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일 더위가 극성을 부릴 때
식구와 함께 천태종 중창조 상월 조사의 적멸궁에 올랐다.
해발 700미터 가파른 수리봉 정상에 있는 상월스님의 무덤이다.
1974년 열반하셨으니 50년이 되었다.
나는 그때 상월 스님의 적멸궁이 이룩된 다음에 얼마 안되어 올랐으니
이제 근 50년 만에 상월조사 열반 때보다 더 나이가 많은 자가 되어 다시 적멸궁에 오른 것이다.
감회가 없을 수 없다.
그런데 참배를 마치고 하산하려는 데 웬 초로의 비구니 하나가 올라오면서 말하기를
<여기에 쓰레기를 버리면 안됩니다.>라고 째려보는 눈으로 쌀쌀맞게 말하는 것이었다.
내가 황당하여
<쓰레기를 버리다니요?> 라고 하니 말하기를
<휴지 조각 말입니다.>라고 하였다.
이때 식구가 갑자기
<아, 더워서 물티슈를 여러 개 쓰다가 하나 흘려진 모양입니다.> 라고 말하였다.
그제야 나는 식구가 땀을 닦기 위해 물티슈를 쓰다가
자기도 모르게 한 조각을 놓친 것을 알게 되었다.
비구니는 들은 척도 않고 냉담한 얼굴로 우리를 스쳐 적멸궁으로 올라가려는 것이었다.
이에 내가 기분이 좀 언짢아서 말하였다.
<버린 것이 아닙니다.>
즉 일부러 버린 것이 아니라는 뜻을 표한 것이다.
그러나 비구니는 표정도 그대로 거들떠도 보지 않고 대꾸도 없이 적멸궁으로 올라섰다.
기분이 나빴지만 참았다.
그러나 하산하고 난 다음 다시 그 일이 떠오르면서 결국 화난 소리를 내 뱉었다.
<참 싸가지 없는 중년이네...
아니 그 높은 산까지 올라가 참배하는 사람이 일부러 휴지를 버렸다고 생각했나?
대가리는 염라대왕 공깃돌 하라고 있는 건가?
그런 대가리로 무슨 중노릇이냐.
그렇게도 사리 분별이 안 되는 대가리로 무슨 깨달음을 얻겠다는 것이냐
재가 신자의 시주로 먹고 사는 것이 그렇게 재가인을 알로 보냐.>
식구가 말했다.
<그냥 넘어가나 했더니 결국 험한 말을 하고 마네요. 좀 참지...
사실을 알려는 생각도 없이 무조건 자신의 편견으로 단정해 버리니
그 오해에 대해 속상할 만도 하지만
그렇다고 이미 지난 것을 그렇게 심한 욕을 하면 뭐해요.
그 스님은 뭐가 잘못됐는지조차도 모를 건데...>
며칠이 지났다.
그와 똑 같은 일을 인터넷 카페에서도 당했다.
비로소 조선의 수많은 유학자들 가운데도
지식은 대단한데 인간 자체가 개차반이었던 자들도 흔히 있었던 이유를 알 것 같다.
유학은 聖學이라고도 부른다. 즉 성현이 되기 위한 목적을 가진 학문이다.
그러나 이 성학의 이치를 달통한 사람들 가운데도 형편없는 소인배도 나오고,
나라를 팔아먹은 을사오적도 나온다.
도대체 그 이유는 뭘까?
머리로만 아는 것이다. 머리로만 아는 것은 천신이 아니라 악마도 가능한 일이다.
仁과 義와 禮를 벗어난 智는 姦智이며 魔智일 뿐이다.
하물며 智에도 못미치는 知識이야 더 말할 필요가 있으랴?
그래서 다만 多知識은 자랑거리가 결코 될 수 없다.
악마의 지혜는 천신의 지혜보다 못하지 않지만
배려심 즉 역지사지의 마음이 없다.
악마는 차원높은 철학은 매우 잘 이해할 수 있으나
아름다운 서정시는 결코 공감하지 못한다.
서정시에서도 오직 철학이나 이치나 관념을 뽑아내려 할 뿐이다.
즉 머리만 있고 가슴이 없는 것이 악마라고 보겠다.
2013. 7. 5. 행유 근기
첫댓글 그래도 참배라도 하였으면 다행입니다. 저는 들어가 보지도 못했어요 대통령 궁은 저리가라이니 이 무슨... 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