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전 대통령 서거
딸 소영씨 권유로 세례 받아
제13대 대통령을 지낸 노태우 전 대통령이 26일 지병 악화로 서울대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89세.
이날 입원 한지 1시간 만인 오후 1시46분께 세상을 떠났다. 입원 뒤 갑자가 병세가 악화된 것으로 전해졌다.
고인은 1987년 6월 항쟁 직후 집권 민정당(민주정의당) 대선 후보로서 ‘6·29 선언’을 발표해 대통령 직선제를 받아들인 뒤 그해 12월 13대 대선에서 당선된, 대통령 직선제 도입 후 첫 대통령이었다.
1932년 대구 달성에서 출생한 고인은 1955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수도사단 맹호부대 대대장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이후 1979년 9사단장, 수도경비 사령관을 역임했고, 1980년 국군보안사령관에 취임해 제5공화국 출범 후 정무 제2장관에 임명됐다.
1982년 초대 체육부 장관에 임명된 뒤 같은 해 4월 내무부 장관으로 전임하고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전국구 의원으로 당선돼 정계에 입문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 임기 말 후계자로 낙점된 고인은 6월 항쟁에서 분출된 국민의 직선제 개헌 요구를 전면 수용하고 ‘보통 사람’을 슬로건(구호)으로 내세워 1987년 12월 13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다.
노 전 대통령은 민정당이 13대 국회의원 총선에서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하자 여소야대 정국을 극복하기 위해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 김종필 신민주공화당 총재와 3당 합당을 성사시켰다.
노 전 대통령은 13대 대통령을 퇴임한 뒤 1995년 내란 혐의로 전두환 전 대통령과 함께 구속기소 돼 1997년 4월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17년을 선고받았고, 같은 해 12월 김영삼 대통령에 의해 사면됐다.
노 전 대통령은 2002년 전립선암 수술 이후 건강이 악화된 데다 희소병인 소뇌위축증을 앓으며 오랜 기간 병상에서 생활해 왔다. 지난 2003년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이후 공식 석상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고인은 희귀병인 ‘소뇌위축증’을 앓던 2008년 3월 연희동 자택에서 세례를 받았다. 세례는 온누리교회 목회자들이 노 전 대통령 연희동 자택을 방문해 베풀었다.
노 전 대통령은 딸 소영씨의 권유로 기독교 신앙을 키우고 세례 받기를 결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옥숙 여사와 딸 소영씨, 아들 재헌씨 등 1남 1녀가 있다.
10월 26일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서거일(1979년)이기도하다.
한편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유족의 의사와 정부 절차를 거쳐야 해 판단이 필요하다"면서도 "국가장(國家葬)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국가장법'에 따르면 국가장은 전·현직 대통령이거나 국가 또는 사회에 현저한 공훈을 남겨 국민의 추앙을 받는 사람이 사망했을 때 행안부 장관의 제청으로 국무회의의 심의를 마친 후 대통령이 결정한다.
장례위원회 위원장은 국무총리가 맡는다. 장례위원회 아래 집행위원회가 장례 절차를 총괄 진행하며 집행위원장은 행안부 장관이 맡게 된다.
국가가 모든 경비를 부담하고, 국가의 명의로 거행한 장례 의전이다. 국가장의 장례 기간은 5일 이내로 하고 이 기간중에는 조기(弔旗)를 게양한다.
지금까지 치러진 국가장은 2015년 고 김영삼 전 대통령 장례뿐이다.
이전에는 '국장·국민장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장 또는 국민장으로 치러졌다. 박정희·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는 국장으로, 최규하·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는 국민장으로 진행됐다. 이승만·윤보선 전 대통령의 장례는 국장·국민장이 아닌 가족장으로 치렀다.
그러나 국장과 국민장의 기준이 뚜렷하지 않아 논란이 거듭돼 김대중 전 대통령 장례를 계기로 국장·국민장을 별도 구분하지 않고 국가장으로 장례절차를 통합했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유족의 의사와 정부 절차를 거쳐야 해 판단이 필요하다"면서도 "국가장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언론인홀리클럽 공동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