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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노래자랑 송해 8세 딸 김태연 눈물쏟아~ | |
11. 文言傳 1節(8)
p.323 【經文】=====
九二曰見龍在田利見大人何謂也子曰龍德而正中者也庸言之信庸行之謹閑邪存其誠善世而不伐德博而化易曰見龍在田利見大人君德也
九二曰, 見龍在田利見大人, 何謂也. 子曰, 龍德而正中者也, 庸言之信, 庸行之謹, 閑邪存其誠, 善世而不伐, 德博而化. 易曰, 見龍在田利見大人, 君德也.
九二曰 見龍在田利見大人은 何謂也오 子曰 龍德而正中者也니 庸言之信하며 庸行之謹하야 閑邪存其誠하며 善世而不伐하며 德博而化니 易曰見龍在田利見大人이라하니 君德也라
九二에서 ‘나타난 龍[見龍현룡]이 밭에 있으니 大人을 보는 것이 利롭다. ’라고 한 것은 무슨 말인가? ‘ 孔子가 말하였다. “龍의 德으로 딱 알맞은 者이다. 平常時평상시의 말을 미덥게 하고, 平常時의 行動을 삼가며, 奸邪간사함을 막고 精誠정성을 保存하여 世上을 좋게 만들고도 자랑하지 않으니, 德이 넓어서 敎化한다. 『周易』에서 ‘나타난 龍이 밭에 있으니 大人을 봄이 利롭다. ’고 하였으니 이는 임금의 德이다. ”
p.324 【傳】=====
以龍德而處正中者也在卦之正中爲得正中之義庸信庸謹造次必於是也旣處无過之地則唯在閑邪邪旣閑則誠存矣善世而不伐不有其善也德博而化正己而物正也皆大人之事雖非君位君之德也
以龍德而處正中者也. 在卦之正中, 爲得正中之義. 庸信庸謹, 造次必於是也. 旣處无過之地, 則唯在閑邪, 邪旣閑則誠存矣. 善世而不伐, 不有其善也, 德博而化, 正己而物正也, 皆大人之事, 雖非君位, 君之德也.
以龍德而處正中者也라 在卦之正中하니 爲得正中之義라 庸信庸謹은 造次必於是也라 旣處无過之地면 則唯在閑邪니 邪旣閑則誠存矣라 善世而不伐은 不有其善也요 德博而化는 正己而物正也니 皆大人之事니 雖非君位나 君之德也라
龍의 德으로 딱 가운데인 자리에 處한 者이다. 下卦의 딱 가운데 자리에 있으니 바르고 알맞은 뜻을 얻은 것이다. 平常時의 말을 미덥게 하고, 平常時의 行動을 삼간다는 것은 잠깐 동안이라도[주 430] 반드시 이와 같이 하는 것이다. 이미 허물이 없는 데에 處처했으면 오직 奸邪함을 막을 뿐이니, 奸邪함을 이미 막았다면 精誠이 保存된다. ‘世上을 좋게 만들고도 자랑하지 않는다. ’는 것은 좋은 일을 독차지하지 않는 것이며, ‘德이 넓어서 敎化한다. ’는 것은 自身을 바르게 함에 남이 바르게 되는 것이니 모두 大人의 일이다. 비록 임금의 地位는 아니나 임금의 德이다.
430) 『論語‧里仁』: 造次必於是. |
p.324 【小註】=====
程子曰閑邪則誠自存如人有室垣墻不脩不能防冦冦從東來逐之則復有自西入逐得一人一人復至不如脩其垣墻則冦自不至故欲閑邪也
程子曰, 閑邪則誠自存, 如人有室, 垣墻不脩, 不能防冦, 冦從東來逐之則復有自西入, 逐得一人, 一人復至, 不如脩其垣墻, 則冦自不至, 故欲閑邪也.
程子가 말하였다. "奸邪함을 막았다면 精誠은 저절로 保存된다. 예컨대 사람이 방이 있어도 담장[垣墻원장=垣牆원장]을 修理수리하지 않으면 도둑을 막을 수 없어, 東쪽으로 들어오는 도둑을 쫓으면 다시 西쪽으로 들어오는 도둑이 있을 것이고, 한 사람을 쫓으면 또 한 사람이 다시 들어오는 것과 같으니, 담장을 修理하여 도둑이 스스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만 못하다. 그러므로 奸邪함을 막고자 하는 것이다. “
○敬是閑邪之道閑邪存其誠雖是兩事然亦只是一事閑邪則誠自存矣天下有一箇善一箇惡去善卽是惡去惡卽是善
○敬是閑邪之道. 閑邪存其誠, 雖是兩事, 然亦只是一事, 閑邪則誠自存矣. 天下有一箇善一箇惡, 去善卽是惡, 去惡卽是善.
‘恭敬공경’은 奸邪함을 막는 道이다. ‘奸邪함을 막고 精誠을 保存함. ’은 비록 두 가지 일이나, 또한 한 가지 일일 뿐이니 奸邪함을 막으면 精誠은 저절로 保存되는 것이다. 天下에는 하나의 善선과 하나의 惡악이 있으니, 善을 버리면 곧 惡이고, 惡을 버리면 곧 善이다.
○閑邪則誠自存而閑其邪者乃在於言語飲食進退與人交接之際而已矣
○閑邪則誠自存, 而閑其邪者, 乃在於言語飲食進退與人交接之際而已矣.
奸邪함을 막으면 精誠은 저절로 保存되는데 奸邪함을 막는다는 것은, 말하고 먹고 마시는 日常生活과 나아가고 물러가며 남과 더불어 交際하는 즈음에 있을 뿐이다.
○閑邪則誠自存不是外面捉一箇誠將來存著今人外面役役於不善中尋箇善來存著如此則豈有入善之理只是閑邪則誠自存閑邪更著甚工夫但惟是動容貌整思慮則自然生敬敬只是主一也
○閑邪則誠自存, 不是外面捉一箇誠, 將來存著. 今人外面役役於不善中, 尋箇善來存著, 如此則豈有入善之理. 只是閑邪則誠自存, 閑邪更著甚工夫. 但惟是動容貌整思慮, 則自然生敬, 敬只是主一也.
奸邪함을 막으면 精誠은 저절로 保存된다는 것은, 밖에서 하나의 精誠을 잡아 들여와서 保存하려는 것이 아니다. 요즘 사람들은 밖에서 不善을 힘쓰다가 善을 찾아와서 保存하려 하니, 이와 같이 한다면 어찌 善에 들어갈 理가 있겠는가? 但只 奸邪함을 막으면 精誠이 저절로 保存되는 것이니, 奸邪함을 막았다면 다시 무슨 工夫를 해야 할까? 但只 容貌용모를 端正단정히 하고[주 431] 생각을 整頓정돈하면 저절로 恭敬이 생길 것이니, 恭敬은 但只 한 가지에 專念전념하는 것이다. [주 432]
431) 『論語‧泰伯』: 君子所貴乎道者三, 動容貌, 斯遠暴慢矣, 正顔色, 斯近信矣, 出辭氣, 斯遠鄙倍矣. |
432) 『論語集註』: 敬者, 主一無適之謂. |
○閑邪則固一矣然主一則不消言閑邪
○閑邪則固一矣, 然主一則不消言閑邪.
奸邪함을 막으면 眞實로 한 가지에 專念할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에 專念하면 奸邪함을 막는다는 것을 구태여 말할 必要가 없다.
○或問閑邪則固一矣主一則更不消言閑邪朱子曰只是覺見邪在這裏要去閑他則心便一了所以說道閑邪則固一矣旣一則邪便自不能入便更不消說又去閑邪
○或問, 閑邪則固一矣, 主一則更不消言閑邪. 朱子曰, 只是覺見邪在這裏, 要去閑他, 則心便一了, 所以說道閑邪則固一矣. 旣一則邪便自不能入, 便更不消說又去閑邪.
어떤 이가 물었다. " ‘奸邪함을 막으면 眞實로 한 가지에 專念할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에 專念하면 奸邪함을 막는다는 것을 굳이 말할 必要가 없다. ’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 朱子가 말하였다. "다만 奸邪함이 이 속[裏리]에 있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막아버린다면 마음은 곧 專念할 수 있기 때문에 ‘奸邪함을 막으면 眞實로 한 가지에 專念할 수 있다. ’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미 專念한다면 奸邪함은 저절로 들어올 수 없으니, 또 가서 奸邪함을 막는다고 다시 말할 必要가 없습니다. ”
p.325 【本義】=====
正中不潛而未躍之時也常言亦信常行亦謹盛德之至也閑邪存其誠无斁亦保之意言君德也者釋大人之爲九二也
正中, 不潛而未躍之時也. 常言亦信, 常行亦謹, 盛德之至也. 閑邪存其誠, 无斁亦保之意. 言君德也者, 釋大人之爲九二也.
正中은 不潛而未躍之時也라 常言亦信하고 常行亦謹은 盛德之至也라 閑邪存其誠은 无斁亦保之意라 言君德也者는 釋大人之爲九二也라
‘딱 알맞음[正中]’은 잠기지도 않고 뛰어오르지 않는 때이다. 平常時의 말도 믿음이 있고 平常時의 行動도 삼가함이 있으니 德의 盛함이 至極하다. ‘奸邪함을 막고 그 精誠을 保存함’은 싫어함이 없더라도 保存한다는 뜻이다. ‘君子의 德’이라고 말한 것은 大人이 九二가 됨을 解釋해석한 것이다.
p.325 【小註】=====
朱子曰庸言庸行盛德之至到這裏不消恁地猶自閑邪存誠便是无斁亦保雖无厭斁亦當保也保者持守之意
朱子曰, 庸言庸行, 盛德之至, 到這裏不消恁地, 猶自閑邪存誠, 便是无斁亦保, 雖无厭斁亦當保也. 保者, 持守之意.
朱子가 말하였다. "平常時의 말과 平常時의 行動이 德의 盛大성대함에 至極지극하면, 이에 이르러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오히려 저절로 奸邪함을 막고 精誠을 保存하게 되니, 바로 싫어함이 없더라도 保全하는 것이다. 비록 싫어함이 없을 때라도 마땅히 保全해야 한다. 保全한다는 것은 잡아 지킨다는 뜻이다. “
○乾之九二處得其中都不著費力常言旣信常行旣謹但用閑邪怕他入來若九三剛而不中過高而危故有乾乾之戒
○乾之九二, 處得其中, 都不著費力, 常言旣信, 常行旣謹, 但用閑邪怕他入來. 若九三剛而不中, 過高而危, 故有乾乾之戒.
乾卦의 九二는 가운데 자리에 있어서 전혀 힘쓰지 않아도 平常時의 말이 이미 미덥고 平常時 行動을 이미 삼간다. 그런데도 ‘奸邪함을 막음’을 쓰는 것은 다만 奸邪함이 들어올까 걱정해서이다. 九三의 境遇경우는 굳세나 가운데 자리가 아니어서 지나치게 높아 危殆하기 때문에 ‘힘쓰고 힘쓴다[乾乾]’는 警戒경계가 있다.
○兩處說箇君德卻是要發明大人卽是九二孔子怕人道別箇大人故互相發
○兩處說箇君德, 卻是要發明大人卽是九二. 孔子怕人道別箇大人, 故互相發
두 곳에서 ‘君主의 德’을 말한 것은,[주 433] 大人이 바로 九二임을 밝히고자 한 것이다. 孔子는 사람들이 別途별도의 大人을 말할까 걱정하였기 때문에 두 곳에서 서로 밝힌 것이다.
433) 「文言傳」에서 ‘君德’을 말한 곳은 두 곳으로 모두 九二爻에 대한 部分이다. 한 곳은, “九二曰, 見龍在田, 利見大人, 何謂也? 子曰, 龍德而正中者也. 庸言之信, 庸行之謹, 閑邪存其誠, 善世而不伐, 德博而化. 易曰, 見龍在田, 利見大人, 君德也” 이고, 다른 한 곳은 “君子, 學以聚之, 問以辯之, 寬以居之, 仁以行之. 易曰, 見龍在田, 利見大人, 君德也”이다. |
○龍德正中以下皆君德言雖不當君位卻有君德所以也做大人伊川卻說得這箇大人做兩様
○龍德正中以下皆君德, 言雖不當君位, 卻有君德, 所以也做大人. 伊川卻說得這箇大人做兩様.
‘龍의 德으로 딱 알맞다. ’ 以下는 모두 임금의 德이니, 비록 임금의 자리에 該當해당되지 않으나 도리어 임금의 德이 있기 때문에 또한 大人이 될 수 있는 것이다. 伊川도 이러한 大人을 ‘두 가지 形態형태[兩様양양]’로 說明설명했다.
○蘭氏廷瑞曰邪自外入故閑之誠自我有故存之
○蘭氏廷瑞曰, 邪自外入, 故閑之, 誠自我有, 故存之.
蘭廷瑞난정서가 말하였다. "奸邪함은 밖에서 들어오기 때문에 막는다고 했고, 精誠은 本來 나에게 있기 때문에 保存한다고 했다. “
○西溪李氏曰天理人欲不兩存苟閑得一分人欲便存得一分天理又曰聖人之學正心誠意便是治國平天下底事信謹之始便要善世不伐德博而化蓋君德權輿於此矣
○西溪李氏曰, 天理人欲, 不兩存. 苟閑得一分人欲, 便存得一分天理. 又曰, 聖人之學正心誠意, 便是治國平天下底事. 信謹之始, 便要善世不伐, 德博而化, 蓋君德權輿於此矣.
西溪李氏서계이씨가 말하였다. "天理와 人欲인욕은 둘 모두 保存할 수 없으니, 人欲의 一部를 막을 수 있으면, 곧 天理의 一部도 保存될 수 있다. “ 또 말하였다. “마음을 바르게 하고 뜻을 精誠스럽게 한다. ”는 聖人의 學文이 곧 나라를 다스리고 天下를 公平히 다스리는 일이다. 미더움과 삼감[信謹]의 始作이 바로 ‘世上을 좋게 만들어도 자랑하지 않고, 德이 넓어서 敎化하는 것’이니, 君主의 德은 여기에서 始作시작된다. “
○西山眞氏曰易以二五爲中故九二曰龍德正中九五曰飛龍在天皆以得中故也初則勿用三則危四則或上則悔夫乾天德聖人之事也必以中爲貴以不中爲戒則天下之至善豈有過於中者乎
○西山眞氏曰, 易以二五爲中, 故九二曰龍德正中. 九五曰飛龍在天, 皆以得中故也. 初則勿用, 三則危, 四則或, 上則悔. 夫乾天德聖人之事也. 必以中爲貴, 以不中爲戒, 則天下之至善, 豈有過於中者乎.
西山眞氏서산진씨가 말하였다. " 『周易』은 二爻이효와 五爻를 알맞음[中]으로 여긴다. 그러므로 九二에서 ‘龍의 德으로 딱 알맞다. ’고 했고, 九五에서 ‘나는 龍이 하늘에 있다. ’고 한 것은 모두 알맞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初爻초효에서는 ‘쓰지 말라’라 하고, 三爻에서는 ‘危殆하다’라 하고, 四爻에서는 ‘때로는’이라 하고, 上爻에서는 ‘後悔후회한다’고 하였다. 大槪 乾은 하늘의 德으로 聖人의 일이다. 반드시 알맞음을 貴하게 여기고 알맞음이 아님을 警戒로 삼는다면 곧 天下의 至極한 善이니, 이것이 어찌 알맞음보다 지나침이 있는 것이겠는가? “
○厚齋馮氏曰易者理學之宗而乾坤二卦又易學之宗也子思孟子言誠者天之道先儒謂誠敬者聖學之源皆出于此
○厚齋馮氏曰, 易者, 理學之宗, 而乾坤二卦, 又易學之宗也. 子思孟子言誠者天之道, 先儒謂誠敬者聖學之源, 皆出于此.
厚齋馮氏후재풍씨가 말하였다. "易은 理學의 根幹근간[宗종]이고, 乾坤건곤 두 卦는 또한 易學의 根幹이다. 子思와 孟子가 ‘精誠은 하늘의 道이다. ’[주 434]라 한 것과, 先儒선유들이 精誠과 恭敬이 聖學성학의 根源근원이라 한 것이 모두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
434) 『中庸』. |
○隆山李氏曰乾畫一實則誠坤畫虛則生敬故乾九二言誠坤六二言敬誠敬二字始于包犧心畫而實天地自然之理也
○隆山李氏曰, 乾畫一, 實則誠, 坤畫, 虛則生敬. 故乾九二言誠, 坤六二言敬. 誠敬二字, 始于包犧心畫, 而實天地自然之理也.
隆山李氏융산이씨가 말하였다. "乾의 畫획인 陽[−]은 채워 있으니 精誠이고, 坤의 畫인 陰[]은 비워 있으니 恭敬이 생긴다. 그러므로 乾卦 九二는 精誠을 말했고, 坤卦의 六二는 恭敬을 말했다. 精誠과 恭敬 두 글자는 伏羲氏의 마음으로 그은 畫[心畫심획]에서 비롯되니, 眞實로 天地自然의 理致이다. “
韓國大全
【김장생(金長生) 『경서변의(經書辨疑)-주역(周易)』】 |
九二曰, 見龍在田. 九二에서 말하였다. '나타난 龍이 밭에 있다. ‘ 本義, 旡斁亦保. 『本義』에서 ‘싫어함이 없더라도 保全한다. ’라 하였다. |
中庸章句曰, 射〈詩作斁〉, 厭也, 言厭怠而不敬也. 『中庸章句』에서 말하였다. '射역〈『詩經』에는 ‘싫어할 斁역’字로 되어 있다〉은 싫어함[厭염]이니, 싫어하고 怠慢태만하여 恭敬공경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 [주 435] |
435) 『中庸』의 ‘ 『詩經』에서 ‘神이 오는 것을 豫測예측할 수 없는데, 하물며 神을 싫어할 수 있겠는가[詩曰, 神之格思, 不可度思, 矧可射思]’라고 하였다. 에서 ‘射역’에 대한 朱子의 註釋주석이다. |
◑ 小註, 朱子曰, 庸言庸行, 盛德之至, 到這裏不消恁地, 猶自閑邪存誠, 便是無斁亦保. 雖無厭斁亦當保也. 保者, 持守之意. 小註소주에서 朱子가 말하였다. "平常時의 말과 平常時의 行動이 德의 盛大함에 至極하면, 이에 이르러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오히려 저절로 ‘奸邪함을 막고 精誠을 保存’하게 되니, 바로 싫어함이 없더라도 保全하는 것이다. 비록 싫어함이 없을 때라도 마땅히 保全해야 한다. 保全한다는 것은 잡아 지킨다는 뜻이다. “ |
◑ 退溪曰, 厭斁, 猶言忌憚. 常人之情, 若有人點檢吾所爲, 則於其心必有忌憚, 而保其所守. 聖人, 則非有忌憚, 而亦克自保也. 退溪퇴계가 말하였다. " '싫어함[厭斁염역]’은 꺼림[忌憚기탄]이라는 말과 같다. 普通보통사람의 心情은 自己의 行爲를 點檢점검하는 사람이라면 그 마음에 반드시 꺼리는 것이 있어야 지킬 것을 保全한다. 그러나 聖人은 꺼리는 것이 있어서 스스로 保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
◑ 愚按, 朱子說與退溪說不同, 退溪恐誤. 내가 살펴보았다. 朱子의 말과 退溪퇴계의 말이 같지 않은데, 退溪의 말이 틀린 것 같다. |
【利益(李瀷) 『역경질서(易經疾書)』】 |
庸言之信, 有餘不敢盡也. 庸行之謹, 不足不敢不勉也. 此爲閑邪節度, 如是則邪安得入. 邪不得入, 則誠自存矣. 九四曰, 上下無常, 非爲邪也, 防其躁進之心也. 九二旣有正中龍德, 故或慮不免急於施爲, 以是爲戒. ‘平常時의 말을 미덥게 한다. ’는 것은 말을 남겨두어 敢감히 다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平常時의 行動을 삼간다. ’는 것은 不足함이 있으면 敢히 힘쓰지 아니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이 奸邪함을 막는 節度절도가 되니, 이와 같이 하면 奸邪함이 어떻게 들어올 수 있겠는가? 奸邪함이 들어오지 못하면 精誠은 저절로 保存이 된다. 九四에서 ‘오르고 내림에 一定함이 없음은 奸邪함이 되지 않는다. ’라고 한 것은 躁急조급하게 나아가려는 마음을 막는 것이다. 九二는 이미 바르고 알맞음과 龍의 德이 있기 때문에 或是혹시라도 베푸는 일에 躁急함을 벗어나지 못할 것을 念慮염려하여 이러한 말로써 警戒를 삼았다. |
善世, 易世也, 德博, 成名也. ‘世上을 좋게 만든다. [善世] ’는 것은 世上을 바꾸는 것이며, ‘德이 넓다[德博] ’는 것은 名聲명성을 이루는 것이다. |
九二, 言信行謹, 至於存誠, 至九三, 則忠信便是行謹, 故所以進德也. 修辭立誠, 便是言信存誠, 故所以居業也. 忠信則行顧言矣, 修辭立誠則言顧行矣. 居者, 有之也. 德可自進, 業必興乎人, 修辭立誠, 方可以居之也. 九二에서는 말을 미덥게 하고 行動을 삼가는 것으로부터 精誠을 保存하는 데에까지 이르고, 九三에 이르면 充實충실함과 믿음은 곧 行動을 삼가는 것이기 때문에 德을 기르는 것이다. 말을 가려서 하고 精誠을 세움은 곧 말을 미덥게 하고 精誠을 保存하는 것이기 때문에 本業을 修行하는 것이다. 充實함과 믿음은 行動이 말을 되돌아보는 것이고, 말을 가려서 하고 精誠을 세움은 말이 行動을 되돌아보는 것이다. ‘修行수행한다’는 뜻의 居는 가지고 있는 것이다. 德이 스스로 나아갈 수 있다면 本業은 반드시 사람들에게 興흥하게 되고, 말을 가려서 하고 精誠을 세우면 그것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
【심조(沈潮) 「역상차론(易象箚論)」】 |
閑邪存誠. 奸邪함을 막고[閑한] 精誠을 保存하여. |
二陰位也, 故容有邪思, 以陽居之, 故能閑之. 二爻는 陰음의 자리이기 때문에 受容수용함에 奸邪한 생각이 있을 수 있는데, 陽양이 그 자리에 있기 때문에 막을 수가 있다. |
【유정원(柳正源) 『역해참고(易解參攷)』】 |
括蒼龔氏曰, 在田, 所以善世居下體之中, 所以不伐也. 括蒼龔氏괄창공씨가 말하였다. " ‘밭에 있다. ’는 것은 世上을 좋게 하는 까닭이며, 下體의 가운데에 있기 때문에 자랑하지 않는다. “ |
○案, 庸平常也. 平常之言, 猶且信焉, 旡一言之不信也. 平常之行, 猶且謹焉, 旡一行之不謹也. 不信不謹者, 由其邪, 不能閑故也. 唯口耳目, 手足動靜, 投間抵隙, 爲厥心病. 一心之微, 衆欲攻之, 閑之之道旡他, 以實心行實事而已. 旡一事旡理之事, 何事而不用誠, 旡一處旡理之處, 何處而不用誠乎. 내가 살펴보았다. ‘庸’은 平常時를 뜻한다. 平常時의 말을 또 미덥게 해야 하니, 한마디 말이라도 미덥지 않음이 없어야 한다. 平常時의 行動을 또한 삼가야 하니, 한 가지 行動이라도 삼가지 않음이 없어야 한다. 미덥지 못하고 삼가지 못하는 것은 奸邪함에서 비롯된 것을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직 입‧귀‧눈과 손‧발‧動동‧靜정이 마음을 파고들고 틈에 끼어들어서 마음의 病병이 된다. 마음의 微弱미약한 곳을 여러 欲心이 攻擊공격을 하니, 그것을 막는 道理는 다른 것이 없고, 實心실심으로 實事실사를 行할 뿐이다. 어떤 일이라도 理致가 없는 일은 없으니, 어찌 일을 하면서 精誠을 다하지 않을 것이며, 어떤 對處일지라도 理致가 없는 對處는 없으니, 어찌 對處하면서 精誠을 다하지 않겠는가? |
【김상악(金相岳) 『산천역설(山天易說)』】 |
以龍德而處內乾之中, 爲得正中之義. 言信者, 以其中也, 行謹者, 以其正也. 正則邪自閑矣, 中則誠自存矣. 所以善世而不伐, 德博而化. 言君德者, 明其非君位也. 九二不得君位, 爲時所舍, 故利見位天德之大人以行其德. 龍의 德으로 內卦인 乾(☰)의 가운데에 있는 것이 正中을 얻었다는 뜻이다. 말을 미덥게 하는 것은 中으로써 하는 것이며, 行動을 삼가는 것은 正으로써 하는 것이다. 바르면 奸邪함이 저절로 없어지고, 가운데에 있으면 眞實함이 저절로 保存된다. 따라서 世上을 좋게 만들고도 자랑하지 않고, 德을 널리 펼쳐 敎化시킨다. 임금의 德이라고 말한 것은 임금의 자리가 아님을 밝힌 것이다. 九二는 임금의 자리를 얻지 못하여 버려지는 때가 되기 때문에 하늘의 德을 가진 大人의 자리에 있는 사람이 그 德을 行하는 것을 보는 것이 利롭다. |
○誠敬者, 聖學之源, 自有乾坤, 卽具此理, 所以乾九二言誠, 坤六二言敬, 故曰天地設位, 易行乎其中, 只是敬也, 敬則无間斷. 精誠과 恭敬은 聖人 學文의 根源이니, 本來 乾坤을 갖추게 되면 이러한 理致를 갖추게 되기 때문에 乾卦의 九二에서 精誠에 대해서 말하고, 坤卦의 六二에서 恭敬을 言及하였다. 그러므로 ‘天地가 자리를 갖추고, 易이 그 가운데에서 流行한다. ’[주 436]라고 한 것은 이것이 恭敬이니, 恭敬하면 끊어져 中斷됨이 없다. |
436) 『易‧繫辭계사』: 子曰, 易其至矣乎. 夫易, 聖人所以崇德而廣業也. 知崇禮卑, 崇效天, 卑法地. 天地設位, 而易行乎其中矣. 成性存存, 道義之門. |
【김귀주(金龜柱) 『周易차록(周易箚錄)』】 |
本義, 正中不濳, 云云. 『本義』에서 말하였다. '딱 알맞음[正中]은 잠기지도 않고, 운운. ‘ 小註, 龍德正中以下, 云云. 小註에서 ‘龍의 德으로 딱 알맞음 以下는, 운운.’ |
○按, 程傳解此節, 則固以九二爲大人. 而其他爻辭傳, 及學聚問辨下, 皆作兩㨾說, 故朱子之言如此. 蓋無論九二九五, 皆以當爻爲大人, 而利見者乃占者也. 至若有見龍飛龍之德, 而利見同德者, 則自當別爲一例矣. 伊川則每於九二九五, 不以當爻爲大人, 而卻尋箇同德者喚[주 437]做大人, 此所謂兩樣也. |
내가 살펴보았다. 이 節절에 대한 『程傳정전』의 解釋해석은 眞實진실로 九二를 大人으로 삼았는데, 다른 爻辭효사의 『程傳』과 ‘배워서 모으고 물어서 分辨분변하다. ’ 아래의 說明은 모두 ‘두 가지 形態[兩㨾]’로 말했기 때문에 朱子의 말이 이와 같다. 大體로 九二와 九五를 莫論막론하고 모두 該當하는 爻를 大人으로 삼지만, 보는 것이 利로운 者는 곧 占치는 者이다. ‘나타난 龍[見龍현룡]’과 ‘나는 龍[飛龍비룡]’의 德이 있고서 같은 德을 가진 者를 봄이 利로운 것은 應當응당 別途로 하나의 事例사례가 된다. 伊川은 매번 九二와 九五에서 該當 爻를 大人으로 삼지 않았고, 도리어 같은 德을 가진 者를 찾아서 大人으로 삼았으니, 이것이 이른바 ‘두 가지 形態[兩樣]’[주 438]라는 것이다. |
437) 喚부를 환: 경학자료집성DB에는 ‘噢오’로 되어 있으나 경학자료집성 影印本을 參照하여 ‘喚환’으로 바로잡았다. |
438) 程伊川이 大人을 두 가지 形態로 說明한다는 ‘兩樣양양’說은 『周易傳義大典‧元』 326쪽에 보이고, 『程傳』의 九二爻의 大人에 대한 註釋은 263쪽에 보인다. |
西溪李氏曰, 天理, 云云. 서계이씨가 말하였다. "하늘의 理致는, 운운. |
○按, 正心誠意是治平之本, 今謂之治平之事者, 極未瑩. 信謹之始, 便要善世不伐, 德愽而化云者尤未安. 聖人之信謹, 蓋是盛德之至. 未善世愽化時, 亦信謹, 已善世博化時. 亦信謹, 旣無初終之可言, 而又非有所爲而爲者. 若如李說, 則聖人言行, 本有不信不謹, 而自某時始下工夫耳已, 非聖人之事. 而方其始之之際, 已有善世博化之意, 此乃所謂言語必信, 非[주 439]以正行也, 又豈聖人之心哉. 後節君子進德修業欲及時云者, 亦言旣進德修業而當九四之位, 則當隨時而進退耳. 然朱子猶恐讀[주 440]者誤看了, 乃曰君子本非有此心, 意可見矣. 末叚君德權輿於此云云, 亦未穩. 龍得正中以下五事, 正是君德, 但未及君位耳, 奚但權輿而已哉. |
내가 살펴보았다. 바른 마음과 精誠스런 뜻은 太平時代의 根本인데 只今 太平時代의 일이라고 말하는 것은 매우 分明하지 않다. ‘믿음과 삼가 함’의 始作은 곧 ‘좋은 世上을 만들어도 자랑하지 않고, 德이 넓어서 敎化시킴’이라고 말하는 것은 더욱 適切적절하지 않다. 聖人의 ‘믿음과 삼가 함’은 盛德이 至極해서이니 좋은 世上이나 德이 넓어서 敎化하는 때가 아니더라도 또한 ‘믿음과 삼가 함’이고, 이미 ‘좋은 世上을 만들고 德이 넓어서 敎化하는’ 때에도 ‘믿음과 삼가 함’이니, 이미 말할 만한 처음과 끝이 없고, 또 目的이 있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萬若만약 李氏의 말대로라면 聖人의 言行이 本來 不信과 不謹불근이 있어서 어떤 때로부터 始作한 工夫에 不過할 뿐이니 聖人의 일이 아니다. 始作할 즈음에 이미 ‘좋은 世上을 만들고 德이 넓어 敎化하는’ 意圖의도가 있다면, 이는 이른바 ‘言語를 반드시 미덥게 하는 것이 行實을 바르게 하려고 해서가 아니니’ ,[주 441] 또 어찌 聖人의 마음이겠는가! 뒷 句節의 ‘君子가 德을 기르고 學業을 닦아 때에 미치고자 함.’이라는 것도 이미 ‘德을 기르고 學業을 닦았으나’ 九四의 자리에 該當해당하면 마땅히 때에 따라 나아가고 물러날 뿐임을 말한 것이다. 그러나 朱子는 오히려 읽는 사람이 잘못 理解할까 두려워하여 이에 ‘君子가 本來 이런 마음을 가지지 않았다. ’라 하니 朱子의 뜻을 알 수 있다. 끝 段落단락에 ‘임금의 德은 여기에서 始作한다. ’ 云云 했는데 亦是 穩當온당하지 않다. ‘龍이 딱 알맞음을 얻어’ 以下 다섯 가지 일[주 442]은 바로 임금의 德을 지녔으나 임금의 地位에 미치지 못했을 뿐인데 어찌 但只 始作일 뿐이겠는가! |
439) 非비: 경학자료집성DB에 ‘欲욕’로 되어있으나 『孟子』 原文에 依據의거하여 ‘非’로 바로잡았다. |
440) 讀독: 경학자료집성DB에 ‘瀆독’으로 되어있으나 文脈에 依據하여 ‘讀’으로 바로잡았다. |
441) 『孟子‧盡心』. |
442) 다섯 가지 일이란, ‘庸言之信‧ 庸行之謹‧ 閑邪存其誠‧ 善世而不伐‧ 德博而化’이다. |
西山眞氏曰, 易以, 云云. 西山眞氏서산진씨가 말하였다. "易으로, 운운. “ |
○按, 乾之六爻, 皆聖人之事. 以時位言, 則或中或不中, 而以德言, 則初無中不中之可論. 今云, 聖人之事, 以中爲貴, 以不中爲戒[주 443], 又云, 天下至善, 豈有過於中者, 則是乃以德之中不中爲言, 恐誤矣. 내가 살펴보았다. 乾卦의 여섯 爻는 모두 聖人의 일이다. 때와 자리로 말하면 어떤 爻는 中을 얻었고 어떤 爻는 中을 얻지 못했으나, 德으로 말하면 애초에 論할 만한 中‧不中이 없다. 그런데 只今 ‘聖人의 일은 中을 貴하게 여기고 中이 아님을 警戒함’이라하고, 또 ‘天下의 至極한 善이 어찌 中을 넘는 者가 있겠는가? “라 하니 이는 곧 德이 中인지 中이 아닌지를 가지고 말한 것이니 잘못된 듯하다. |
隆山李氏曰, 乾畫, 云云. 隆山李氏융산이씨가 말하였다. "乾卦의 畫획이, 운운. “ |
○按, 此說深有意義. 然其云虛則生敬, 恐少差. 程子亦嘗言生敬, 而其意蓋謂人能動容貌整思慮, 則自然生敬云爾, 所以言敬之方也. 若以虛敬對言, 則敬而後方虛, 非虛而後生敬也. 내가 살펴보았다. 이 主張은 매우 意味의미가 있다. 그러나 ‘비워 있으니 恭敬이 생긴다. “는 말은 좀 잘못된 듯하다. 程子정자도 일찍이 恭敬이 생긴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 뜻은 大槪대개 容貌용모를 움직임에 思慮사려를 端正단정히 하면 저절로 恭敬이 생긴다고 말한 것일 뿐이니, 恭敬의 方途를 말한 것이다. 비움과 恭敬을 짝하여 말한다면 恭敬한 뒤에야 비워지지, 비운 뒤에 恭敬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
443) 戒계: 경학자료집성DB에 ‘我’로 되어있으나 『周易傳義大典』 依據하여 ‘戒’로 바로잡았다. |
【서유신(徐有臣) 『역의의언(易義擬言)』】 |
龍德而正中者也者, 乾而九二也. 信謹閑存, 剛實在中之象也. 善世而不伐, 德施普之象也. 德博而化, 則其旣聖矣乎, 君德也者, 有其德而無其位也. |
龍의 德으로 바르고 알맞다는 것은 乾의 九二를 뜻한다. 믿고 삼가며 막고 保存하는 것은 굳세고 誠實함이 그 안에 있는 象상이다. 世上을 좋게 만들고도 자랑하지 않는 것은 德을 두루 펼치는 象이다. 德을 넓게 펼쳐 敎化한다면 이미 聖人이라고 할 수 있는데, 君主의 德이라고 한 것은 그 德을 갖췄지만 그 地位가 없다는 뜻이다. |
【오희상(吳熙常) 「잡저(雜著)-역(易)」】 |
文言, 九二言誠, 坤六二言敬, 乾畫實, 坤畫虛, 實爲誠, 虛生敬, 自伏羲心畫, 已有此象, 乃天然自然之理, 後來多少聖賢, 發揮出來. |
「文言傳」 乾의 九二에서는 誠實을 言及했고, 坤의 六二에서는 恭敬을 言及했는데, 乾의 畫은 가득 차 있고, 坤의 畫은 비어 있으니, 차 있는 것은 誠實이 되고, 비어 있는 것은 恭敬이 되니, 伏羲의 心畫으로부터 이미 이러한 象이 있었다. 이것은 곧 天然의 自然스러운 理致이며, 以後에 여러 聖賢들이 그 意味를 드러내었다. |
【박문건(朴文健) 『周易연의(周易衍義)』】 |
閑邪於外, 存誠於內. 外的으로는 奸邪함을 막고, 內的으로는 誠實을 保存한다. |
〈問, 先儒以陽居陽位, 陰居陰位爲正, 何如. 曰, 中則正矣, 何必陽居陽位, 陰居陰位之謂也. 물었다. "先代 儒學者들은 陽이 陽의 位置에 있고, 陰이 陰의 位置에 있는 것이 올바른 것이라고 하였는데, 왜 그렇습니까? “ 答하였다. “가운데에 있으면 바른 것이니, 어찌 반드시 陽이 陽의 位置에 있고, 陰이 陰의 位置에 있는 것만 뜻하겠습니까? ” 〉 |
〈問, 庸言之信庸行之謹. 曰, 常言常行, 无不信謹, 則所以謂正中可知矣. 庸言以下, 見龍之實, 善世以下, 利見之本. 물었다. "平常時 말의 믿음과 平常時 行動의 삼감이라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 答하였다. ”日常에서의 말과 日常에서의 行動에 믿음이 있고 삼간다면, 이른바 正中에 該當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庸言 以下의 말은 나타난 龍의 實質이 되고, 善世선세 以下의 말들은 봄이 利롭다는 根本이 됩니다. “ 〉 |
【이지연(李止淵) 『周易차의(周易箚疑)』】 |
龍德而正中者, 猶云正當其中, 非謂中正也. 善世者, 陽之爲也. 不伐者, 居於陰位之故也. 龍의 德을 가지고 있으면서 바로 가운데 있다는 것은 바로 그 가운데에 該當한다는 뜻이지, 中正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世上을 좋게 하는 것은 陽의 行爲이다. 자랑하지 않는 것은 陰의 자리에 居하기 때문이다. |
【심대윤(沈大允) 『周易상의점법(周易象義占法)』】 |
中者, 无過不及偏倚也. 庸者, 平常也, 庸者, 謙之謂也. 凡言行不及則不若於人, 過則高絶於人. 不若於人, 則爲天下所侮, 高絶於人, 則爲天下所猜. 夫偏利人而不求利乎己, 謂之過. 得虛名而喪實利, 天下之人貌敬, 而心不願, 猜忌嚴憚而不親附, 終不可用於天下, 絶物而喪性. 若艮之九三, 是已. [주 444] 偏利己而害乎人, 謂之不及, 小人之私欲是也. |
中은 過不及의 치우침이 없는 것이다. 庸은 平常時를 뜻하며 謙遜함을 뜻한다. 言行이 미치지 못하면 남만 못하게 되고, 지나치게 되면 남보다 매우 뛰어나게 된다. 남만 못하게 되면 天下의 사람들에게 업신여김을 當하고, 남보다 매우 뛰어나게 되면 天下 사람들에게 猜忌시기를 當한다. 남을 利롭게 하는데 치우치고, 自身을 利롭게 하는 것을 求하지 않는 것을 지나치다고 말한다. 헛된 名聲명성을 얻어도 實利를 잃어버린 것으로서 天下의 사람들이 겉으로는 恭敬하지만, 마음으로는 自身보다 뛰어난 者를 바라지 않아서 猜忌하고 꺼려하며 親近하게 對[附부]하지 않으니, 끝내는 天下에 使用될 수가 없고, 事物을 잃고 本性을 잃게 된다. 艮卦간괘의 九三과 같은 境遇가 이에 該當한다. 自身을 利롭게 하는데 치우쳐서 남을 害롭게 하는 것을 미치지 못한 것이라고 부르며, 小人의 私欲이 바로 여기에 該當한다. |
444) 已: 경학자료집성DB에는 ‘已이미 이’로 되어 있으나 影印本에 根據하여 ‘已몸 기’로 바로잡는다. |
君子行其中庸, 无過无不及, 不高不下, 與天下和合, 而同其利焉, 中也和也庸也謙也, 異名而同功者也. 中庸曰, 庸德之行, 庸言之謹, 有所不足, 不敢不勉, 有餘不敢盡, 言言行不敢不及, 而亦不敢過, 不以取侮而見猜也. 君子事業可以高大, 言行不可以高絶也. 事業不高, 无以服衆, 言行不謙, 无以親人, 故不索隱行恠, 釣奇以自高, 亦不隨流同汚媚世而苟容, 故能隨乎天下而用天下, 同乎天下而服天下. |
君子가 中庸을 施行함에는 지나침도 없고 미치지 못함도 없으며, 높이지도 않고 낮추지도 않아서, 天下의 모든 사람들과 和合을 하여 그 利로움을 함께 하니, 中이 되고, 和가 되며, 庸용이 되고, 謙겸이 되는데, 名稱은 다르지만 그 功공은 같다. 『中庸』에서는 ‘平常의 德을 施行하고, 平常의 말을 삼가며, 不足한 點이 있거든 敢히 努力하지 않음이 없고, 남음이 있거든 敢히 다하지 않는다. ’[주 445]라고 했으니, 言行을 敢히 미치지 못하게 하지 않고, 또한 敢히 지나치게 하지도 않아서 업신여김과 猜忌를 當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君子의 事業은 높고 클 수 있지만, 言行은 뛰어나게 할 수 없다. 事業이 높지 않으면 大衆들을 屈服시킬 수 없고, 言行이 謙遜하지 못하면 사람들과 親해질 수 없다. 그러므로 숨겨져 있는 것을 찾아내어 怪異한 짓을 하거나, 奇異한 일을 찾아내어 제 스스로를 높이거나, 또한 潮流조류를 따라 醜雜추잡함을 함께 하지 않으며, 또한 世上에 阿諂아첨[媚아첨할 미]하여 苟且구차하게 容納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天下에 따르면서도 天下를 使用할 수 있고, 天下와 함께 하면서도 天下를 屈服시킬 수 있다. |
445) 『中庸』: 君子之道四, 丘未能一焉. 所求乎子, 以事父未能也. 所求乎臣, 以事君未能也. 所求乎弟, 以事兄未能也. 所求乎朋友, 先施之未能也. 庸德之行, 庸言之謹, 有所不足, 不敢不勉, 有餘不敢盡. 言顧行, 行顧言, 君子胡不慥慥爾! |
中庸曰, 生乎今之世, 欲反古之道, 災及其身者也. 言古今異時, 能隨時而中庸, 和同光塵而終能大化天下也. 不同則不信, 不信則不從, 不從則不化也. 中庸曰, 君子之道, 闇然而日章. 言中庸之道, 同乎愚夫愚婦, 无名可稱, 而終能參乎天地也. 夫言行有過有偏, 然後有名稱焉. 无過无偏, 則无可指名. 然可以同天下, 而成大業, 名垂萬世矣. |
『中庸』에서는 ‘오늘날에 태어나서 옛날의 道理만을 反芻반추하고자 한다면, 災殃이 그 自身에게 미칠 것이다. ’ [주 446]라고 했다. 옛날과 오늘날은 時宜시의가 다르기 때문에 時宜에 따라서 中庸을 發揮발휘하여 世上과 造化를 이루며 救濟할 수 있어야만 끝내 天下를 크게 變化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함께 하지 않으면 믿지 않고, 믿지 않으면 따르지 않으며, 따르지 않으면 變化가 되지 않는다. 『中庸』에서는 ‘君子의 道는 어둡더라도 날로 밝아진다. ’ [주 447]라고 했으니, 中庸의 道는 어리석은 夫婦와 함께 하여 指稱할 만한 名聲이 없지만 끝내 天地에 參與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言行에 지나침도 있고 偏僻편벽됨도 있은 뒤에야 名聲이 있게 된다. 지나침도 없고 偏僻됨도 없다면, 일컬을 만한 名聲이 없다. 그러나 天下를 함께 할 수 있고 大業을 이룰 수 있다면, 그 名聲은 永遠히 떨치게 된다. |
446) 『中庸』: 子曰, 愚而好自用, 賤而好自專, 生乎今之世反古之道, 如此者, 災及其身者也. |
447) 『中庸』: 詩曰, 衣錦尙絅. 惡其文之著也. 故君子之道, 闇然而日章. 小人之道的然, 而日亡. 君子之道, 淡而不厭, 簡而文, 溫而理, 知遠之近, 知風之自, 知微之顯, 可與入德矣. |
忠恕, 實利也, 中庸, 實名也. 若夫私欲之利, 偏過之名, 近小而有禍, 且又爲利則喪名, 爲名則喪利, 不可兼焉. 名亦利也. 喪名而利亦喪, 喪利而名亦喪, 是二人者所尙, 不同而其終歸於喪性一也. 惟忠恕之利, 中庸之名, 始若小難而終能遠大而長久, 且又兼有而无禍焉. 子曰, 仁者先難而後獲. 且天下之事, 未有不勞而得者, 彼邪欲之利, 偏過之名, 其極慮苦心, 危惧而艱難, 亦且數倍於忠恕中庸者矣. 忠恕中庸, 雖始若少勞而費然, 心安而體胖, 未有危惧艱苦愁愧儌倖之患矣, 而其爲名利, 不啻萬倍於彼矣. 九二有其道, 而无其位, 故曰君德也. 庸言之信, 庸行之謹, 言行之中庸也. 閑邪存其誠, 心情之中庸也. 善世而不伐, 德慱而化, 事業之中庸也. |
忠恕충서는 實際的실제적인 利益이익이고, 中庸은 實際的인 名聲명성이다. 萬若 私欲에 따른 利로움이나, 偏僻되고 지나침을 通해 얻은 名聲이라면 머지않아 災殃이 있게 되고, 또한 利로움을 追求추구하면 名聲을 잃고, 名聲을 追求하면 利로움을 잃게 되어, 둘을 兼備겸비할 수가 없다. 名聲 또한 利로움에 該當한다. 名聲을 잃으면 利로움도 잃고, 利로움을 잃으면 名聲도 잃는다. 이 두 가지는 사람들이 崇尙숭상하는 것이지만 함께 하지 못하여 끝내는 本性을 잃는 地境지경에 歸結귀결된다는 點점에서 同一한 것이다. 오직 忠恕의 利로움과 中庸중용의 名聲과 같은 境遇경우, 애초에 작은 어려움이 있지만 結局결국 遠大원대하고 長久하게 되며, 또한 兼備하여 災殃재앙이 없게 된다. 孔子는 “어짊은 먼저 어려움을 行하고 以後에 얻는다. ”[주 448]라고 했다. 또한 天下의 일이라는 것은 수고롭지 않고서 얻는 것이 없는데, 앞서 言及한 것처럼 私欲에 따른 利로움과 치우치고 偏僻된 名聲은 골똘히 생각하고 마음을 쓰더라도 危殆위태롭고 두려워서 괴롭게 되며, 또한 忠恕와 中庸에 대한 것보다 여러 倍배의 努力이 必要하게 된다. 忠恕와 中庸은 비록 始作할 때 작은 努力이 必要하지만, 마음이 便安하고 몸이 펴지게 되어, 危殆롭고 걱정하며, 고통스러우며 부끄럽고 僥倖을 바라는 等의 憂患우환이 없으니, 名聲과 利로움을 施行하더라도 앞서 言及한 名聲이나 利로움보다 萬倍만배가 많은 것에 그치지 않는다. 九二는 그 道는 가지고 있지만, 그 地位는 없다. 그러므로 임금의 德이라고 말하였다. [주 449] 平常時의 말을 믿게끔 하고, 平常時의 行動을 삼가는 것은 言行을 中庸에 맞게끔 하는 것이다. 奸邪함을 막고 誠實함을 保存하는 것은 心情을 中庸에 맞게끔 하는 것이다. 世上을 좋게 하고도 자랑하지 않고, 德을 널리 펼쳐 敎化한다는 것은 事業을 中庸에 맞게끔 하는 것이다. |
448) 『論語‧雍也』: 樊遲問知. 子曰, 務民之義, 敬鬼神而遠之, 可謂知矣. 問仁, 曰, 仁者先難而後獲, 可謂仁矣. |
449) 임금의 地位는 갖고 있지 않지만, 임금의 德은 갖고 있다는 뜻이다. |
【박문호(朴文鎬) 「경설(經說)‧주역(周易)」】 |
正中, 謂正當乎中也, 非謂正與中也. 以此觀之, 則九二本義所云中正, 蓋亦此義也, 或其字乙歟. ‘正中’은 바로 가운데에 該當한다는 뜻이지, 바르고 가운데에 있다는 뜻이 아니다. 이를 通해 살펴보면, 九二의 『本義』에서 말한 ‘中正’이라는 것은 아마도 또한 이러한 뜻인데, 或 그 글자가 뒤바뀐 것이다. |
【오치기(吳致箕) 「주역경전증해(周易經傳增解)」】[주 450] |
此一節申言九二之象也. 二居內卦之中, 而當不潛而未躍之時, 乃龍德而處正中者也. 常言亦信, 則旡一言之不信. 常行亦謹, 則旡一行之不謹. 閑外邪之入而存吾誠, 則旡一念之不誠. 善世之俗而不伐, 其功德施之愽, 而自有感化, 此乃君德也. 君德, 言雖不居君位, 已有其德也. |
이 한 節절은 九二의 象상을 거듭해서 말하였다. 二爻는 內卦의 가운데 있으면서 잠기지도 않고 뛰어오르지도 않는 때에 該當되니 龍의 德으로 바르고 가운데에 있는 者이다. 平素평소[常상]의 말이라도 믿음직스럽다면 어떤 말이라도 믿지 못할 것이 없다. 平素의 行實이라도 조심스럽다면 어떤 行實이라도 操心조심스럽지 않을 것이 없다. 밖으로부터 들어오는 奸邪함을 막아 나의 精誠을 保存하면 어떤 생각이라도 精誠스럽지 않을 것이 없다. 좋은 世上을 만들어도 자랑하지 않고 그 功德의 베풂이 넓어지면 저절로 感化감화됨이 있으니, 이것이 바로 임금의 德이다. 임금의 德은 임금의 자리에 있지 않더라도 이미 그 德이 있다는 말이다. |
450) 경학자료집성DB에서는 乾卦 九二에 該當하는 것으로 分類했으나, 內容에 따라 이 자리로 옮겼다. |
【이병헌(李炳憲) 『역경금문고통론(易經今文考通論)』】 |
孔子之所稱易, 單指繇辭也. 必合孔子之彖象, 而後方明爲經之義. 孔子가 指稱하는 ‘易’이라는 것은 但只 繇辭요사를 가리킨다. 반드시 孔子의 「彖傳단전」과 「象傳상전」에 符合부합된 以後에야 經文의 뜻을 밝힐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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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出處: daum, Google, 周易大全(주역대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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卦名 | 1. 重天乾 卦 [☰☰] |
卦辭 (文王) | 乾은 元코 亨코 利코 貞하니라 |
爻辭 (周公) | - 주역 중천건괘 효사 총정리, 소통의 인문학 김재홍 박사 STB 상생방송 문화 https://youtu.be/vif6CFeIpb8 |
- 【純享版】徐暐翔vs邓紫霄 《潜龙勿用》 20180824好聲音第六期單曲 官方HD https://youtu.be/daG6PV_OOFI?list=RDdaG6PV_OOFI | |
初九는 潛龍이니 勿用이니라 九二는 見龍在田이니 利見大人이니라 九三은 君子 終日乾乾하야 夕惕若하면 厲하나 无咎리라 九四는 或躍在淵하면 无咎리라 九五는 飛龍在天이니 利見大人이니라 上九는 亢龍이니 有悔리라 用九는 見群龍호대 无首하면 吉하리라 | |
彖傳 (孔子) | p.281 彖曰 大哉라 乾元이여 萬物이 資始하나니 乃通天이로다 雲行雨施하야 品物이 流形하나니라 大明終始하면 六位時成하나니 時乘六龍하야 以御天하나니라 乾道 變化에 各正性命하나니 保合大和하야 乃利貞하니라 首出庶物애 萬國이 咸寧하나니라 |
- 주역(周易)2. 중천건괘-단왈. 통원서당 경전 읽기 강독 독송 성독(通圓書堂통원서당 https://youtu.be/9XJg4FBoYu8 | |
象傳 (孔子) | 주역(周易)3. 중천건괘-상왈. 통원서당 경전 읽기 강독 독송 성독 |
2 주역 상경_건위천 (상전포함) .박대표 | |
p.298 象曰 天行이 健하니 君子以하야 自强不息하나니라 潛龍勿用은 陽在下也오 見龍在田은 德施普也오 終日乾乾은 反復道也오 或躍在淵은 進이 无咎也오 飛龍在天은 大人造也오 亢龍有悔는 盈不可久也오 用九는 天德은 不可爲首也라 | |
文言傳 (孔子)
제1절
(제1~11) | - [손기원박사-77강] Code 주역64괘(3) - 중천건괘 문언전 |
[시공간학 건괘 문언전 033] 주역 乾卦 부연설명이 乾卦文言傳. (오상조) | |
p.306 제1) 文言曰 元者는 善之長也오 亨者는 嘉之會也오 利者는 義之和也오 貞者는 事之幹也니 제2) 君子 體仁이 足以長人이며 제3) 嘉會 足以合禮며 제4) 利物이 足以和義며 제5) 貞固 足以幹事니 제6) 君子 行此四德者라 故로 曰乾元亨利貞이라 제7) 初九曰 潛龍勿用은 何謂也오 子曰 龍德而隱者也니 不易乎世하며 不成乎名하야 遯世无悶하며 不見是而无悶하야 樂則行之하고 憂則違之하야 確乎其不可拔이 潛龍也라 제8) 九二曰 見龍在田利見大人은 何謂也오 子曰 龍德而正中者也니 庸言之信하며 庸行之謹하야 閑邪存其誠하며 善世而不伐하며 德博而化니 易曰見龍在田利見大人이라하니 君德也라 제9) 九三曰 君子終日乾乾夕惕若厲无咎는 何謂也오 子曰 君子 進德修業하나니 忠信이 所以進德也오 修辭立其誠이 所以居業也라 知至至之라 可與幾也며 知終終之라 可與存義也니 是故로 居上位而不驕하며 在下位而不憂하나니 故로 乾乾하야 因其時而惕하면 雖危나 无咎矣리라 제10) 九四曰 或躍在淵无咎는 何謂也오 子曰 上下无常이 非爲邪也며 進退无恒이 非離群也라 君子進德修業은 欲及時也니 故로 无咎니라 제11) 九五曰 飛龍在天利見大人은 何謂也오 子曰 同聲相應하며 同氣相求하야 水流濕하며 火就燥하며 雲從龍하며 風從虎라 聖人이 作而萬物이 覩하나니 本乎天者는 親上하고 本乎地者는 親下하나니 則各從其類也니 | |
- 易經01乾卦 文言傳 - 1節 (郭明義的雲端講堂) https://youtu.be/LmOkuPcsuH0?list=PLbY_s_rcYW91kwLzoce0ExAUsICnpKep9 |
文言傳
(제2절) | p.342 上九曰 亢龍有悔는 何謂也오 子曰 貴而无位하며 高而无民하며 賢人이 在下位而无輔라 是以動而有悔也니라 |
- 易經01乾卦 文言傳 - 2節 (郭明義的雲端講堂) https://youtu.be/ANFyxeYPfJo?list=PLbY_s_rcYW91kwLzoce0ExAUsICnpKep9 | |
文言傳
제3절
(제1~7) | p.343 제1) 潛龍勿用은 下也오 제2) 見龍在田은 時舍也오 제3) 終日乾乾은 行事也오 제4) 或躍在淵은 自試也오 제5) 飛龍在天은 上治也오 제6) 亢龍有悔는 窮之災也오 제7) 乾元用九는 天下 治也라 |
- 易經01乾卦 文言傳 - 3節 (郭明義的雲端講堂) https://youtu.be/c62I1w13YGs?list=PLbY_s_rcYW91kwLzoce0ExAUsICnpKep9 | |
文言傳
제4절
(제1~7) | p.346 제1) 潛龍勿用은 陽在潛藏이오 제2) 見龍在田은 天下 文明이오 제3) 終日乾乾은 與時偕行이오 제4) 或躍在淵은 乾道 乃革이오 제5) 飛龍在天은 乃位乎天德이오 제6) 亢龍有悔는 與時偕極이오 제7) 乾元用九는 乃見天則이라 |
- 易經01乾卦 文言傳 - 4節 (郭明義的雲端講堂) https://youtu.be/Val_ngTMJLI?list=PLbY_s_rcYW91kwLzoce0ExAUsICnpKep9 | |
文言傳
제5절
(제1~6) | p.350 제1) 乾元者는 是以亨者也오 제2) 利貞者는 性情也라 제3) 乾始 能以美利로 利天下라 不言所利하니 大矣哉라 제4) 大哉라 乾乎여 剛健中正純粹 精也오 제5) 六爻發揮는 旁通情也오 제6) 時乘六龍하야 以御天也니 雲行雨施라 天下平也라 |
- 易經01乾卦 文言傳 - 5節 (郭明義的雲端講堂) https://youtu.be/Vuw6lBu0RXE?list=PLbY_s_rcYW91kwLzoce0ExAUsICnpKep9 | |
文言傳
제6절
(제1~7) | p.358 제1) 君子 以成德爲行하나니 日可見之 行也라 潛之爲言也는 隱而未見하며 行而未成이라 是以君子 不用也하나니라 제2) 君子 學以聚之하고 問以辨之하며 寬以居之하고 仁以行之하나니 易曰 見龍在田利見大人이라하니 君德也라 제3) 九三은 重剛而不中하야 上不在天하며 下不在田이라 故로 乾乾하야 因其時而惕하면 雖危나 无咎矣리라 제4) 九四는 重剛而不中하야 上不在天하며 下不在田하며 中不在人이라 故로 或之하니 或之者는 疑之也니 故로 无咎라 제5) 夫大人者는 與天地合其德하며 與日月合其明하며 與四時合其序하며 與鬼神合其吉凶하야 先天而天弗違하며 後天而奉天時하나니 天且不違온 而況於人乎며 況於鬼神乎여 제6) 亢之爲言也는 知進而不知退하며 知存而不知亡하며 知得而不知喪이니 제7) 其唯聖人乎아 知進退存亡而不失其正者 其唯聖人乎인저 |
- 易經01乾卦 文言傳 - 6節 (郭明義的雲端講堂) https://youtu.be/VYjkXnpodQE?list=PLbY_s_rcYW91kwLzoce0ExAUsICnpKep9 | |
*****(‘20.0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