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7일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26.hwp
2015년 12월 7일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120~142까지
엄마는 감정사가 찾아오자 자신 만만하게 이 집은 8백 원 정도는 나오겠지 않겠냐고 말했다. 감정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갔다. 엄마는 감정사에게 물 한 잔도 대접하지 않았다. 하지만 곧 8백 원이 나왔다. 이것은 그때 서민들이 간단한 절차만 밝으면 쉽게 받을 수 있는 당연한 금융혜택이었다.
우리는 그 집을 괴불마당 집이라고 불렀다. 마당이 괴불처럼 세모 모양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집 앞에는 구장 집이 있었는데 그 집은 조화를 많이 가꾸어서 예뻤다. 그리고 옥잠화가 많았기 때문에 향긋한 냄새가 우리 집까지 들어왔다. 그 집에는 나보다 한 살이 많은 언니가 살고 있었는데 가끔가다 그 언니는 나에게 옥잠화 잎을 조금 찢어서 주곤 했지만 우리 집에는 그것이 아무 소용이 없었다. 우리엄마는 옥잠화 집인 이 집과도, 일각대문 집과도 많이 친했다. 일각대문 집은 엄마가 양해를 구해서 뒷문으로 추녀처럼 들락날락 했다.
오빠는 엄마가 바느질일을 하시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엄마는 오빠가 가져오는 월급들 덕분에 바느질을 덜 하기는 했지만 엄마의 솜씨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직접 바느질을 해 주기도 했다. 오빠는 그런 엄마를 볼 때면 울상을 지었다.
박적골 사람들은 두 박씨 집만 뺀 나머지 홍씨들은 다 일본어로 성을 바꾸었다. 내 이름을 일본어로 부르면 아주 예쁜 이름인 보쿠앤쇼가 되는데 매일 이 단어를 연습하다 보니 보쿠앤슈가 되었다. 일본어로 이름을 바꾸게 되면 뜻으로 이름을 짓게 되는데 하나코니 하루에니라고 하는 여자 이름이 너무 좋고 부러울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나는 엄마가 학교에서 부모님이 오시는 행사를 할 때마다 엄마가 빠지지 않고 오시는 것도 부끄러워 죽겠는데 어느 날 엄마가 문을 벌컥 여시고 선생님에게 어려운 한국말로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가봐야 한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나를 불러 통역을 시키셨고 나는 갈 수 있게 되었다. 그와 중에도 엄마는 이것은 결석처리가 되지 않는지 확인을 하고서야 교실에서 나왔다.
내가 할아버지 장례식 때도 울지 않자 할머니는 나에게 툭하면 울더니 할아버지 돌아가셨는데 왜 안 우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그렇게 귀애하시니 기르던 강아지도 며칠 굶겠다고 말씀하셨다. 할아버지의 돌아가심을 가장 슬퍼한 사람은 바로 오빠였다.
도서관을 가서 처음 읽은 책은 아아, 무정이라는 제목으로 어린이용으로 나온 레미제라블 이었다. 일본말이긴 했지만 재미있는데다가 황홀함까지 주었다. 내 동무는 소공녀라는 책을 끝까지 다 읽었다고 한다. 우리는 책 얘기를 하며 다음에 또 가자고 약속했다.
6학년이 되자 상급학교 입시준비를 위해서 선생님은 엄하고 무서운 선생님이었고 시험에 심지어 남아서 보충 수업까지 시켰다.
감상문 (10줄 이상) - 나는 오늘 이 부분을 읽고 이해가 가는 부분이 조금 있어서 정말 뿌듯했다. 그 부분은 바로 옆집 언니가 옥잠화 잎을 주셨는데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것이 그 꽃을 심으려고 잎을 주었는데 그것이 소용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이해하는 것과는 좀 관계가 멀 수 있는데 엄마가 할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는데도 결석인지를 확인한 엄마가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엄마는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 결석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었다.
나는 이런 엄마를 보고 이 엄마는 아이의 미래를 정말로 위하는 엄마라고 생각했다. 장례식 보다는 아이의 미래를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다. 나는 이런 엄마가 정말 감동적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이것을 다른 시각으로 보면 너무 신경 쓰는 엄마. 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첫댓글 나래가생각하는엄마는어느쪽일까?
그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