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바울은 늘 몸에 사단의 가시를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떨어지기를 기도했으나, 하나님은 기도를 응답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답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고후 12:8-9).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 방법이 아닌 전혀 다른 승리를 말씀하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남보다 더 강하고, 많고, 커야 승리한다고 생각하지만, 주님은 약하고 부족함 속에서 승리하는 길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약한 사람이 이기는 길은 없습니다. 남보다 강하고, 많고, 커서 남을 지배해야 이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강하고 많아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부족하고 약해도 이길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약한 상태에서 이기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즉 승리의 비결은 우리가 강하고, 약한데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얼마나 역사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 12:10). 약할 때 강함이란 우리가 약할 때 하나님을 더 잘 의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약할 때 주님을 더 의지하여 승리하는 길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성도는 주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그릇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 4:7). 인간은 흙으로 만든 약한 질그릇입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는 능력이신 주님이 계십니다. 능력은 주님께 있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축복입니다.
겸손이란 늘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스스로 힘이 있는 줄 알고 착각하면 크게 실패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잘 되어도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음을 알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다면 승리하게 됩니다. 그러나 사단은 우리가 잘되면 강해졌으니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도록 속입니다. 또 우리가 약해지면 절망해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도록 속입니다.
엠마오로 내려가는 제자들은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니 실망하여 고향으로 내려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사탄의 작전입니다. 우리는 항상 질그릇이라는 사실과 우리 안에 능력이신 주님이 계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자신의 질그릇이라고 믿는 사람은 세상의 문이 닫히고, 실패해도 질그릇이기 때문에 실망하지 않습니다. 승리의 끈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우리 안에 계신 주님은 부활의 주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고후 4:8-9). 부활의 주님을 믿으면 우리가 이 땅에 살더라도 우리의 영은 부활하여 하늘에 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삶도 이 세상을 초월하여 살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 육신의 삶 속에서도 부활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부활의 주님을 믿으면 성령이 역사하여 어떤 억압, 사슬에 매여 있어도 자유가 옵니다. 다니엘은 사자 굴에서 자유가 왔고, 바울은 빌립보 감옥에서 기도하고 찬미하니 지진이 나서 쇠사슬이 풀리고 옥문이 열립니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천사의 얼굴을 합니다. 이 사람들은 부활의 영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비록 몸은 이 땅에 살지만, 영은 하늘에 사는 성도들입니다.
약한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고후 4:10-11). 이 말씀의 뜻은 하나님은 우리를 약하게 하여 어쩔 수 없이 죽음에 넘기는 상태에 머물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죄가 없음에도 우리를 위해 이 땅에 몸을 입고 오셔서 죽기까지 순종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그 일을 힘들게 감당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주님을 십자가에서 건지지 않고, 처절하게 죽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우리가 육신의 죽음을 체험할 때 예수 생명이 옵니다. 내 자아가 죽지 않으면 부활의 생명은 올 수 없습니다.
And... 하나님은 우리가 죽음을 체험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부활 생명을 전하게 하십니다. 우리의 배우자, 자녀, 친구, 부모님을 위해 누군가는 죽음을 체험해야 주님의 생명이 전달됩니다. 주님의 생명은 죽음을 통해서만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전도는 내가 죽어 십자가 체험을 할 때 내 안에 계신 주님이 피전도자에게 나타나게 됩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으면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내가 죽어 땅에 묻힐 때 전도의 열매는 맺히게 됩니다. 내가 죽을 때 사람들은 내 안에 계신 주님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연합의 삶입니다. 나와 주님이 하나로 연합할 때만 승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승리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내게 다가오는 환경에서 날마다 죽는 것이 날마다 승리하는 길이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