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토)는 1 년에 몇 번 있는 내 '축제의 날' 중의 하루였다.
생일 같은 걸 아예 찾아먹지 않는 나에게 어쩌면 그 대체적인 날이랄까? 굳이 따지자면 그런 의미일 수도 있는 좀 특별한 날이었는데, 공교롭게도 '박 근혜 퇴진 촛불집회'가 열린지 2 년을 맞는 기념 집회가 예보된 날이기도 했다.
생각 같아선 그리고 뭐 특별한 일 없으면 나 역시 그 집회에 나갈 수도 있었지만,
정확히 1 주일 전에 '사법 농단 촛불 집회'에 나갔던 나는 열 일 제쳐두고 참석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대단한 '민주 투사'가 아닌 것도 그렇지만, 그나마 어제 새벽에 사법농단의 한 축인 '임 00'이 구속된 것도 나를 조금 자유(여유)롭게 해 준 이유 중의 하나였다.
날은 좋았다.
갑자기 기온이 떨어졌다고는 하나, 그런 날이 그렇듯 챙하게 맑고 공기도 깨끗한 아주 이상적인 가을날이자 우리 아파트의 '알뜰장'이 서는 것과도 겹쳐,
쌀을 사러 내려간 김에 그 옆에 있는 생선전에 들러 '굴' 한 근을 사가지고 올라왔다.
다른 날과 크게 다를 건 없었다.
아침부터 내 일을 했고(자화상 드로잉도 했고, 글 작업도 했고) 점심을 해 먹은 뒤 간단하게 낮잠을 자고 일어나면서는, 청소도 했고 세탁기도 돌렸으며 샤워도 했다.
그리고 시간을 쪼개 자전거를 타고 또 한 바퀴 도는 등 날씨 만큼이나 정갈한 하루를 보냈다고 할 수 있다.
아, 조금 특별한 게 있었다면, 자전거 산책에서 돌아오는 길에 막걸리 한 병을 사왔다는 것이다.
축제를 위해서였다.
내 계산은,
그 전날 군산에서 보냈던 '무청김치' 택배 틈바구니에 끼어있던 쪽파 한 주먹이 있었기 때문에,
'굴 파전'을 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사실 내가 잘할 수 있는 건 '김치부침개'지만, 오늘 축제는 뭔가 약간의 변화를 주고는 싶었다. 그래서 아침에 베란다에 나갔다 아래에 서고 있던 알뜰장을 보면서는,
그래, 굴을 사오자! 했던 것이고, 그 생각은 또 쪽파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비안도'로 한 친구가 나를 찾아왔을 때, 마땅한 먹거리가 없어서 현지에서 '바지락' 까놓은 걸 사다가 '쑥'과 '뽕닢'을 넣고 즉석 부침개를 부쳐먹었던 기억이 너무 좋아서,
바지락 대신 굴을 넣고 하리라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군산 보리 막걸리'는 아니지만, 여기 '서울 장수 막걸리'로......
'파전'은 자신은 없었다.
언젠가 한두 번 시도를 해보았는데, 부침개가 하도 두껍게 나와,
빵이야, 부침개야? 했던 기억이 있었지만, 그래도 막걸리 안주로 그 만한 것이 없을 것이어서 열심히 그리고 정성을 들여 전을 부쳐보았다.
거기에 새큼하게 익은 '열무 김치'로 소박하게 술상을 보았는데...... (간단하면서도 내가 가지고 있는 걸 이용해 할 수 있는 성의만을 보태서)
그런데 다 해놓고 보니(할 때는 미쳐 생각을 못했는데) 굴과 밀가루 반죽을 넣는 차례를 거꾸로 해서 굴이 좀 튀어나오긴 했지만, 그래도 얄팍하게 나온 건 성공한 셈이었다.
더구나 무엇보다도 중요했던 건 그 맛이었는데,
아!
환상적이었다.
정말, 내가 여태까지 먹어봤던 '굴파전' 중 최고여서 혼자 먹기에 아까울 정도였다.
그러면서 보니 파가 좀 적게 들어간 것 같기도 했지만, 그 정도로도 충분한 파 맛은 느낄 수 있어서 불만은 없었다. 아니, 너무 맛있다 보니 행복은 절로 동반되는 것이었다.
지난번 자전거 여행을 끝내고 군산에서 마셨던 막걸리 이후에, 그러니까 오랜만에 마셔보는 막걸리 한 병.
굴파전의 약간 비릿한 맛을 또 열무 김치가 깔끔하게 잡아주니,
거기에 음악까지가 어우러져 어떻게 막걸리 한 병을 다 마셨는지도 모를 정도로 축제를 보내고 있었다. 막걸리가 약간 부족한 듯도 했지만,
그 정도로도 충분했다. 더이상 바랄 게 없었다.
그런데 문득,
갈리시아에 있는 꾸꼬 부부에게 이 사진 한 장을 보내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왜 축제를 혼자서 해?' 할 것 같아,
그런 설명을 해대는 것 자체도 좀 애매해서 관두기로 했다. 그러면서도,
그럼, 이런 축제를 뭐, 떠들썩하게 해야만 해? 하는 혼자만의 대꾸를 하면서......
첫댓글 혼자만의 축제.
혼술.
맛있는 축제에 박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