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대의 건축공간산책-9>
이름없는 건축, 그 편안함- 다천산방
최상대 /전 대구건축가협회 회장, 대구예총부회장, 한터겐건축
‘건축가 없는 건축’이름의 책이 있다. 이름 그대로 특정한 건축가가 설계하지 않았지만 본질적으로는 건축 형태를 지닌 건축들, 작위적이거나 인위적이지 않은 원초적 건축현상들을 소개하고 있다. 나무위에서 열매처럼 모여 사는 북아프리카의 주민들, 나무와 사람 그 자체가 삶의 건축이어서 아무런 장치 장식도 필요치 않는다. 판탈리카의 절벽 위에 굴을 만들어서 생활하는 혈거穴居마을은 새들의 집처럼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로 여겨질 다름이다. 열대지방의 바오밥 나무 속을 파서 그 안에서 생활하는 것도 그야말로 자연 그대로의 주거 건축이다. 거대한 바위산을 조각과 같이 절단하고 파내어서 만든 교회, 인간의 힘보다도 자연 가운데에 동화되어있는 건축의 원형질은 드러내지 않음의 순수 미학을 보여준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은 문명세계의 현대인들에게 많은 메시지를 던진다. 소로우는 월든 호숫가에 가로 세로 3~4m 정도에 높이가 2m 조금 넘는, 그야말로 손바닥만 한 판잣집을 직접 지었다. 오로지 방 한 칸 작고 좁은 집에서 1845년부터 2년간의 월든 호숫가 통나무집에서의 생활과 사유룰 기록하였다. 더불어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삶, 소박하고 검소한 삶만이 인간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사상을 전하고 있다.
도시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는 현대인, 현대의 건축은 주변보다도 더 드러나 보이고 개성 독창성을 표현하고자 저마다 애를 쓰고 있다. 새 건물은 옆 건물과는 달라야하고 간판 역시 크고 원색으로 돋보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동네마을과 가로의 경관은 특별함의 개성주의보다 주변과 함께 어울리는 맥락脈絡주의 동질성이 더욱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몇 년 전 만촌동 한적한 주택가를 차를 타고 지나가다 돌층계위에 편안해 보이는 작은 집을 발견했다. 집 분위기를 깨트리지 않는 작은 간판 이름은 ‘다천산방’이었다. 이미 이집은 신문에서 여러 책자에도 소개되어 잘 알려져 있었다. 집 구경을 위해서 다시 찾았을 때에는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도로의 특징이 없고 주변에는 눈에 띄는 특정한 건물도 없는 그저 평범한 동네길이라 몇 바퀴를 돌고서 겨우 찾을 수가 있었다.
기왓장이 얼기설기 박혀있는 석축 위에 올라앉은 아담한 박공 경사 지붕집이다. 오래 그 자리에 있어왔듯 검은 방부제를 처리한 나무판자를 입힌, 마치 오래된 적산敵産 집을 연상시킨다. 투박한 침목 계단을 밟아 오르면 장독대가 군데 군데 놓인 자그마한 잔디마당이다. ㄱ자형 건물은 마당을 감싸 안고 달랑 달랑 처마 끝 풍경이 시선을 이끈다. 도시 한가운데에서의 한적함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내부공간은 둘로 나누어진다. 출입구가 있는 본체건물과 왼편 화장실로 연결되는 뒤켠의 건물이다. 본체건물의 내부는 꾸밈없이 그대로 드러내고 있어 그저 평범 편안한 사랑방 분위기이다. 카운터가 있고 주방이 보여지고 차 도구를 진열해놓은 전통찻집으로 별다른 인테리어가 없다. 각각 다르게 외부로 난 창들로 인해서 각각 전망과 분위기를 달리할 뿐, 특별함이 없어서 선뜻 자리 잡기가 오히려 쉽지 않다. 뒤켠의 공간은 화장실로 가는 복도를 돌아서 본체와는 분리된 은밀한 별실 분위기이다. 전면 유리를 통해서 남쪽의 정원을 통째로 바라볼 수 있어 항상 손님들이 먼저 차지하는 자리다. 찻집과 커피샆 식당의 자리는 너무 안락하거나 편안해서는 영업적 계산에는 불리하다는 이론이 있다. 고객이 자리에 오래 머물수록 좌석 회전 횟수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목재트러스 구조 노출 천정은 경사지붕을 구성하기 위해서라기보다 내부 공간 디자인을 위한 의도로 읽혀진다. 목재 트러스구조는 각角 목재를 볼트 너트 등 철물로 조립 결합한 구조형식이다. 그로 인하여 공간은 높아 보이고 창고나 헛간 같은 편안함을 준다. 이집의 매력은 잘 다듬어졌다거나 세련되지 않은 투박함이 매력이다. 값싼 재료를 사용 번쩍거리는 치장재가 없고 마치 수제품을 다루듯 질박함이 묻어난다. 화장실에 들어서면 함석 아연조각 베니어판 등의 어울리지 않는 재료로 대충 만든 듯한 요소들이 오히려 디자인 감각으로 다가온다. 아마도 설계 도면보다도 현장에서의 시공감각으로 만든 집이 아닐까? 곳곳에 걸린 자그마한 미술작품들을 볼 수 있는 것도 이외의 즐거움이다. 집 주인의 안목과 내공이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된다.
도시 곳곳에는 브랜드 원두커피집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으며 계속 생겨나고 있다. 원가에 비해 턱없이 비싼 가격, 수입커피의 경제학(지난해 수입량 11만7000톤, 수입액 4억2천만 달러)을 생각해보면 무작정 반길 일만은 아닐 것이다. 길을 돌아서면 언듯 만날 수 있는 골목안 사랑방 같은 작은 전통찻집의 정경도 이 도시 안에 많았으면 좋겠다.
도로에서 바라본 건물, 소박하고 친밀하게 느껴진다.
석축 위 경사지붕 건물에 이르는 계단 진입
마당 동측 주 출입구 진입 부분
잔디마당에서 바라본 북측 건물
출입구 상부의 목조와 유리로 디자인된 차양
자연석 기와장 나무판자 등 무작위적인 자연적 소재
넓은 창을 통해서 잔디마당과 내부는 한 공간으로 통합된다
목조트러스가 구조의 노출이 내부 디자인 요소이다.
천정 트러스 부분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