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노루의 댄스판타지소설]
광무(狂舞)(43회)
21.일장춘몽 광무(狂舞)(2)
장승백이 스타트 지점에서 정자세를 잡고 오른발에 체중을 싣고 왼팔을 들어 올렸다. 동시에 그녀는 자석에 이끌리는 듯이 그에게로 빨려 들어갔다. 그가 그녀의 오른손을 살포시 잡고 살짝 끌어 당겨 그의 상체에 그녀의 명치를 컨택 시켰다.
언제나처럼 그의 왼손 엄지손가락과 그녀의 오른쪽 엄지손가락이 나란히 가지런하게 정렬되게 가볍게 쥐었다. 그는 남여 파트너의 홀드에서 이 엄지손가락 그립 법을 매우 중요시 했다. 서로 크로스로 맞잡는 건 용납을 하지 않았다. 보기에도 촌스럽고 그렇게 잡으면 한쪽에서 분명히 다른 한쪽 손을 꺾거나 비튼다고 질색을 했다. 또한 그렇게 하는 건 예전의 구식 방법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픽쳐라인 라인피겨에서 사진이라도 찍히면 보기도 아름답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녀도 그건 맞는 이론이라고 인정했다.
그의 오른쪽 손바닥이 텐션감 있게 가볍고 부드럽게 그녀의 왼쪽 견갑골을 감싸 안았다. 마지막으로 그녀가 왼손으로 그의 오른팔 삼각근육 홈에 그녀의 왼손 엄지와 검지 사이의 V홈을 살며시 끼우듯이 올려놓았다. 동시에 그는 카운터를 하며 스타트를 위한 반동을 시작했다. 거기까지 카운트는 [완 투 쓰리, 투 투 쓰리]였다. 이어서 그가 나머지 [쓰리 투 쓰리, 포 투 쓰리]를 세고서 예비보에 이어서 곧바로 내추럴턴을 시도했다.
그의 시원한 스윙에 쭉 밀어 올려서 무지개처럼 아름다운 곡선 스웨이가 이루어졌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상체는 낭창거리는 수양버들 가지처럼 휘청 휘어져 림백을 이루며 치고 들어오는 그의 기다란 보폭을 맞받아 품었다. 바로 이것이었다. 그들은 이 느낌을 서로 원했다. 이 느낌을 잊지 못해서 그녀는 그를 잊을 수 없었다.
그 또한 하늘나라 저승에서 조차 이 맛을 못 잊어서 그녀를 찾아 온 것이었다. 이것 하나 만들려고 그들은 수많은 돈과 노력과 시간을 투자했다. 영국으로 유학을 가고 국내의 유수한 사부님을 찾아서 수련과 훈련을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도 그들은 그 오묘한 수수께끼를 풀지 못했고 목마름을 해결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렇지만 그들 둘만의 노력과 그 결과는 지금 정도라도 시원스런 내추럴턴을 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어서 그들의 작품 루틴을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연결해 갔다. 스타트한 짧은 가로 면에서 곧바로 런닝스핀턴 샤세롤 스핀턴오버턴에 이어서 턴닝록 투 라이트 그리고 런닝위브와 사이드 크로스에 이어서 곧장 폴어웨이 슬립피봇과 텔레마크 텔레스핀으로 회오리를 감아 쳤다.
회오리바람을 일으킨 후에 찾아온 고요함, 그 속에서 피어나는 남여 인간의 결합으로 만들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꽃을 피워 냈다. 느리게 음악을 몇 소절 끌면서 왈츠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드로우어웨이 오버스웨이!
두 마리의 홍학이 호수 위에서 활개를 친다. 커다랗고 화려한 날갯죽지를 활짝 펴고서 너울너울. 주위의 어지간한 잡새들은 얼씬하기 조차 주눅이 든다. 넓은 호수 위를 마음껏 휘젓다가 어느 순간 한 쪽이 다른 쪽을 감싸 안으며 대단원의 절정으로 치닫는다. 둘이서 한 몸인 양 구르다가 돌다가 어느 순간 길고 시원스런 다리를 쩍 들어 올린다.
그녀는 홍학이 긴 다리를 들어 올리듯 그의 리드 신호에 따라서 양쪽으로 연속적인 발차기를 했다. 여성의 다리로 가장 섹시하게 표현할 수 있는 디벨롭프스 킥 레이디 킥스.
그녀는 각선미 아름다운 길쭉한 다리로 발차기를 유난히 잘 했다. 정확한 남성의 타이밍 신호를 받아서 훅하고 발을 올리면 그들이 두 손을 홀드한 손목까지 단번에 그녀의 발끝이 닿았다. 마치 유단자 태권도 선수의 올려 차기처럼.
양쪽 모서리에서도 백휘스크에 이은 결재 도장을 꽝 찍듯이 차올리는 스톰프 발차기. 다른 모서리에서는 스위블 킥으로 발차기의 다양함을 뽐냈다. 처음 스타트한 곳에서 반대편 긴 LOD(Line of Dance)를 타고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멀고도 긴 대륙의 횡단 열차가 긴 여정을 달려서 중간 기착지에 잠시 쉬다가 다시 목적지를 향해 출발하려는 듯 깊은 숨을 몰아쉰다.
그리고 다시 첫 걸음을 움직인다. 허허로운 사막과 벌판을 가로 지르는 파워 넘치는 바운스 폴어웨이. 이어서 바다 위에 떠 있는 기나긴 교량을 숨도 쉬지 않고 건너는 싱코페이티드 텀블턴. 마지막 격정을 결집시켜서 레프트 휘스크에 탄력과 관성으로 회오리가 휘몰아친다. 그 누구도 제지할 수 없고 방해할 수 없는 스탠딩 스핀. 강력한 토네이도를 감아올리는 남자의 오른쪽 허벅지를 중심축으로 해서 로프스피닝처럼 여성이 원심력과 구심력을 타고 빠르게 돌아간다. 여성의 상체와 헤드는 소용돌이치는 물결의 윗부분처럼 역원뿔 모양이 되었다. 한바탕 원을 그리며 활력을 불어 넣고서 빅탑으로 팽이 모양으로 돌고는 콘트라첵으로 한 송이의 흰 백합꽃을 피우면서 마무리 한다.
그리고 이어서 구석을 향해서 팔자를 그리며 한 마리 예쁜 나비가 나풀거린다. 힐풀 커브드페더 일명 헤어핀으로 그녀의 꿈결 같은 광무(狂舞)는 마무리를 장식하러 간다.
여태껏 춰보지 못한 그리고 느껴보지 못한 미칠 듯한 춤, 그건 광무(狂舞)였다.
유아존의 그 파워풀하고 활력 넘치는 무빙 액션은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경지였다. 그걸 받아 낼 수 있는 비너스 또한 이미 자신의 몸이 아니었다. 육체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영혼과 영혼이 결합된 광무(狂舞)였다. 인간세계에서는 도저히 꿈 꿀 수 없는, 그리고 출 수 없는 환희와 환각의 경험이었다. 한바탕 휘몰아 친 격정이 흐른 뒤 그녀는 깊은 숨을 몰아쉬었다.
그것은 그가 살아생전에 함께 사랑을 나누었던 가장 짜릿하고 격렬했던 섹스의 절정 순간 같았다. 아니 그보다 훨씬 더 깊은 강도였지만 그것 외에는 비교할 대상이 없었다.
그녀가 숨을 몰아쉬면서 할딱거리는데 반해서 그는 전혀 그렇지 않아 보였다. 오히려 더 안정되고 평온해 보였다.
"우리 장미 실력 죽지 않았네. 힘들어?"
유아존이 그녀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훔쳐 주며 다정스레 물었다.
"아니, 난 괜찮아. 오빠랑 다시 왈츠를 출 수 있어서 기뻐. 이제 가지마. 장미 두고 가지마 오빠. 나랑 오래도록 함께 춤을 춰."
그녀가 어리광스럽게 그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며 속삭였다.
"그래. 장미랑 오래오래 영원토록 왈츠 출께, 걱정 마."
그는 그녀의 머릿결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그녀의 귓전에 소곤거렸다.
"곧 엘리트클럽에서 열리는 무도회에서 시범 보여야 되잖아. 그때 또 오빠 올께. 그 날 장미랑 멋진 시범 보여주자,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는 나직이 속삭이며 기대고 있던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밀어 내려고 했다.
"안 돼 오빠, 가지 마. 가면 안 돼. 장미 혼자 두고 가면 안 돼!"
그러나 유아존은 그녀를 밀어내고 싱긋 웃어 보이고 학원 문으로 나가 버렸다.
"안 돼! 가지 마! 오빠 가면 안 돼!"
그녀가 목소리 높여 소리 지르려고 했다. 그러나 그 소리는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대신에 떠나는 장승백을 잡으려고 두 팔을 벌려서 허우적거렸다.
"원장님 왜 그러세요?"
누군가 그녀의 어깨를 흔들며 큰 소리로 말했다.
"원장님 일어나세요!"
다시 한 번 세차게 흔드는 걸 느끼고 백장미 원장이 소파에서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살펴보았다.
그녀는 앞에 서 있는 박달재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아직도 잠에서 덜 깬 사람처럼 보였다.
"원장님 꿈 꾸셨나요?"
박달재가 그녀를 내려다보며 웃고 있었다.
그제야 정신이 좀 돌아온 듯 그녀는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박달재를 쳐다보았다. 아직도 눈은 초점을 잃은 듯 했다.
"아, 죄송해요. 잠시 졸다가..."
겨우 제 정신을 차린 그녀가 입을 뗐다.
그렇지만 그녀는 아직도 도저히 믿어지질 않았다. 조금 전에 분명히 장승백이 찾아 왔었다. 살아생전 그 모습 그대로. 그의 체온도 느꼈었다. 숨결까지 그녀의 귓전을 간지럽혔다. 그녀는 그리 느꼈다. 분명히 살아서 그가 자기를 찾아왔다고. 그리고 며칠 후에 있을 엘리트클럽 무도회에 오겠다고 분명히 말했다. 그녀와 함께 일 년 전부터 예정 되었던 시범 공연을 차질 없이 진행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런데 눈을 떠보니 그는 온 데 간 데 없었다.
그녀는 한참 동안이나 혼이 빠진 사람처럼 멍해 있었다.
분명히 그가 왔었다. 살아생전 모습 그대로. 그리고 그녀는 그와 평소 그들만이 추던 그 작품 루틴 그대로 왈츠를 췄었다. 꼭 한동안 연습 안 해서 잊어버리지나 않았나 점검겸 다시 한 번 더 다듬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플로어 가운데서 뽐내는 드로우어웨이 오버스웨이도 생생했다. 그녀의 특기인 레이디 킥스 발차기도 평소처럼 똑 같이 했었다. 아직도 기억이 분명했다. 그녀의 오른발이 그들 두 사람의 눈높이로 홀드한 손목까지 닿을 정도로 차 올렸던 자국이 남아 있는 듯 했다.
그는 언제나 그녀의 발차기를 칭찬했다. 다른 여성은 흉내도 못 낼 정도로 높게 멋있게 차 올린다고. 그리고 다리가 길어서 멋있다고.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며 최고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던 그였었다. 그래서 왈츠나 폭스트롯에는 가운데서 양쪽 발차기를 작품 루틴에 넣었다. 각 모서리에서도 안쪽을 향하거나 바깥쪽을 향해서 쭉쭉 뻗어 올리도록 루틴을 구성했다. 더군다나 탱고에서도 스타카토까지 가미한 그녀의 발차기 레이디킥스는 과히 일품이라고 칭찬을 했었다.
그 모든 게 기억에 생생했다. 조금 전에도 그와의 왈츠에서 실전같은 발차기 경험을 했던 것이다.
그녀는 한참 동안 얼빠진 사람처럼 멍하니 앉았다가 겨우 일어났다.
그런 후 정신을 차리고 몸을 추슬렀다.
잠시 뒤에 박달재의 레슨을 시작했다.
박달재가 수업을 받을 동안에도 백장미 원장은 정신이 맑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제 정신이 아닌 듯 횡설수설 하다가 번쩍 정신이 드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평소에 잘 가르쳐 주지 않던 고급 라인피겨들을 처음으로 그에게 시도 시켰다. 드로우어웨이 오버스웨이 스탠딩스핀 같은 것들도. 콘트라첵이나 라이트런지도 맛은 봤지만 정밀하게 다듬어 주지는 않았었다. 아직 할 단계가 아니라면서. 그런데 오늘은 자세하고 정밀하게 가르쳐 주었다. 어떻게 해야 상대 여성이 편하고 서로 폼이 나는지 핵심 포인트를 짚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