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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갈 2:16)는 말의 진정한 의미
(질문)
목사님! 바울은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 3:20)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16절에는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갈 2:16) 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롬 3:28)고 했습니다.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0)는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할례를 맏는 강 사람에게 다시 증거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갈 5:4)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율법을 완전히 지키고 십계명을 완전히 지켜서 구원의 완성을 이루고 완전성화를 통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주장이 틀린 것이 아닙니까? 바울이 말하는 율법과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율법은 어떻게 다릅니까? 바울은 정말 율법과 계명을 지키지 않고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답변)
네, 좋은 질문 감사합니다.
지금까지도 이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해서 신학적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해결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잘못된 결론이 대부분입니다.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 구원이 어렵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면 구원의 문은 활짝 열리게 될 줄 믿습니다.
첫째로 알아야 할 사실은 구원의 진리를 말할 때 '하나님의 말씀'과 '인간의 말'을 구별해야 합니다.
성경 안에서 하나님, 예수님이 친히 하신 말씀이 있고 인간이 한 말이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성경 66권을 진리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가라사대"라고 한 말씀들, "예수께서 가라사대"라고 한 말씀들은 하나님이 친히 하신 말씀이기 때문에 불변하는 진리의 기준이 됩니다. 선지자들을 통해, 모세를 통해 하신 말씀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인용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절대적 진리의 기준이 됩니다.
그런데 바울 서신을 비롯한 서신들은 '인간의 말'입니다. 그렇다고 틀린 것은 아닙니다. 성령을 받아서 목회하는 과정에서 깨달은 귀한 신앙의 교훈과 유산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얼마든지 우리는 거기에 기록된 교훈들을 신앙의 유익한 것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절대적 진리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보조로는 사용할 수 있으나 절대적 진리는 예수님이 친히 하신 말씀으로 기준을 삼아야만 율법과 구원에 대한 진리를 바로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율법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과 바울이 율법에 대해 말하는 것이 충돌이 되거나 모순이 되면 우리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따라가야 합니다. 사실 사복음서와 바울 서신은 율법과 행위 구원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에 서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럴 때 종교개혁자들이나 신학자들은 사복음서보다 바울 서신이나 바울 신학을 따라감으로써 오늘날 잘못된 신학과 구원론이 탄생한 것이 사실입니다.
둘째, 바울은 율법폐기론자나 율법무용론자가 아닙니다.
종교개혁자들과 신학자들은 바울을 오해하고 있습니다. 율법에 대해 말한 바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오해한 부분이 많습니다. 바울 서신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바울이 당시 처한 목회 상황을 바로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울도 유대 율법주의자였고 가말리엘 문하에서 철저히 율법을 배우고, 바리새파로서 율법에 철저했던 자였습니다. 그랬지만 정작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는 예수님을 핍박하는 자였고, 하나님의 원수였고, 사단의 앞잡이 노릇을 했습니다. 그토록 하나님의 율법대로 살려고 불부둥쳤는데 결과는 지옥으로 달려가는 인생이었으니 바울이 거기서 깨달은 것은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이 절대 자기가 지켜온 '율법'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을 깨닫고 이것을 로마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등등에 쓰고 있습니다.
그 누구도 인간의 노력이나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우리를 위해 대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만 된다는 것을 알렸습니다. 그러면서 당시 의롭게 되기 위해서 행하던 '할례'나 '절기'나 '제사'나 '제물'로는 더 이상 의롭게 될 수 없음을 강조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힘으로 영원한 제사가 이루어지고, 속죄의 길이 열렸기 때문에 바울은 율법이 아닌 예수를 외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바울의 말이 마치 율법이 폐기된 것처럼 보이고, 더 이상 율법이 필요없는 것(율법무용론)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맞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속죄의 길을 열어 놓으셨기 때문에 더 이상 할례나 절기나 제사 의식을 통해서는 의롭게 될 수 없습니다. 바울은 그 어떤 율법적 행위로도 속죄 받고 의롭게 될 수 없음을 강조합니다. 오직 예수, 오직 믿음만이 유일하게 의롭게 될 길이라는 것을 알림으로써 당시 예수를 모르던 율법주의자들에게 복음을 외쳤던 것입니다.
셋째, 문제는 후대 사람들이 바울의 외침을 잘못 해석한 데 있습니다. 율법으로 의롭게 될 수 없고 믿음으로만 가능하다는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믿고 율법은 폐기하거나 옆에 두고 보조하는 정도로 두고, 믿음만 강조함으로써 기형적인 기독교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바울이 믿음을 강조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만이 지은 죄를 속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알리기 위함이었는데 후대 교회들은 그것을 잘못 적용하여 "오직 믿음만이 유일한 구원"으로 한정 지어 버린 것입니다.
바울은 "속죄" 부분에서만큼은 그 어떤 율법의 행위로도 의롭게 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죄로부터 의롭게 되는 길은 "예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구원의 '필요조건'에 한정된 것입니다. 필요조건에서는 어떤 행위도 요구되지 않습니다. 이미 이루어 놓은 십자가의 구원과 그 공로를 믿기만 하면 은혜로 값없이 다 의롭게 됩니다. 만약 여기서 또 다시 할례를 행해야 한다든가, 어떤 구약의 제사를 지내야 한다든가,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행했던 여러 구약 율법의 조건을 의롭게 되는 전제 조건을 단다면 그것은 다른 복음이며, 바울은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교회는 바울의 이러한 주장을 구원 전체에 적용시켜 버리는 우를 범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단지 믿는 것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믿어야만 의롭게 되고 구원을 받지만, 그렇다고 믿기만 해서는 구원이 완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은 구원의 양면을 다 말하고 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지은 죄에 대해 속죄를 받아야만 할 뿐 아니라, 속죄를 받은 자로서는 더 이상 죄를 짓지 않고 율법과 계명을 완전히 지켜서 구원을 완성해야 한다는 것을 동시에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롬 5:1)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는 것은 죄를 짓지 않는 것입니다.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정해 놓은 율법과 계명을 지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속죄함으로 의롭게 된 자들은 이제부터 계명과 율법을 다 지켜서 죄를 짓지 아니함으로 하나님과 화평관계가 됩니다. 이것이 계속 이루어져야 구원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롬 5:7-9)
보십시오!
범죄함으로 원수가 된 것을 화목케 하는 데 있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 흘려주신 피를 믿음으로서만 화목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속죄의 은총이요, 값없이 받는 하나님의 선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이 구원의 필요조건입니다.
문제는 이것이 전부가 아님에도 오늘날 교회는 이것을 구원의 전부로 규정해 버렸다는 것입니다. 원수된 상태에서 화목한 상태가 된 것은 의롭게 되었으나 구원을 이룬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거스틴도, 루터도, 칼빈도, 쯔빙글리도, 종교개혁자들, 신학교교수들도 이것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 이대로 가면 구원에 이를 자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넷째, 바울은 철저히 율법과 계명을 지켜야만 구원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도입니다. 그것도 오늘 교회들이 어차피 인간은 율법과 십계명을 다 지키지 못하니까 지키는 데까지 지켜보라고 하는 정도가 아닙니다. 율법을 완성하라고 합니다. 율법의 완성을 이루라고 합니다. 그 누구보다도 율법을 강조하는 자가 바울입니다.
갈라디아서 앞 부분에서는 율법에 대해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다가 뒷부분에서는 율법을 강조합니다. 그것은 앞 부분에서는 폐하여진 율법으로 의롭게 되려고 하는 것에 대해 주장하다 보니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고, 뒤에서 강조하는 것은 십계명과 영원법 준수를 강조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바울이 '율법'이라는 단어를 쓸 때, 그 의미를 잘 파악해야 합니다. 폐하여진 율법인지, 영원법이나 십계명을 말하는지 혼동하면 안 됩니다.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거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갈 5:3, 4)
여기서 율법은 '할례'나, '짐승의 피로 드리던 제사'나, '각종 절기'나 '정결 의식' 같은 것을 말합니다.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었나니"(갈 5:14)
여기서 "율법"은 도덕법, 영원법, 폐하여지지 않은 법을 말합니다. 십계명과 같이 영원히 지켜야 할 법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이웃 사랑을 통하여 율법을 완성할 수 있고, 또 율법을 완성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갈 5:18)
성령이 오면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아니라 성령이 오면 율법이 요구하는 것을 다 지킬 뿐 아니라, 율법이 정한 죄를 짓지 않기 때문에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다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은 자는 율법을 다 지킨다는 뜻입니다.
다섯째, 만약 예수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고 속죄의 은총을 받은 자가 율법을 어기면 어떻게 되는가? 바울의 입장은 단호합니다. 지옥에 떨어진다고 합니다. 율법을 어기면 아무리 예수를 믿어도 지옥에 떨어진다는 것을 바울이 강조합니다.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화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갈 5:19-21)
위에 열거되는 것들은 다 율법의 항목들입니다. 이 율법을 지키지 않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요구되는 것은 구원의 '필요조건'이 아니라 '충분조건'입니다. 여기서는 '믿음'이 아니라 '행함'입니다. '순종'입니다. '열매'입니다. '행실'입니다. 이 충분조건에서 실패하면 그 역시 구원을 상실합니다. 그러므로 충분조건을 채워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십계명과 율법(도덕법, 영원법, 상법이나 토지법이나 결혼법이나 당시 필요하다가 후에 폐하여진 법은 제외)을 완전히 지키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갈 5:22-24)
바울은 성령의 열매를 강조합니다. 왜냐하면 열매가 없이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마 21:43)
이 열매야 말로 구원의 '충분조건'을 충족시킨 것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앞 부분에서는 <구원의 필요조건>을 강조한 반면, 후반부에서는 <구원의 충분조건>을 강조합니다. 이 두가지를 갖추어야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는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요 15:10)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요일 3:2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요일 5:3)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37-40)
마지막 심판은 열매를 보고 하며, 행실을 보고 합니다.
바울도 율법을 다 이룰 것을 강조합니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롬 13:10)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롬 13:9, 10)
보십시오.
바울은 십계명 준수를 최고의 가치로 두고 있습니다. 율법의 완성을 강조합니다. 절대 믿음만 가지고 천국 들어간다고 하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죄 사함 받아 죄로부터 깨끗해져서 의롭게 된다는 것이고, 그것은 구원의 과정 속에 반드시 일어나야 할 부분이고, 그 다음에로 율법과 계명을 완전히 지켜 율법을 완성해야만 천국 들어간다는 말씀입니다.
여섯째, 지금까지 나온 구원론들은 실패한 구원론이라 보면 정확합니다. 바울을 제대로 이해한 자들이 거의 없습니다. 바울을 잘 몰랐기 때문에 바울의 말을 오해하고 잘못된 구원론을 만들어 가르쳤기에 수많은 영혼들이 지옥에 떨어지고 있습니다. 지금 이 컬럼을 읽고 있는 우리 자신도 지옥에 떨어지고 있는지 모릅니다.
바울은 분명히 율법의 완성을 외칩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기에 예수님의 교훈을 따른 것입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롬 5:17, 18)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5:20)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마 19:1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