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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운선사의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오늘은 야운선사의 자경문 중에 자기의 마음을 돌아보면서 자신을 경책하는 10가지의 문을 나눠서 이아기를 할까 합니다.
자경문은 수행인이 스스로를 일 깨우고 경계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일상 생활속에서 그렇게 어려운 문제들이 아니고 현상을 긍정적이고 즐겁고 힘차게 사는 것이 바로 내 마음을 바꾸는 것이고 수행이고 더 나아가서는 불교가 살아가야 될 길 입니다,. 왜! 불자분들이 불교tv 가 생기고 불교라디오도 생겨서 좋은 법문을 많이 듣습니다. 그런데 집에 가서 현실속에서 행동이 바꿨습니까.?
그 행동이 바뀌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불교는 퇴행하고 말것이고 나도 또 다시 육도윤회의 고통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자경문을 보면 처음에 주인공아 내 말을 들어라 이렇게 부터 시작하는 거예요. 그런데 왜 자기 이름을 부르면서 내 말을 들어라 고 말을 하느냐 하면 선사어록 이라든지 큰 스님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은 (공문) 불교를 공문이라고 합니다.
공의 이치를 가르치는 데가 불교니까 우리는 공하기 때문에 변하는 것이고 성장하는 것입니다. 공하지 않고 고정된 것이면 희망이 있습니까.? 살아 있는 것이 아니지요 내 성품이
공하기 때문에 내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변해 가는 겁니다.
일체유심조 입니다. 남들이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따라 변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이런 좋은 가르침속에서 수많은 스님들이나 휼륭한 거사님보살님들과 역사적으로 많은 분들이 도를 이루었는데 나는 어째 도를 이루지 못하고 윤회속에서 괴로움을 받아야 되느냐 이거요.
그래서 야운선사님께서 열가지 문을 제시한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제가 볼때는 이분은 자기가 윤회의 괴로움에 떨어저 있다는 것
(1)
을 인식을 했고 그 많은 분들이 도를 이루었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잘 살아야 된다, 이렇게 살아야 겠다고 하는 10가지문을 제시를 한 것입니다. 그레서 우리가 잘 살고 해탈의 길에 들어 가기 위해서는 이 열가지 문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그런데도 너무나 쉽게 현상적인 일이예요, 도는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현재는 나와 함께 있고 참 나가 바로 자성 그 자리고, 진리 그 자리이며 도의 자리인데 우리가 도와 같이 살면서도 도를 만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다면 이치를 몰라서 그런게 아니고 집착을 끊고 그렇게 부처님 처럼 살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부처님이 말씁 하셨잖습니까.? 수많은 경전을 외우는 것 보다 한 구절이라도 현실 세계에서 실천 하는 것이 더 위대 하다고 그랬습니다.
옜날에 백락천이라는 뛰어난 선비가 있었는데 그분이 시골 어느 마을로 요즘 같으면 태수 도지사 정도 될 것 입니다, 그 벼슬을 가지고 시골로 갔다가 그기서 자기가 워낙 학문이 깊고 불교에 대해서 많이 안다고 생각 하기 때문에 큰 스님이 계시면 한번 토론을 해봐야겠다, 요즘도 자기가 공부가 좀 되었다고 하는 사람들은 어디가서 자기를 내 세우기를 좋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도림스님 이라고 하는 유명한 스님이 계신다는 소리를 듣고 스님을 찾아 갑니다.
가니까 도림 스님은 항상 나무위에 걸터 앉아서 참선을 하시는 스님입니다. 그래서 그 모양이 새집 같다고 해서 도가스님 이라고 하는데 노스님이 나무위에 앉아 계시니까 백락천이라고 하는 선비가 보니까 매우 위험해 스님 위험 하니까 빨리 내려 오세요. 이러니까 내가 뭘 위험해 내가 볼때에는 당신이 더 위험해 당신은 말 한마디 잘못하면 황제한테 목이 달아 날 정도로 위험에 처했는데 나보다 더 위험 하다고 하니까. 들어보니 맞그든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도를 이룰수가 있습니까.?
하고 물어 봅니다,그러니까
스님께서 모든 악행은 멈추고 선행을 실천하라 그래야 내 마음이 청정 해 지는 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이렇게 칠불통경을 이야기를 하니까 씽긋이 웃는 거예요.
아니 그거는 3살짜리 어린 아이도 다 아는 건데 그런 것을 어찌 위대한 학자인 내 한테 이야기를 합니까? 하니까
스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3살짜리 아이도 다 알지마는 80십 먹은 어른들도 실천을 못하는 것이다. 노자는 현실속에서 악을 짓지 않고 선을 행하는 이것이야 말로 들으면 굉장히 쉽고 초등학교 교과책에도 나오지만 실질적으로 그걸 실천 하면서 사는 사람들은 너무나 드물다는 거예요,
그런데 여기에서는 실천하는 그 마음을 청정하는 것이라는 대목이 3번 들어 있잖아요.
그건 뭣이냐 하면 결국에는 선을 행하지만 집착을 버리라는 말인데 집착이 없어져야 내 마음이 청정 해 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금강경에 나오는 대상의 집착을 다 합치는 것입니다. 선행을 하지만 선행을 해서 복을 지어면 내가 나중에 그 과보들은 복덕을 많이 받지만 도를 이루고 해탈 하기 위해서는 선행을 하지만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도 없이 살아라, 그렇게 할 때 뭡니까. 마음이 청정 해져서 내가 해탈의 길로 나아 갈수 있다고 말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야운스님이 실질적으로 현실속에서 이러한 경들을 잘 못 한 것 같해요,
요즘 우리나라가 불교적으로 보면은 가장 큰 문제가 뭐냐 하면은 배운 것을 자기한테 적용을 시키면 수행이 되잖아요.
남한테 적용 시키면 비방이 되거든요, 왜 뭐 보시를 하고 상에 집착해서 보시를 하느냐 그러면 보시한 사람이 기분이 나쁠수가 있잖아요. 그러면 시비가 되는데 근데 자기는 보시할 때 상에 집착하는 그걸 못보는 거예요. 그러니까 질투가 나고 또 질투가 나는 것도 아상과 아집에 집착하는 것이지요. 내 보다 더 잘난 척 하고 내 보다 더 난채 하는게 보기가 싫은 것을 보니까 질투 하는 것이 잖아요.
(3)
거게 아집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집착을 내려 놓은 모습을 자기가 모범을 보여야 다른 사람들이 스스로 자기를 보고 따라 올수 있도록 해야지 지적을 하고 나무라면 따라 오지 않는다. .
그래서 작은 것도 소홀히 하지 마라 실천이 이론보다 더 중요 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열가지 문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고 우리가 평소에 살아가는 작은 문제들을 실천 하면서 바르게 살아가는 내가 나아가고자 하는 생각으로 방향은 뭡니까. 행복의 길이고 물질적이나 명예를 얻는 것이 아니고 내가 있는 그대로 보일 때 모든 해결책이 나옵니다. 그걸 알고 더 겸손 해지고 나도 틀릴수 있구나 이걸 알면 자기만 고집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나는 올아 하고 고정대 버리면 그 사람은 심신이 공한 것이 아니고 원래는 공한데
두껴운 껍질이 생겨서 아무것도 들어오지 못 하는 거예요.
그런데 부처님 말씀도 들어오고 남의 말도 들어오고 해서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두고 모든 것을 받아 들여야 내가 새로운 성장을 하고 변화가 일어날 텐데 딱딱하게 닫아 버리면 어떻게 됩니까.?
나는 올타 남의 말도 안듣고 이러면 성장이 끝나 버려요.
자! 그러면 부드러운 옷과 좋은 음식에 집착을 하고 좋은 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려고 집착을 하게 된다면 이게 쌀 한톨이 내입에 들어올 때 까지 그 과정을 생각 해 보면은 천지의 모든 기운이 다 들어 있어요. 쌀 한톨이 생산 되기 위해서는 햇빛이 필요하고, 물도 필요하고, 그름도 필요 하고, 자연적인 모든 조건 이런 것이 맞아야 되지만 농부가 농사를 짖지 않으면 안되 잖아요,
옛날에는 소로 지었지만 요즘은 기계로 하는데 농약도 엄청 많이 뿌리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쌀 한톨을 생산하기 위해서 수십만마리의 벌레와 생명들을 죽이고 그 쌀 한톨이 나에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러고 또 많은 사람들이 땀을 흘려야 되고 운반 해야되고 또 밥을 지어야 되고 엄청 많은 노력의 대과로 밥 한 그릇 먹는 거예요.
그러면 그 밥을 먹을 때 내가 이밥 한 그릇을 먹는 것에 진짜로 감사하게 생각을 해야 되고, 그리고 이 밥이 내 입에 들어 올 때 까지 고생한 모든 중생들에게 감사 하다는 인사를 하고 먹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불자들은 이 원리를 아신다면 밥을 먹기전에 합장하여 공양게를 외우고 먹는 것이지만 공양게는 외우지 못하드라도 합장하여 감사 하다는 인사를 올리고 먹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부처님께서 말씀 하시고 계십니다.
그렇지 않고 음식을 먹어면서 음식투정한다 그리고 소홀히 한다.
이러면은 업이 불어 난다고 합니다.
※ 그래서 불교에서는 음식을 먹기전에 합장을 합니다. ※
감사 할 줄 모르는 사람은 공덕을 까먹어 버립니다. 감사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있으면 불만이 없어지고. 번뇌 망상이 없어 지기 때문에 그래서 행복해 지는 겁니다.,
내가 오늘 우리 남편이 돈을 벌어 와서 너무 감사해 지나가는 사람은 많이 있어도 나에게
1원짜리 동전 하나 주지 않는데 우리 남편이 너무 감사해 이런 생각을 하면 모든 괴로움을 다 견디고 좋아 보이겠지요.
아니면!
에이 누구집의 남편은 돈을 무척 많이 벌어 오는데 우리 남편은 지꼴이 만큼 벌어 온다는 생각을 하고 무시 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러면 오히려 자기가 불행한거여. 또 남편을 깔보면 싸움이 일어나고 싸움이 일어나면 시끄럽고 불행 해 지는 거예요,
아무리 작은 돈이라도 감사 하다는 마음을 가지면 자기 나름대로는 한달 동안 애써 가족을 위해서 일한것인데 그걸 감사하게 생각을 안한다 !!! 그러면 문제가 많이 있지요.
여자와 남자를 반대로 생각 해 보세요. 남자가 돈을 벌어 오는데 집구석에 없고 이디로 쏘다니냐고 한다면 여자들도 기분이 좋겠습니까?
남자나 여자나 마음들은 똑 같습니다.
감사한 마음을 안다면 행복해 지고 망상이 줄어 듭니다.
그래서 밥먹을 때도 감사 하고 아침에 일어나서도 햇빛을 보고도 감사하고 내 가족과 자식이 있어서 감사하고 그래서 법화경에 보면 모든 사람들을 부처님 같이 보면 그 사람이 제일 먼저 부처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법화경에 상불경보살)이라는 보살이 있는데
상불경보살은 모든 보살님들과 모든 사람들을 만나면 합장을 하고 당신을 존경합니다.
당신은 언젠가는 보살도를 닦아서 부처가 될것입니다. 당신을 존경합니다.
하고 절에서나 길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그러고 있으니 마음이 삐뚤어진 사람들은 돌을 던지고 막대기로 때리고 하니 저 멀리 도망가서도 당신을 존경 합니다. 언젠가는 부처가 될 것 입니다 이렇게 하는 거에요. 그래서 이름을 상불경보살 이라고 지어준 것입니다.
항상 남을 경멸하지 않고, 무시하지 않고, 존경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남을 무시하지 않고 존경을 했기 때문에 상불경보살이 제일 먼저 부처가 됩니다.
그때 상불경보살을 경멸하고 욕하고 한 과보로 제일늦게 마음을 열어서 상불경보살이 부처가 된 후에 그들이 제자가 되어서 들어 왔다고 합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문제에 답이 나와 있지요. 무학대사께서는 사물을 볼 때 부처의 눈에는 부처로 보이고 돼지의 눈에는 돼자로만 보인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내가 어떤 사람을 보기 싫어하고 미워한다,
그러면 그것을 내 마음에서 만들어 내는 모습입니까.? 진짜 모습입니까.?
내마음의 모습이 잖아요, 결국은 내가 나를 욕하는 것이고 내가 천하게 되는 거예요. 그
래서 항상 남을 존경하라 왜! 원래 존경 받게 되어 있는데 세상이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왜! 다 부처님인데 잠시 미혹에 빠저 중생 노릇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초발심자경문은 화엄경까지.... 화엄경은 불교경전중에서 최고의 경전이라고 합니다,
학교를 말하자면 대학원 입니다.
초발심자경문을 제일 잘 지키신분이 누구이신지 아십니까.?....... 부처님이시 잖아요.
화엄경까지 공부를 하고 난뒤에 또 다시 초발심자경문을 공부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무슨 말씀인고 하니 최고의 경전까지 공부를 하게 되면 아상이 생기니까 다시
처음 발심할 때 그 마음을 잊지 말라고 하는 마음에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 가란 뜻이 담겨 있습니다. 벼는 익으면 고개를 숙이지만 사람은 욕심도 많고 질투도 많고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많아서 옛날을 잊고 살기 때문에 초발심자경문을 다시 배우고 익혀서 자기 자신을 다스려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불자라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느냐면 실천하는 내용이 그 속에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자! 2번째 문입니다.
자기의 재물을 아끼지 말고,남의 물건을 탐하지마라,
근데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재물은 진짜로 내겁니까.?
인연따라 들어 왔다가 인연따라 소멸되는 그런 것입니까.?
원래 내것이 아니기 때문에 남들에게 베풀어라 실지로 부처님의 말씀 인과법에 따르면
남들에게 베풀어서 그 복을 지어면 그 복이 나중에 내한테 돌아오죠.
마음다스리는 것도 남에게 베풀면 탐욕이라든지 분노가 사라지는 거예요.
베풀었다는 생각도 없어지면 그게 무주상보시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도 하고 연결되는 것입니다.
☛도를 이루는 것이 쉽지요.☚
욕심이 너무 지나치면 괴로움이 꼭 따라 옵니다. 욕심과 고는 한몸 이니까요.
욕심을 부려서 그것을 얻을 수는 있지만 얻는 것은 하나인데 그 욕심으로 인해서 잃는 것은 너무나 많습니다. 내것이 아닌데 하는 생각을 하지못하면 많은 재물과 좋은 인연들이 자기의 주위에서 멀리 떠나 버립니다. 아무리 재물이 많은 사람도 함께할 진정한 사람이 없다면 그 사람은 이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사람이라고 부처님께서나 선지식들이 누차 말씀을 하시고 있습니다.
불자라면 더 더욱 인과응보를 알아야 진실한 부처님의 제자라고 하셨습니다.
(삼일불심은 천년도요, 백년산물은 일도신이라)
삼일동안 닦은 마음은 천년의 보배고, 백년동안 탐낸 물건은 하루아침에 티끌이다.
우리가 죽을 때 까지의 수명을 백년으로 잡고 백년동안 엄청나게 욕심을 내서 재산을 불렸다 하드라도 죽는날 하루 아침에 자기 것이 됩니까?
호주머니도 없는데 가지고 가지 못하지요,
결국은 한줌의 티끌로 돌아 간다는 내용입니다.
※꿈이라는 것을 알고 집착과 욕심애서 벗어 나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세상에 모든 것은 내것 이라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제가 만들어서 하는 말은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경전에서 보고 저는 부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사람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초발심으로 돌아 가서 오늘 제가 말씀드린 초발심자경문에 대하여 대충 보시지 말고 집에 가셔서 잘 인식 하셔서 진정한 불자의 모습으로 변하신다면 지도법사로서 기쁘게 생각합니다.
오늘은 2024년 정월달이라 우리함께 초발심으로 돌아 가자는 뜻으로 법문 내용을 잡았습니다. 감사합니다.
2024년 1월 3일 (음) 11월 22일 (수) 오후 2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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