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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미내다리[江景渼奈橋] 시도유형문화재 제11호
충남 논산시 채운면 삼거리에 있는 조선 후기 돌다리. 강경 미내다리는 채운면 삼거리 강경천에 설치되었으며, 조선시대 충청도와 전라도를 연결하는 도로상에 놓였던 다리이다. 강경 미내다리는 길이 30m, 너비 2.8m, 높이 4.5m로 건설 당시 삼남 지역에서 제일 규모가 큰 다리였다. 3개의 홍예(虹霓)는 가운데가 크고 남북쪽이 약간 작으며, 받침은 긴 장대석으로 쌓고 그 위에 홍예석을 둘렀다. 가운데 홍예의 종석(宗石)은 다리 난간쪽으로 돌출시켜 호랑이머리를 선각하였고, 북쪽 홍예의 정상에는 용머리를 새겼으나, 남쪽 정상에는 아무 조각도 없다.
예전에 강경 미내다리 앞에 있다가 지금은 국립부여박물관으로 옮겨진 은진미교비(恩津渼橋碑)에 의하면, 강경 미내다리는 1731년(영조 7) 강경·황산·여산의 유지들이 재물을 모아 1년 만에 평교(平橋)였던 것을 3개의 홍예가 있는 돌다리로 다시 세운 것이라고 한다. 1973년 12월 24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1호로 지정되었다.
전국 교역의 중요한 거점이 되었다는 강경포구가 있던 곳으로, 이 강을 ‘미내(渼奈)’라고 부른 것에서 유래하여 ‘미내다리’라고 부른다. 긴돌을 가지런히 쌓아 3칸의 무지개 모양를 만들고, 그 사이마다 정교하게 다듬은 돌을 가지런히 쌓아 올렸다. 다리의 강둑쪽 중간쯤에는 형태를 정확히 알 수 없는 동물의 얼굴이 조각되어 있는데, 눈은 마치 장승의 눈과 같고, 코는 뭉툭하며, 얼굴 양옆으로 귀 모양과 갈기가 있다. 다리 옆에 놓여 있던 ‘은진미교비’는 국립부여박물관에 보관 중인데, 비문에 의하면, 조선 영조 7년(1731) 주민의 필요에 따라 강경촌 사람인 송만운이 주도하여 이 다리를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미내다리는 전라도와 충청도를 가르는 강경천 제방에 세워져 있다. 이름은 강경천을 미내(渼奈)라고 부른 데서 붙여졌다. ‘동국여지승람’에는 미내다리가 조수의 차에 의해 바위가 보인다하여 조암교(潮岩橋)라고 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곳 논산·강경 일대에는 죽어서 염라대왕을 만나게 되면 "너는 이승에 살 때 개태사의 가마솥, 관촉사의 미륵불, 강경의 미내다리를 보았느냐"고 묻는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이승에서 이 세가지를 못보고 죽었다면 아까운 죽음이라는 뜻인가? 다리란 지역과 지역을 연결해주며 사람과 사람을 만나게 해주는 아주 중요한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연과 소금장수, 마차꾼, 봇짐장수들이 저 다리를 건넜을까?
홍예 머릿돌 양쪽에 용머리와 귀면을 튀어나오게 한 조각물이 있는데 이는 재앙을 막으려 설치한 조각물이다. 아치형의 다리 돌덩이들은 접착 세멘트를 사용하지 않고도 서로가 쐐기가 되어 서로 물려있는 형상이다. 즉 윗부분은 길고 물이 지나가는 아래쪽은 길이가 조금 짧기에 아래방향으로 힘을 가하면 힘은 돌덩이들로 전달되는데, 맨 윗돌은 그 아랫돌을 그 아랫돌은 또 그 아랫돌을 누르는 식으로 힘이 전달이 된다. 돌은 누르는 힘( 압축력)을 견디는 데는 탁월하다. 아치에서는 위 그림에서와 같이 모든 돌덩이들이 압축력만 받게 되어있기 때문에 튼튼한 다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놀라운 선조의 과학적인 지혜에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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