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시편 표제를 보면 다윗의 시입니다. 그리고 역시 인도자를 따라서 부르는 노래라고 되어 있습니다. 다윗이 겪은 일이지만 후대에 공동체가 함께 노래했던 시이라는 말입니다. 이 시는 도움을 요청하는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매우 급하게 하나님을 부름으로써 시를 시작을 합니다. 1절과 2절을 보시면 하나님을 부른 후에 내가 근심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자신의 생명의 원수에게서 보존하여 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자신을 악을 꾀하는 자들의 음모에서 자신을 숨겨 달라고 하고, 또 악을 행하는 자들의 소동에서 자신을 감추어 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정확히 누가 다윗의 원수인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다윗이 근심하고 위협을 느낄 만큼, 자신의 생명의 위협을 느낄 만큼 원수들은 다윗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2절에서 그들은 악을 꾀합니다. 어떤 악한 일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소동합니다. 원수들이 모여서 회의를 합니다. 그런데 그 회의의 주제가 무엇이냐 하면 어떻게 다윗의 생명을 해할지 의논하는 것입니다. 이런 논의 중에 있는 원수들에게 자신의 생명을 지켜 주시고, 숨겨 주시고, 감추어 달라고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서 모여서 회의를 하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같은 자들입니다.
그리고 나서 다윗은 이 악한 자들의 행동을 묘사합니다. 3절에서 6절입니다. 그들은 우선 그들의 말로써 악한 일을 합니다. 다윗은 그들의 말을 무기에 비유합니다. 칼 같이 혀를 갈고 닦습니다. 칼 같은 말로 시인을 죽이라고 준비중입니다. 또 그 혀는 화살 같이 쏩니다. 그런데 그 말을 쏠 때 숨어서 온전한 자를 쏩니다. 그리고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칼과 같이 날카로운 말은 누가 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숨어서 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소문은 출처를 알아내기어렵습니다. 그래서 마치 숨어서 쏘는 것이 다윗에 대해서 악한 말을 하고, 좋지 못한 말들, 위협하는 말들, 마음에 상처주는 말들을 하는 것입니다. 이어서 다윗은 그들의 악한 행동 가운데 교만함을 지적합니다. 그들은 그렇게 악한 말을 하면서, 칼과 화살과 같이 사람을 죽이는 말을 하면서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5절을 보시면 그들은 악한 목적으로 서로 격려합니다. 역시 말로써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악한 목적 실행하는데, 그것을 옳다고 잘한다고 서로 격려합니다. 그리고 악한 일들을 함께 모여 계획하면서 아무도 그것을 모를 것이라고 거짓된 확신에 차 있습니다. 이어서 6절을 보면 죄악을 꾸미면서도 묘책을찾았다고 합니다. 완벽한 범죄를 계획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서로 교만한 말을 합니다. “이야, 우리 각 사람의 속 뜻과 마음이 깊다” 여기서 말하는속 뜻과 마음이 깊다는 말은 긍정적인 마음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린다는 뜻에서 마음이 깊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시편 92편 5절을 보면 마음이 깊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인생을 위해서 행하신 일을 깊다고 합니다. 또 로마서 11장 33절을 보면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라고 합니다. 지식이 깊다, 마음이 깊다는 표현은 사실은 하나님께 대한 표현입니다.
그러니까 악인들은 자신들의 세운 생각과 계획이 하나님의 것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의인을 헤치기 위해서 세운 계획이, 악한 목적으로 모여서 의논한 결과가 하나님의 생각과 깊이 만큼이나 깊다는 말입니다. 아주 교만하고 하나님을 자기 수준을 낮추는 말입니다. 다윗의 원수들은 자신들의 비밀 함정이나 악한 계획이 발각되거나 방해를 받지 않을 완벽한 계획이라고 서로 격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7절부터 반전이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갑자기 쏘십니다. 하나님의 갑작스러운 개입이 일어납니다. 그들이 몰래, 숨어서, 갑자기 다윗을 해하려고 했던 그 계획 그대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갑자기 임하셔서 화살과 같이 쏘십니다. 악한 자들의 계획이 완벽하다고 여겨지고, 의인이 다윗이 희망이 없어 보일 때 하나님의 개입이 극적으로 일어납니다. 도저히 희망이 없어 보이고, 그들이 계획이 완벽해 보일 때, 하나님은 갑자기 임하셔서 그들에게 심판을 행하시고, 그들은 엎드러집니다. 그리고 시인을 위협했던 그들의 혀는 오히려 그들을 해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자들을 보면서 지나는사람들은 머리를 흔들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시인을 공격하고 교만하게 하나님을 무시하며 말로 공격하던 자들을 보며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될 것입니다. 시인의 1-2절의 부르짖음을 응답하신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게 됩니다. 그리고 악인들의 혀와 달리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선포하고 그분이 행하신 일을 깊이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두려워하는 것은 그냥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 존경과 사랑을 담은 두려움입니다. 결국 10절을 보시면 의인은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게 될 것입니다. 자신의 원수를 무찔러 주시고 회복을 주신 분께 피하게 되고, 그리고 그분의 행하신 일들을 자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을 해하는 악인의 혀와 달리 의인의 입술은 하나님을 찬송하고 자랑하는 말을 하게 됩니다.
오늘 시편 말씀은 악인들에게 위협 당하는 시인, 특별히 말로써 또 악한 계획으로 고통을 받는 시인이 하나님께 간절히 구할 때 하나님께서 간섭하셔서 악인들의 계획을 폐하시고, 시인을 도우시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런 하나님을 경험한 의인들의 입에서 하나님을 자랑하게 될 것임을 약속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간섭은 갑작스럽게 일어났습니다. 기대하지 못했을 때, 아무런 소망이 없어 보일 때,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상황을 완전히바꾸시고, 다급한 시인의 부르짖음이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에 대한 찬송으로 바뀌도록 하셨습니다. 먼저 시인이 겪은 이런 억울함은 우리 주님께서 그대로 당하셨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서 모여서 작당을 하고, 거짓 증인들을 많이 세워 죽이는 말들을 많이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십자가에 달려 계실 때에도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악한 말들을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극적으로 간섭하셔서 죽음에서 예수님을 살리시고 주님을 따르는 자들로 하여금 입술에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노래하고 찬송하도록 하셨습니다. 의인들의 공동체로서 찬송이 흘러나오게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도 예수님과 같이 비슷한 상황을 겪을 수 있습니다. 특히 요즘 같이 교회의 평판이 좋지 않은 시대에 살아가다 보면 원치 않게 교회에 대한 좋지 않은 말을 하는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나아가 우리 교회와 우리 교회 성도들에게 대해서 좋지 않은 말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 모든 상황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부르짖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말로써 우리를 아프게 하는 사람들을 공평하게 심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교만하고, 스스로 하나님과 같이 여기는 사람들에게 결국은 그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은 우리는 오늘 시편에서 본 것 같이 의인들로서 악인들의 혀와 확연히 구분이 되어야 합니다. 악인의 혀는 칼과 같고 화살과 같이 다른 사람을 죽이는 혀입니다. 하지만 의인의 혀는 하나님의 일을 선포하고 자랑하는 혀입니다. 우리의 혀와 입술이 악인의 혀와 입술이 아니라 의인의 혀로서제기능을 잘 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말에서 다른 사람을 악하게 평가하기 보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말하고 찬송하는 데에만 사용되면 좋겠습니다. 나아가 같은 의인의 공동체 안에서 본의 아니게 말로써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데 이런 부분에서 서로 세워주고 격려하고 혹 실수 했을 때 진심으로 사과하고 또 서로 기꺼이 용서해주며 우리 교회가 참된 의인들의 공동체로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선포하고 찬송하는 사람들의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