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어른이 되고 싶었지만 ☆이 되었습니다.]
100만이 넘는 국민의 외침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세월호참사로 희생된 3명의 생일이 있습니다.
오늘은
단원고 명예 3학년 1반 #이연화. 4반 #김범수. 8반 담임이신 #김응현선생님의 생일입니다.
1 : 1반 #이연화
" 나 두고 먼저 가는게 어디있냐 !
너가 하고 싶었던거, 아직 할 게 너무나 많은데 두고가면 어떻게...
이럴 줄 알았다면 미루지 말고 다할걸.
너무 미안해,너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거기서는 안 무섭고, 안추워?
거기서는 평생 행복했음 좋겠어.
항상 밤마다 네가 너무 생각나서 울다 자. ."
이쁘니 여니,
연화는
활달하고 꾸미는 것을 좋아하던 아이였습니다.
가족들이나 친구들의 손톱을 예쁘게 정리해주거나 꾸며주는 것을 좋아라 했습니다.
학교에서는 댄스 동아리활동도 했구요.
연화의 꿈은
나중에 커서 네일 아트를 하고 싶었던 아이였습니다.
연화는 손가락이 가늘고 길어 예뻤던 아이 이기도 했답니다.
오빠 하나를 둔 연화는 사촌 언니와도 친하게 지냈습니다.
사촌 언니가 부탁을 하면 툴툴대면서도 잘들어 줬다고 합니다.
임신을 한 사촌언니가 떡꼬치가 먹고 싶다고 하자 온 동네를 다 뒤져서 사다 준 연화였습니다.
초코릿을 좋아하고 먹고 싶어했지만 알네르기 때문에 먹지 못했던 연화이기도 했습니다.
학교에서도 밝은 성격답게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연예인 소지섭을 좋아해 늘 자신을 소지섭부인이라고 했던 연화였으며,
친구들의 고민상담사였던 흔적이 책상위 수북한 메모에서 발견됩니다.
4반 숑키승묵이 어머니의 메모도 발견되었는데요.
실은 강승묵은 연화의 좋은 남자친구였으며. 승묵이에게는 엄마에게 말하지 않은 여자친구였습니다.
세월호가 침몰하던 날 아침,
연화는 친구들과 SNS로 수다를 떨었습니다.
사촌언니는 연화에게 제주도 감귤 초콜릿을 사오라고 부탁했습니다.
하지만 연화는 초콜릿을 사오지 못했습니다.
사고 일주일만에 #이연화가 아닌 #111번으로 , 출산후 26일만에 신생아를 안고 연화를 찾아나선 가족의 품에 4월 22일에야 돌아온 연화는 지금 경기도 화성효원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2 : 4반 #김범수
"가족들은 보고 싶어서 매일 꿈속에서라도 기다리고 있단다.
편지를 써보고 책상에 앉아 과거를 생각해 보기도 하고...
엄마는 애써 아픔과 고난을 극복하려고 몹시 애쓰고 아빠는 한 점 누 가 될까 해서 할수 있는한 여러방면으로 유가족들과 함 께하고...."
범수의 꿈은 국군장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186cm. 85kg. 신발사이즈 310밀리미터. 체격이 좋고 힘이 장사였던 범수였습니다.
운동을 좋아해서 초등학교때 태권도 2품을 따기도 했고 장교가 되려면 공부도 잘해야 한다며 매일 밤 10시 넘어서까지 학교 야간자율학습과 학원에 다니던 아이였습니다.
범수의 책상에는
목표로 "공부하기"라고 씌여져 있습니다.
자신의 꿈을 향해 열심히 달리던 범수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덩치는 컷지만 범수는 손재주가 많아서 종이접기와 음식 만들기를 잘했습니다.
단원고 제과제빵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만든 과자와 빵을 항상 엄마에게 먹으라고 가져다 줬던 착한 아들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다른 또래 아이들처럼 게임도 잘하고 만화책도 즐겨 봤다고 합니다.
범수는 늘 집에 오면 "엄마. 나 옴" 하고 인사를 했으며 엄마는 범수를 "범" 이라고 불렀습니다.
세월호가 침몰하던 순간에도 아빠에게 긴급한 상황에도 차분하게 전화로 알리며 "꼭 살아서 가겠다"고 했던 범수였습니다.
아버지도 구명조끼 확인하고 정신 똑바로 차리고 안내방송 잘 듣고 대처하라고 하였지만결국 9시 17분에 전화는 끊기고 말았습니다.
자라면서 성실하고 말도 잘 들었던 범수였고 힘이 장사였고 운동을 잘했던 범수였기에 꼭 살아서 돌아 올 거라 여겼지만 범수는 끝내 차가운 몸으로 가족의 품에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범수아버님은 다리가 불편하신 몸으로 범수와 친구들을 위해 싸우고 계십니다.
절룩이는 발걸음으로 키만큼 큰 남천화분을 안고 3층 계단을 오르시고 수술후에는 도보행진을 떠난 가족들을 대신해 혼자서 가족대기실을 지키시는등 누구보다도 진한 부정을 보셨지요.
최근에는 매주금요일마다 안산에서 피켓을 들고 두시간씩 서 계시기도 합니다.
모든게 사랑하는 범수와 친구들을 위한 일이라 하시며....
범수는 안산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3#김응현선생님
김응현선생님은 학생들이 "아빠"라고 부를 정도로 자상한 선생님이셨습니다.
세심하고 꼼꼼하고 언제나 다른 사람들을 먼저 배려하고 가족과 주위사람들께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학생들이 아무리 귀핞게 질문을 하여도 하나하나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해주고 학생들이 하는 말은 의견이든, 고민이든, 푸념이나 하소연이든 뭐든 다 들어주는 푸근한 선생님이셨다고 합니다.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지루해하면 양팔을 자동차 와이퍼처럼 휘두르며 칠판을 지워 학생들을 즐겁게 해줬고 다른반 선생님과 티격태격 장난을쳐서 학생들에게 웃음을 주시기도 하였습니다.
가끔은 학생들에게 시를 읽어주고 노래를 불러주시던 낭만적인 선생님이셨습니다.
선생님은 충북 보은 출신이고 충북대학교 사범대학 과학교육과를 졸업하셨습니다.
2014년 3월 1일 단원고등학교에 부임하셔서 8반 담임을 맡으신후 한달 반만에 사랑하는 제자들과 하늘 나라로 수학여행을 떠나셨습니다.
참사 이후 한 달 가까이 소식이 없다가 5월14일 막내아들 생일을 하루앞두고 스승의 날을 하루 앞두고 그리운 가족품에 돌아오셨습니다.
친구님들
연화와 범수. 김응현선생님의 생일을 축하하여주시고 #이연화_김범수_김응현선생님을 기억하여주십시요.
#1111분향소전광판무료문자
케잌은 이연회ㅡㅡ #이동순 김범수_ #다음카페_여성시대 김응현선생님ㅡ #박순임님이 보내주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