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스겔 성전은 환상으로 보았다.
우리가 사로잡힌 지 스물다섯째 해, 성이 함락된 후 열넷째 해 첫째 달 열째 날에 곧 그 날에 여호와의 권능이 내게 임하여 나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시되 하나님의 이상 중에 나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에 이르러 나를 매우 높은 산 위에 내려놓으시는데 거기에서 남으로 향하여 성읍 형상 같은 것이 있더라(겔 40:1,2)
에스겔이 성전에 대한 환상을 본 때는 2차 포로로 잡혀간 지 25년, 성이 함락된 지 14년 1월 10일이었다. 이 때가 주전 573년경으로, 18회 희년을 10년 앞둔 해다. 1월 10일은 유월절을 준비하기 위하여 양을 잡는 날이다(출 12:3). 유월절 준비로 양을 잡는 것은 예수님이 어린 양으로 십자가에서 희생될 것을 상징(예표)하는 제사 의식이다.
그러나 에스겔이 본 성전은 이스라엘이 곡의 전투로 승리하여 땅을 정결하게 하고(겔 39:16), 그 정결한 땅 높은 곳에 세워질 성전을 말한다. 그래서 아직은 곡의 전투가 남아 있어서 성전이 세워질 수가 없다. 그리고 곡의 전투가 끝이 나고 성전이 세워질 수가 있어도, 그 성전은 건물을 말한다고 보기가 어렵다. 그래서 대다수 사람은 에스겔 성전은 미래에 있을 교회를 뜻한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 전통 유대인들은 에스겔 성전을 때가 되면 건축하려고, 설계까지 해 두었다는 말도 있다. 세대주의자들은 에스겔 성전을 제3성전이라고 하면서 이스라엘이 이 성전을 지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성전을 보여주기만 하고, 지어라는 말은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필자는 에스겔 성전의 실체에 대하여 의문이 생긴다. ㉠이 성전의 장소가 지상인가, 천상인가 하는 것이다. 그다음은 성전의 설계자는 하나님이지만, ㉡이 성전의 건축자가 솔로몬 성전처럼 사람이 짓는가, 노동이 들어가지 않는 천연(신공) 성전인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성전은 건물이 있는 유형체인가, 땅 그 자체를 성전이라고 하는가에 대한 것이다.
필자는 평소에도 성경이 말하는 생활경제나 희년법을 중심에 두고 성경을 보거나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신앙에 관련된 제사법이나 성전에 관한 것은 관심과 이해가 부족하다. ㉠, ㉡, ㉢ 세 가지 의문에 대하여 필자는 아직 어느 것도 확실하지는 않다.
에스겔이 본 성전의 특징(솔로몬 성전과 에스겔 성전의 비교)
에스겔 성전에 대하여 지금까지 연구자들에 의해 알려진 것을 우선하여 몇 가지를 살펴보자. 에스겔 성전도 솔로몬 성전과 비교하면 그 구조나 규모가 비슷한 점이 상당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에스겔 성전은 솔로몬 성전과 비교하여 없는 것이 있다. 에스겔 성전의 특징은 솔로몬 성전에 비하여 없는 것을 찾으면, 그것이 성전의 특징이 된다. 이를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① 에스겔 성전은 성전에 있어야 할 휘장이 없다. 휘장은 성전에서 성소와 지성소 사이를 가리운 막이다(출 26:33). 이 휘장이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희생될 때 위에서 아래로 찢어져 버렸다(마 27:51). 위에서 아래로 찢어진 것은 사람의 찢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찢은 것이다. 그래서 지성소는 1년에 한 번 대제사장만이 들어가든 장소인데(히 9:3 ) 휘장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막힌 담이 헐려서 누구나 하나님을 만나 볼 수가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에스겔 성전은 신분의 구별 없이 누구나 하나님을 직접 만날 수가 있다(히 10:19). 이것은 신약시대나 가능한 일이다.
② 솔로몬 성전, 특히 헤롯 성전은 3개의 뜰이 있어서 바깥쪽부터 여자의 뜰, 남자의 뜰, 제사장의 뜰이 있고 성전 담장 넘어는 이방인의 뜰이 있다. 그래서 성전에 들어가려면 이방인과 유대인, 남성과 여성, 그리고 제사장 등으로 신분의 차별이 있었다. 그러나 에스겔 성전은 이런 신분의 차별이 사라졌다. 에스겔 성전은 바깥 뜰과 안뜰로 구분하여 성전의 위치와 역할만 구분한다. 그래서 에스겔 성전은 이방인도 몸과 마음에 할례를 받으면, 성전에 들어갈 수가 있게 되었다(겔 44:9).
참고로 성전 바깥 이방인의 뜰은 제물 매매와 환전을 할 수 있게 허용된 장소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곳에서 장사하는 환전상을 내어쫓았다. 그들이 제사장과 결탁하여 폭리를 취했기 때문이다.
③ 에스겔 성전은 언약궤가 없다. 언약궤는 시내산에서 받은 십계명 돌비, 모세가 광야에서 백성들을 인도할 때 사용한 싹이 난 지팡이, 광야에서 40년간 먹고 살았던 만나가 담긴 항아리가 들어있다. 그래서 언약궤는 하나님 자신의 실체를 상징한다. 그런데 그 언약궤가 없다. 십계명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승화되었고, 백성을 인도하는 지팡이는 신약시대에 예수 그리스도로 대체가 되었다.
④ 에스겔 성전에는 촛대, 분향단, 떡상이 없다. 신약에서는 예수님 몸이 산 떡이시다(요 6:35). 에스겔 성전은 촛대와 분향단이 없어도 여호와의 영광이 전에 가득하며 빛이 난다(겔 43:2,4). 번제단의 재료는 나무인데 나무 위에는 제물을 태울 수가 없다(겔 41:22).
⑤ 에스겔 성전에는 그룹 천사가 없다. 솔로몬 성전은 두 날개를 가진 그룹 천사가 있어서 언약궤를 지키고 있다(왕상 6:27,28). 에스겔 성전은 언약궤가 없으니 이를 지킬 그룹 천사가 필요 없다.
⑥ 에스겔 성전은 제사장이 손 씻을 때 사용하는 물두멍이 없다. 물두멍은 제사장이 성소에 들어가기 전에 손발을 씻거나(출 30:18~21) 제물을 씻는 곳이다(대하 4:6). 그런데 물두멍이 없는 이유가 분명하지 않다. 성전에는 생수가 계속 흘러내리고 있으므로(겔 47:1) 제물을 씻을 물두멍을 따로 둘 필요도 없다고 한다. 아니면 제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이미 정결하게 되었기에 씻을 필요가 없다고 본다. 그러나 필자는 물두멍이 없고, 제물도 씻을 필요가 없다면, 제사 자체가 있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을 가진다.
⑦ 에스겔 성전은 성전 건축물에 필요한 건축 재료가 무엇인지 보이지가 않는다. 에스겔 성전은 솔로몬 성전처럼 화려하지 않다. 솔로몬 성전처럼 금을 칠하고 은과 구리로 장식한 곳도 없다. 혹자는 에스겔 성전의 건축 재료가 나무라고 하지만, 필자가 보기로는 건축 재료인 나무나 목재가 보이지 않는다. 솔로몬 성전은 구하기 힘든 백향목을 레바논에서 수입하여 바다와 육로를 통하여 힘들게 운반하여 지었다. 벽은 석재다. 그러나 에스겔 성전은 성전 바닥에 놓인 박석이 석재이고, 벽과 그룹에 종려나무를 새겨넣은 곳이 여러 곳 있을 뿐이다(겔 40:16,22,26, 41:26).
⑧ 에스겔 성전의 척량(측량)에는 높이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에스겔 성전은 척량으로 구조를 보여주고 있는데 그 척량의 대상은 길이와 너비다. 높이가 없다. 그러나 솔로몬 성전은 처음부터 길이와 너비, 그리고 높이를 알려주고 있다(왕상 6:2). 물론 에스겔 성전에서도 담과 지대(基礎席, foundation), 제단, 제단 등의 구축물 또는 기물들은 높이를 측량하여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성전의 높이는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이 특이하다.
성전에 부속된 각종 방은 층마다 30개씩인데, 3층으로 되어있어서 건물이 높이를 가진다. 또 계단은 처음 7계단, 그다음 8계단, 마지막은 10계단, 합이 25계단으로 높이가 있다. 그러나 계단은 건물이 아닌 마당처럼 평면 축조로 되어있어도, 높은 곳이면 언덕길을 오르는 것처럼 계단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필자는 혹시 성소나 지성소가 천장이 없고 하늘로 열려 있는 평면 성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성전이 없던 시대에 노아의 제단은 건물이 아니다. 우리나라 고유의 제단인 고인돌, 천제단, 참성단도 건물이 아닌 야외 구조물이 제단 역활을 하였다. 이런 생각은 필자의 상상일 뿐이므로 성전의 높이가 척량되지 않은 이유를 더 알아봐야 할 것이다.
⑨ 에스겔 성전은 성전을 지어라는 말이 없다. 솔로몬 성전은 다윗이 성전을 짓겠다는 염원이 있었고, 이를 본 하나님이 아들 솔로몬에게 짓도록 허용을 했었다. 그러나 에스겔 성전은 하나님이 성전을 보여주기만 하고, 그 성전을 실제로 지어라는 말은 하지 않으셨다. 이 점에서 실제로 있었던 모세의 성막, 솔로몬 성전, 스룹바벨 성전과는 다르다.
①~⑦ 또는 ⑧과 ⑨까지의 내용을 종합할 때, 에스겔 성전은 구약시대의 성전보다는 신약시대에 예배에 필요한 교회의 기능을 많이 가졌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에스겔 성전을 신약시대의 교회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교회도 건물은 아니기에 의문은 그대로 남는다. 그런데 에스겔 성전은 보여주는 모습이 성전의 구조이며, 측량의 대상은 분명히 건물 같은 외형을 갖추고 있다.
솔로몬 성전은 직사각형이지만, 에스겔 성전은 정사각형으로 안정적인 모습이다. 에스겔 성전은 대제사장이 없어서 속죄일 제사 의식이 필요 없다. 속죄일 속량의 제사 의식이 없다는 것은 속죄 의식 후에 있을 희년 선포나 무르기의 경제 의식도 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곧 에스겔 성전은 희년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에스겔 성전은 측량하는 세밀함을 볼 때 제사의 의미보다 위치를 나타내는 방향과 각각의 장소에 대한 경계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에스겔 성전은 솔로몬 성전처럼 왕궁이 곁에 없다. 에스겔 성전은 왕에게 분배된 땅이 성전 부지와 따로 있고, 성전 부지의 양쪽에서부터 동서로 국경까지, 12지파 토지의 중심 지역에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에스겔 성전은 외형이 건물처럼 형체를 갖추고, 제사도 드리게 되어있지만, 그 성전에서 행하는 제사나 기능은 교회의 모습을 닮은 중간(또는 복합)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내용적으로 볼 때, 에스겔 성전은 구약 성전과 신약 교회 간에 연속성도 있고, 불연속성도 있는 양면성을 가진다.
에스겔 성전의 지리적 위치는 희년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보여주신 성전은 이 세상에서 지은 적이 없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런 가시적 성전이 지어질 것으로 보기도 어렵다. 그런데도 에스겔 성전이 보여주는 유형적 모습과 영적인 내용은 구속사에서 큰 의미가 있다.
하나님이 보여주신 에스겔 성전은 실제로 건축된 솔로몬 성전보다 더 상세한 설계와 구조로 되어있고, 장엄한 모양새다. 이 말은 에스겔 성전은 환상으로 보여주지만, 구체적이고 상세한 모양을 갖추고 있다. 모형이 실제적인 성전과 다름이 없고, 심오한 의미가 들어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에스겔 성전은 희년의 내용적 의미를 많이 담고 있다. 이것이 에스겔 성전이 가진 가장 큰 특징이다.
너희는 제비 뽑아 기업으로 삼을 때에 한 구역을 거룩한 땅으로 삼아 여호와께 예물로 드릴지니라 ... 그중에 성소에 속할 땅은 길이가 오백 척이요 너비가 오백 척이니 네모가 반듯하며 그 외에 사방 쉰 척으로 전원이 되게 하되(겔 45:1,2)
먼저 에스겔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분배될 토지와 직접 관련되어 있다. 희년은 원래 7안식년 다음 해 오는 것으로 토지가 백성들 모두에게 공평하게 분배되어 있고, 각자가 분배된 토지에서 자유로운 경제활동이 보장될 때를 말한다(레 25:8~10). 그런데 본문은 이스라엘이 회복되어 백성들에게 토지를 분배하는 내용이다. 이런 토지분배의 경제적 상태가 희년이다. 그런데 토지분배에서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은 거룩한 땅과 거룩한 땅의 정중앙에 들어설 성소의 위치다. 이 거룩한 땅에서 양쪽 옆은 왕의 토지가 있다.
거룩한 땅은 12지파에게 분배하게 될 토지의 사이와 동서국경 정중앙에 자리를 잡고 있다. 그 거룩한 땅과 정중앙에 성소를 두고, 이스라엘 12지파에게 토지를 분배하게 된다. 이것은 에스겔 성전이 거룩한 땅과 이스라엘 12지파의 땅과 연합(연결)하여 희년의 상태가 된 것을 뜻하고 있다. 그러므로 에스겔 성전은 토지분배가 끝이 나면 희년이 완성된 상태가 된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토지분배에서 다시 언급하겠다.
에스겔 성전의 물리적 구조와 희년
에스겔 성전은 공간 면적이 정사각형 구조다. 솔로몬 성전은 직사각형 구조다. 에스겔 성전에서 성소에 속하는 땅은 길이와 너비가 각각 500척으로 네모반듯하다(겔 45:2). 하나님께 예물로 드리는 땅도 길이와 너비가 각각 25,000척을 네모반듯하다(겔 48:20). 성전 안에 있는 지성소의 크기도 길이와 너비가 각각 20척으로 네모반듯하다.
에스겔 성전의 구조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아래는 <박윤식, 여호와 삼마 에스겔 성전, 구속사 시리즈 11권 상, 휘선, 2020, 433쪽.)의 내용을 참고하여 필자가 요약한 것이다. 성전 척량에서 한 척은 53.2cm이다(겔 40:5, 53.2cm = 1규빗 45.6cm + 손바닥 가로 길이 7.6cm).
① 제사장과 레위인의 분깃은 각각 길이가 25,000척 너비가 10,000척이다(겔 45:1,3,5).
② 성읍의 기지는 길이가 25,000척, 너비가 5,000척이다(겔 45:15)
③ 성읍의 길이는 동서남북 사면이 각각 4,500척, 주위 뜰이 각각 250척이다(겔 48:17).
④ 성전의 외곽 담은 500장대(3,000척)이다. 사면 담은 500척, 주위 뜰은 50척이다.
⑤ 성전 문간의 크기가 길이 50척, 폭이 25척(겔 40:13,21,25,29,33,36), 바깥뜰 문간 너비, 안뜰 문간 너비가 각각 50척, 번제단 안뜰의 장이 100척이다.
⑥ 성전의 길이가 100척(겔 41:13,15), 거룩한 방 복도의 길이가 100척, 두 방의 거리가 100척, 너비가 50척이다.
⑦ 성전에 올라가는 계단의 수는 25개다. 바깥들 계단은 7개(겔 40:22,26), 안뜰 문간은 8개(겔 40:31, 34,37), 성전으로 들어가는 계단은 10계단(겔 40:49), 합이 25계단이다.
이에 대하여 박윤식 목사는 에스겔 성전의 25라는 수는 숫자 10과 7로 이루어진 것이며, 25의 배수인 50은 희년과 관련된 숫자라고 한다. 그분의 견해에 다르면 에스겔 성전에서 50은 10번 사용되었으며(겔 40:15,21,25,29,33,36,42:2,7,8,45:2), 25는 7번(겔 40:13,21,25,29,30,33,36) 사용되었고, 둘을 합치면 성경에서 승리의 수인 17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희년은 7년마다 돌아오는 안식년을 7번 지난 다음 해 50년에 돌아오는 해다. 성경에서 7은 완전수로 안식일(7일), 안식년(7년), 희년(7안식년 다음 해)을 나타내며, 10은 그 완전수의 내용적 충족을 뜻한다. 그러므로 에스겔 성전은 시간의 완성을 나타내는 숫자 7과 49, 그리고 내용적인 충족을 나타내는 10과 50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구조다. 여기에 승리를 의미하는 17의 수도 들어있다.
에스겔 성전과 희년의 영적, 구속사적 의미
에스겔이 성전에 대한 환상은 이스라엘의 회복과 함께 보여준 것이다. 곡의 전투로 이스라엘을 침략한 이방족이 제거되고, 땅이 정결하게 된 후 세워지는 성전이다. 에스겔 성전은 거룩한 땅과 그 땅 정중앙에 자리 잡은 성전을 보여주며, 성전을 중심으로 지켜야 할 각종 규례를 알려주고 있다.
성전이 지어지면 구약의 제사, 제물, 안식일, 절기 등의 레위기 제사 규례와 생활 규례가 거의 모두 지키고, 회복된다. 특히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겼던 구약의 율례와 법도를 알고 지키라고 한다(겔 43:11). 그러나 제단이 나무로 만들어져서 제물을 불에 태우는 제사는 드릴 수가 없을 것이다. 희년법은 왕도 지켜야 한다(겔 46:17). 사독 자손 레위 제사장들은 의복을 갖추어 입고,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고 하였다.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분해야 하는 것은 설사 레위기를 다시 읽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이런 구약시대의 법을 실제로 행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성전은 구약시대에 지은 것이 아니다. 신약시대는 구약 성전에서 필요한 성전이나 제도들이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대체되거나 폐지되었기 때문이다(히 7:18,27).
그러므로 에스겔 성전에서 필요한 구약시대의 제사, 안식제도, 절기 등의 준수는 그 의미를 복음적으로, 내용적으로 계승해야 할 것이다. 구약시대에 필요했던 제사 의식이나 생활 규례를 그 외형까지 문자적으로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에스겔 성전은 40장~46장은 거룩한 땅과 그 땅에 들어설 성전, 그리고 각종 규례를 지키도록 하였다. 그러나 47장은 하나님이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생수를 에스겔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 생수가 처음은 성전 문지방에서 흘러나오다가 동서남북 사방을 돌아서 흘러내린다. 그렇게 생수를 흘러서 백성들이 미래의 소망을 보게 한 후 12지파에게 생업의 터전인 토지를 분배하게 된다. 백성들은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생수를 마셔야 한다. 생수와 토지분배에 대한 것은 다음 글로 미룬다.
구속사로 본 에스겔 성전의 생수와 하나님의 나라
에덴동산 | 에스겔 성전 | 새 예루살렘 | |
생명수 | 강이 에덴에서 흘러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네 근원이 되었으니(창2:10) |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겔 47:1~5) |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계 22:1,2a) |
생명 나무 |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창 2:9) |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겔 47:12) |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계 22:2b) |
때 | 처음 나라(마귀 유혹 전) | 지상 천국(마귀 투옥) | 천상 천국(마귀 심판) |
** 생수에 대한 내용은 다음에 설명함
에스겔 성전의 실체, 다시 한번
에스겔 성전이 하늘에 있는 영적 성전의 모형인지, 이스라엘 땅에 실제로 들어설 건물 성전인지가 궁금하다. 그리고 성전이 없는 신약시대를 가정하더라도 교회를 말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왜냐하면, 교회는 건물이 아니고 예수님의 몸이며(엡 1:23), 성도들의 모임을 말하기 때문이다. 신약시대는 성전도 예수님 자신이며, 성도들이 모두 성전이다(고전 6:19). 그런데 에스겔 성전은 건물로 보이는 구체적인 유형체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에스겔 성전은 척량에서 높이를 보여주지 않는다. 그리고 이 성전은 제사보다 성전의 위치나 경계, 그리고 크기를 땅의 면적을 척량하듯이 상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은 에스겔 성전을 보여주기만 하고 그 성전을 지으라고 하지는 않으셨다. 하나님은 성막을 지으라고 명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전 건축에 관하여 처음부터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신다(삼하 7:7). 다윗이 지으려는 성전 건축에 대하여 피를 많이 흘렸으니 아들 솔로몬이 짓도록 연기시켰다. 하나님은 다윗의 염원이었던 성전 건축을 솔로몬에게 허락 하셨다(왕상 8:20).
그때도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여호와의 계명 준수를 당부하고 있다. 계명을 어기면 성전을 던져버리고, 속담거리로 만들어 버릴 것이라고 경고했다(왕상 9:7). 하나님은 백성들이 눈에 보이는 건물이라도 있어야 신앙적 구심점을 유지할 수 있기에 성전을 허락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사람이 지은 헤롯 성전은 헐라고 하신다(요 2:19). 그래서 사흘 만에 부활하여 자신이 성전이심을 보여주셨다(요 2:21).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의 타락한 모습을 보며 우셨던 적이 있고, 그 성전은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않고 무너질 것이라고 했다. 이 예언은 주후 70년 로마 군병들에 의해서 실제로 그렇게 파괴되었다.
그러므로 필자는 에스겔 성전이 하나님이 지은 땅, 그 자체를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하여 사람이 짓는 성전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들이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느냐?(사 66:1)”라고 했다. 초대교회 스데반 집사도 같은 말을 인용했다(행 49:50). 그러므로 성전은 사람이 지은 것이 아닌 하나님이 지으신 하늘과 땅이 참 성전인 것이다.
에스겔 성전과 새 예루살렘 성
에스겔 성전은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짓지를 못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희생 제사로 구약의 성전과 제사 제도를 모두 폐하셨다. 에스겔 성전은 계시록에서 말하는 성전과도 다르다. 그런데 예언은 어떤 경우이든, 언제인가 성취가 되고 있다. 그러므로 아직 성취되지 않은 에스겔 성전은 신약시대에 와서 어떻게 성취될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하여 계시록은 새 예루살렘 성(전)을 보여주고 있다. 이 성은 네모반듯하며, 생긴 모습이 에스겔 성전과 닮아있다. 그러나 그 성은 크기가 12,000 스타디온(한 면이 길이가 2400 km )이나 되어 에스겔 성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크다(계 21:16). 새 예루살렘 성은 벽옥과 보석으로 꾸며져 있어 에스겔 성전과는 다르다. 더구나 새 예루살렘 성은 성전이 보이지 않는다. 하나님과 어린 양이 성전이시다(계 21:22).
그러므로 에스겔 정전은 그 실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여주는 에스겔 성전은, 백성들의 잘못된 신앙이 온전한 회개로 인하여 회복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백성들은 에스겔 성전을 중심에 두고, 각자가 분배받은 토지를 경작하며, 주신 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천지창조부터 지금까지 원하시고 찾으시는 땅에 대한 청지기 직분의 회복이다(창 1:26~28).
그리고 에스겔 성전은 보여주는 모습이 모두가 아니다. 에스겔 성전은 하나님의 전이 성막에서 시작하여 솔로몬 성전, 스룹바벨 성전, 헤롯 성전을 거쳐서 신약시대 교회를 지나 계시록이 말하는 마지막 성전, 새 예루살렘 성까지 보여주는 계시적의 의미를 가진다. 다시 말하지만 에스겔 성전은 그 실체보다 그 성전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시대적 의미가 더 중요하다. 어쩌면 곡과의 전투 이후 한 시대를 크게 바꾸는 구속사의 대변혁을 의미할 수도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바라는 본토 회복은 신앙 문제인 성전부터 먼저 보여주며, 땅 문제도 온전하게 해결하려고 하신다.
** 다음은 에스겔 성전을 중심으로 이스라엘 영토가 12지파에게 할당되는 토지분배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 에스겔 성전 측량에 높이를 측량하지 않은 것, 성전 건축에 필요한 재료가 없는 것 등에 대하여 의견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