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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일/집결장소 : 2013. 10.13(일) / 상봉역 춘천방향(09시50분)
◈ 참 석 자 : 15명 (갑무, 정남, 종화, 양주, 원우, 재홍, 윤환, 경식, 용복, 전작, 정한, 문형, 영훈, 광일, 근호)
◈ 산행코스 : 청평역-안전유원지-조종천-옹달샘-전망대-호명산(정상)-<원점회귀>-내수면연구소
◈ 동 반 시 : "늦가을 배추벌래의 노래" / 강경화
◈ 뒷 풀 이 : 연어회에 막걸리와 소주 / "중앙내수면연구소" <김종화 산우 제공>
오늘은 청평에 있는 호명산 가는 날, 창문을 열고 앞산 하늘을 바라보니 완연한 가을하늘에 산들바람이 코끝을 스쳐 지나간다. 숙달된 조교처럼 주섬주섬 행랑을 꾸리고 조금은 흥분되고 설레는 마음으로 집을 나서며 잠시 생각해 보니 최근 들어 내가 이런 저런 사유로 시산회 산행에 많이 불참해서 산우들에게 매우 미안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봉천동 샛길을 따라 걸으며 문형 총장이 보낸 오늘 참석인원 명단을 확인한 후 문형 총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동안 떡 보시를 자주하는 해황 산우 명단이 없어 그러는데, 소생이 대신 간식으로 모시떡을 준비하는게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개진하자, 총장님께서 흔쾌히 결재를 해 주셨다. 하여 떡 맛이 예술인 봉천동 모시떡을 기쁜 마음으로 사들고 오늘 산행 모임장소인 경춘선 상봉역으로 출발하였다.
7호선에 몸을 싣고 잠시 상념에 빠져 들었다. 나는 왜 자연을 찾아 떠날 때마다 조금씩 흥분되고 설렐까? 내가 혈기 왕성했던 청년기에는 '도전하는 마음'으로, 삶에 부대끼면서 세상의 이치를 조금씩 깨달아 가던 중년기에는 '다스리고 내려놓는 마음'으로, 그리고 인생 장년기에는 '비우는 마음'으로 산과 들과 바다를 찾아 갔다. 사람마다 다 다르고 정답도 따로 없겠지만 나는 자연(사전적 의미로 '스스로 존재함')을 찾아 나서는 경이로움과 에너지 충전소인 자연을 찾아가는 즐거움 때문이 아니었을까?
중학교때 나의 닉네임이 오뚝이였다. 누가 작명을 해주었는지는 가물가물 하지만, 아마도 광고20회 친구인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땐 왜 하필이면 조그마한 충격에도 힘없이 뒹굴고 넘어지는 오뚝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을까 몹시 못 마땅했다. 나도 비바람에도 끄떡없는 철 기둥처럼 단단하고 꿋꿋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데 말이야. 그러나 그것은 하수의 생각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세월이 흐르고 산행에 쏟은 땀방울이 고여 세상의 이치를 조금씩 알게 되면서부터, 그리고 넘어진 오뚝이가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복원력과 스스로 존재하는 자연의 복원력이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나에게 오뚝이라는 별명을 붙여준 그 친구가 고맙고 감사하기 그지없었다. 내가 힘들고 지쳐 넘어져 있을 때 분연히 털고 일어 날수 있도록 생명력을 불어 넣어 준 것은 오뚝이 닉네임과 산행에서 얻은 내공이기 때문이다. 오뚝이 작명가 친구! 고마우이!
덜컹거리는 지하철 속에서 어린아이의 "와 멋있다"는 외침 소리가 들린다. 이런 저런 상념을 접고 고개를 들어 창밖을 쳐다보니 지하철이 한강 다리 위를 달리고 있다. 창밖에 비친 한강과 서울의 모습이 무척이나 아름답게 보인다.
한 때 네이버 검색 1위를 기록한 건축가이자 여행 작가인 오기사는 두루 세상 여행을 하면서 보고 느낀 내용을 담아 많은 책들을 출판하였는데, 그가 여행을 마치고나서 마지막 편으로 '그래도 나는 서울이 좋다'는 책을 출판하였다. 아마도 오기사 또한 지금과 같은 서울의 풍광과 멋에 매료 되었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비록 행주대교 수중보에 갇혀 한강물이 많아 보인다 할지라도 한강과 어우러진 강변 풍광이 정말 아름답기 그지없도다! 참고로 필명 오기사는 본명 오영욱이고, 배우 엄지원의 남자친구이자 광고20회 친구의 조카이다.
우리들의 만남의 장소인 7호선 상봉역 경춘선 플랫폼에 약속시간보다 1시간쯤 일찍 도착했다. 약속 장소에 항상 일찍 도착해서 주변을 둘러본다는 동창회 사무총장 용우 산우처럼 나도 경춘선 주변도 둘러보고 특히 오늘 산행의 기자로서 산행을 함께하는 친구들의 모습을 스케치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일찍 도착했다. 플랫폼에 모여 기차를 기다리는 등산객과 사이클 동호회 회원들 모습이 모두 밝고 행복해 보인다. 가을 하늘 만큼이나 아름다운 모습들이다.
한참을 기다리니 제일 먼저 갑무 산우가 늠름한 모습으로, 다음은 문형 산우가 여유 있는 모습으로, 그 다음은 내가 제일 좋아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닉네임 '임 수석'을 붙여 준 정남 산우가 강단 있는 모습으로, 그리고 영훈 산우가 정겨운 모습으로 약속 장소에 모여 함께 덕담을 나누는 사이 15명의 건각들이 모두 모였다.
잠시 후 9시 59분 경춘선 기차가 플랫폼에 도착하고 문이 열리자마자 사람들이 번개처럼 우르르 안으로 뛰어 들어간다. 재빠르게 자리를 잡은 산우들 앞에 한 여인이 자기가 자리를 다 잡았는데, 남자들 힘에 밀려 자리를 뺏겼다고 울상을 짓고 있다. 그 모습이 안타까웠던지 정 많은 경식 산우가 자리를 양보해 주면서 자연스레 서로의 말문은 열리고, 재미있는 대화가 이어지는 가운데, 시산회 모임이 화제로 떠오른다.
그러자 순발력 있는 산우들이 여인들에게 시산회 블로그도 보여 주며 시산회 자랑을 한껏 했다. 이에 여인들은 감탄사를 연발하며 산우들에게 흠모의 눈길로 화답한다. 안동에서 올라와 굴봉산을 간다니 그 많은 산들을 놔두고 하필 이름 없는 그 산을 오를까? 의문은 순간이고 헤어짐은 영원이다.
어느덧 열차는 목적지 청평역에 도착했다. 등산로로 이동하는 청평역 옆길은 코스모스, 칸나, 들국화가 아름답게 피어 있고, 길가 밭에서 콩 수확을 하는 할머니 모습이 매우 정겹게 느껴진다. 막걸리 욕심이 유난하게 많은 친구의 주장에 따라 가게에서 몇 병을 더 충전하고, 맑고 한가로운 10월의 시골길을 따라가다 한참 후에 마주친 청평댐 상류 조종천에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둑길 가에 피어 있는 꽃들은 저마다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들꽃에 관해 일가견이 있는 원우는 친구가 물어보는 들꽃의 이름을 구절초라 불러준다. 구절초면 들국화의 일종이다. 원우는 국립공원관리공단 수석 부이사장을 역임했으니 많은 공부를 한 결과다. 조종천에는 그물을, 혹은 어항을 가지고 천렵하는 고기 사냥꾼들이 보이는데 어린 시절의 아련한 추억으로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철 계단과 추억의 징검다리를 넘어 이 산을 적극 추천한 종화 산우 덕분에 결코 낯설지 않은 호명산 들머리에 진입한 후, 산행이 시작 된다. 산행 지도 앞에서 전작 회장님의 코스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우리는 그의 훌륭한 인품에 감동하여 산우들의 의견이 분분할 때 그의 명쾌하고 정확한 결정에 군말 없이 따른다.
들머리는 가파르다. 고도계를 보니 해발고도 120미터다. 들어서자 마자 누군가의 입에서 한산의 소곡주, 일명 앉은뱅이술 타령이 나온다. 아! 지난 번 시산제 산행 때 종화 산우가 됫병으로 가져온 적이 있었지. 그리도 맛나서 자기도 모르게 취하는 술! 오늘도 종화 산우가 양양 남대천에 오르기 전에 양양 앞바다에서 잡은 연어를 이미 연구소에 간직해 두었으니 오늘 산행은 어찌 힘들겠는가.
막걸리 애호가들은 그것은 그것이고 산의 정상에서 한 잔의 막걸리를 앞에 놓고 시를 읊는 즐거움은 별 거라 한다. 하여간 재홍, 윤환, 정남 산우의 막걸리 타령과 사랑은 언제나 끝이 날 것인가! 그만큼 건강하다는 증거이므로 나쁠 것은 없다.
울창하게 우거진 잣나무들을 구불구불 피하며 가파르게 난 길은 항균성 방향제인 피톤치드로 가득 차 있다. 우리는 산인들이라 피톤치드 특유의 냄새를 안다. 그 맑은 향기로 가득 찬 길은 오르기 쉽다. 첫 능선에 오르니 청평과 가평이 한 눈에 들어온다. 산우들이 꺼내는 밤과 바나나로 힘을 돋우고 거북이 약수에서 졸졸 흐르는 약수 한 모금이 달다. 어렵지 않은 능선길은 잎 넓은 활엽수 사이로 오솔길을 내면서 가을의 한복판에 왔음을 알린다.
내 고향의 시인 시성 미당이 그랬던가. 초록이 지치면 단풍이 든다고. 이 산의 단풍도 내 고향 고창의 단풍보다 못하지 않으리. 시산회가 함께 맛보고 맡았던 장성 축령산 편백나무의 향을 영원히 잊지 못한다는 산우들이 있어 그 코스를 추천했던 나의 가슴도 항상 흡족하다. 친구들아! 그때 맛나게 먹은 날아다니는 촌닭들은 멸종했음을 알리네. 머지않아 단풍이 들고 다음엔 이 산에는 눈의 향기가 가득하리라.
가다 힘들면 잠시 멈추고, 모시떡도 먹고 과자도 먹으면서 꺼내는 산중한담(山中閑談)의 즐거움은 우리 시산회의 즐거움 중 하나다. 우리 수준의 고담준론은 다른 곳에서 듣기 힘들다. 가다가 쉬고 청평댐을 막아 생긴 청평호에 삼각돛을 단 요트는 현대판 산수화에 다름 아니다. 전망대에서 이쪽 지리에 밝은 산우의 설명에 따르면 청평호와 이 산이 닿은 길을 20~30분정도 드라이브하면 호반 옆으로 고급 모텔이 많고 이윽고 남이섬 선착장이 나온다고 한다.
남이섬에는 일본인 관광객이 아직도 많다고 하니 배용준과 최지우가 출연한 가을연가의 메타세퀘이어길을 꼭 가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이는 숫자에 지나지 않으니 굳이 따지지 말자면서. 청평호반의 건너길을 따라가면 설악산이 아닌 설악면이 나오고 군데군데 제트스키를 타기 좋은 곳과 고급 팬션이 많다고 한다.
정상이 가깝다. 인원이 많으니 조금 늦는 팀과 힘이 남아도는 팀으로 나누어지나 정상에 도착하기까지 실제는 많아야 3분도 차이가 나지 않는다. 정상에서 등정사진 한 컷 하고, 너른 자리를 잡고 편하게 앉는다. 뒤풀이 때 알 밴 연어가 기다리니 싸온 음식이 적을 줄 알았으나 주섬주섬 꺼내고 보니 꽤 많이 쌓인다. 어떤 산우가 뒤풀이는 뒤풀이고 일단 본품은 이거란다. 복분자즙을 싸온 산우가 있어 막걸리에 섞으니 복분자 막걸리가 탄생하니 너도나도 한 잔씩 따르고, 오늘의 기자인 내 앞에 동반시 강경화 시인의 '늦가을 배추벌레의 노래'가 놓인다.
이 좋은 가을에 좋은 산과 하늘, 산우들 앞에서 목청을 가다듬고 조용히 읊는데 미리 복습을 해왔지만, 읊다보니 감정이 다르다. 아하, 이 시는 죽음을 앞두고 지은 시 였다는데,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울컥 슬픈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낭송이 끝나자 내 감정은 산우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에 묻힌다. 그래, 그 시인은 아름다운 시를 통해 자신의 죽음을 말하고 갈 수 있으니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 앞에 의연한 사람이었다. 시인의 가을 하늘처럼 순수하고 선하게 생긴 얼굴이 떠오른다. 슬픔은 순간이고 즐거움은 길다.
간단한 식사가 시작되고 약간 야한 얘기가 나오지만 개의할 일이 아니다. 우리는 결코 품격을 잊지 않는 사람들이니. 즐겁게 떠들고 웃고 떠들지만 맑은 가을 하늘아래 몇 점의 구름은 같은 속도로 흘러간다. 아, 우리의 삶도 저렇게 흘러가겠지.
식사를 마치고 하산에 대해 잠시 토론. 호명호수로 내려가 버스로 내려오자는 의견이 나왔으나 호명호수까지 1시간 30분이 소요되고 버스 시간이 불규칙하니 다음으로 미루거나 개인적으로 실천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대세를 이룬다. 그러나 우리 시산회의 모토인 '먹었으니 내려가자' 에 밀렸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더구나 멀리 알라스카해를 지나 양양 앞바다에 까지 우리를 위해 머나먼 여행을 마다하지 않은 우리의 연어가 기다리지 않는가.
하산은 순조롭다. 다만 최근호 산우가 삐걱했는지 약간 늦지만 그래도 3분이다. 그동안 조종천에서 천렵을 하는 사람들을 보며, 혹은 먼 하늘에 무심하게 떠서 천천히 흘러가는 구름을 본다. 우리의 삶도 저렇게 무심하게 흐르는 것을 사람들은 느끼면서 살까?
연구소에 가니 종화의 옛 직원들이 반갑게 맞이한다. 직원들의 안내로 연구소를 구경한다. 개인적으로 두 번째이나 언제 와도 새롭다. 설명을 하자면 길다. 다만 산우들이 올린 사진으로 가름한다. 연회장소로 자리를 옮기고 음식이 차려지는 동안 저수지의 비단잉어가 희롱한다. 곱고 우아하게 춤을 추는 고운 여인네와 같다. 순간 '와신상담'과 '오월동주'라는 고사가 생각난다.
중국 4대미인 중에 하나인 서시는 복수를 다짐한 오왕 부차가 월왕 구천에게 보낸 경국지색으로 서시가 연못가를 거니는데 물고기들이 서시의 자태를 보고 넋이 빠져 헤엄을 치지 않고 물밑으로 가라앉았다는 전설 같은 얘기인데, 중국인들의 과장은 확실히 지나치지만 과장도 그 정도면 애교로 봐 줘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싶다.
마침 자리를 잡은 곳이 종화의 앞인데 직원들과 합석한 모양이 된다. 연어알과 얼린 연어를 곁들인 가평막걸리 잔치가 성대하게 벌어진다. 그곳에서 벌어진 뒤풀이는 여기서 생략해야 한다. 참석하지 못한 산우들의 원망을 감당한 능력이 내게는 없기 때문이다. 이 글을 통해 다시 뜨거운 고마움을 전한다. 항상 베푸는 친구임을 우리는 잘 안다.
상봉역에서 산우들과 작별한 후 7호선에 몸을 싣고 또 한 번 생각의 여행을 시작한다. 내 나이 벌써 환갑을 넘겼는데, 내가 살아오면서 드리운 그림자는 어떤 모습일까? 금년 초에 자식들이 조촐한 애비 환갑 행사를 준비한다는 말을 듣고서 앞으로 애비가 자식들에게 어떤 변화된 모습을 보여 줄까하는 화두를 들고 몇 날을 고민했다.
그렇다고 무슨 뾰족한 해답이 나오겠는가. 에라! 나이가 들면 화를 자주 내게 된다는데 화를 덜 내자는 의미를 담아 'SMILE'로 정했다. 그후 자식들에게 SMILE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나름 노력은 하고 있지만, 나는 알 수가 없다. 이 시대의 대종사 성철 스님의 말씀을 인용해 본다. "몸을 바르게 세우면 그림자도 바르게 서고, 몸을 구부리면 그림자도 따라 구부러 진다." 과연 나는 어떤 그림자를 가지고 있을까?
2013년 10월 13일 임용복 씀.
< 동반시 >
"늦가을 배추벌래의 노래" / 강경화
서리 내린 저 밭의 배추잎 끝에서
이제 나는 가을 하늘을 볼테다
추위가 몰려오면 흙벽에
제 눈만한 창문을 내고
울며 울리는 사람들.
날 부르는 뜨거운 눈물이 안 보일지라도
이제 나는 꿈을 꿀 테다.
삽날이 밀려와
내 집 밑둥을 자르고
밤마다 흙더미 사이로 별이 보이면
내 사랑은 흐르는 한줄기 강물
가을빛도 남겨두고 떠나야 한다.
잘 있거라 누런 들판아, 탱자나무야
속삭이는 낙엽 소리와 연기 내음도 두고
캄캄한 땅 속에서
이제 나는 꿈을 꿀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