는 반정립이 정립에서 추론될 수 있다고 믿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의 견해에서 종합은 정립과 반정립이 확립된 것들을 결합시켜 주는 것 이상의 어떤 것도 성취하지 못하였다.
6. 헤겔과 그의 후계자들
헤겔은 흔히 자신의 학설을 '정립. 반정립. 종합'의 세단계 형태로 나타낸 인물로 생각된다. 이와 같은 견해는 그가 사실상 그 용어들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잘못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가 그 삼단계 형태에 끌리는 자신의 마음을 나타냈을지라도, 변증법에 대한 그의 전체체계도, 그의 철학의 특정 부분도 단순히 '정립.반정립.종합'의 형태로만 설명될 수는 없다. 헤겔에 있어서의 이것의 전설은 '반정립'이란 말을 적절하지 못한 곳에 사용한 일부 영역서들의 지원을 받았던 것이다. 하지만 실로 헤겔의 변증법은 사상이나 개념들을 그것들의 반대자에게로 전화하고서 보다 고차원적인 결합을 성취하고 있다. 그러나 만일 그것이 부정을 통해서 보다 높은 진리에 도달하는 과정이라면 변증법의 새로운 개념은 되지 못한다. 실상 헤겔은 필시 고대 변증법의 가장 위대한 걸작인 플라톤의 [Par-menides]에 경의를 표함으로써 자신의 전통적인 개념에 대해 깨닫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변증법이 세계과정-사고과정일 뿐 아니라 역사와 우주 전체의 과정-이라는 학설까지도 완전히 새로운 것이 아니며 헤라클리투스와 신플라톤 학파의 프로클루스에게서도 발견된다. 여기에서도 헤겔은 철학사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그의 선배들을 의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변증법에 대한 헤겔의 견해에 있어서 진정 새롭게 보이는 것은 필연적인 운동에 대한 파악이다. 변증법은 '사고의 본질에서 발견되는 규칙의 학문적 응용'이라고 했다. '반대자에게로 전환하는 것'은 개념이나 사물의 제한된 또는 유한한 본질의 자연스런 결과로 보았다. 사상.자연.사회에서의 모순들은 비록 그것들이 형식논리학에서의 모순이 아니라 개념상의 부적절한 면일지라도, 헤겔에 있어서 일종의 필연성을 통해 보다 높은 발전의 단계로 안내하는 것들로 생각되었다.
헤겔은 자발적인 제자들 뿐만 아니라 키에르케고르와 같이 맹목상은 그에 대해 반대의 기를 든 사상가들에게까지도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헤겔 변증법의 가장 중요한 가지 중 하나는 마르크스의 변증법인데 물론 거기에서는 헤겔의 '영혼'이 '물질'로 대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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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의 변증법
변증법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고, 논란과 비판도 많다. 영미 철학자들은 변증법을 ‘오류’라고 비판했고, 쇼펜하우어는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개소리’라고 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변증법으로 미래를 예측했을 뿐만 아니라, 과학에도 적용했다. 그러나 헤겔은 변증법으로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상한 적도 없고, 이런 생각 자체를 거부했다. 헤겔의 변증법은 무슨 방정식이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엘레아의 제논(약 2400년 전)을 변증법의 발명자라고 했는데, 이 때 변증법은 일종의 논쟁술(Eristik)이었다. 이런 논쟁술은 플라톤의 국가에서 종종 볼 수 있다.
보통 우리가 말하는 정 - 반 - 합 이라는 3박자 방정식은 헤겔이 아니라 피히테의 발명품이다.
헤겔은 정신현상학에서 이런 방정식에 조롱을 퍼부었다.
헤겔의 변증법을 얘기할 때는 주인과 노예의 갈등을 많이 거론한다. 노예는 자신이 직접 노동하기 때문에 자립적인 존재가 되고, 주인은 노예의 노동에 의존하는 결과가 초래되어 노예와 주인의 극적인 역할 전도가 발생한다. 이런 사고방식은 헤겔의 변증법과 가깝다.
헤겔의 변증법은 이렇게 갈등을 통한 발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낳는 인간의 노력,
그리고 갑작스러운 역전을 의미한다고 보면 무리가 없다.
무엇보다 핵심 단어 ‘aufheben’(지양)을 살펴보면, 어느 정도 개념이 잡힐 것이다.
이 단어는 ‘갖다버리다’, ‘보존하다’라는 반대되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여기에다 ‘들어 올리다’는 뜻도 있다. 즉, 버리고, 보존하고, 올라가는 것이다.
결국 필요 없는 것은 버리고 필요한 부분만 보존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인간의 생각은 이렇게 발전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다음과 같은 과정이다.
라면에 계란을 넣자.
계란 넣었더니 느끼하더라.
그렇다면 고춧가루도 함께 넣자
다시말해, 직접 겪어보고 ‘아 이거네?’ ‘어 아닌 것도 있네’ ‘알고 보니 이거네’하면서
알아가는 것이다. 말하자면, 전체를 보는 사고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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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관계들이 모조리 발견되고, 모든 것들이 밝혀졌을 때에야 비로소, ‘전체적인’ 진리가 인식된다. 참된 것은 전체다. 그리고 변증법의 세 단계는 전체로 나아가는 길이다. 이 세 단계의 법칙은 ‘미리 중지하지 않는 것’이다. / 요한네스 힐쉬베르거 ‘서양철학사
헤겔은 ‘종합선물세트’를 추구한다. 그런데 이 선물세트는 박스만 번지르르해서는 안 된다. 속이 꽉 차야 된다. 이런 사고방식을 요즘 유행하는 페이스북에 적용해 보자.
페이스북을 보고 ‘이건 말장난이야, 아무 의미도 없어. 시마이!’하고 끝내면 안 된다. 그 대신 사람들이 쏟아내는 메시지와 사진을 낱낱이 살펴보고, 그 내용과 장점과 단점을 쫘악 뽑아낸다. 페이스북에 몸을 푹 담갔다가 빠져 나와서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 다시 몸을 담가보고 앞에서 정리한 생각에 뭔가 문제가 있다면 고친다.
좋든, 싫든 이런 경험 - 관찰 - 비판 시리즈를 끝도 없이 계속해야 한다. 절대 건너뛰면 안 되고, 하나도 빠뜨려서는 안 된다. 이렇게 해야 내가 페이스북에 대해 ‘뭘 좀 안다’고 할 수 있다.
'지겨워, 이제 끝'...이런 태도는 변증법과 한참 거리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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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게는 양쪽 가운데 어느 한 쪽 만을 참이라고 우기면서 서로 어긋나는 쌍방간의 자유로운 소통을 이루지 못하고, 대립과 갈등을 초래하는 양쪽 모두가 필연적인 구성요소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내용이나 실질 면에서 어떤 평가를 내리는 것이 가장 쉽고, 그 내용이나 실질성이 어떤 것인지 파악하는 일은 그것보다 어렵고, 이 2가지를 통일해 내용과 실질성을 모두 드러내는 것이 가장 어렵다.
/ 헤겔 ‘정신현상학’ p.36~37
형이상학적으로 정리하면, 헤겔은 정신현상학과 논리학에서 변증법을 조금 달리 설명하는데,
정신현상학에서는 유한자들의 세계가 바로 무한자라는 것을 아는 방법이라고 했으나,
논리학에서는 서로 모순/대립되는 것으로 보이는 것들이 알고 보면 그렇지 않다고 보는 태도를 말한다.
정신현상학에서는 온 세상 만물을 모조리 살펴보고 '이 모든 것이 그 분이었구나'하고 터득하는 방법이고, 논리학에서는 저 위에 올라서서 전체를 바라보는 방법이라는 얘기다.
여기서 당장 ‘사람이 어떻게 그런 경지에 올라가? 개소리 아니냐?’하는 반론이 있을 수 있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모조리’, ‘전체’ 다.
정신현상학, 논리학에 등장하는 변증법의 의미가 약간 다르기는 하지만,
꼼꼼하게 전체를 살피자는 의미를 공통적으로 내포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헤겔은 비약을 용납하지 않는다.
공부하다 갑자기 머리 깎고 입산하거나 무당 찾아가지 말고,
난데없이 경구나 시를 중얼거리지도 말고,
전체를 볼 수 있도록 '차근차근' 그리고 끝도 없이 노력하라는 것이다.
오랫동안 헤겔을 강의했던 월터 카우프만은 헤겔의 변증법이 지니고 있는 의미를
다음과 같이 정리한 바 있다.
오류를 무서워해서는 발전이 없고.
가장 해로운 것은 오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일이며.
그리고 우리가 생각을 해가는 과정에서 오류는 반드시 발생하고,
오류 없이는 발전도 아예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