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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집(燕巖集) 박지원(朴趾源)생년1737년(영조 13)몰년1805년(순조 5)자미중(美仲), 중미(仲美), 미재(美齋)호연암(燕巖), 연상(煙湘), 열상외사(冽上外史)본관반남(潘南)시호문도(文度)특기사항북학파(北學派) 실학자(實學者). 홍대용(洪大容), 박제가(朴齊家) 등과 교유
燕巖集卷之四 潘南朴趾源美齋著 / 映帶亭雜咏○詩 / 笠聯句
春夜集烟湘閣。賦笠得未字。以齒次自第一字。余丁巳。靑莊辛酉。冷齋戊辰。余遂先倡曰。
布弁周製歟。竹冠漢儀未。金華輸雅致。靑篛饒風味。白方畿吏愁。骨多麗朝貴。旁圓佛放光。中凸醫畵胃。結盟越人自。止門箕邦謂。以規不以矩。有經復有緯。蔽陽或異件。折風是常彙。雨冒紙類萆。塵刷毛肖蝟。成虧眞凡楚。精粗或涇渭。爵頰左綰瑚。儒頷雙緌緭。燥髹乘雨霮。緻膠藉火煟。獨整儼華葢。離立峙象魏。康莊動相觸。黎黔鬧若沸。仄影看卷荷。疏陰怳棠芾。共食礙堪嫌。如廁免何誹。王圻畵殊失。倭奴刻浪費。世傳集一倭人見笠好之。以爲刻也。國之巧工刻之。終不成云。 可加飯顆甫。寧資椎髻尉。帽妥仕堪詫。簪支老難慰。襯壁倚不便。過楣觸可畏。比邱圓覆盂。優婆踈結罻。參座圍岌嶪。觀塲簇蓊蔚。半挫俠故喜。太博矮所諱。達官儼朱線。新壻姣黃卉。不稱士冠鷸。寧屑女髢狒。達可鬃而鞾。窮可氈而屝。耽羅薄於蜩。高麗染如翡。纖彩旭滿眶。圓影午壓腓。夕簷蒙蝣蛛。秋塲戴跳蜚。平頂天穿補。玄規月蝕旣。金雀加優旃。玉鷺賜樂毅。額穹竹彎體。髻鬱紵泄氣。面覆睡暫悅。腋挾超詎欷。墨塗慰服禫。銀飾賀祿
。迅馳細嘯颸。閃睨潤纈霼。恐濕撑繩糾。惜汗套匣衣。岸腦則近蕩。貼額者若愾。頭顱苟不異。朋友可相乞。
연암집 제4권 / 영대정잡영(映帶亭雜咏) / 갓을 노래한 연구(聯句)
봄날 밤에 연상각(烟湘閣)에 모여 갓을 두고 시를 지었는데, 미(未) 자를 운자로 얻었다. 나이 순서로 첫 번째 운자를 시작하기로 했는데, 나는 정사(丁巳)생이고, 청장(靑莊 이덕무 )은 신유(辛酉)생이며, 영재(泠齋 유득공 )는 무진(戊辰)생이다. 내가 마침내 먼저 시구를 불렀다.
포변이 주 나라 때 만든 거면 / 布弁周製歟
죽관은 한 나라 때 의식일까 - 연암 / 竹冠漢儀未
금화모는 우아한 멋 다하고 / 金華輸雅致
청약립은 시골 멋이 넘치네 - 이덕무 / 靑篛饒風味
백방립은 경아전(京衙前)의 근심거리요 / 白方畿吏愁
골소다는 고구려에서 귀하게 여겼지 - 유득공 / 骨多麗朝貴
둥근 갓양태는 부처의 광배(光背) 같고 / 旁圓佛放光
볼록한 갓모자 의서(醫書)에 그려진 위 같네 - 연암 / 中凸醫畵胃
갓을 두고 맹약한 것은 월 나라 사람부터이고 / 結盟越人自
갓을 씌워 싸움 금지한 건 기자국을 말함이라 - 이덕무 / 止鬪箕邦謂
그림쇠는 썼으되 곱자는 쓰지 않았고 / 以規不以矩
씨줄에다 또 날줄로 베처럼 짰네 - 유득공 / 有經復有緯
패랭이는 혹 이상하다 하겠지만 / 蔽陽或異件
절풍건은 점잖은 부류에 속하지 - 연암 / 折風是常彙
비 오면 쓰는 갈모는 도롱이 비슷하고 / 雨冒紙類萆
먼지 털면 휘양은 고슴도치 닮았네 - 이덕무 / 塵刷毛肖蝟
성한 갓과 찌부러진 갓은 실로 범군과 초왕 같고 / 成虧眞凡楚
좋은 갓과 거친 갓은 때로 경수와 위수 같네 - 유득공 / 精粗或涇渭
벼슬아친 뺨 왼쪽에 산호 매달았고 / 爵頰左綰瑚
선비는 턱 양쪽에 비단 끈 드리웠네 - 연암 / 儒頷雙緌緭
옻칠 말리는 건 비 오고 구름 낀 날 틈타고 / 燥髹乘雨霮
아교로 붙이는 건 불기운을 빌려야지 - 이덕무 / 緻膠藉火煟
제 혼자 단정히 쓰면 영락없는 일산이요 / 獨整儼華蓋
나란히 서게 되면 마주 대한 상위 같네 - 유득공 / 離立峙象魏
큰길에서 걸핏하면 서로 부딪치니 / 康莊動相觸
백성들 시비하느라 물 끓듯 하네 - 연암 / 黎黔鬧若沸
비스듬히 그림자 지면 막 피려는 연꽃 보는 듯 / 仄影看卷荷
성글게 그늘 드리우면 그늘 우거진 팥배나무 같네 - 이덕무 / 疏陰怳棠芾
함께 식사할 땐 거치적거려 싫지만 / 共食礙堪嫌
측간에 갈 땐 벗어도 누가 비난하랴 - 유득공 / 如厠免何誹
왕기는 그림을 몹시 그르쳤고 / 王圻畵殊失
왜놈은 나무로 새기느라 힘만 빠졌네 - 연암 / 倭奴刻浪費
세상에 전하기를, 교역하던 한 왜인이 갓을 보고 좋아하면서 나무로 새겨야겠다고 여겨, 그 나라의 솜씨 좋은 장인이 나무로 새겼지만 끝내 완성하지 못했다고 한다.
반과산의 두보에겐 씌울 수 있어도 / 可加飯顆甫
상투 쫒은 위타에겐 어찌 도움이 되랴 - 이덕무 / 寧資椎髻尉
모자가 떨어진 걸 벼슬아친 자랑할 만하지만 / 帽妥仕堪詫
비녀를 지탱할지 노인을 위로하긴 어렵구려 - 유득공 / 簪支老難慰
벽에 붙어 기대기에 불편하고 / 襯壁倚不便
문미(門楣)를 지날 땐 부딪칠까 두렵네 - 연암 / 過楣觸可畏
비구승이 쓴 건 엎어 논 사발처럼 둥글고 / 比邱圓覆盂
우바새(優婆塞)가 쓴 건 얽어 논 어망처럼 엉성하네 - 이덕무 / 優婆疎結罻
좌중에 참석하면 주위를 산처럼 에워싸고 / 參座圍岌嶪
구경거리에 끼어들면 대숲처럼 무성하네 - 유득공 / 觀場簇蓊蔚
반쯤 파손된 갓을 협객은 일부러 애호하고 / 半挫俠故喜
갓 쓰고 너무 가까이 가면 난쟁이가 꺼려하지 - 연암 / 太博矮所諱
고관은 붉은 명주실로 감아 근엄하고 / 達官儼朱線
새 사위는 노란 풀로 엮어 어여쁘네 - 이덕무 / 新壻姣黃卉
선비에겐 물총새 깃으로 만든 관이 어울리지 않는데 / 不稱士冠鷸
여자들도 비비 털로 된 다리를 달가워하랴 - 유득공 / 寧屑女髢狒
영달하면 종립(鬃笠)에다 갖신이 합당하고 / 達可鬃而鞾
궁색하면 전립(氈笠)에다 짚신이 합당하지 - 연암 / 窮可氈而屝
제주도 갓은 매미 날개보다 더 얇고 / 耽羅薄於蜩
고려 때 갓은 비취새처럼 파랗게 물들였지 - 이덕무 / 高麗染如翡
섬세한 빛깔은 아침 해처럼 눈에 가득하고 / 纖彩旭滿眶
둥근 갓 그림자 정오엔 다리까지 덮치네 - 유득공 / 圓影午壓腓
저물녘 처마 밑처럼 거미나 하루살이가 뒤덮고 / 夕簷蒙蝣蛛
타작마당처럼 껑충대는 메뚜기를 머리에 이네 - 연암 / 秋場戴跳蜚
평평한 갓 천장은 하늘 구멍 메운 듯하고 / 平頂天穿補
검은 갓양태는 개기월식 같구나 - 이덕무 / 玄規月蝕旣
금작은 우전에게 더해졌고 / 金雀加優旃
옥로는 악의(樂毅)에게 내려졌네 - 유득공 / 玉鷺賜樂毅
이마가 꽉 조이면 죽사(竹絲)를 몸에 맞게 구부리고 / 額穹竹彎體
상투가 갑갑하면 모시로 하여 더운 기를 제거하네 - 연암 / 髻鬱紵泄氣
얼굴에 덮으면 잠시 잠을 즐길 수 있지만 / 面覆睡暫悅
옆에 끼고 담 넘자니 어찌 탄식이 나오지 않으랴 - 이덕무 / 腋挾超詎欷
먹으로 칠한 건 담제인(禫制人)을 위로하기 위함이요 / 墨塗慰服禫
은으로 꾸민 건 녹미 받음을 축하해서라네 - 유득공 / 銀飾賀祿餼
빨리 달리면 가는 휘파람과 서늘한 바람 일고 / 迅馳細嘯颸
갓 너머로 엿보려면 흐릿한 무늬 번지네 - 연암 / 閃睨潤纈霼
습기 찰세라 노끈으로 팽팽히 당겨 두고 / 恐濕撑繩糾
더럽혀질세라 갓집에 싸서 두네 - 이덕무 / 惜汚套匣衣
머리 뒤로 젖혀 쓰면 방탕해 보이고 / 岸腦則近蕩
이마 쪽으로 눌러 쓰면 성난 듯하네 - 유득공 / 貼額者若愾
머리 크기 다르지만 않다면 / 頭顱苟不異
친구 사이엔 빌려 줄 수도 있지 - 유득공 / 朋友可相乞
[주-D001] 갓을 노래한 연구(聯句) : 유득공의 《영재집》 권1에도 같은 제목의 시가 수록되어 있는데 자구상 약간 차이가 있다. 이덕무의 《아정유고(雅正遺稿)》 권1에도 같은 제목의 시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덕무가 지은 14구만 수록되어 있으며 역시 자구상 약간 차이가 있다. 연암이나 홍대용, 이덕무 등은 갓을 쓰던 당시 풍속에 대해 비판적이었으며, 갓을 개량해야 할 것으로 보았다. 《연암집》 권15 열하일기 ‘동란섭필(銅蘭涉筆)’과 홍대용의 《연기(燕記)》 건복(巾服), 이덕무의 《앙엽기(盎葉記)》 8 입당개조(笠當改造), 입폐(笠弊), 논제립(論諸笠) 등 참조.[주-D002] 봄날 …… 불렀다. :
《영재집》에 수록된 ‘갓을 노래한 연구’의 서문은 이와 조금 다르다. 즉 “경인년(1770) 봄에 선귤당(蟬橘堂 : 이덕무의 서실)에 모여, 박연암, 이무관(李懋官 : 이덕무)과 함께 미운(未韻)을 다 써서 지었다.”고 하였다. 시구의 말미에 연암이 지은 것은 ‘燕’, 이덕무가 지은 것은 ‘懋’, 유득공이 지은 것은 ‘惠’로 표시되어 있다. 이에 따라 번역에서 각 시구 말미에 ‘燕’은 ‘- 연암’으로, ‘懋’는 ‘- 이덕무’로, ‘惠’는 ‘- 유득공’으로 보충해 두었다.
[주-D003] 포변(布弁) : 상례(喪禮) 때 착용하는 것으로, 작변(爵弁)과 제도가 같으나 15승(升)의 베를 사용하며, 그 위에 환질(環絰)을 얹는다. 《禮記集說 卷48 曾子問》[주-D004] 죽관(竹冠) : 대나무 껍질이나 댓잎으로 만드는데, 사서(士庶)나 석도(釋道)가 주로 썼다. 언월관(偃月冠)과 고사관(高士冠)의 두 가지 식이 있다. 《朱子語類 卷91》[주-D005] 금화모(金華帽) : 금으로 만든 꽃으로 장식한 모자이다. 이백(李白)의 고구려(高句麗) 시에 “금화로 장식한 절풍모 썼는데, 흰말이 조금 멈칫거리며 빙빙 도네.〔金花折風帽 白馬小遲回〕” 하였다.[주-D006] 청약립(靑篛笠) : 푸른 조릿대로 만든 삿갓이다.[주-D007] 백방립(白方笠) : 방립(方笠)은 원래 서울의 아전들이 쓰던 모자로 검은색이었으나, 조선 중엽 이후 흰색으로 바뀌면서 상을 당한 사람들이 쓰는 것으로 되었다.[주-D008] 골소(骨蘇)는 …… 여겼지 : 골소는 고구려 때 귀인(貴人)들이 쓰던 고깔 모양의 모자로, 소골(蘇骨)이라고도 한다. 원문은 ‘骨多麗朝貴’인데, 《영재집》에는 ‘蘇骨麗朝貴’로 되어 있다. 원문의 ‘骨多'는 《주서(周書》 권49 〈이역열전(異域列傳)〉의 "骨蘇多以紫羅爲之"에서 부사로 쓰인 글자인 '多'까지 합하여 '骨蘇多'를 갓의 명칭으로 보아 생긴 오류인 듯하다.[주-D009] 갓을 …… 사람부터이고 : 《풍토기(風土記)》에 월 나라에서는 남과 처음 사귈 때의 예의로, 개와 닭을 잡아 제사 지내면서 “그대가 수레 타고 나는 갓 쓰고 있으면, 후일 만날 때 그대는 수레에서 내려 읍하라. 그대가 우산 쓰고 내가 말을 타고 있으면, 후일 만날 때 그대 위해 말에서 내릴 것이다.”라는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그 노래를 월요가(越謠歌)라고 한다. 《古詩紀 卷2》[주-D010] 갓을 …… 말함이라 : 우리나라 사람들이 싸움하기를 좋아하므로, 기자(箕子)가 우리나라에 와서 큰 갓과 긴 소매의 옷을 지어 입혀 백성들이 몸을 마음대로 활동하지 못하게 했으니, 이는 싸움을 금지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 《盎葉記 8 笠爲雨具》[주-D011] 그림쇠는 …… 않았고 : 둥글기만 하고 모가 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장자(莊子)》 병무(騈拇)에서 천하의 사물 중에 “둥근 것은 그림쇠를 쓰지 않고도 스스로 둥글고, 모난 것은 곱자를 쓰지 않고도 스스로 모났다.〔圓者不以規 方者不以矩〕”고 한 데에 출처를 둔 표현이다.[주-D012] 그림쇠는 …… 짰네 : 원문은 ‘以規不以矩 有經復有緯’인데, 《영재집》에는 ‘怪彼倭帽兀 鄙哉滿冠緯’로 되어 있다.[주-D013] 절풍건(折風巾) : 고구려인들이 즐겨 썼던 것으로, 중국에 들어가 한위(漢魏) 시대에 유행했다. 《北史 卷94 高麗傳》[주-D014] 먼지 …… 닮았네 : 휘양은 방한용 털모자로, 연암의 양반전에 “옷소매로 휘양을 닦고, 먼지 털어 털 무늬를 일으킨다.〔袖刷毳冠 拂塵生波〕”고 하였다.[주-D015] 범군(凡君)과 초왕(楚王) : 약소국인 범국(凡國)의 임금과 강대국인 초 나라의 임금처럼 형세가 판이하다는 뜻이다. 《장자》 전자방(田子方)에 초왕과 범군의 대화가 나온다. 범국은 세 번이나 망할 뻔했지만 그래도 범군은 참된 자아를 보존했는데, 초왕은 나라를 보존했어도 참된 자아를 보존하지는 못했다고 비판했다.[주-D016] 경수(涇水)와 위수(渭水) : 중국의 강 이름으로, 경수는 흐리고 위수는 맑다.[주-D017] 성한 …… 같네 : 원문은 ‘成虧眞凡楚 精粗或涇渭’인데, 《영재집》에는 ‘風欹醉登峴 雪覆翁釣渭’로 되어 있다.[주-D018] 산호 : 원문은 ‘瑚’인데, 《영재집》에는 ‘珀’으로 되어 있다.[주-D019] 상위(象魏) : 고대 중국의 궁궐문 밖에 마주 보게 세운 한 쌍의 건물이다. 그곳에 교령(敎令)을 현시(懸示)했다고 한다. 《周禮 天官 太宰》[주-D020] 제 혼자…… 같네 : 원문은 ‘獨整儼華蓋 離立峙象魏’인데, 《영재집》에는 ‘何物人笑齊 小加史證魏’로 되어 있다.[주-D021] 비스듬히 …… 같네 : ‘그늘 우거진 팥배나무〔棠芾〕’는 《시경(詩經)》 소남(召南) 감당(甘棠)의 ‘蔽芾甘棠’이란 구절에서 나온 말이다. ‘蔽芾’의 풀이는 주석가에 따라 구구하다. 여기서는 초목이 무성해서 그늘이 짙은 모양으로 새겼다. 원문은 ‘仄影看卷荷 疏陰怳棠芾’인데, 《아정유고》에는 ‘護髮峙娑婆 俯肩蔭蔽芾’로 되어 있다. 《영재집》에는 ‘卷荷’가 ‘荷卷’으로 되어 있다.[주-D022] 거치적거려 싫지만 : 원문의 ‘堪’이 《영재집》에는 ‘似’로 되어 있다.[주-D023] 왕기(王圻)는 …… 그르쳤고 : 명(明) 나라 때 왕기가 편찬한 《삼재도회(三才圖會)》에 갓이 잘못 그려져 있다는 뜻이다.[주-D024] 반과산(飯顆山)의 두보(杜甫) : 이백(李白)의 희증두보(戲贈杜甫) 시에 “반과산 정상에서 두보를 만났더니, 해가 정오라 머리에 삿갓 썼구려.〔飯顆山頭逢杜甫 頭戴笠子日正午〕” 하였다.[주-D025] 위타(尉陀) : 위타는 남월(南越)의 왕으로, 그 나라 습속에 따라 상투 머리를 하고 두 다리를 뻗고 앉아서 한(漢) 나라 사신 육가(陸賈)를 접견했다. 《說苑 奉使》[주-D026] 모자가 …… 만하지만 : 진(晉) 나라 때 맹가(孟嘉)가 9월 9일 중양절(重陽節)에 환온(桓溫)이 베푼 용산(龍山)의 연회에서 바람에 모자를 떨어뜨렸다는 고사를 말한 것이다. 《晉書 卷98 孟嘉傳》 그 이후 중양절에 높은 곳에 올라 모자를 떨어뜨리는 풍류가 생겨났다. 원문은 ‘帽妥仕堪詫’인데, 《영재집》에는 ‘巾妥仕頗矜’으로 되어 있다.[주-D027] 비녀를 …… 어렵구려 : 두보(杜甫)의 시 춘망(春望) 중에 “흰머리 긁적여 보니 더욱 짧아져, 전혀 비녀를 지탱하지 못하겠네.〔白頭搔更短 渾欲不勝簪〕”라고 한 시구를 말한 것이다.[주-D028] 우바새(優婆塞)가 …… 엉성하네 : 우바새는 속세에 있으면서 부처를 믿는 남자를 가리키는데, 거사(居士)라고도 한다. 원문은 ‘優婆疎結罻’인데, 《아정유고》에는 ‘頭陀疏結罻’로 되어 있다.[주-D029] 참석 : 원문은 ‘參’인데, 《영재집》에는 ‘赴’로 되어 있다.[주-D030] 반쯤 …… 애호하고 : 《사기(史記)》 권77 위공자열전(魏公子列傳)에 등장하는 후영(侯嬴)의 고사를 가리키는 듯하다. 후영은 비천한 문지기로서 다 떨어진 의관(衣冠) 차림으로 위 나라 공자 무기(無忌)의 수레에 선뜻 올라타고는 대연회에 참석했다.[주-D031] 갓 …… 꺼려하지 : 관장왜인(觀場矮人)이란 말이 있다. 난쟁이가 키 큰 사람들 틈에 끼여 구경거리를 보려 하나 잘 보지 못한다는 뜻이다. 제대로 보지 못해 식견이 얕은 자를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주-D032] 고관은 …… 어여쁘네 : 첫째 구는 갓 중의 극상품(極上品)인 진사립(眞絲笠)을 가리키고, 둘째 구는 초립(草笠)을 말한다. 원문은 ‘達官儼朱線 新婿姣黃卉’인데, 《아정유고》에는 ‘取輕鋪玄鬃 憐細編黃卉’로 되어 있고, 《영재집》에는 ‘達官’이 ‘高官’으로 되어 있다.[주-D033] 선비에겐 …… 않는데 : 《춘추좌씨전》 희공(僖公) 24년 조에 정(鄭) 나라의 자장(子臧)이 송(宋) 나라로 달아나서 물총새의 깃을 모아 만든 관〔鷸冠〕을 쓰기를 좋아했으나, 이 소문을 들은 정백(鄭伯)이 법도에 어긋난 관을 쓴 것을 증오하여 도적을 시켜 그를 죽였다. 《춘추좌씨전》에서는 이 기사에 이어 논평을 가하면서, 《시경》 조풍(曹風) 후인(候人)의 “저와 같은 사람들은 그 옷이 어울리지 않도다.〔彼其之子 不稱其服〕”라는 구절을 인용하였다.[주-D034] 여자들도 …… 달가워하랴 : 비비(狒狒)는 원숭이의 일종으로, 머리털을 늘어뜨리고 빠르게 달린다고 한다. 《爾雅 釋獸》 다리는 여자들이 머리숱을 풍부하게 보이려고 덧넣었던 딴머리를 말한다. 또한 《시경》 용풍(鄘風) 군자해로(君子偕老)에 “검은 머리 구름 같으니, 다리를 달갑잖게 여기네.〔鬒髮如雲 不屑髢也〕”라고 하였다.[주-D035] 종립(鬃笠) : 말총으로 만든 갓이다.[주-D036] 전립(氈笠) : 짐승 털을 다져 넣어 만든 모자로, 벙거지라고도 한다.[주-D037] 섬세한 …… 덮치네 : 원문은 ‘纖彩旭滿眶 圓影午壓腓’인데, 《영재집》에는 ‘簪緇避漢溺 冠玉笑荊䠊’로 되어 있다.[주-D038] 거미나 하루살이 : 원문의 ‘蝣’가 《영재집》에는 ‘游’로 되어 있으나, 잘못이다.[주-D039] 금작(金雀)은 …… 더해졌고 : 금작은 갓 꼭대기의 장식물인 정자(頂子)의 일종인 듯하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의하면 대군(大君)은 금정자(金頂子)를 사용한다. 우전(優旃)은 진(秦) 나라의 배우인데, 우전에게 금작이 상으로 더해진 고사는 출처를 알 수 없다. 《영재집》에는 ‘우전’이 초(楚) 나라의 악공인 ‘우맹(優孟)’으로 되어 있다.[주-D040] 옥로(玉鷺)는 …… 내려졌네 : 옥로 역시 정자(頂子)의 일종이다. 옥로로 장식한 갓을 옥로립(玉鷺笠)이라 하는데, 장신(將臣)이 착용했다. 악의(樂毅)는 중국 전국(戰國) 시대 연(燕) 나라의 명장(名將)이다.[주-D041] 은으로 …… 축하해서라네 : 정 3 품 이상이 되면 은정자(銀頂子)로 갓 꼭대기를 장식하는 것을 가리키는 듯하다.
ⓒ 한국고전번역원 | 신호열 김명호 (공역) |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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燕巖集卷之七○別集 潘南朴趾源美齋著 / 鍾北小選○序 / 菱洋詩集序
達士無所恠。俗人多所疑。所謂少所見。多所恠也。夫豈達士者。逐物而目覩哉。聞一則形十於目。見十則設百於心。千恠萬奇。還寄於物而己無與焉。故心閒有餘。應酬無窮。所見少者。以鷺嗤烏。以鳧危鶴。物自無恠己。廼生嗔。一事不同。都誣萬物。噫。瞻彼烏矣。莫黑其羽。忽暈乳金。復耀石綠。日映之而騰紫。目閃閃而轉翠。然則吾雖謂之蒼烏可也。復謂之赤烏。亦可也。彼旣本無定色。而我乃以目先定。奚特定於其目。不覩而先定於其心。噫。錮烏於黑足矣。廼復以烏錮天下之衆色。烏果黑矣。誰復知所謂蒼赤乃色中之光耶。謂黑爲闇者。非但不識烏。並黑而不知也。何則。水玄故能照。漆黑故能鑑。是故有色者。莫不有光。有形者莫不有態。觀乎美人。可以知詩矣。彼低頭。見其羞也。支頤。見其恨也。獨立。見其思也。顰眉。見其愁也。有所待也。見其立欄干下。有所望也。見其立芭蕉下。若復責其立不如齋坐不如塑。則是罵楊妃之病齒。而禁樊姬之擁髻也。譏蓮步之妖妙。而叱掌舞之輕儇也。余侄宗善字繼之。工於詩。不纏一法。百體俱該。蔚然爲東方大家。視爲盛唐。則忽焉漢魏。而忽焉宋明。纔謂宋明。復有盛唐。嗚呼世人之嗤烏危鶴。亦已甚矣。而繼之之園烏忽紫忽翠。世人之欲齋塑美人。而掌舞蓮步。日益輕妙。擁髻病齒。俱各有態。無惑乎其嗔怒之日滋也。世之達士少而俗人衆。則默而不言可也。然言之不休何也。噫。燕岩老人。書于烟湘閣。
연암집 제7권 별집 / 종북소선(鍾北小選) / 능양시집서(菱洋詩集序)
달관한 사람에게는 괴이한 것이 없으나 속인들에게는 의심스러운 것이 많다. 이른바 ‘본 것이 적으면 괴이하게 여기는 것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달관한 사람이라 해서 어찌 사물마다 다 찾아 눈으로 꼭 보았겠는가. 한 가지를 들으면 열 가지를 눈앞에 그려 보고, 열 가지를 보면 백 가지를 마음속에 설정해 보니, 천만 가지 괴기(怪奇)한 것들이란 도리어 사물에 잠시 붙은 것이며 자기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따라서 마음이 한가롭게 여유가 있고 사물에 응수함이 무궁무진하다.
본 것이 적은 자는 해오라기를 기준으로 까마귀를 비웃고 오리를 기준으로 학을 위태롭다고 여기니, 그 사물 자체는 본디 괴이할 것이 없는데 자기 혼자 화를 내고, 한 가지 일이라도 자기 생각과 같지 않으면 만물을 모조리 모함하려 든다.
아, 저 까마귀를 보라. 그 깃털보다 더 검은 것이 없건만, 홀연 유금(乳金) 빛이 번지기도 하고 다시 석록(石綠) 빛을 반짝이기도 하며, 해가 비추면 자줏빛이 튀어 올라 눈이 어른거리다가 비췻빛으로 바뀐다. 그렇다면 내가 그 새를 ‘푸른 까마귀’라 불러도 될 것이고, ‘붉은 까마귀’라 불러도 될 것이다. 그 새에게는 본래 일정한 빛깔이 없거늘, 내가 눈으로써 먼저 그 빛깔을 정한 것이다. 어찌 단지 눈으로만 정했으리오. 보지 않고서 먼저 그 마음으로 정한 것이다.
아, 까마귀를 검은색으로 고정 짓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거늘, 또다시 까마귀로써 천하의 모든 색을 고정 지으려 하는구나. 까마귀가 과연 검기는 하지만, 누가 다시 이른바 푸른빛과 붉은빛이 그 검은 빛깔〔色〕 안에 들어 있는 빛〔光〕인 줄 알겠는가. 검은 것을 일러 ‘어둡다’ 하는 것은 비단 까마귀만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검은 빛깔이 무엇인지조차도 모르는 것이다. 왜냐하면 물은 검기 때문에 능히 비출 수가 있고, 옻칠은 검기 때문에 능히 거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빛깔이 있는 것치고 빛이 있지 않은 것이 없고, 형체〔形〕가 있는 것치고 맵시〔態〕가 있지 않은 것이 없다.
미인(美人)을 관찰해 보면 그로써 시(詩)를 이해할 수 있다. 그녀가 고개를 나직이 숙이고 있는 것은 부끄러워하고 있음을 보이는 것이고, 턱을 고이고 있는 것은 한스러워하고 있음을 보이는 것이고, 홀로 서 있는 것은 누군가 그리워하고 있음을 보이는 것이고, 눈썹을 찌푸리는 것은 시름에 잠겨 있음을 보이는 것이다. 기다리는 것이 있으면 난간 아래 서 있는 모습을 보여 주고, 바라는 것이 있으면 파초 아래 서 있는 모습을 보여 준다. 만약 다시 그녀에게 서 있는 모습이 재계(齋戒)하는 것처럼 단정하지 않다거나 앉아 있는 모습이 소상(塑像)처럼 부동자세를 취하지 않는다고 나무란다면, 이는 양 귀비(楊貴妃)더러 이를 앓는다고 꾸짖거나 번희(樊姬)더러 쪽을 감싸 쥐지 말라고 금하는 것과 마찬가지며, ‘사뿐대는 걸음걸이〔蓮步〕’를 요염하다고 기롱하거나 손바닥춤〔掌舞〕을 경쾌하다고 꾸짖는 것과 같은 격이다.
나의 조카 종선(宗善)은 자(字)가 계지(繼之)인데 시(詩)를 잘하였다. 한 가지 법에 얽매이지 않고 온갖 시체(詩體)를 두루 갖추어, 우뚝이 동방의 대가가 되었다. 성당(盛唐)의 시인가 해서 보면 어느새 한위(漢魏)의 시체를 띠고 있고 또 어느새 송명(宋明)의 시체를 띠고 있다. 송명의 시라고 말하려고 하자마자 다시 성당의 시체로 돌아간다.
아, 세상 사람들이 까마귀를 비웃고 학을 위태롭게 여기는 것이 너무도 심하건만, 계지의 정원에 있는 까마귀는 홀연히 푸르렀다 홀연히 붉었다 하고, 세상 사람들이 미인으로 하여금 재계하는 모습이나 소상처럼 만들려고 하지만, 손바닥춤이나 사뿐대는 걸음걸이는 날이 갈수록 경쾌하고 요염해지며 쪽을 감싸 쥐거나 이를 앓는 모습에도 각기 맵시를 갖추고 있으니, 그네들이 날이 갈수록 화를 내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세상에 달관한 사람은 적고 속인들만 많으니 입을 다물고 말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쉬지 않고 말을 하게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아!
연암노인(燕巖老人)이 연상각(烟湘閣)에서 쓰노라.
[주-D001] 오리를 …… 여기니 : 다리가 짧은 오리가 다리가 긴 학을 넘어지기 쉽다고 비웃는다는 뜻이다. 부단학장(鳧短鶴長)이란 말이 있다. 《장자(莊子)》 변무(騈拇)에 “길다고 해서 여유가 있는 것이 아니며, 짧다고 해서 부족한 것이 아니다. 이런 까닭에 오리는 다리가 짧지만 그 다리를 이어 주면 걱정하고, 학은 다리가 길지만 그 다리를 자르면 슬퍼한다.”고 하였다.[주-D002] 양 귀비(楊貴妃) : 당 나라 현종(玄宗)의 애첩이다. 양 귀비가 평소 치통을 앓았는데 그 모습 또한 아름다웠다고 한다. 이를 그린 양귀비병치도(楊貴妃病齒圖)가 있다.[주-D003] 번희(樊姬)더러 …… 말라고 : 번희는 후한(後漢) 때 사람으로 영현(伶玄)의 애첩이었던 번통덕(樊通德)을 가리킨다. 영현이 번희에게 조비연(趙飛燕)의 고사를 이야기하자, 번희가 손으로 쪽을 감싸 쥐고 서글피 울었다고 한다. 이를 소재로 한 번희옹계(樊姬擁髻)라는 희곡도 있다. 《趙飛燕外傳 附 伶玄自敍》[주-D004] 사뿐대는 걸음걸이〔蓮步〕 : 제(齊) 나라 폐제(廢帝) 동혼후(東昏侯)가 금으로 연꽃을 만들어 땅에다 깔아 놓고 애첩인 반비(潘妃)로 하여금 그 위를 걸어가게 한 후 사뿐대는 걸음걸이를 보고 걸음마다 연꽃이 피어난다고 하였다. 《南史 齊紀下 廢帝東昏侯》[주-D005] 손바닥춤〔掌舞〕 : 한 나라 때 유행한 춤으로 춤사위가 유연하고 경쾌하다. 한 나라 성제(成帝)의 황후인 조비연(趙飛燕)이 잘 추었다고 한다. 장상무(掌上舞) 또는 장중무(掌中舞)라고도 한다.[주-D006] 종선(宗善) : 1759~1819. 연암의 삼종형(三從兄)인 박명원(朴明源)의 서장자(庶長子)로 규장각 검서를 지냈다.[주-D007] 연상각(烟湘閣) : 연암이 안의 현감(安義縣監) 시절 관아(官衙) 안에 지었다는 정각(亭閣)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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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산집(對山集) 강진(姜溍)생년1807년(순조 7)몰년1858년(철종 9)자진여(進如), 진여(進汝)호대산(對山)본관진주(晉州)초명해(海)특기사항김이양(金履陽), 조만영(趙萬永), 조인영(趙寅永), 조두순(趙斗淳), 장지완(張之琬), 홍순목(洪淳穆), 김흥근(金興根) 등과 교유
對山集卷之二 / 詩 / 寰瀛閣。讀朴菱洋板上詩。幷序
헌종 | 6 | 1840 | 경자 | 道光 | 20 | 34 | 12월, 興陽 監牧官이 되다. |
朴楚亭 齊家,李雅亭 德懋 俱以文詞見稱中國。官皆內閣檢書。余猥忝此職。而先輩風韻已邈矣。菱洋朴公 宗善 以檢書出牧于玆。余又躡公。相距已五十年。公之跡亦泯矣。然公之所刱寰瀛閣。巋然若相待。而遍閱前人題咏。亦無過於公之所咏詩。則於此可以仰當時文華之盛也。
楚雅文章日下知。嗟余生晩未肩隨。南來心折菱洋老。盥讀樓頭八咏詩。
* 《대동지지(大東地志)》 【목장】 도양장(道陽場) 서남쪽으로 40리에 있다. 감목관(監牧官) 1인. 大東地志 卷十四 / 全羅道 / 興陽 / 牧場 / 道陽場。 西南四十里。 ○監牧官一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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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人事篇○器用類 / 兵器 / [0636]風槍、氣砲辨證說 * 이규경(李圭景, 1788~1863)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 이규경(李圭景, 1788~1856)
正廟庚戌。朴菱洋【宗善。官知縣。】 隨使入燕也。中堂和申之子額駙豐伸隱德。年最少。相逢於琉璃廠。要其一過。菱洋爲造其家。額駙款接。出一物示之。誇輝不已曰。此物自阿蘭佗入貢。皇上爲我特賜一枝。其名風槍。乃是天下之利害之奇器也。子欲觀其放丸乎。菱洋請一見之。額駙許之。手自放焉。中鵠殆無虛發。其制如砲。狹而長丈餘。穴不施藥繩。覆以錫蓋。納土丸于穴。擧蓋引風掩其穴。則丸出射中。而其鵠。則裁紙方寸。黏壁爲的。對坐三間許。試放五丸。黏紙處穿痕如花瓣。不錯毫髮。穿入爲寸深。此是彈類。砲則有聲。此則無聲。暗丸命中。直爲透堅。卽兵器中最神者也。予嘗閱菱洋稿。得其所記而異之。略鈔緊切句語。以置爲日後考。計今二十有四年矣。斯後聞北行人所傳。則遠西諸國舶中有氣砲。不用火藥。畜氣放丸。丸非鉛乃土也。放無砲聲。故人不知避。洞貫堅甲。比砲尤毒云。歲乙巳春。有人來語。甲辰氣砲東來。自訓營使姜草溪彝五。倣其制監製云。其狀如砲。而桔槹鐵火門之制與砲異者。多有機棙故也。其畜氣之法。以小狹筒作橐籥。下端納于鍮圓空毬之嘴中消息之。則橐籥生氣。氣入于毬中充滿後。拔出橐籥。則氣當泄出毬嘴。而不然者。毬中亦爲鎖氣之機也。故氣自畜銃。以毬嘴揷砲底孔。而納土丸一箇於砲中。仍下桔槹鐵。則桔槹內機。觸毬中之機。吐氣而出。猛推土丸。則丸爲氣力所驅。其勢與藥砲無異也。今所氣砲。卽前所云風槍。特名殊而制同。惟橐籥之法、桔槹之機。似有異同焉耳。氣砲。則酌無盡之氣。丸不竭之土。不計燥濕。穿札洞甲。而較諸藥砲之藥鉛繩火之費。陰晴風雨之拘。則其利逈出尋常也。【氣毬所入之氣。可放三十餘次。而若不用。則開毬出氣以置。防銅銹。】 庚戌間。我國人僅見此器於中原矣。甲辰始到鴨東。其間相距。已爲五十六載矣。大抵究詰其原。則不過用氣激而巧其機也。予復從他書。見使氣鳴管。卽橐籥律也。使氣出火。卽雷法器也。使氣升水。卽虹吸車也。使氣脹皮。卽出路美人也。使氣觀象。卽泛豆毬也。使氣涉水。卽泳水毬也。使氣傳語。卽寄語筒也。此論其用氣之槪也。愚亦悟得一法。使氣轉輪。卽浩然車也。斯非予之能也。有聞乎放礮行舟之法。有見於掛帆轉車之理。創出此法。如更使智者潤色點化。然後可以行矣。苟得神智之人。使氣製物。則豈止於斯而已哉。氣砲雖云巧妙。類同蜮射之慘快。非仁人君子神武不殺之義歟。
[주-D001] 蓋 : 『盂』로 되어 있는데, 文義에 따라 고쳤다.[주-D002] 今所氣砲 : 誤脫이 있는 듯하다.[주-D003] 國 : 『人』으로 되어 있는데, 文義에 따라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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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人事篇○技藝類 / 醫藥 / [0748]種痘辨證說 * 이규경(李圭景, 1788~1863)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種痘一法。流入我東。在於正廟庚戌之間。而朴貞蕤、 【齊家。官縣令。密城人。】朴菱洋【宗善。官知縣。潘南人。】 之入燕也。得其書以來。以至乙覽。嗣此傳種者。自抱州李鍾仁【以醫官。官至知縣。】 始。更傳于嶺南。近世無人不種。而李鍾仁著《時種通編》。備說其法。【時者。時痘。種者。種痘。】 云種自宋仁宗時。樞密王【日下一字】 生子。名素。鍾愛甚篤。欲經聖痘。適有江南一媼。自言能種痘。較天痘最易種。素有驗。然法仍寢。不盛行。【按三槐堂在開封府。宋兵部侍郞王祐創第時。手植三槐曰。吾子孫必爲三公。後子(日下一字)果爲相。宋仁宗時。王文正初生諸子。俱夭於痘。老年生一子。名素。招集諸幼科而告之曰。汝等俱明於治痘否乎。咸曰。略知治痘之法也。公曰。能知之。俟小兒出痘證。方用藥。結痂還元後。厚贈酬謝。時有泗川人做京宦者。聞求醫治痘。乃請見而陳說種痘之有神醫。治痘之有妙方。公聞之喜曰。此神醫是何姓名。何處居住。爲我請來。應曰。此醫乃女人也。生於江南徐州。喫齋念佛。亦不被剃。雲游至泗川峨嵋山頂。蓋茅而居。人皆稱神醫。又稱天姥娘。娘所種之痘。稱爲神痘。丞相必欲與公郞種痘。當雇人夫肩輿。往峨眉。敦請此神醫。不踰月敬請。神醫到汴京。見王素。摩其頂曰。此子可種。卽於次日種痘。七日發熱。十二日結痂。公喜極而厚謝。神醫辭曰。我修道人。要金帛何用。因回峨眉云云。】 至淸聖祖康熙時。有朱純嘏者。復行其法。種皇子順經。聖祖命種滿洲色目人子姓。【《元史》。色目人。卽謂蒙古外諸番人也。《小說》。佛語阿修羅。今四夷諸色目是也。】 歷有奇效。從此大行。播傳一世。迺撰輯《痘疹定論》。【其書亦引王樞密種痘一事爲據】 又據《字典》痘字注。依其方行之云。此是種痘原始之大略也。皇明末造。方宓山師以智《物理小識》。神痘法。丸豆汁。【古以豆通痘字】 納鼻呼吸卽出云。《康熙字典》注。神痘。丸痘汁。納鼻呼吸卽出。與《小識》同。而竝不出引用書目。可異也。歲純廟己巳之際。有南知縣【石老】 隨使游燕。得《謹種聖痘方》。其種法甚晣。《謹種聖痘方》。卽一摺紙所錄也。其方曰。擇春夏溫和之時。視其兒無他病。復察其耳後無靑紫紋者。皆可種。以痘兒所結之痂。擇稀小高大者兩三枚。過百日則氣泄不可用。硏細末。加入眞麝香一釐。搓成小丸如梧子大。以薄綿花裹之。塞入小兒鼻孔內。男左女右。男用男痂。女用女痂。不可誤用。塞後須避風。飮食小心。滿七日夜去之。一二日後。其兒自能發熱。出亦與出痘一樣。以後看症治法。亦與自出之痘相同。但出者較重。種者較輕。又可以預爲地步。故較善耳。如種後出痘繁多。至於不可治。則其兒胎毒必重。雖自出痘。必死無疑。大抵十兒。可生其九。如兒大。可三四枚。若不出。再種。忌險痘痂、死痂。痂曾納鼻者。再用。純廟丙戌。游燕來者。挾一書以至。標題曰《種痘新書》。卽張琰所輯。凡四冊。卷首有精神祈禱。傳會符呪。以神其術。令人一哂。而種痘之先。用代天宣化散。調氣血。稀顆粒。【其方。人中黃。屬土。甲乙年爲君。黃芩。屬金。乙庚年爲君。黃柏。屬水。丙辛年爲君。黃連屬火。戊癸年爲君。桅子。屬木。丁壬年爲君。苦蔘佐。荊芥佐。防風佐。連翹佐。山豆根佐。牛旁子佐。紫蘇葉佐。右方。先祖其年所屬。取其藥以爲君。其餘主歲者爲臣。爲君者倍之。爲臣者半之。爲佐者如臣四分之三。於冬至日修合爲末。取雪水煎升麻。和竹瀝。神麯爲稀糊作丸。外以神砂、雄黃細末爲衣。每用竹葉湯下。】 大抵種法。創自一媼。在於宋仁之世。距我正廟庚戌之間。則爲年七百七十有餘載。而宋元之代。麗朝使者繹續不已。入于明淸。本朝使价。冠蓋相望。而不知寰宇有此法。且《小識》、《字典》來東者。亦已有年。罔然不省焉。鴨東習氣。自來如是矣。中原則天行痘與種痘。共稱天花。故醫方有《天花經驗方》。卜書有《占天花課》。天花爲痘之一號也。若論痘病之。則三古無見。【三古無痘。故《內經》不見。自魏以來始有之。隋巢元有痘論。無藥方。唐孫眞人思邈始出治方。或言。秦時製字有痘。其瘡似豆象也。秦扁鵲方有三豆湯。曰能免天行痘云。則痘自秦世始有。而特不如後世小兒之必經。故略之也。按《格致叢書》。痘瘡始於漢光武時。馬援南征。染得虜疫云。】 我東則以爲胡鬼。而嶺俗則呼以西神。統稱客神。殆如《淮南子》所謂吳鬼、越魕者也。【嶺南人畏痘如虎。村有痘。則不痘者避之。故往往至老死免焉。或壯老始痘而鮮得其生。且他處亦事痘如神。多有拘忌。迨如西番畏痘。已出痘曰熟身。未出痘曰生身。生身不敢入內地也。蒙古患痘必死。獮猴亦痘。誠一異事也。】 歲憲廟乙未。聞中土復出一種奇方。丁茶山鏞藏之云。【某方。茶山祕不示人。或有見者。相傳如此。卽牛乳種痘方。取牝牛乳上有如痘痂瘇疥者。快取而針將種花小兒。臂上某穴。擦牛乳痂。則卽出飛痘。不日順成。雖聖痘。不可此方。此痘更無痘後。餘毒永不復出。牛乳痂。百牛中僅有其一二。故最難得云。愚以爲小兒米痘者得此方。可謂仙劑。而但云臂穴云者。牝牛乳痂百牛僅一等語。蓋猜人試之。祕其方也。方宓山以智《物理小識》。凡痘發。必中指冷。以包焦也。然則兒之中指與發痘相關。則臂上穴與中指相關者。取而針之。擦牛乳痂。未爲不可也。欲分別男女。宜取男左女右穴矣。欲得牛乳痂。歷驗牝牛。而方字乳者未字乳。方孕牛未孕牛。一一取驗。則似可知某牛有某牛無矣。姑書此。以俟知者之更辨也。】 歲甲寅仲春。有人來語。聞蕊城人所傳。則西關種痘人以鍼。鍼小兒臂上一穴。男左女右。卽塗擦牛乳汁。則順經無毒。百種百生云。然但用牛乳。不用牛乳痂也。是或眞方耶。有人傳關東人業種天花。專以牛乳痂。先針將種兒男左女右臂上穴。自中指直上。至曲池穴下與中指相關一穴。以牛乳痂擦之。則出神痘幾個。繞所針穴而發。不日膿靨。收合落痂。別無他證。然經痂後。生腫癤。以腫藥治之卽瘥。而自發斑至落痂。不過六七日。更無危證致死之患云。乃牛乳種痘方也。卽出飛痘。經日落痂。絶無他症。更不復出。比前痘痂種法。洵爲奇妙神異之方也。予復疑人之誑傳。其後更聞人語。則如出一口。【南雨村尙敎所傳亦同】 必有其方。而予未之得見。而有此然疑者也。然祕不示人。竟作廣陵散何也。果無其方則已。旣有之而又非禁方。則何不博施普濟。而有此鑽核之擧者。吾不知其可也。吁。此法卽揠苗催花術也。君子之所不敢也。而究其本原。則又非凡流之所可杜撰者。且痘爲病。如傳經傷寒之自有日期。不差毫釐。可見造化之深奧。故略取顚末。以爲後人之有所考據焉。【牛乳種痘方。終不可得。痘痂種法。可以傳種。然或有死亡之患。亦甚危機。兒之生死。不可預知。然術家或觀占命之書。無驗可徵信乎。世有占孕陰陽法。其法甚驗。借此以占兒之生死種之。則無妨。其訣曰。先下四十九。問娠何月有。除去母生年。再添一十九。生男逢單位。生女必遇雙。生男若生女。生女或生男。是爲陰陽易。竟看不久世。爲種痘家傳示焉。】
[주-D001] 宋仁宗時 : 『宋仁宗時』부터 『因回峨眉云』까지는 李鍾仁 撰 《時種通編ㆍ種痘源因》에 보인다.[주-D002] 神醫 : 『天姥』로 되어 있는데, 《時種通編》에 근거하여 고쳤다.[주-D003] 人中黃 : 『人中黃』부터 『每用竹葉湯下』까지는 張琰 撰 《種痘新書》에 보인다.[주-D004] 丁壬 : 『壬癸』로 되어 있는데, 《種痘新書》에 근거하여 고쳤다.[주-D005] 取 : 《種痘新書》에 근거하여 보충하였다.[주-D006] 其瘡似豆象也 : 『其瘡似豆象自也』로 되어 있는데, 文義에 따라 고쳤다.[주-D007] 宓 : 『三』으로 되어 있는데, 文義에 따라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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燕巖集卷之十○別集 潘南朴趾源美齋著 / 罨畫溪蒐逸○記 / 竹塢記
古來讚竹者甚多。自詩之淇澳。歌咏之嗟嘆之不足。至有君而尊之者。竹遂以病矣。然而天下之以竹爲號者不止。又從以文而記之。則雖使蔡倫削牘。蒙恬束毫。不離乎風霜不變之操。䟽簡偃仰之態。頭白汗靑。盡屬飣餖。竹於是乎餒矣。顧以余之不文。讚竹之德性。以形容竹之聲色。作爲詩文者多矣。更何能文爲。梁君養直。介直有志節者也。甞自號曰竹塢。而扁其所居之室。請余爲記。而果未有以應之者。吾於竹。誠有所病焉故耳。余笑曰。君改其額。文當立就爾。爲誦古今人奇號韻題之如烟湘閣,百尺梧桐閣,杏花春雨林亭,小罨畫溪,晝永簾垂齋,雨今雲古樓者。屢數十百。勸其自擇焉。養直皆掉頭而否否。坐臥焉竹塢。造次焉竹塢。每一遇能書者。輒書竹塢而揭之壁。壁之四隅。盡是竹塢。鄕里之以竹塢譏者亦多。恬不知恥。安而受之。所以請余文者。今已十年之久。而猶不少變。千挫百抑。不移其志。彌久而罙切。至酹酒而說之。聲氣而加之。余輒默而不應。則奮然作色。戟手疾視。眉拂个字。指若枯節。勁峭槎枒。忽成竹形。嗚呼。養直豈眞癖於竹。而愛之至哉。觀於外可見其肝腎肺胃。磐矹犖确。如奇巖巉石。而叢篠幽篁。森鬱其中也。余之文至此而惡能已乎。古之人旣有尊竹而君之者。則如養直者。百世之下。可爲此君之忠臣矣。吾乃大書特書而旌之曰。高孤貞靖。梁處士之廬。
연암집 제10권 별집 / 엄화계수일(罨畫溪蒐逸) / 죽오기(竹塢記)
예로부터 대나무를 칭송한 사람이 매우 많았다. 《시경(詩經)》 기욱편(淇奧篇)에서부터 대나무를 노래하고 감탄하는 것만으로도 부족하여, 군(君)이라 칭하여 높이는 경우까지 있었으니, 대나무가 마침내 이 때문에 병들고 말았다. 그렇지만 천하에서 대나무로써 호(號)를 삼는 자가 그칠 줄을 모르고, 더 나아가 글을 지어 기록까지 하고 있으니, 아무리 채륜(蔡倫)이 종이를 만들고 몽염(蒙恬)이 붓을 만들었다 한들 풍상(風霜)에도 변치 않는 대나무의 지조와 소탈하면서도 고고한 태도를 예찬하는 데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리하여 머리가 하얗게 세도록 지었다는 글들이 모두 다 쓸데없는 말만 번지르르하게 늘어놓은 셈이어서, 대나무는 이 때문에 풀이 죽고 말았다. 돌이켜보면 글 못하는 나조차도 대나무의 덕성(德性)을 칭송하고 대나무의 소리와 색깔을 형용하여 시문을 지은 것이 많은데 다시 또 무슨 글을 짓는단 말인가.
양군 양직(梁君養直)은 강직하고 지절(志節)이 있는 사람이다. 일찍이 스스로 호를 ‘죽오(竹塢)’라 하여 자기 거실에 편액을 걸고 내게 기(記)를 지어 달라고 청했는데, 아직껏 응해 주지 못한 것은 내가 대나무에 대하여 진실로 난처하게 여기는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웃으며,
“그대가 그 액호를 바꾸면 글은 당장이라도 지어 줄 수 있다.”
하고서, 그를 위하여 고금의 인물들이 지은 기발하고 운치 있는 이름으로 이를테면 연상각(烟湘閣), 백척오동각(百尺梧桐閣), 행화춘우림정(杏花春雨林亭), 소엄화계(小罨畵溪), 주영렴수재(晝永簾垂齋), 우금운고루(雨今雲古樓) 등 열이고 백이고 누차 꼽으면서 그더러 스스로 선택하라고 권했으나, 양직은 머리를 흔들며 다 거절하였다. 그러고는 앉으나 누우나 ‘죽오’요 잠시 잠깐도 ‘죽오’를 떠나지 아니하며, 매양 글씨 잘 쓰는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문득 ‘죽오’라 쓰게 하여 벽에 걸곤 하니 벽의 네 모퉁이가 모두 ‘죽오’뿐이었다. 향리에서 죽오를 들어 기롱하는 사람 또한 많았지만, 천연덕스레 부끄러워할 줄도 모른 채 편안히 받아넘기곤 하였다. 그래서 나에게 글을 청한 것이 지금 하마 십 년이나 되었지만 여전히 조금도 변하지 않았으며, 천번 꺾이고 백번 눌려도 그 뜻을 바꾸지 않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간절하였다. 심지어는 술까지 대접하며 달래기도 하고 언성을 높여 강요하기까지 하였다. 내가 번번이 잠자코 대답하지 않으면, 분격하여 낯빛을 붉히고 삿대질하며 노려보는데, 눈썹은 개(个) 자 모양으로 치켜세우고 손가락은 메마른 댓마디가 되며, 꿋꿋하면서도 비쩍 마른 모습이 갑자기 대나무의 형상을 이룬다.
아아! 양직은 어쩌면 진정으로 대나무에 미쳐서 그렇게 극진히 사랑하는지도 모른다. 겉모습만 보아도 그의 마음이 기암괴석처럼 울뚝불뚝하고, 그윽한 대나무 숲이 그 마음속에 무성하게 들어차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니 나의 글을 이 지경에 이르러서는 어찌 말려야 말 수 있겠는가? 옛사람 중에 이미 대나무를 높여서 군(君)이라 부른 사람이 있었으니, 그렇다면 양직 같은 이는 백세(百世) 뒤에 차군(此君)의 충신이 될 만하다. 나는 이에 대서특서(大書特書)하여 정표(旌表)하기를, ‘고고하고 정결한 양 처사의 집〔高孤貞靖梁處士之廬〕’이라 했다.
[주-D001] 군(君)이라 …… 있었으니 : 대나무를 차군(此君)이라 한다. 왕휘지(王徽之)가 대나무를 몹시 사랑하여, 단 하루도 ‘차군(此君)’이 없으면 안 된다고 했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晉書 卷80 王徽之列傳》 소식(蘇軾)의 묵군당기(墨君堂記)에 “유독 왕희지가 대나무를 군(君)이라 하였으니, 천하 사람들이 이를 따라 군(君)으로 삼으면서도 군말이 없었다.”고 하였다.[주-D002]
양군 양직(梁君養直) : 양호맹(梁浩孟)을 말한다. 그의 자가 양직이고, 호가 죽오였다. 양호맹은 개성의 부유한 향반(鄕班)으로, 연암이 황해도 금천의 연암협으로 이거하면서 개성에 잠시 머물 때 그의 별장에 묵은 적이 있었다. 그때부터 교분을 맺고 연암의 문하를 출입했다.[주-D003] 개(个) 자 : 대 줄기를 상형(象形)한 글자로서, 대를 헤아리는 단위로도 쓰인다. 또한 동양화에서 죽엽(竹葉)을 개(个) 자 모양으로 그린다.
ⓒ 한국고전번역원 | 신호열 김명호 (공역) | 2004
연암집 제1권 / 연상각선본(煙湘閣選本) / 영사암기(永思菴記)
내가 개성(開城)에서 잠시 지낼 적에 남원 양씨(南原梁氏)와 서로 무척 사이좋게 지냈는데 그의 종형제 수십 명이 하나같이 질박 돈후하고 꾸밈새가 적으며 남을 진실되게 사랑했다. 정녕 그 윗대에 거룩한 덕인(德人)이 있어 무한히 상서(祥瑞)를 발하고 음덕을 드리웠던 것으로 생각된다.
급기야 그 분암(墳菴)을 둘러보니 산은 웅장하고 골짜기는 깊숙하여 등성이와 기슭이 굽이굽이 서려 있고 소나무와 가래나무가 빽빽하게 우거져 있었다. 석인(石人)과 망주석(望柱石)은 크고 위엄 있으며 여러 모양의 봉분들이 나무가 뿌리를 서로 맞댄 듯이, 물이 여러 갈래로 나뉜 듯이 자리 잡고 있어, 마치 효도하고 우애하며 화목하고 믿음 있는 가문이 담을 잇대어 가지런히 집을 지어 놓고 집기를 서로 빌려 쓰고 곡식과 포백(布帛)을 사사로이 숨겨 두지 않고 사는 모습과 같았다. 진실로 그 자손들 가운데 돈후하고 점잖은 분들이 많이 나와 그 조상의 음덕을 입어 선조가 남긴 복을 오래도록 보존할 것으로 믿어진다. 그 분암을 영사암(永思菴)이라 이름하였으니, 아! 이 이름을 지은 이는 아마도 어진 사람일 것이다.
《시경》에 이르기를 “길이 효심으로 사모하니 효심으로 사모하는 것이 곧 법칙이 되니라.〔永言孝思 孝思維則〕” 하였으니, 이는 먼 조상을 추모하는 마음을 시들지 않게 함으로써 능히 계승함직한 법칙이 되게 함을 일컬음이다. 온 세상 사람 중에 부모에게 효도하려고 생각하지 않는 자가 없다. 진실로 능히 위로 거슬러 올라가 근본을 밝히면 비록 아득히 먼 조상이라도 모두 나의 부친이라 할 수 있고, 또 미루어 범위를 넓히면 단문(袒免)의 원족(遠族)이라 할지라도 모두 나의 동기(同氣)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세상 풍속이 쇠하여 무너짐에 족계(族系)가 차츰 멀어지니, 문호를 나누고 한솥밥을 먹지 않으며 곡식과 포백과 집기를 서로 빌려 쓰지 않은 지가 오래되었다. 하물며 산지(山地)가 화복(禍福)을 정해 준다는 풍수지리설이 효도하고 우애하며 화목하고 서로 믿는 마음을 능가하게 되어 각각 따로 산소를 둠에 있어서랴!
심하면 묏자리에 대한 송사를 일으키기도 하며 묘목(墓木)을 두고 다투게 되며, 간악한 자가 족당(族黨)에 생기고 원수가 가문에 생기게 된다. 이로 말미암아 세상에는 족장(族葬)하는 집안이 드무니, 일찍이 나는 이를 두고 마음 아파하였다. 만약 사람들이 각각 그 근본을 잊지 않아 조상의 마음을 거슬러 생각해 본다면, 자손을 슬하에 열 지어 두어 비록 백대라도 함께 살기를 바라지 않는 조상이 있지 않을 것이다.
이제 양씨 가문의 산은 가까이로는 기복(朞服)과 공복(功服)을 입는 친족으로부터 멀리로는 단문(袒免)의 원족에 이르기까지 모두 대를 이어 매장되어, 수목을 서로 가꾸어 키우고 묘역도 함께 수호한다. 봄가을에 서리와 이슬이 내릴 때면 모여서 선조들에게 제사 지내며, 모두 함께 이 분암에 올라 높은 어른은 앞자리에 앉고 항렬이 낮거나 어린 사람들은 뒷자리에 앉아 함께 음복하고 물러나 사방을 둘러보면, 북쪽과 남쪽의 언덕에는 소(昭)와 목(穆)의 순서에 따른 묘들이 있고 동쪽 등성이와 서쪽 기슭에는 시복(緦服)과 공복(功服)을 입는 친족의 묘들이 있으니, 상심한 듯이 멀리 사모하며 눈앞에 뵈는 듯이 길이 사모하지 않는 자가 있겠는가!
《시경》에 이르기를 “효자가 끊어지지 아니하여 길이 너에게 선(善)을 내리리라.〔孝子不匱 永錫爾類〕” 하였으니, 양씨 가문의 자손들이 이에 그 효심으로 사모함을 능히 그치지 않는다면 하늘이 내리는 복과 산지에서 발하는 상서가 길이 선을 이르러 오게 할 것이다. 나는 장차 그 씨족과 세대가 더욱 번창함을 볼 것이다. 무릇 그런 뒤라야 세속의 이른바 풍수지리설이 장차 우리를 속이지 못할 터이니, 우선 이 글을 써서 그날을 기다리는 바이다.
풍속을 도탑게 하고 세교에 유익한 글이다. 이를 읽으면 사람으로 하여금 효도하고 우애하는 마음이 뭉클 일어나게 한다.
풍수가의 발복설(發福說)로부터 말을 세우되 중점은 효도하고 우애하고 돈독하고 화목한 것으로 돌아갔으니, 풍수지리설은 그 속임수가 용납될 여지가 없다.
[주-D001] 남원 양씨(南原梁氏) : 양호맹(梁浩孟)ㆍ양정맹(梁廷孟) 형제를 가리키는 듯하다. 《과정록(過庭錄)》에 의하면 당시 연암은 양호맹의 금학동(琴鶴洞) 별장에 기거했다고 하며, 《연암집》 권3 만휴당기(晩休堂記)에서 연암은 자신이 개성에 노닐 적에 양정맹과 서로 무척 사이좋게 지냈다고 하였다. 양호맹은 호가 죽오(竹塢)인데 연암은 그를 위해 ‘죽오기(竹塢記)’(《연암집》 권10)를 지어 주었으며, 또한 그의 부탁으로 ‘양 호군(梁護軍) 묘갈명(墓碣銘)’(《연암집》 권7)을 지어 주었다.[주-D002] 분암(墳菴) : 산소를 수호하기 위하여 그 근처에 지어 놓은 집이다.[주-D003] 여러 모양의 봉분들 : 원문은 ‘堂斧馬鬣之封’인데, 《예기(禮記)》 단궁 상(檀弓上)에 나오는 말로 당(堂)은 마루같이 네모반듯하고 높은 봉분을 가리키며, 부(斧)는 도끼날처럼 아래는 넓고 위가 좁은 장방형의 봉분으로 말의 갈기와 비슷하다 하여 속칭 마렵봉(馬鬣封)이라고 한다.[주-D004] 길이 …… 되니라 : 《시경》 대아(大雅) 하무(下武)에 나온다.[주-D005] 부친 : 원문은 ‘考禰’인데, 돌아가신 뒤에는 부친을 ‘고(考)’라 부르고, 사당에 신주가 모셔진 뒤에는 ‘예(禰)’라 부른다.[주-D006] 단문(袒免) : 상복을 입지 않고 윗옷의 왼쪽 소매를 벗고 관을 벗은 뒤 머리를 묶기만 하는 상례(喪禮)를 말한다. 고조의 친형제나 증조의 당형제(堂兄弟) 등과 같이 오복(五服)을 입지 않는 먼 친척의 초상 때 지키는 예법이다.[주-D007] 족당(族黨) : 《하풍죽로당집》에는 ‘宗黨’으로 되어 있다.[주-D008] 족장(族葬) : 조(祖)가 같은 자손들이 한 묘지에 무덤을 쓰는 것을 말한다. 《周禮 春官 墓大夫》[주-D009] 기복(朞服)과 공복(功服) : 기복은 1년 동안 입는 복을 말하며, 공복은 9개월 동안 입는 대공(大功)과 5개월 동안 입는 소공(小功)을 통틀어 말한 것이다.[주-D010] 소(昭)와 목(穆) : 종묘나 사당에 조상의 신주를 모시는 차례를 말한다. 왼쪽 줄을 소(昭)라 하고 오른쪽 줄을 목(穆)이라 하여, 1세를 가운데에 모시고 2ㆍ4ㆍ6세는 소에 3ㆍ5ㆍ7세는 목에 모신다.[주-D011] 시복(緦服) : 시마(緦麻)로 된 상복을 입는 3개월의 상을 말한다[주-D012] 효자가 …… 내리리라 : 《시경》 대아(大雅) 기취(旣醉)에 나온다.
ⓒ 한국고전번역원 | 신호열 김명호 (공역) |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