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 공격의 오류와 동네북이 된 억울한 플라톤>
논리와 비판적 사고를 공부하다 보면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라는 개념이 나온다. 사람들이 범하는 여러 논리적인 오류들 사이에 하나를 지칭하는 이름이다.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란 어떤 사람의 사상이나 말을 비판하거나 지적할 때, 그 사람의 사상이나 말을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나 그 말의 진정한 의미를 비판하거나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이 의미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나 다른 사상을 만들어 놓고서 즉 <허수아비>를 만들어 놓고서 그것을 공격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 같은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는 철학논문을 쓸 때, 자신이 지지하는 사상의 가치나 참됨을 증명하기 위해서 유사한 사상이나 대립하는 사상을 비판할 때 자주 범하는 오류이기도 하다. 그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가 플라톤의 <예술가>에 대한 비하를 공격하는 것이다. 이 경우 의도적이기도 하고, 혹은 무지에 의한 것이기도 하다.
아래 사진의 내용은 한 철학 논문에서 논의되고 있는 철학자의 사상을 들어올리기 위해서 플라톤의 사유를 비판하면서 그 근거를 주석에서 제시하고 있는 부분이다. 이것은 대표적인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 중 하나라고 생각하여 예로서 제시하고자 한다.
위 논자는 플라톤이 현실을 모방하는 ‘예술가’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면서 “제작물의 제작자”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모방술이 열등하다는 플라톤의 말을 제시한다. 그리하여 서정시나 서사시를 말하면서 “시를 나라에서 추방하여야 한다”라는 플라톤의 말을 제시한다. 사실상 대다수의 근, 현대 예술론을 논하는 저자들이 예술가들을 띄워주기 위해서 상투적으로 위의 플라톤의 예술가(시인) 추방론을 먼저 언급하고 비판을 한다. 플라톤의 근, 현대 미학자들에게는 일종의 동네북이 된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번역과 진술에는 심각한 ‘오류’ 내지는 ‘모호함’이 끼어들어 있다. 이 글만 보면 플라톤은 “예술가”를 비하하고, “시를 추방하여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이는 사실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 우선 예술가라는 표현이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왜냐하면 뒤이어서 ‘제작물의 제작자’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만일 제작물의 제작자라면 이는 예술가가 아니라 ‘장인’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현대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장인’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올바른 표현일 것이다. 왜냐하면 플라톤이 살았던 희랍 시대에는 엄밀히 말해 오늘날 우리가 “화가”나 "음악가"라고 부르는 예술가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예술 혹은 예술가라고 하면 당장 떠오르는 것이 ‘음악’ ‘미술’ 그리고 ‘음악가’ ‘화가’ 등이다. 하지만 서양에서 유화가 처음 나타난 것은 15세기 ‘르네상스’때 이고, 중세 때의 그림은 주로 ‘템패라’라고 불리는 안료로 벽화그림을 그린 것이 전부이다.인류 역사상 최초의 악보가 등장한 것은 중세 중기의 수도원에서이다. 음악사가들은 중세 수도자들이 고안한 ‘그레고리안 성가’의 악보를 인류최초의 음악악보로 보고 있다. 고전음악이라는 클레식 음악이 시작된 것은 바로크 로코코 시대인데 이는 르네상스 시대에서이다. 따라서 플라톤 시대에는 나아가 중세시대에는 오늘날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화가나 음악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기껏 거실을 장식하는 벽화 그림을 그린 장인들이나, 신전에서 찬송하는 찬송가를 만든 사람들이 곧 예술가라는 사람들이었다. 논리적으로 역사-문화적 맥락에서 플라톤이 말하는 예술가란 사실 ‘테크네(théqné)’ 즉 ‘공작 기술’을 사용하는 장인이나 기술자를 말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시를 추방해야 한다’는 표현이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플라톤 전공자들은 ‘시인을 추방해햐 한다’고 번역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시인’이라는 것은 오늘 날 우리가 알고 있는 ‘윤동주’나 ‘김소월’ 같은 시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오늘날의 ‘시’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럽 역사에서 오늘 날의 ‘서정시’나 ‘산문시’ 같은 것이 처음 등장한 시기는 중세의 중-후기로서, 당시 ‘베긴’이라고 불렸던 여성 신비가들의 저작들에서 처음 등장하였다. 희랍시대의 시란 ‘영웅의 일대기를 노래하는 장대한 서사시’인데 호메루스의 <일리아드 오딧세이>가 대표작이다. 이는 중국의 삼국지나 수호전 같은 것’이며, 여기서 ‘시인’이란 이 ‘서사시를 대중 들 앞에서 낭송하는 사람’을 말한다. 중세기에는 이러한 시인을 ‘음유시인’ 혹은 ‘방랑시인’이라 불렀다. 아마도 동양에서 이 음유시인들과 유사한 사람들은 대중들 앞에서 ‘삼국지 영웅들의 일화’를 노래하였던 중국의 경극배우에 해당할 것이다.
이들은 대중들 앞에서 영웅의 이야기를 장대하고 애절하게 노래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정의감이나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사람들로서 좀 심하게 말하면, 사람들로 하여금 감정을 자극하여 민족이나 국가에 충성을 하도록 한 선동가에 지나지 않았다. 오늘 날로치면 '국뽕요소'를 최대한 부각시키는 의용 시인들이라고 할 수 있다. 플라톤이 이같은 경극배우들을 나라에서 추방해야 한다고 역설했던 일은 어쩌면 당연하고 정당하다. 왜냐하면 이들은 대중들로 하여금 진리를 추구하도록 하는 대신에, 이들을 세뇌 시켜서 이데올로기를 가지도록 조장하였기 때문이다. 참고로 플라톤은 스승 소크라테스가 죽임을 당한 것은 예수가 사형선고를 받을 때처럼 바로 이 같은 무지하고 세뇌당한 대중들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플라톤의 <국가론>에 나오는 예술과 관련된 생각을 가급적 객관적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이 될 것이다. “‘참된 것(이상적인 것)’을 모방하는 진정한 예술을 추구하는 대신에 장식품 같은 것을 그리고 있는 장인들은 진정한 예술가에 비해 보다 덜 고상한 사람들이며, 감정팔이로 대중들의 눈을 가리고, 선동하여 대중들을 진리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선동꾼인 '음유시인'들은 국가에서 추방되어야 한다.”는 것이 될 것이다. 만일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면 플라톤의 생각은 오늘날 여전히 진실이고 진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 가끔 포스터모던적 사유나 좌파적 사유를 가진 사람들이 플라톤의 사상을 깎아내리기 위해 이렇게 그의 사상을 왜곡하고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를 의도적으로 범하기도 한다. 어떤 사상을 지지하고 비판하는가는 자유이지만, 비판하는 대상에 대한 분명하고 정당한 팩트를 먼저 정립하고, 그런 다음에 정당하게 비판해야 할 것이다. <허수아비공격의 오류>는 학문을 추구하는 학자에게 있어서 특히 철학자에게 있어서 가장 먼저 경계하고 피해야할 오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