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와 삼척 나들이:“등대처럼 살자!”
노 종 해(CM리서치)
2022년 8월 23일(화) 오전 11:00. 화: 초가을 비가 솔솔 내리다 말다 간간이 내리는 가을이 오는 길목의 시원한 날, 충주에서 동해, 삼척 1박2일 나들이를 출발했다.
충주에서 KTX로 오전 11시 출발하여 부발역(이천)에는 11:35분 도착하여 김준형 목사(중앙연회 원로목사회 회장)를 만나 승용차로 출발하였다.
-여주에서 선교사 32년만의 특별한 점심을
우선 점심을 여주 정인우목사(흥천교회)의 접대로 영양탕 전골로 즐겼다. 나는 32년 만에 맛보는 영양탕이라 흥미진진하였다. 정목사는 1980년 대, 상동 서울신학원(현 협성신대) 강의 때 신학생으로 더욱 기쁨의 만남이었고, 교회 앞 건너편 교인(권사)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특식 점심 후 동해로 출발하였다.
안개가 고즈녁 하게 내려앉은 고속도로를 시원하게 달렸고, 군목(軍牧) 시절부터 젊은 날 호기 있게 지냈던 진난 일들을 흥 나게 이야기를 나누며 기분도 상승 된 나들이 길이었다. 흉금 없이 나누는 그때 그 시절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갔다. 이런게 은퇴 원로들의 참 나들이 맛이지!
-동해 묵호등대, 바람의 언덕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오후3:30분 동해에 도착하여 먼저 오늘 만나기로 한 주인규 목사(송정교회)를 찾아갔다. 교회는 동해역 앞이었고 옆으로는 동해국제항 사이에 있었다.
교회 뜰에 나와 있는 주인규 목사를 만났고, 문안인사로 알고 보니 군목 시절 신풍교회에서 만났던 분이었다. 47년 전의 오랬만 이지만 어제 만난 벗처럼 가깝게 느껴졌고 기쁨의 만남이었다. 목회실에서 서로 지난 삶의 이야기를 나누니, 새록새록 지난 일이 떠오르게 하는 벅찬 감흥의 시간이었고 만남이었다.
-동해의 순교자를 기억하고 찾아가
우선 동해시내 숙소를 둘러 보고, 신사참배 반대 순교자 최인규 권사(전도인) 기념탑이 있는 천곡교회를 찾았다. 천곡교회 담임 황용규 목사와 교회 관계자들을 만났고, 그들의 안내로 순교자 최인규 권사(장로)의 기념패와 안내패, 교회 내부를 둘러보며, 전 교인들과 순교자의 신앙을 이어가는 교회 활동을 엿보았다.
최인규(1881~1941) 권사님은 신사참배 반대로 검거 되어(1940년5월), “똥통을 지고 온 동네를 돌게 했던 치욕”도 감사하며 기쁨으로 믿음을 지킨 분이었다. 결국 2년 간 혹독한 고문과 옥고를 치르고 병든 몸으로 옥중에서 순교하였다.(1942년12월16일 오후2시)
천곡교회 개척설립은 최인규 권사가 삼척에서 교회 출석하고(1921년), 세례 입교하였으며(1925.12.7.), 권사(전도사)로 피택 받아 자신의 고을인 천곡에 전도하여 예배인도하였다.(1933.11.23.) 또한 자신의 논 1,369평과 밭 539평을 교회 대지로 내놓아 개척 설립되었다.(1935.9.17.) 이로써 당시 총리원, 감리교 본부로부터 상장과 은제 상패로 표창까지 받았고(1937.10), 신사참배 반대로 믿음을 지킨 순교의 자리까지 나간 분이다.
천곡교회는 1940년 최인규 권사 체포 이후 경찰 당국으로부터 탄압을 받아 교회도 폐쇄되었고 교인들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1950년에야 ‘최인규 기념예배당’(현 동해시청 앞)을 마련했지만 도시 계획으로 옮겨 다니다가, 1982년에야 천곡교회를 재건하고(동해시 천곡동 1081-8), 1986년 삼척교회 뜰에서를 이장하며 순교 기념비도 옮겨 순교 기념탑을 세웠고, 순교 기념탑은 최인규 권사가 제작한 강대상을 모형으로 만들고 교회 곁에 나란히 세웠다.
오늘날 천곡교회는 순교자 최인규 권사(장로)의 신앙을 기억하고 전 교인들과 순교의 신앙을 어가고 있다. 당시 8.15해방 전 감리교회 "권사"는 전도사요, 오늘날 "장로" 직분과 같다. 감리교희의 “장로” 직분은 8.15해방 이후부터이다.
-묵호항 등대와 바람의 언덕에서
천곡교회를 방문 후 동해 바다와 묵호항구 전경이 펼쳐지는 묵호등대로 갔다. "묵호등대 해양문화공간"이었다. 등대문화공간에는 입구를 들어서며 둥그런 벽을 돌아가며 전국 등대의 역사와 모습들을 사진으로 전시하고 있다.
나는 등대 앞 설치물에서 등대를 배경으로 촬영하였고, 바람의 언덕 “논골카페”에서 아기자기 소품들이 설치 되어있었고, 파라솔 테이블이 언덕 사이에 설치되어 있었다. 언덕 아래로는 바닷가 어촌이 펼쳐지고 묵호항 바다가 절경으로 펼쳐진다. 도깨비 행랑 전망대와 논골담길도 옹기종기 어울려 있음이 아름다운 수채화 전경으로 예술품이었다.
안개가 아련히 내려앉아 포근하게 다가오는 바다 전경은 온몸을 경이로움으로 감싸주었다. 등대 앞 카페에서 동해 바다 전경을 생생하게 바라 볼 수 있었다. 동해 바닷가 바람의 언덕에서 커피를 마시며 심호흡하니 가슴이 확 열리는 통쾌한 감흥이 맴돌았다.
등대와 바다를 바라보니, 어린 시절 즐겨 불렀던 "등대처럼 살자"란 노래가 떠오른다.
"밤바다를 지키는 등대처럼 살자,
썩지 않게 지키는 소금처럼 살자
우리들은 모두 다 예수님의 아이,
누가 봐도 표나는 예수님의 아이!"
-도깨비골 해랑 전망대 다리 길에서
다시 동해 묵호등대에서 바닷가로 내려 와 어촌마을과 바닷물이 훤히 내려 다 보이는 도깨비방망이 다리 길을 조심조심 걸었다. “도깨비골 해랑 전망대“는 바닷물 위에 도깨비 방망이 모양으로 제작 되어 있었으며, 다리 중간의 철망 사이로 출렁이는 물결이 보였다. 바닷가 어촌마을과 각종 상점에는 어느덧 아득한 어두움이 다가오고 불빛이 반짝이는 색다른 절경으로 마음을 평온하게 감싸주고 있었다.
우리는 동해의 맛집으로 출발하였다. 동해 전통의 해물탕 맛집에서, “해천탕”을 맛보고 즐겼다. 홍합, 조가비. 대합조개, 전복, 멍게, 백숙 닭 한 마리 등 온갖 해물 위에 살아 꿈틀거리는 문어를 얹어놓은 해물탕이 "해천탕"이었다.
온갖 해물이 울어 난 국물의 깊은 맛은 감미롭고 깔끔한 풍미였다. 해물과 문어 등을 건저 먹고 삶은 백숙 닭을 즐기고 여기에 칼국수를 넣고 다시 끓여 먹는 맛은 속이 후련한 흡족한 삶의 맛이었다.
오후 8:30분 숙소에서 돌아와서 샤워를 하고 가벼운 몸과 맘으로 하루밤을 지내었다. 동해 바다는 난생처음 방문이었고, 그 감흥이 사라지기 전에 글을 작성하고 잠을 청하였다.
-동해 촛대바위에서 삼척 해변으로
2022년 8월 24일(수) 오전 9시: 어제밤에는 뒤척이며 선잠으로 설쳤다. 3시간이나 잤을까, 머리가 무겁고 어지러운 중에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호텔에서 아침을 제공해 주는 아침밥 상은 부드러운 흰 쌀밥과 구수하고 깔끔한 명태 순두부국이 맛깔스럽고 속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아침식사를 마치니 몸에 생기가 돌고 거뜬해지며 기분도 상쾌하다.
오전 9시, 우리는 동해의 명소인, 추암해변의 “촛불바위”로 향했고, "추암해상 출렁다리"와 "추암 촛대바위“를 찾아보았다. 추암해상 출렁다리 입구의 "해암정" 앞에는 거위가 지키고 있었고, 거위는 다가가도 놀라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까지 취해 주는 여유를 보이고 있었다.
추암해상 출렁다리로 가는 언덕 계단 길에서 바라 본 바다는 기암과 함께 예술 직품 보다 더 아름다운 절경에 감탄이었다. 저 멀리 해군함정이 늠늠하게 운행하고 있었고 바위에 부디치는 파도 물결은 살아 숨 쉬고 있는 바다의 삶이었다.
가파른 촛대바위 길을 조심조심 걸어 올라, 촛불바위에 이르니 장관이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달토록“, 애국가가 가슴에서 벅차올랐다. 수려한 소나무와 해안 바위돌 사이로 보이는 촛불바위는 세계를 향한 웅지로 가슴을 채워 주었다.
추암해변으로 내려 와 철이 지난 한산하고 평온한 해수욕장을 바라보며, 카페에서 따듯한 차 한잔으로 잠시 여유의 시간을 가졌고, 점심이 약속 되어 있는 삼척 해수욕장으로 출발하였다. 우리는 약속시간(12시), 한 시간 전에 삼척해수욕장에 도착하던 것이다.(11시)
-삼척 해변에서 삼척의 맛과 삶, 화려한 점심을
삼척해수욕장의 모래사장이 펼쳐진 바다는 절경이었고, 해변 쉼터 파라솔 탁자에 앉아 여유로움으로 바다를 보며 즐겼다. 점심이 약속 된 장소는 삼척의 생선요리로 유명한 맛집이었다.
맛집 2층 특별실에서는 해수욕장 변이어서 바다가 훤히 보였고, 식탁 위에 펼쳐진 생선회 밥상은 화려한 예술품이었다. 모듬회에 각종 해물로 조리고 튀기고, 생선구이요리는 처음 맛보는 환상적 식탁이었다.
박신진 목사부부(삼처제일교회)와 곽인 목사부부(큰빛교회)들과 인사를 나누고, 6명이 넘치도록 흡족하고 풍성한 오찬이었다. 쫄깃쫄깃하고 절제 된 정갈한 이 맛이 동해 삼척의 삶과 맛임을 잊을 수 없다. 원로목사들은 환영해 주고 접대해 주는 그 마음이 더 없이 감사할 뿐이다!
-삼척교회에서 순교자의 삶을 기억하고
12시 정오부터 한 시간 반 동안의 오찬을 마치고, 삼척제일교회 카페 가디뉴로 이동하였다. 카페는 교회와 나란히 있었고, 교회 입구 옆에 "순교자 최신규 귄사"의 기념표지판이 있었다. 아하! 여기가 순교자 최신규 권사가 옥중에서 순교하였을 때, 첫 안장 처이었음을 기억하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 역사적인 장소인 교회가 바로 여기, "삼척제일교회"이었음을 알고 기쁨이 충만하였다. 삼척교회 카페에서 교회사적 담화를 나누었고 삼척제일교회와 기념판을 방문기념 사진으로 담았다.
순교자 최인규규 권사는 신사참배 반대로 체포되어 투옥 되었다.(1940.5.) 옥중에서도 계속되는 고문으로 몸이 쇠약해지고 음식도 먹을 수 없게 되었으며, 병감(病監)으로 이전되어 치료받았으나 1942년 12월 16일 오후 2시 그가 사모하던 주님의 나라로 떠났다.
최인규 권사는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옥중에서 순교한 것이다. 교우인 김창주는 1946년 3월에 자전거로 대전 형무소로 찾아가 최인규 권사의 유골을 삼척읍교회 정문 우편 뜰에 안장하고 강릉지방 교회들은 그곳에 "고 최인규 순교기념비"(故崔公仁奎 殉敎記念碑)를 세웠다.
-귀향 길의 다짐, 마지막 시대의 사명을
이러한 순교자의 삶을 되새기고 굳게 서서 마시막 때 사명을 감당하리라 다짐하며 귀향 길에 올랐다.
고속도로는 빗방울을 뿌리기도 하며 둘러 선 산들 사이를 달려나갔다. 대관령 터널들을 지나 평창, 원주에 이르러 버스로 갈아타고, 아펜젤러와 존슨의 선교여행(1889.8.) 길을 따라, 구비구비 옛길을 돌아 충주에 도착하니 어두움이 내려앉은 7시였다.
1박2일 충주~동해 나들이는 감사와 감동, 감격으로 삶을 나누는 즐겁고 행복한 삶의 여정이었다.(노종해;2022.8.24.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