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수의 소야곡 / 남인수
38년 1월 OKEH레코드사의 신보로(이노홍 작사, 박시춘 작곡) 출반 되었다. 이노홍(李蘆鴻)은 이부풍(李扶風), 강영숙(姜英淑) 등의 필명을 쓴 가요작가이며 본명이 박노홍(朴盧洪)이다. 32년도에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부에 입선했고, 조선일보에 이고려(李高慮)라는 이름으로 장편소설이 당선 되어 글을 쓰기 시작했고, 가요작품으로는 ‘나는 열일곱살', ‘날나리 바람', ‘아이고나 요 맹꽁', ‘해조곡'등을 썼다. 이 곡은 남인수가 강문수라는 이름으로 씨에론 레코드사에서 데뷔곡으로 취입한 '눈물의 해협'과 같은 멜로디에 가사와 제목을 바꿔서 취입하여 크게 힛트한 곡이고, 남인수를 톱가수의 자리로 올려 놓은 곡이다. 그리고 남인수가 타계했을 때 장송곡으로 이 노래가 쓰였다고 함. 그리고 이 노래의 노래비가 지금 서울 드림랜드 내에 있음. 38년 OKEH 레코드 SP 12080-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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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집힌 풋사랑 / 남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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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3월 OKEH 레코드사에서 출반 된 곡이다. 조명암 작사, 박시춘 작곡으로 발표 되었는데 이 노래를 기점으로 ‘조명암- 박시춘- 남인수' 의 명 콤비가 탄생되었다. 이 노래는 곧 화류계의 여성들에게 널리 퍼져 유행했다고 하는 데 이들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면서 이 노래를 많이 불렀다고 하고, 어느 기생은 이 노래를 듣고 자살했다는 일화까지도 있다. 남인수의 노래 중 따라 부르기가 가장 어려운 노래이고, 기교가 많이 들어간 노래이기도 하다. 38년 OKEH레코드 SP 12110-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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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격시대 / 남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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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4월 역시 OKEH 레코드에서 임시발매로 출반 된 곡이다. 강해인 작사, 박시춘 작곡으로 강해인(姜海人)은 '굳세어라 금순아','아리랑 목동','서귀포 사랑'등의 작사가로 잘 알려진 가요작가 강사랑(姜史浪)이다. 이 노래는 친일가요니, 애국가요니 여러쪽으로 해석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단순히 가사 내재적으로 해석을 하면 아무런 친일 혐의도, 애국적 내용도 없는 단순히 청춘을 구가한 노래이고, 이 노래가 발표될 무렵은 군국가요가 생겨나기 전이다. 그냥 대중들이 즐겨부르는 유행가 정도로 해석을 하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이 곡은 빠르고 경쾌한 리듬에 참신한 분위기로 그 당시 가요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 주었던 곡이라고 한다. 39년 OKEH레코드 SP- 12237-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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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며 헤진 부산항 / 남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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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1월 OKEH 레코드사의 신보로 출반 된 곡이다. 역시 ‘조명암-박시춘-남인수' 콤비의 역작이다. 이 콤비가 발표한 노래들은 '눈오는 네온가', '기로의 황혼', '항구일기', '청춘일기', '서귀포 칠십리', '청춘야곡','항구마다 괄세드라'등 많은 곡들이 일제시대에 힛트를 했다. 이 노래는 항구에서의 이별을 소재로 한 대표적 노래이기도 하다. 참고로 이 노래는 1976년에 '눈이 큰 아이'로 유명한 남성 듀엣 "버들피리"라는 듀엣 팀이 '고향의 정'이란 제목으로 개사하여 불렀던 적이 있는 노래이다. 40년 OKEH레코드 SP- 20006-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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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유수 / 남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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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6월 OKEH 레코드사의 신보로 출반 된 곡이다. 조명암이 작사하고 '목포의 눈물'로 유명한 이난영의 친 오빠인 이봉룡 작곡으로 1942년도 최고의 힛트곡이라고 전해진다. 그리고 후대에 이 '낙화유수'의 앞 소절을 따서 남인수와 이난영의 사랑이야기를 그린 영화가 1969년도에 조길현 감독, 김진규, 문정숙 주연의 '이 강산 낙화유수'라는 제목으로 상영 되었다. 42년 OKEH레코드 SP- 31110-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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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거라 삼팔선 / 남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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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해방이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문을 열었다던 고려(KOREA)레코드사에서 출반 된 곡이다. 실제로 무대에서는 먼저 불러졌고 힛트한 것 같으나 음반상으로는 48년 6월 이후에 광고가 보이니, 음반이 좀 늦게 출반 된 모양이다. 그리고 이 당시에 국산레코드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이 극히 열악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 일수도 있다. 실제로 해방이후부터 6.25전까지 나온 음반이 극히 드물고 품질 또한 좋지 않아 지금 현재 이 시기에 나온 SP음반들이 상당히 희귀하다. 그러나 이 시기에 힛트한 곡들이 가요사에 있어서 굵직 굵직 한 곡들이 많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부풍 작사, 박시춘 작곡으로 해방 이후 남인수의 첫 힛트곡이고, '달도하나 해도하나'와 함께 남북분단의 아픔을 다룬 대표적 작품이다. 48년 고려(KOREA)레코드 SP- 1007(-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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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부산정거장 / 남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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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유니버샬 레코드사에서 발표된 곡 이다. 휴전 후 지긋지긋한 부산의 피난생활을 접고, 귀향하는 풍경을 사실적으로 잘 그려낸 곡으로, 그 당시의 풍경을 잘 볼 수 있다. 남인수는 이 노래를 기점으로 50년대에 계속해서 '무정열차', '울리는 경부선' 등으로 이어지는 경부선 씨리즈를 계속 발표하여 힛트 하였다. 호동아 작사, 박시춘 작곡으로 호동아(胡童兒)는 극작가 겸 가요작사가 인 유호(兪湖)의 필명이다. 유호 는 '비나리는 고모령', '신라의 달밤', '삼다도 소식', '길 잃은 철새', '떠날 때는 말없이'등의 주옥 같은 가요가사를 70년대 까지 많이 남겼다. 54년 유니버샬 레코드 SP- P 10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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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소야곡 / 남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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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현 지구레코드사의 전신격인 빅토리 레코드사에서 SP음반으로 출시 되었다. 남인수의 고향인 진주에서 지병인 폐병으로 투병중임에도 불구하고 '동백 아가씨'의 작곡가로 유명한 백영호의 간청하여 취입한 곡으로 작곡가 백영호의 출세작이 되었다. 실제로 남인수의 전성기때의 힘찬 목소리로 취입이 되어 많은 인기를 누렸으나, SP시대에서 LP시대로 넘어오면서 이 노래만은 남인수의 목소리로 취입되질 못했고, 이청봉(남강수)의 목소리로만 들을 수가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는 SP 원음으로 남인수의 우렁찬 목소리를 들어 볼 수 있다. 한산도 작사, 백영호 작곡 55년 빅토리 레코드 SP - M 74-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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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유화 / 남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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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오아시스 레코드사에서 출반된 노래이다. 반야월 작사, 이재호 작곡으로 남인수가 한국의 슈베르트라 불리우던 이재호 와 처음 콤비가 되어서 나온 곡이다. 이 노래는 '목포의 눈물', '황성옛터'와 더불어 작품성으로 우리나라 가요의 3대명곡 중의 한 곡으로 불리고 있으며, 가요 작곡가 이재호가 순수음악인 못지 않은 실력가 였음을 과시하는 동시에 경탄을 자아냈던 유명곡으로 많은 팬들의 격찬을 받았던 곡이라 한다. 56년 오아시스레코드사 SP 발표 (?)/ 5?년 오아시스 10인치 레코드 발매- OL 104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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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사랑탑 / 남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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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말 킹스타 레코드에서 출반된 노래로서, 10인치 LP로 “往年의 歌手 新曲發表”라는 타이틀로 한 음반에 수록된 노래이다. 여기서 ‘往年의 歌手'란 일제시대때 유명했던 가수들 남인수, 황금심, 백난아, 김정구 네 사람이고 그들의 신곡을 담은 디스크이다. 이 노래는 1960년대에 남인수가 타계하기 얼마전에 발표 되었다는 말도 있고, 58년도에 발표 되었다는 말도 있는데, 어느 것이 정확한 것인지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실질적으로는 남인수의 마지막 힛트곡이었다. 5?년 킹스타 SP음반 출시, 킹스타 10인치 레코드 - KSM 10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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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해협 / 남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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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8월 당시에 비교적 군소 회사인 씨에론 레코드사에서 발표된 곡으로 김상화(金尙火)작사, 박시춘 작 편곡, 기타반주에 박시춘이 직접 하였고, 남인수가 강문수란 본명으로 취입한 남인수의 데뷔곡이다. 이 노래가 바로 우리가요의 불세출의 명곡, 남녀노소 모르는 분이 거의 없을 정도로 유명한 '애수의 소야곡'이다. 이 노래가 발표되고 처음에는 별다른 힛트는 하질 못했으나 2년뒤 작사자 이부풍이 가사를 다시 붙이고 제목도 바꾸어 '애수의 소야곡'이란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고, 공전의 힛트를 거두었다. 그리하여 남인수는 대형가수로 군림하게 된다. 이 '애수의 소야곡'의 힛트를 틈타 일본의 고라이 레코드사에서도 '눈물의 해협'이란 제목으로 음반으로 발표 되었고, 씨에론 레코드사에서도 이 예전에 취입하였던 이 '눈물의 해협'을 시중에 다시 재발매 하기도 하였다. 36년 씨에론 SP레코드- 20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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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접살이 풍경 / 남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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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년 9월 OKEH레코드사에 발표 되었다. 조명암이 작사하였고 일본인 大久保德二郞이 작곡한 노래이고, 남인수와 이난영이 함께 듀엣으로 신혼생활의 에피소드를 주제로 한 재미있는 노래이다. 실제로 이 노래의 사실적인 가사의 내용과 중간의 남 녀의 대사 내용에서 일제시대 때의 생활상을 직접 엿볼 수 있어서 더욱 흥미로운 노래이다. 이 노래는 60년대 아세아 레코드사에서 남성 4중창단 쟈니부라더스와 여성 듀엣 아리랑씨스터즈의 합창으로 다시 불려 지기도 했는데, 그 때 양상포 작사/ 손목인 작곡으로 표기되어 원작자가 잘 못 표기되기도 하였다. 38년 OKEH레코드 SP 12165-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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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의 황혼 / 남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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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11월 신보로 OKEH 레코드사에서 출반 되었다. 조명암 작사/ 박시춘 작곡으로 발표 된 이 노래는 인생과 사랑, 타향살이에 대한 허무적이고 비탄적인 가사가 남인수의 애잔한 목소리와 잘 어울린다. 이 노래는 해방이후 50년대에 추미림(반야월)이 가사를 일부 개작하여 남인수가 다시 재취입 발표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노래는 60년대 발족한 방송윤리위원회가 지정한 ‘방송 금지 번호 제 1호'라는 불명예를 쓴 곡이다. 65년 3월 1일부터 방송윤리위원회는 '기로의 황혼'을 시작으로 월북한 작가의 작품이나 왜색가요, 저속, 퇴폐, 표절 가요 등을 골라내어 88년 대량 해금 되기 까지 국내가요곡 830여곡을 금지곡 목록에 올려 놓았다. 지금은 거의 모든 곡들이 해금이 되어 자유롭게 듣고 부를 수도 있게 되었다. 지금 이 '기로의 황혼'도 마찬가지이고, 원작자의 지위도 회복 되었다. 38년 OKEH레코드 SP 12175-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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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같은 내 마음 / 남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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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비극 한국전쟁 발발 1년전, 1949년 7월에 작곡가 이봉룡, 남인수 등이 차린 아세아레코드사에서 발매된 노래이다(이 아세아 레코드사와 60년대 이후의 아세아 레코드사와는 다른 회사임). 김초향 작사, 이봉룡 작곡으로 남아의 큰 포부를 노래에 모두 실은 듯한 남인수의 열창이 돋보이는 노래이다. 당시 광고 문구에는 “盛夏!! 아세아의 快擧!! 歌兒 南仁樹의 힛트 第二發” 이라는 문구와 함께 '여수야화'라는 곡과 함께 광고를 실었다. 그러나 불과 1년뒤에 전쟁이 일어났고, 이 곡은 묻혀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전쟁 후 50년대 말 작사가 김영일이 개사하여 송민도가 '나도 몰라요'라는 제목으로 다시 취입하였고, 한 참 후인 87년 당대 최고 가수 조용필이 이 노래를 다시 '사나이 결심'이라는 제목으로 리바이벌 하였다.(이때는 유호 작사로 발표) 명곡은 역시 계속 되물림하는 모양이다. 49년 아세아 레코드 SP 발매- 음반번호 1003-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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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의 꽃수레 / 남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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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후 55년 경 유니온 레코드사에서 발매가 되었다. 남인수의 노래 중 잘 알려지지 않은 노래 중의 하나이다. 60년대 ‘엄토미와 리듬에이스'를 이끈 엄토미의 작곡인데, 이 악단의 전신격인 ‘토미 뺀드(토미와 그 악단)'이 이 노래를 반주하였다. 엄토미는 모니카 유(본명-유인경)와 결혼하였고, ‘엄토미와 리듬에이스'를 이끌고 많은 외국 곡들을 편곡, 혹은 우리나라의 곡을 째즈로 편곡 연주하였는데, 실력이 대단했다고 한다. 이봉조, 길옥윤, 김인배 등과 함께 60년대의 대표적 연주 주자였다. 손석우 작사/ 토미 작곡 55년(?) 유니온 레코드 SP 발매- K 2501, 상신 레코드사에서도 발매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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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 / 남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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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7년경에 오아시스 레코드사를 통해 발표되었다. 반야월 작사, 이재호 작곡으로 한국의 슈베르트라 불리던 이재호의 격조 높은 멜로디에 성악가 안기영을 찾아가 발성연습까지 익혔다던 남인수의 목소리와 잘 어울려 '산유화'와 함께 한 편의 클래식을 듣는 느낌을 주는 곡이다.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라는 말이 있다. 이 작곡가 이재호도 이 곡을 작곡하고 얼마 후 1960년도 에 타계했고, 남인수도 얼마 후에 타계를 했다. 57년(?) 오아시스 레코드 SP 발표(?)- 5?년 오아시스 10인치 레코드 발매 OL 104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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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진정 몰랐구나 / 남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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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래는 1958년경에 SP 음반으로 출반 되었을 것 같으나, 이 음반은 매우 희귀해 아직 SP음반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남인수가 타계하고 난 뒤인 1960년대 SP음반으로 취입해 놓은 마스터를 발견하여 케네디 레코드사에서 이를 인수하여 64~5년경에 12인치 LP음반으로 발매 한 것 으로 보인다. 이 음반에 수록된 12곡 모두 범상치 않은 곡들로 채워져 있으며, 이 12인치 LP음반도 잘 보이질 않아 남인수 관련 LP음반 중 가장 귀한 음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강사랑 작사/ 이봉룡 작곡으로 발표 되었다. 58(?)년 SP음반 발표- 65년 케네디 레코드 12인치 발매- KL 10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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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정거장 / 남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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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년 경 신태양 레코드사에서 발매된 음반에 수록 되어 있다. 10인치 LP로는 ‘신태양 가요앨범 9집'이란 타이틀을 단 디스크에 수록이 되었는데, 신태양 레코드사는 한복남이 운영했던 도미도 레코드사와의 관계가 의문 스럽기는 하지만, 아마 두 회사가 같이 공존 했었던 것 같다. 선우영 작사, 한복남 작곡으로 애수를 띈 폭스트롯트 리듬으로 50년대말 비가 주룩 주룩 내리는 쓸쓸한 정거장 주변의 풍경을 잘 묘사하였다. 5?년 신태양 레코드 10인치 발매- LS 112/ 66년 도미도 레코드 12인치 발매- LD 1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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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의 깃발 / 남인수, 학생합창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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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4월 19일 자유당 독재 정권을 타도하는 전국적인 대규모 학생시위에서 희생된 학생들의 넋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만든 노래이다. 반야월 작사, 박시춘 작곡으로 남인수와 학생 합창단이 함께 불러 그 엄숙하고 경건한 분위기를 더 해주는 노래로 60년 미도파 레코드사에서 SP음반으로 발매 되었다. 4.19의거를 소재로 한 가요는 실제로 당시에 많이 창작되었다. 손인호의 '남원땅에 잠들었네', 차은희의 '4월의 별', 박애경의 '어머님은 울지 않으리', 박재홍, 안정애 등 4명의 합창으로 취입 된 '4.19 행진곡'등 많은 곡들이 있다. 그리고 앞서 소개해 드렸듯이, 남인수는 일제 말기때의 군국가요, 해방 후 민족의 분단의 아픔을 노래한 '가거라 삼팔선','달도 하나 해도 하나', 그리고 6.25전쟁과 피난생활, 그리고 전후 암울했던 사회상을 반영한 노래, '이별의 부산정거장', '어린 결심', 그리고 4,19 혁명을 소재로 한 이 노래.... “대중가요는 바로 역사의 거울이다”라는 말을 새삼 실감케 한다. 남인수의 노래를 시대별로 듣고 있으면 격동의 현대사의 주요 사건들이 모두 반영 되어 한 편의 현대사를 읽는 느낌이 든다. 60년 미도파 레코드 SP 발매 - M 61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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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감아 드리오리 / 남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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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년도에 아세아 레코드사에서 취입하였다. 반야월 작사, 이봉룡 작곡이다. 이 노래는 아세아 레코드사에서 발매된 10인치 LP ‘농부의 자유천지'라는 황국성의 노래를 타이틀로 하여 발매 되었다. 그러나 이듬해 남인수가 타계하고, 전국적으로 반향을 일으키고 있을 때 아세아 레코드사 측에서도 부랴 부랴 이 음반의 자켓 타이틀을 바꿔 ‘남인수의 마지막 취입곡- 눈감아 드리오리'라는 제목으로 다시 출반 하기도 했다.(아세아- AL No. 6). 남인수 마지막 취입곡으로 알려져 있다. 이 노래처럼 정말 남인수도 눈을 감은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61년 아세아 레코드 10인치 발매- AL No.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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