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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석화 박물관- 중국 이군성 화가가 장가계 특유의 돌가루를 붙여 만든 그림 전시관-그림 앞에 대문을 달아두고 대문을 열면 대문으로 내다보이는 그림을 많이 그렸다.
4박 5일의 중국 장가계 여행(819,000원)
4박 5일의 중국 장가계 여행
4월 중순, 대학 동기 부부랑. 대구공항에서 비행기를 탔다. 4박 5일간 중국 장가계를 구경하기 위해 대용공항에 내리니 대구공항과 규모도 비슷하고 기온도 한국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공항에서 아침 사 먹고 왔지만 3시간 걸려 배가 고팠다. 함수일 가이드님이 마중 나와 우리 일행 여섯 명을 단독 버스에 태우더니 화사에서 준비했다며 김밥 도시락을 나눠주었다. 회사의 배려가 고마웠다. 우리 일행과 합류한 부부는 김천에서 포도 농사를 짓는단다. 우리랑 같은 연배였다.
2024년 4월 15일 <황석채의 오관중 화백과 천문산 배경 야외 공연>
일 년 중 200일이 비가 오는 곳인데 첫날은 비가 안 오니 황석채로 가자고 했다. 황석공이라는 사람이 살고부터 황석채로 이름 지어진 곳이라는데, 입구에 내려서 언뜻 보니 한국의 청송 주왕산을 보는 듯했지만, 그 웅장하고 기운찬 자태며, 바위 틈새에 살아 붙어 있는 나무들의 형세가 삶을 질기게 끌어 잡고 있는 생명체의 울림을 보여주고 있었다. 광장에는 오관중이라는 화가의 동상이 서 있었다. 그가 장가계를 수채화로 그려 알린 공로로 지금의 관광객을 받는 여행지로 발전하게 되었다니, 한 사람 붓의 힘이 훗날 얼마나 많은 나비 효과를 가져왔을까? 지금은 장가계가 170만 인구가 사는 시골의 작은 도시이지만 전 세계에서 관광객이 몰려온다니… 오관중 화백은 동상으로 서서 지금의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2021년은 오관중 탄생 100주년이었다. 중국 전통 화법에 서양 미술 추상화 기법을 조합해 그린 100억 원 이상의 초고가 작품이 있고 수묵화 사자림은 245억 원에 낙찰되었지만, 자기 작품을 대중이 관람할 수 있도록 공공 미술관에 기증했단다. 세상을 떠나기 몇 시간 전에도 아들을 통해 홍콩예술관에 작품을 기증했단다. 재능만 품은 화백이 아니라 물욕 없는 애민 정신으로 살아온 삶이 내게 울림을 준다.
낮에는 누룽지 백숙으로 점심을 먹고, 밤 8시엔 천문산을 그대로 배경으로 활용한 야외공연을 보러 갔다. ‘나무꾼 유해와 구미호 백호선의 재회 장면’ 공연이었는데 여우 복장을 한 500명 배우가 이 근처 예술학교 학생들이란다. 그리고 이 공연은 1,300회째란다. 그러니 이곳 예술학교 학생들은 이 학교에 입학하면 덩달아 배우로 등용되는 셈이었다. 학교 학예회쯤으로 생각할까? 그러기에는 컴퓨터 그래픽 기술을 조합하여 보여주는 공연의 스케일이 너무 컸다. 여우 꼬리 흔드는 모습도 제각각 성의를 다해 흔들고 있었다. 공연의 주제는 “하루를 살아도 당신의 아내로 살고 싶고, 하루를 살아도 당신의 남편으로 살고 싶소.”였다. 우리나라 김종환의 노래 ‘사랑을 위하여’ 가사가 되씹혀졌다.
“이른 아침에 잠에서 깨어 너를 바라볼 수 있다면/ 물안개 피는 강가에 서서 작은 미소로 너를 부르리/ 하루를 살아도 행복할 수 있다면 나는 그 길을 택하고 싶어!”
동양과 서양, 옛날과 지금을 통틀어 어디에 살아도 남녀 간의 사랑은 하늘이 내리신 축복이리라.
4월 16일 <보봉호수에서 천문산 정상까지>
아침에 버스를 타고 보봉호수 부두로 갔다. 산꼭대기에 있는 큰 호수인데, 옛날에는 양어장을 했단다. 호수에서 유람선을 탔는데 수상 가옥 같은 지붕이 달리고 가정집 실내 같은 나무 의자들이 놓여있었다. 지나가면서 보니 건너편 배 위에 떠 있는 수상가옥에서 전통 의상을 입은 토 가족 청년 남녀가 세레나데를 불렀다. 저렇게 구애하는 전통이 있단다. 함수일 가이드 말로는 7월 9일 사람들이 모여 노는 날, 남자가 마음에 드는 여자의 발을 밟으면 여자는 남자가 마음에 들면 따라가서 사귄단다. 마치 아이들 술래잡기 같은 놀이처럼 접근했다니 순수한 동심의 아이들이 노는 모양이 떠올랐다. 배에서 내려 천문산 가는 길을 찾아보았다. 가는 길은 네 갈래! 케이블카를 타거나 셔틀버스를 타거나 동선(동쪽) 코스나 서선(서쪽) 코스를 선택하는 길인데, 셔틀버스 타고 도는 길은 굽이굽이 S자로 구부러져 뱀이 기어가는 형상이라 ‘뱀길’ 이라고 이름 붙이면 딱 맞겠다. 옛날에는 999개 계단을 걸어 올라갔지만 지금은 해발 1518.6미터에 7,455M(편도 30분 소요) 케이블카가 놓여 있다. 케이블카 줄이 장가계 사람들이 사는 주택가 지붕 위를 가로지르며 천문산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케이블카가 지나갈 때마다 훤히 들여다보이는 집안 풍경이 노출됨에 신경 끈 지 오래란다. 나라로부터 보상금도 받았단다. 하긴 비둘기가 날아다니며, 줄에 걸어 놓은 빨래에 똥을 ‘푸지직’ 싸고 날아가는 뒷감당보다야 신선놀음일 수도 있겠지만. 여기에 길을 내려고 처음 생각한 사람의 앞선 생각과 의지가 탁월해 감탄스러웠다. 그리고, 목숨을 담보로 돈을 벌기 위해 이 일에 동원된 사람들의 희생과 노력과 피땀도 기억해야 하겠다. 우리는 편하게 케이블카를 타고 산 정상에서 내리니 비가 오락가락해 비옷을 꺼내 입었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려가면서 보니 하도 깊게 내려가서 반대편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오는 사람들은 지하 세계를 경험하고 올라오는 사람 같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우리는 천상에서 지하 세계로 내려가는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곡잔도와 유리 잔도를 걸으면서 보니 덧신을 신고 걷는 사람들이 보였다. 운영업체에서 제공하는 덧신인데 유리 바닥이 미끄러워서 사람 보호 차원도 있겠지만 유리 바닥이 긁히지 않도록 보호하는 기능도 하리라. (돌아올 때 보니, 비 젖은 덧신들이 다시 말끔하게 씻겨 따스한 온기를 품고 전시대에 올려져 있었다.) 나는 겁이 나서 남편 팔에 매달렸다. 조심조심 걸으며 눈 아래 펼쳐지는 정경들에 그저 ‘아!’하는 감탄사만 연발하였다. 절벽 아래 뱀이 기어가듯 s 자로 구부러진 길과, 바위와 바위 사이에 구멍 뚫린 공간은 비안개, 안무에 묻히면 흰색 하늘인 양 모든 걸 하얗게 덮었다가 차차 안개 걷히면 하늘로 올라가는 하늘 문인 양 뻥 뚫린 공간을 나타내어 보였다. 신비로웠다. 이쯤에서 시 한 수 읊어야 하는데, 아직 마음에 시가 담겨오지 않았다.
4월 17일. <장가계 황룡 동굴과 천자산>
황룡 동굴은 장가계 동굴 10개 중 구천 동굴과 용암 동굴 다음 세 번째로 큰 동굴이란다. 이 동굴은 개인이 1983년에 착공해서 86년도에 개발했는데, 유일하게 배를 탈 수 있는 동굴이란다. 8인석 보트를 타고 배에서 내려 들어가니 시원한 기운이 느껴졌다. 밑에서 위로 자라는 석순과, 위에서 아래로 자라는 종유석이 있는데, 이 동굴에는 석순이 많았다. 석순은 1cm 자라는 데 백 년이 걸린다는데 제일 높은 석순은 19.7m란다. 197,000년 자란 석순치고는 별로 높이가 높지 않았다. 한국의 고수 동굴이나 백옥 동굴의 석순이 더 크지 않았나 싶었다. 계단을 오르내리다 보니 처음에는 시원하다가 차차 땀이 났다. 소요 시간은 2시간가량 걸렸다.
점심 먹고 양가계를 거쳐 원가계 동네로 내려가는데 공중정원까지 갔다. 무릉원 공중에 떠 있는 밭인듯하다. 언뜻 보면, 우리나라 다랑이 논밭 같은 느낌이 살짝 들지만, 운무 걷힌 밭을 내려다보니 첩첩 산골에 땅을 일구어내어 농사를 지으며 산 토 가족 농부의 순한 기운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들 부부가 1983년부터 5년간 일궈낸 밭이란다.
쇼핑몰 한군데 거친 뒤, 점심 먹고 무릉원의 북서쪽에 있는 천자산으로 갔다. 67만㎢이고 어필봉과 선녀 산화와 하룡공원 등을 자연보호구로 지정해 두었단다. 운무, 안개에 덮여 천자산 형체를 제대로 보기는 쉽지 않지만, 언뜻언뜻 운무가 걷히면서 살짝 보여주는 천자산의 기암절벽은 그야말로 한 폭의 산수화였다. 천자산 케이블카를 타고 1,250m 산봉우리에 올라 다시 2,084m 케이블카를 10분 정도 타고 내려가니 개발이 가장 늦어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가장 많이 간직하고 있는 양가계가 있었다. 자연으로 몸을 두른 듯한 기분에 순수하고 사념 없는 평정의 마음으로 한참 동안 머물러 자연의 냄새를 맡아보았다. 원가계로 내려가니 수백 개의 봉우리와 기암절벽이 산수화처럼 절경을 이루었다. 4억 년 전에는 바다였으나 지구의 지각 운동으로, 육지로 솟았다가 침수와 자연붕괴의 세월을 지나온 흔적이겠다. 내려올 때는 절벽에 설치된 335m의 백룡 엘리베이터를 탔다. 편도 1분 40초 만에 원가계를 오르내리며 정면으로 기암괴석을 감상하였다. 백룡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니 하나투어 전용 커피 박스가 마련되어 있었다. 가이드는 내려가기 전에 냉커피, 따스한 커피, 유자차를 미리 전화로 주문을 넣었다. 그래야 차례를 덜 기다리고 다음 코스를 쉽게 다닐 수 있다면서 시간을 아꼈다. 우리는 내려가 커피를 한 잔씩 들고 하나투어 전용 커피 부스 앞에서 하나투어의 고객에 대한 배려가 고마워서 커피잔을 높이 들고 한 줄로 서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오늘은 19,000걸음을 걸었다.
4월 18일 목<대협곡에서 집라인과 미끄럼틀 타기, 그리고 함수일 가이드를 위한 이벤트>
오전에 쇼핑센터 침향 파는 곳과 메트리스 파는 곳, 두 곳에 들러 점심을 먹었다. 식사 후 대협곡으로 갔다.
유리 다리가 460m란다. 밑을 되도록 안 보는 게 좋지만 그래도 유리 위를 걷는 느낌을 온전히 느껴보고 싶어서 내려다보았는데 볼 때마다 아찔하고 어지러웠다. 하느님이 천국에서 이 세상을 내려다봐도 이렇게 어질어질하게 보이지 않을까? 생각하니 하하 우습다. 상단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중간 엘리베이터를 탔다. 집라인 타는 곳까지 왔다. 여행에서 ‘어떤 가이드를 만나는가?’에 따라 일생 최고, 최대의 경험을 쌓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 경험하게 되었다. 우리를 인솔한 함수일 가이드님은 대협곡에서 zipline 체험이 관광상품에 들어가 있지도 않았는데, 이미 현직을 떠나와 용기 잃은 사자처럼 살고 있는 우리에게 평생에 한 번이니 공짜로 태워주겠다며 집라인 타기를 권해주어서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말처럼) 용기 내어 탔다. 쳐다볼 때마다 무서움에 가슴 떨리던 집라인을 직접 타며 발밑을 내려다보지는 못해도 앞쪽에 훤히 펼쳐지는 건너편 절경 속으로 스르륵 미끄러져 드는 짜릿함에 떨리는 가슴이 원대하게 넓어졌다.
‘겁나서 버킷리스트로 잡지도 못했던 zipline을 내가 타다니….’
나는 흥분된 마음으로 대협곡에 매달린 의자에 앉았다. 그렇게 겁나지는 않는데 웃음꽃이 피어날 만큼 여유는 갖지 못했다. 집라인을 타는 동안 업체에서 동영상을 다 찍어두었다. 집라인에서 내리니 집라인 탄 동영상을 자기 휴대전화에 담아가려면 8,000원을 내어야 한단다. 8,000원이 아깝지 않았다. 동영상을 촬영해 음악과 함께 편집해 휴대전화에 담아주는 아가씨의 손놀림이 능숙하였다. 남편은 동영상이 필요 없다고 했지만 내가 우겨 두 사람의 일생일대의 최고의 용기로 타본 집라인 동영상을 받았다. 들여다보니, 나는 완전 겁먹은 얼굴인데, 남편은 나비처럼 두 팔을 연신 휘젓기도 하고 앞으로 두 손을 반짝반짝 흔들며 여유를 즐기며 탔다. 아, 어떻게 마음먹느냐에 따라 즐길 수도 있고, 공포에 떨 수도 있구나! 이번 짚라인을 타며 '삶에 집착하지 않으면 삶을 즐길 수 있다.'는 너그러운 관점을 깨쳐 가졌다. 오는 버스 속에서 부부의 동영상을 아들들에게 보냈다. 아들들도 신기해했다. 새아기는 자기도 경험해 보고 싶단다. 나는 ‘장가계 적극 추천합니다’ 문자를 보냈다. 새아기가 사돈어른과 한 번 다녀가도 좋겠다. 돌아보니 부끄러웠다. 굳이 용기 낼 일도 아닌 것 같았는데 그동안 움츠려있었던 마음이 삶에 대한 집착처럼 보여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타보니 별것 아니더라며 타보기를 권해봐야겠다. 시간 내어 집라인 탄 경험을 시로도 반드시 남겨둬야겠다.
집라인에서 내린 우리는 용기백배하여 대리석 미끄럼틀도 타러 갔다. S자로 굽이 도는 미끄럼틀 길이가 120m와 90m로 이어져 있었다. 내려가다가 앞사람과 닿을 것 같으면 두 발로 브레이크를 잡고 속도를 줄였다. 엉덩이 치마 같은 미끄럼 옷을 입고 타는데 다리 부분에 천을 대어 끈으로 양쪽 다리를 묶었더니 미끄럼틀에서 내려올 때마다 끈이 위로 치올라져 다리를 조여 좀 아팠다. 그래도 모래산 위 꼭대기에서 모래 썰매를 탈 때보다 더 재미있었다. 마치 미션 게임인 양 슬슬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는데 게임은 끝이 났다. 무지개 광장에 앉아 잠시 쉬다가 유람선을 타고 돌아 나왔다.
호텔에서 저녁을 먹고 돌아와 가이드님과 신 여사를 대동하고 호텔 근처 과일 가게로 갔다. 오늘 저녁에 가이드님과 신 여사에게 감사 편지를 드릴 이벤트를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유자 한 덩이 3천 원, 매론 한 덩이 4천 원, 큰 귤 7개 합쳐 10달러를 내었는데 달러는 받지 않는다고 해서 가이드 카드로 대금을 내고 과일을 잘라주어 통에 담아 나왔다. 우리 방에 모여 신 여사에게 이번 여행을 추진한 데 대한 감사 편지와 장미꽃 한 송이를 전했다. 그다음 가이드님께는 남편이 중국어로 쓴 편지와 내가 영어로 쓴 감사 편지를 전하며 장미꽃 한 송이도 함께 전했다. 평생 감사 편지를 받으며 살아온 우리에게는 감사 편지가 그 어떤 선물보다 뜻깊은 선물이라 여겨지기에 우리가 받으며 느껴온 마음을 두 사람에게도 전하고 싶었다. 내일 아침은 가이드님과 함께 호텔 건너편 식당에 가서 중국 고유의 만두를 먹어볼 생각이다
4월 19일 금 <사석화 박물관과 김순옥 여사의 72회 생신 이벤트>
아침 8시쯤, 커튼을 젖히고 데이즈 호텔 21층에서 내려다보니 건너편에 대용소학교가 보였다. 옆에는 유치원도 보였다. 아이들의 등교 시간인데 어떤 아이들은 학교 앞에 일렬로 나와 서 있고 경찰차도 와 있었다. 우리가 교장으로 근무할 때를 생각하면 학교에서 무슨 캠페인 활동을 할 때 경찰과 합동으로 하던 일이 떠올랐다.
“여보, 저들도 아침에 무슨 캠페인을 하는 것 같아요. 자연보호 켐페인일까요? 바른 말 고운 말 쓰기 캠페인일까요?”
내가 저 학교 교장이었다면, 지금쯤 커피 끓여 들고 나가 차 한 잔씩 나누고 있었을 게다. 교문에서 등교하는 아이들 맞으며 하이 파이브 하던 때, 퇴임식 날 전교 교실을 돌며 아이들과 악수 나누던 때 등, 아, 내게도 그런 소중한 추억이 있었네! 그나마 지금도 내가 행복한 까닭은 내가 요양원에서 내다보고 있지 않고, 여행하러 와 내다보고 있으니, 오늘 하루에 감사해야지!
아침을 호텔에서 간단히 먹고 8시 30분에 가이드님을 만나 건너편 만둣집으로 갔다. 만터우(꽃방)은 한국에서도 먹어본 터라 패스, 훈트는 후루룩 육수에 넣어 먹는 작은 만두라 패스, 딤섬은 차랑 함께 기름진 것을 먼저 먹고 뒤에 달달한 것을 먹는 것인데 패스. 우리는 바오쯔(왕만두)와 짜오즈(물, 찐, 군)만두와 비슷한 쫑 짜오즈를 시켰는데 만두 속에 든 고기가 별맛이 없었고 그나마 샤오롱(작은 대나무 찜통)에서 쪄낸 샤오롱바오 맛이 괜찮았다. 우리가 만두를 대충 맛보고 가이드님은 식사 대용으로 간단하게 먹었다. 낮에 일행들과 같이 맛보려고 만두 두 종류를 사 들고 나왔다.
그리고 사석화 박물관으로 갔다. 이군성 화백이 돌과 모래를 섞어 산수화를 그린 미술작품을 전시하고 있었는데 대문을 열고 내다보면 보이는 풍경을 그려놓고 그림 앞쪽에 대문을 달아두었단다. 평소에는 대문을 닫아두었다가 그림을 보려면 대문을 열어야 하는 액자 형태로 소꿉놀이하듯 그림을 열어보면 재미있겠다. 그림보다 고풍스러운 대문 한 짝이 탐이 났다. ㅎㅎ
남편도 그림을 계속 그렸으면 좋겠고, 나도 그림을 배우고 싶은 마음이 다시 불쑥 치솟아 오르는데 내 삶의 길이를 가늠해 보니 그 또한 욕심 같아라. 주위의 물건들만 하나둘 버리며 정리할 것이 아니라 마음의 과욕 평수도 줄여나가며 허리 건강부터 챙겨야 현명하겠지? 그래, 글 쓰는 일이나 더 충실하게 잡고 살다 가야지.
박물관을 나와 이른 점심을 먹으러 호텔 식당에 갔다. 여기서 우리 일행 김순옥 여사의 생신 축하 이벤트를 열었다. 아침에 사 간 만두를 식당 탁자에 놓고 생신 축하 헌시를 읽었다.
“이 시는 중국 국민화가 오관중의 그림 상단에 백설석씨가 시로 덧붙인 내용을 인용해 김순옥 여사님의 생신 축하 헌시로 가져왔습니다.” 하면서 헌시를 읽었다.
<한줄기 등나무는 넓고
(한 줄기 등나무처럼 허리 휘어지는 세월)
많은 들녘 지나
(그 많은 세월의 들녘을 지나와)
눈 봉우리를 향하고
(잘 키워온 자식을 바라보노라면 오롯이 경이롭게 바라보는 눈 봉우리 같아라)
그 품은 뜻을 헤아려 보노라
(눈 봉우리 같은 자식을 품은 부모의 마음을 헤아려보며
고귀하게 살아오신 한국의 어머니 像을 기립니다.) >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우리는 4박 5일간 중국 장가계에서
집라인을 함께 타며 하늘을 날아온 인연으로 님의 생신을 축하드립니다.
부디 휘어진 허리 바로 펴셔서 남은 여행 같은 여정을 함께 즐기는
친구 되시길 소망합니다.
2024년 4월 19일 대구에서 여행 온 이재진, 박경선
가이드님은 우리가 도착해서 차에서 내릴 때 김여사의 걸음걸이를 유심히 보더니 지팡이를 사서 선물해서 편하게 짚고 다니게 하고 템포도 늦추어 천천히 다니게 배려하였다. 그게 생신 선물이 되겠다. 축하 박수를 보낸 뒤, 생신 축하 노래도 불러드리고 싶었는데 식당에 다른 사람들이 있어 조용히 동태찌게만 먹었다. 주로 현지식을 먹어보고 싶었는데 거의가 한식 일색이었다. 식사 후 한국으로 가기 위해 대용공항으로 갔다.(39쪽)
돌아와 여행 후기를 하나투어 홈페이지에 올리며 다른 사람들이 쓴 칭찬의 소리를 읽어보니 대부분 한두 줄 인사 치례의 소리를 적어두었다. 나는 진정성을 담아 2800자 후기를 <하나투어 사장님 전 상서>라고 올렸다. 그리고 서울 본사 사장님께 감사 사신도 따로 보내었다. 우리가 CEO로 살아봐서 아는데, CEO와 부하직원을 칭찬해 주는 글은 CEO들에게도 힘이 되니까. 그런데 내 편지를 받은 본사 사장님은 답례로 상품권과 손 편지를 보내오셨다.
그나마 오늘 하루에 감사해야지! 지금 내가 요양원에서 내다보고 있지 않고, 여행 와 내다보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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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후기 잘 읽었습니다
짚라인 저두 용기내어 타보고 싶네요
대리석 미끄럼도 어떤지 궁금하구요~♡
교장선생님의 재미난 표현들로 제가 간접 장가계여행 잘했습니다~♡
아휴, 선생님, 한마디 댓글에도 힘이 납니다. 고맙습니다.
도전하는 자만이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좀 거창한 말인가요? 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