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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대예배 설교 2019.3.17.(주일)
당신의 이름은 업그레이드 되었습니까? (사 44:1-5, 엡 3:14-16)
요사이 아이돌 그룹 빅뱅의 승리가 버닝 썬 클럽에서 성 접대, 마약, 탈세, 도박, 경찰 유착 등의 사건과 함께 가수 정준영의 성관계 동영상 불법 촬영 유포문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거기에 경찰 고위급까지 연류 되었다고 해서 우리 사회를 큰 충격에 빠트리고 있습니다. 이들은 밴드를 통해 불법 성관계 동영상을 돌려 보고 불법 유포 하였다고 합니다. 그들의 일탈행위는 상상을 초월하고 있습니다.
인기, 돈, 권력, 쾌락, 마약, 술, 도박, 섹스에 도취 되어 양심이 화인을 맞아 무엇이 옳고 그른가 하는 기준이 상실되어 짐승화 된 것입니다. 가장 아름답고 순수해야 할 20대 갓 넘어 시작한 탈선이 30넘어 까지 이어진다는 것이 참 슬픈 일입니다. 이들을 우상처럼 따르고 바라보는 수많은 남녀 청소년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외국의 외신에서도 k-pop의 몰락이라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뉴스를 보며 세상 종말의 어둠, 하나님의 영이 떠난 인간들의 몰락처럼 보입니다. 성경적으로 보면 카인의 후예, 마귀 자식들의 행동과 같습니다. 성경은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롬 1:26-27)
세계적인 심리학자이며 정신과 의사인 카를 쿠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은 인간은 상황과 환경에 따라 다른 인격을 소유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페르소나”(PERSONA)이론이라고 합니다. 즉 “페르소나”는 가면(마스크)이라는 뜻으로 우리가 연극을 할 때 가면을 쓰고 퍼포먼스를 하게 하는 것처럼 인간은 그 가면을 쓰고 변하는 상황 속에서 자기 인격을 숨기고 보호하면서 상황에 맞추어 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가면을 오랜 시간 동안 쓰고 있으면 어디까지가 가면이고 어디까지가 자기 얼굴인지 착각을 하게 되어 현실에서 오판을 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오늘날 현대인은 너무 많은 자기를 숨기는 가면을 쓰고 있기에 진정한 자기를 잃어버리고 자기 상실 시대의 어둠에서 허덕이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가 진정한 하나님(신)을 만날 때 그는 자기의 가면을 하나씩 벗어가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분은 목사님의 아들로 알려져 있습니다.
빅뱅, 세상이 말하는 창조의 원동력, 참으로 좋은 이름입니다. 승리라는 이름도 참 좋습니다. 그들은 얼굴도 참 잘 생겼습니다. 누가 그 속에 음락, 마약, 술, 쾌락인 마귀의 속성이 숨겨져 있을 줄 알았겠습니까? 원래 이름은 그 사람의 인격, 그 얼굴, 그의 마스크를 말합니다. 문제는 우리 모두가 다 어두운 페르소나(가면)으로 자신을 가리고 있어서 나이를 먹고 신앙의 경력이 오래되었는데도 그 이름, 그 인격이 업그레이드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 가면에 속고 있음에도 바꾸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편안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성경은 책망하고 있습니다.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히 5:12)
당신의 이름은 업그레이드 되었습니까? 아직 성도, 집사, 권사, 안수집사, 장로, 심지어 목사라고 하는 가면을 쓰고 이름은 업그레이드 하지 않고 있지는 않습니까? 반드시 하나님 앞에 모든 가면이 벗겨지고 드러날 때가 올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경고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고전 3:13)
사랑하는 여러분!
사순절 기간입니다. 이제라도 진정으로 주님께 나와 십자가를 체험하고 우리의 숨긴 가면을 벗고 우리의 이름을 업그레이드해야 합니다. 본문에는 어둡고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면서 이름을 세 번이나 업그레이드한 인물이 소개됩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12지파의 조상인 야곱입니다.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이스라엘아 이제 들으라 (2)너를 만들고 너를 모태에서부터 지어 낸 너를 도와 줄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여수룬아 두려워하지 말라”(사 44:1-2)
야곱은 주님을 만나 이스라엘로 업그레이드 했고, 다시 여수룬으로 업그레이드 되었습니다.
가면을 벗으면서 이름이 업그레이드한 은혜를 깊이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 번째, 첫 번째 이름은 야곱입니다.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이스라엘아 이제 들으라”(사 44:1)
이삭의 아내 리브가는 쌍둥이를 낳았습니다. 여기서 야곱의 성경이 분명하게 밝혀집니다.
“먼저 나온 자는 붉고 전신이 털옷 같아서 이름을 에서라 하였고 (26)후에 나온 아우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을 야곱이라 하였으며 리브가가 그들을 낳을 때에 이삭이 육십 세였더라”(창 25:25-26)
야곱은 쌍둥이로서 어머니 리브가의 뱃속에서 나올 때 먼저 나가겠다고 형에서의 발꿈치를 잡고 나왔습니다. 야곱의 이름은 “불법으로 빼앗다” “탈취하다”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탐욕과 이기적인 사람을 상징합니다. 강도, 사기꾼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인지 팥죽 한 그릇으로 형의 장자권을 빼앗고 아버지를 속여서 축복권을 탈취했습니다. 외삼촌의 집에서 레아를 부인으로 얻고 마음에 있는 라헬을 얻기 위해 7년을 참고 견뎌 결국 라헬을 아내로 맞이합니다. 그 일로 가정불화가 심했지만 그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과 많이 비슷합니다.
이런 야곱에게 참을 수 없는 시련의 날이 찾아왔습니다. 그가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큰 재물을 얻고 부인 둘과 자식들 여럿을 얻어 금의환향을 하는데 형에서가 얍복강 나루에서 그를 죽이려고 장정 400명을 이끌고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재산을 다 보내도 형의 마음이 풀리지 않아 혼자 남게 되는 고난의 밤에 얍복강 나루에서 천사와 씨름을 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천사가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창 32:27)
천사가 야곱의 이름을 물을 때 “내 이름은 야곱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 뜻은 나는 사기꾼, 도적, 강도입니다. 이런 고백을 하며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마스크를 벗고 자신의 진짜 모습을 확인하는 순간입니다. 이것이 고난과 환란의 유익입니다. 인간은 잘 나갈때는 자신을 모릅니다. 어렵고 힘들 대 하나님을 찾게 되고 그 하나님은 어둠의 가면을 벗게 하여 자신의 모습을 보게 하십니다. 그 순간 천사는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어 주십니다. 그 뜻은 “너는 하나님까지도 싸워서 이기는 사람”입니다.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 교만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너는 네 자신에, 네 가면에 속은 자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고 알면 가면을 벗고 이름을 바꾸게 됩니다. 이것을 깨닫고 알면 가면을 벗고 이름을 바꾸게 됩니다.
두 번째, 야곱의 두 번째 업그레이드 된 이름은 이스라엘입니다.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이스라엘아 이제 들으라”(창 32:28)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이스라엘이란 이름에는 양면성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겨루어서 이겼다는 뜻이지만 또 다른 이름은 이스라엘의 ‘엘’(하나님이라는 뜻), ‘이스라’(다스린다 영:to rule) 통치한다(to have authority over) 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이 다스린다’는 뜻입니다. 자기 스스로 다스리던 야곱이 하나님이 다스리고 통치하는 복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입니다.
“이스라엘”의 어원은 아브라함의 부인 사라(sarar)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 뜻은 공주 왕비라는 뜻(princess)이고 남성의 형은 “prince” 왕자를 나타냅니다. 즉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왕자, 하나님의 공주라는 뜻이 됩니다.
야곱은 사기꾼에서 하나님의 천사와 씨름하다 자신의 환도뼈(자아)가 부러지는 십자가 체험을 하고 스스로는 살 수 없는 자가 된 것입니다.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사람, 이스라엘이 된 것입니다. 이때부터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늘의 공주, 하늘의 왕자로 존귀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한 사람은 이르기를 나는 여호와께 속하였다 할 것이며 또 한 사람은 야곱의 이름으로 자기를 부를 것이며 또 다른 사람은 자기가 여호와께 속하였음을 그의 손으로 기록하고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존귀히 여김을 받으리라”(사 44:5)
이제는 야곱 자신만을 위해 사는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사람이 아니라 12지파의 공동체를 이끄는 건강한 조상이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말이 있습니다.
“한사람이 이르기를 나는 여호와께 속하였다 할 것이며”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이름이 바뀔 때, 즉 자기만을 위하여 자기 힘으로 사는 자가 아니라 환도뼈가 부러져 지팡이만 의지하여 살 때 즉 하나님을 의지하여 살 수밖에 없는 자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통치하고 다스리는 자가 된 것입니다. 이때 비로소 하나님께 속한 자가 되고 하늘에 존귀한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겨 줄 때 베드로가 감히 주님이 제발을 씻겠느냐고 말을 합니다. 그때 주님이 내가 네발을 씻을 수 없다면 너는 나와 상관이 없다고 말을 합니다. 그때 베드로가 겁이 나서 그러면 내 몸까지 씻겨 달라고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은혜로 살지 않는다면 주님과는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존귀한자가 되려면 날마다 자기 부족을 깨닫고 주님을 지팡이처럼 의지하고 그분의 통치를 받고 살 때 존귀한자 이스라엘이 됩니다.
세 번째, 야곱은 세 번째 이름 여수룬으로 업그레이드 합니다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이스라엘아 이제 들으라 너를 만들고 너를 모태에서부터 지어 낸 너를 도와 줄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여수룬아 두려워하지 말라”(사 44:1-2)
여기서 ‘여수룬’이라는 야곱의 세 번째 업그레이드 된 뜻은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하나님의 의로운 자’라는 뜻이 있습니다. 여기서 여수룬은 ‘이스라엘’로 자신만 존귀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로운 자, 하나님과 같은 속성을 가진 자가 되어 하나님의 속성과 능력, 축복을 세상에 전달하는 의로운 축복의 통로가 되라는 것입니다.
“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풀 가운데에서 솟아나기를 시냇가의 버들 같이 할 것이라”(사 44:3-4)
여수룬을 통하여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여 시냇가에 버들이 피어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여수룬의 이름처럼 예수의 통로가 된 어떻 기독교 잡지에 나온 평범한 사람, 이준형이란 젊은이의 이야기입니다.
광운대학교 후문에 가면 ‘광인수’라는 토스트 가게가 있습니다. 그 이름은 광운대학교 인문학부 수석이란 글자의 줄인 말입니다. 그는 졸업 후 대기업에서 직장 생활을 했지만 기계적이고 짜여 있는 생활이 싫어 직장을 그만 둔 후 후배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힘이 되기 위해 대학 후문에 토스트 가게를 열었다고 합니다. 그가 학교에 다닐 때 늘 배가 고팠는데 학교 앞에서 토스트를 파는 할머니가 있었는데 늘 토스트를 크게 만들어 주어 “이렇게 싸게 팔면 남는 것이 있느냐?”는 질문에 “내가 하는 일은 배고픈 사람 배부르게 하는 것이야, 토스트가 비싸면 배고픈 사람들이 못 사먹지 않겠어?” 그 말에 그 청년은 그 자리에서 펑펑 울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학 재학 중 IVF 수련회 룻기 강해에서 “배고픈 사람에게 빵을 먹이는 것도 복음이다”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가 토스트 가게를 차려 식빵 두 장에 두툼한 계란을 채워 1000원에 팔았습니다. 그의 가게는 문전성시를 이루었고 그는 학생들, 동네 주민들, 초등학생, 심지어는 노숙자들과 친구가 되어 주님의 통로로 여수룬의 이름을 이루어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옛 말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합니다. 여러분의 이름은 업그레이드가 되었습니까? 성경에 위대한 사람은 다 나이가 들면서 이름을 업그레이드 했습니다 아브람은 —아브라함으로 사울은 바울로, 시몬은 베드로로 바뀌었습니다. 이 사순절에 주님을 만나 더럽고 어두운 마스크를 벗고 진정한 나를 찾아 당신의 이름을 업그레이드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