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 이지선
이상한 것 중 제일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아닐까?
초등학교 4학년 때 쯤 되었을 것이다. 전집을 팔러 돌아다니던 영업사원의 현란한 말솜씨에 아빠의 팔랑귀가 활짝 열려 우리 집 작은 방에 새 책 냄새가 폴폴 나는 “세계 아동 문학 전집”이 다소곳이 배달되었다. 보기 드물게 화려한 색이 들어간 그림이 책 중간 중간에 있어서 지루해 하지 않고 읽었다. 그 중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화려한 드레스와 여왕, 내가 좋아하는 토끼가 등장해서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다. 내 관심을 가장 사로잡았던 내용은 키를 크게 하거나 작게 만드는 음식이었다. 맛있어 보이는 케이크를 먹거나 병에 들어있는 음료수를 먹고 갑자기 키가 커져서 난처한 상황에 빠지게 되는 앨리스가 너무나 안타까웠다.
다양한 음식을 맛있게 먹는 사람들이 참 부럽다. 음식을 많이 가려먹기 때문이다. 닭이나 오리는 먹지 않는다. 닭을 안 먹는 이유는 닭의 부리가 생각나기 때문이다. 오리탕을 보면 오리의 발이 떠오른다. 또 계란 요리도 잘 안 먹는 편이다. 껍질을 깼을 때 뭔가 다른 것이 튀어나올 것 같다. 추어탕은 미꾸라지의 모습이 못생겨서 먹기 싫다. 돌나물은 풀을 씹어 먹는 것 같아서 못 먹겠다. 바나나는 미끄덩거려서 삼키기가 힘들다. 쌀국수는 고수 냄새가 너무 지독하다. 다른 여러 가지 이유로 먹지 않는 음식이 참 많다.
음식 때문에 나른 나라를 여행하는 것이 힘들다. 캄보디아에서는 빵과 커피로만 4박 5일을 버틴 적도 있다. 그 나라 특유의 이상한 향이 물에서도 느껴져서 그 어떤 음식도 먹을 수 없었다. 아사직전 우리나라로 돌아오니 그야말로 우리나라 음식이면 뭐라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음식을 가리는 것은 나도 힘들지만 옆 사람도 힘들게 하는 고약한 버릇이다. 내가 맛있게 못 먹으니 메뉴를 고르는 것에서부터 음식을 즐기는 것 까지 주위사람들이 어려워한다. 특히 가족에게 미안하다. 닭요리는 아이들과 남편은 좋아하지만 내가 안 좋아하니까 요리를 잘 하지도 않고 사먹지도 않는다. 그래서 나도 고치고 싶은 습관이지만 잘 되지 않는다. 오히려 점점 가짓수가 늘어나고 있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종류가 줄어들고 있다. 큰일 이다.
안 먹어본 음식에 대해 일단 거부하는 이유가 꼭 앨리스 때문인 것 같다. 잘 모르는 음식이나 음료수를 마셔서 어려운 상황에 빠지고 마는 일이 나에게도 일어날 것 같다. 어린이도 아니고 이런 상상을 하는 것이 참 우습지만 어쩔 수 없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안먹지만 진짜 이유는 나를 하녀처럼 대하는 토끼를 만난다거나 여왕이 갑자기 나에게 “목을 쳐라”라는 말을 할 것 같아서이다.
요즘은 이상한 음식이 있으면 일단 먹어보려고 노력은 한다. 하지만 내 마음속 앨리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울상을 지으며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 같다.
첫댓글 먹는 즐거움이 얼마나 큰데, 고놈의 앨리스 땜에 그 즐거움을 누리지 못 한다니 아유 안타까워라! 소녀같은 아주머니, 빨리 앨리스 떨쳐버리고 세상의 갖가지 맛에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저는 너무 맛있는 것이 많아서 체중 조절이 안 되니 걱정인데 다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고 상상을 해 봐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