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나무 수피를 본다. 무얼 이야기할까? 나무가 탈 때 자작자작 소리가 나서 자작나무, 흰 수피에 연애편지를 써서 보내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 러시아, 닥터 지바고, 백석의 시 자작나무?
자작나무(白樺) / 백석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 산도 자작나무다
그 맛있는 모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다
그리고 감로같이 단샘이 솟는 박우물도 자작나무다
산 너머는 평안도 땅도 뵈인다는 이 산골은 온통 자작나무다
대부분 아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럼 이런 건 어떤가?
어느 분이 네이버 지식에 물었다.
“화순이 자작나무 생육지로 적합한가요?”
두 개의 답만 골라본다.
“자작나무는 강원도처럼 추운 지방에 적합합니다. 화순은 너무 따뜻한 지방이라 자작나무 생육지로 적합하지 않습니다.”
“화순은 자작나무 생육지로 적합하지 않습니다
자작나무 생육지 : 금강산 이북의 높이 200∼2,100m에서 자라는데 중심 분포지는 높이 800m가 된다. 산복(山腹) 이하의 양지에서 군집을 형성한다. 토양습도는 낮아도 잘 자라나 토양 중 산소량을 많이 요구하며, 비옥도도 높은 것을 좋아한다. 추위에 강하나 충분한 햇빛을 좋아하는 극양수(極陽樹)이며, 해변에서는 잘 자라지 못한다.“
이것도 자작나무에 조금만 관심이 있으면 알 것이다.
다음은 조경수 사이트 안내문이다.
“수피가 백색으로 매우 관상가치가 높은 수종입니다. 공해와 추위에 매우 강하며 나무껍질이 아름다워 정원수·가로수·조림수로 심습니다.”
산에 있어야 할 나무가 도시에서 잘 자랄 수 있다고 한다. 잘 자라는 나무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못한 나무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이런 걸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도시에 살기 위해 진화 중입니다>에 ‘도시 생태학’이란 말이 나온다. 도시에 있는 생물들이 살기 위해 도시와 상호작용하면서 진화 과정을 밟아간다는 것이다. 도시도 하나의 자연 구성물이 되는 것이다. 이는 주로 인위에서 비롯되는 것들이다. 그렇게 볼 때 산에 있는 자작나무는 행운이고, 도시에 온 자작나무는 살기 위해 분투해야 하는 운명을 가진다. 막 던져보는 생각들이지만, 우리도 누군가에 의해 다른 운명에 처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이런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자작나무, 편지를 거론하다가 책이 영어로 book이고, 이 말은 너도밤나무(Beech)에서 유래했다는 것 말이다. 유럽에서는 너도밤나무 껍질에 글자를 새겼다고 한다. 즉 너도밤나무가 종이가 된 셈이고, 실제로 종이가 나오면서 구분이 필요해서 beech를 변형해 book이 되었다는 이야기? 그러면서 막 책 이야기 하면 싫어하겠지? 게다가 글쓰기까지 말하면?
그럼 자작나무 연애편지는 왜 꺼낼까? 막 던져본 생각, 언젠가 다듬어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