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동성 광효사(光孝寺)와 육조 혜능 선사
2024년 6월 29일(토)에는 조남호 선생 내외와 함께 광동성 광주 광효사(光孝寺)에 가서 참배하였습니다. 날씨는 덥지만 바람이 불어 더위를 그다지 느끼지 못하였습니다.
광효사는 육조 혜능 선사가 인종(印宗) 스님의 도움을 받아 삭발하고 구족계를 받아 스님이 되어 출가한 법성사(法性寺) 절입니다. 현재는 커다란 보리수나무가 있고 젊은 남녀들이 향을 피우기보다는 예쁜 꽃을 들고와서 공양하는 절이 되었습니다. 광효사 앞에는 옛날 거리를 조성하여 관광객이 아주 많습니다.
법성사에는 옛날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법성사 문앞에 세운 장대에 꽂은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는 것을 보고 두 스님이 펄럭이는 원인은 깃발 자체(自因)이냐 또는 바람 때문(他因)이냐를 놓고 논쟁하였는데, 혜능 선사가 논쟁에 끼어들어 깃발 자체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고 우리 마음(心王의 見分)이 반연하여 만든 현상(相分)이라고 상세하게 설명해주었다고 합니다.(출처 : 『五燈會元』(宋、普濟),卷一,「六祖慧能大師者」) 또 다른 이야기는 혜능 선사와 인종 법사가 서로 논쟁하였고 인종 법사가 혜능 선사에게 승복하여 제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선사와 법사 둘의 논쟁입니다. 인종 법사가 혜능 선사를 삭발해주고 구족계를 내려주어 정식 스님이 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두 이야기는 사실상 하나의 이야기이며 서로 달리 편집하였을 뿐입니다. 또 혜능 선사가 설명해준 내용은 어려운 뜻이 아니고 어떻게 심왕의 견분과 상분을 이해한 뒤에 참선할 것이냐는 것을 설명한 것입니다.
법성사 옛날이야기에서 주목할 것은 인종 법사가 혜능 선사에게 승복하고 주지를 물려주는 관대한 선양(禪讓) 태도입니다. 인종 법사가 혜능 선사와 토론하여 승복한 뒤에 제자가 되고 또 아주 커다란 수계식을 열고 혜능 선사에게 스님 자격을 내려주었습니다. 혜능 선사가 오조 홍인 문하에서는 문하 스님들과 절간을 물려받지 못하고 도망갔으나 법성사에서는 토론에서 이겨 절간을 빼앗다시피 하였습니다. 물론 이듬해 혜능 선사가 자진하여 법성사를 떠나겠다고 말한 것을 보면 절간을 물려받는 것이 쉽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인종 법사가 주지 스님으로서 순순히 승복하고 절간을 내놓았다는 관대한 선양 태도에 정말로 많은 사람이 감복합니다. 후계자를 선정할 때 실력 있는 외부 사람에게 물려줄 것인지 아니면 평소에 나에게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봉양한 내부 사람에게 물려줄지 쉽지 않은 결정입니다. 불교에서 종문 또는 주지의 상속문제는 옛날부터 골치 아픈 일이었습니다. 여기에는 후계자를 믿지 못하는 승심(勝心)과 이기심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현재 같으면 일어나기 어려운 일입니다.
현재는 대학에서도 대학 재단은 국립이나 공립일지언정 학과는 몇몇 교수들이 장악한 사립입니다. 몇몇 교수들이 학과 업무를 장악하고 후계자를 내부 제자 또는 출신대학의 후배를 불러들여 물려주는데 이것이 대학 공립, 학과 사립입니다. 그래서 학생들은 올바르고 좋은 교육을 받지 못하여 피해를 입고 있으며 학과는 학술 경쟁력을 잃고 있습니다. 옛날 오조와 육조의 경우를 보더라도 지금처럼 쉽지 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참고 자료 :
『육조대사 법보단경(六祖大師法寶壇經)』,부록,「육조대사 연기 외기(六祖大師緣記外記)」 :
육조 혜능 선사가 남쪽 광동성 지역으로 내려와 숨어서 지냈는데 의봉 원년 병자년(676년, 38살) 정월 8일에 인종(印宗) 법사를 만나 깊은 교리를 논쟁하였고 인종 법사가 육조 혜능 선사의 주장에 승복하였다. 정월 15일에 인종 법사가 사부대중을 모아놓고 육조 혜능 선사에게 머리를 깎아주어 출가시켰다. 2월 8일에는 인종 법사가 여러 훌륭한 스님들을 모셔와서 혜능 선사에게 구족계를 내려주어 스님 자격을 주었다. 모셔온 스님들 가운데 서경 지광율사(西京 智光律師)가 수계사(授戒師)를 맡고 소주 혜정율사(蘇州慧靜律師)가 수계식을 주관하고(羯磨) 형주 통응율사(荊州通應律師)가 교수(教授)를 맡고 중천축(中天竺) 기다라율사(耆多羅律師)가 설계(說戒)를 맡고 서국(西國) 밀다삼장(蜜多三藏)이 증계(證戒)를 맡았다.
인종 법사가 혜능 선사에게 구족계를 내려준 계단(戒壇)은 남조 송나라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中天竺人) 삼장법사가 만들었고 비석을 세워 “뒷날 육신보살이 여기에서 구족계를 받을 것이다.”고 말하였다. 또 남조 양나라 천감 원년(502년)에는 지약(智藥) 삼장법사가 서천축국에서 배를 타고 오면서 그 나라의 보리수 1그루를 가져와 이 계단 옆에 심고 예언하여 기록하길 “뒷날 170년이 지나 육신보살이 이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최상승법(最上乘法)을 연설하고 많은 중생을 건네주는데(濟度) 부처의 심인을 전수하는 참된 법주이다.”고 하였다. 혜능 선사가 여기에 와서 삭발하고 구족계를 받고나서 사부대중에게 칠불(七佛)부터 인도의 27조(祖)와 중국에서 초조(初祖) 달마 선사부터 오조(五祖) 홍인(弘忍) 선사까지 이어져 내려온 종지(單傳之旨)를 알려주었다. 혜능 선사가 법성사(法性寺)에서 삭발하고 구족계를 받고 선종 종지를 강연한 것 모두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中天竺人) 삼장법사와 지약(智藥) 삼장법사가 미리 예언한 대로 이루어졌다.(남조 양나라 천감 원년 임오년부터 당나라 의봉 원년 병자년까지 175년이다.)
『六祖大師法寶壇經』,附錄,「六祖大師緣記外記」︰
南歸隱遯,至儀鳳元年丙子(676年,38살)正月八日,會印宗法師詰論玄奧,印宗悟契師旨。是月十五日,普會四衆爲師薙髮。二月八日,集諸名德授具足戒。西京智光律師爲授戒師,蘇州慧靜律師爲羯磨,荊州通應律師爲教授,中天耆多羅律師爲說戒,西國蜜多三藏爲證戒。
其戒壇乃宋朝求那跋陀羅三藏創建,立碑曰:“後當有肉身菩薩於此授戒。”又梁天監元年(502),智藥三藏自西竺國航海而來,將彼土菩提樹一株植此壇畔,亦預誌曰:“後一百七十年,有肉身菩薩,於此樹下開演上乘度無量衆,眞傳佛心印之法主也。”師至是祝髮受戒,及與四衆開示單傳之旨,一如昔讖。(梁天監元年壬午歲,至唐儀鳳元年丙子,得一百七十五年。)
-----------------------------------------------
『오등회원(五燈會元)』(宋、普濟),卷一,동토조사(東土祖師),「육조 혜능대사(六祖慧能大師者)」 :
혜능 선사가 의봉 원년 병자년(676년, 38살) 정월 8일 남해에 머물렀는데 인종(印宗) 법사가 법성사(法性寺)에서 『열반경』을 강연하는 시기이며 혜능 선사는 행랑 창고에서 지냈다. 초저녁에 법성사 입구에 세운 장대(刹竿)의 깃발이 바람에 크게 펄럭이었다. 혜능 선사는 두 스님이 서로 말다툼을 하는데 한 스님은 깃발이 펄럭인 것이라고 주장하고 다른 스님은 바람이 펄럭인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서로 깃발이 펄럭이는 원인과 결과를 토론하는 것을 들어보니 두 스님이 주고받는 문답 내용 모두 교리(唯識)에 맞지 않았다. 혜능 선사가 “두 분 스님께서 벌이는 수준 높은 토론에 저 같은 속세 사람(혜능 선사는 아직 삭발하고 구족계를 받지 않은 속세 사람)이 참여할 수 있을까요? 깃발이 스스로 펄럭인 것도 아니고 바람이 깃발을 펄럭인 것도 아닙니다. 깃발이 펄럭인 현상은 내 마음(心王)이 일으킨 현상(相分)입니다.”라고 상세히 설명해주었다. 인종 법사가 혜능 선사의 상세한 설명을 듣고 이해한 뒤에 혜능 선사를 무섭도록 두려워하며 특별하게 여겼다. 이튿날 인종 법사가 혜능 선사를 방장실에 모시고 다시 바람에 펄럭인 깃발에 관하여 상세한 설명을 요청하였다. 혜능 선사가 유식(唯識) 교리에 따라 상세하게 설명하였다. 인종 법사가 자신도 모르게 의자에서 일어나 “행자는 분명히 일반 속세 사람이 아닙니다. 스승은 누구신지요?”라고 여쭈었다. 혜능 선사는 다시 숨김없이 오조 홍인 선사에게서 선법을 받은 과정을 말하였다. 모두 들은 뒤에 인종 법사는 제자가 되겠다는 의식을 치루고 참선 요령(禪要)을 가르쳐주길 요청하고 다시 사부대중에게 “저 인종(印宗)은 구족계를 받은 범부이며 오늘에야 육신보살을 만났습니다.”라고 말하고 자신보다 낮은 자리에 앉아있는 노씨 거사(육조 혜능)를 가리키며 “바로 이 분이 육신보살이십니다.”라고 알려주었다. 그런 뒤에 혜능 선사가 오조 홍인 선사에게서 물려받은 의발(衣鉢) 증거품을 보여달라고 요청하고 사부대중 모두에게 의발에 참배하도록 하였다. 정월 보름날에 여러 유명한 스님들을 모셔서 혜능 선사를 삭발하였다.
2월 8일에는 법성사(法性寺)에서 지광(智光) 율사가 혜능 선사에게 구족계를 내려주었다. 법성사에 있는 계단(戒壇)은 남조 송나라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中天竺人) 삼장법사가 만든 것이다. 『삼장기(三藏記)』에는 “뒷날 육신보살이 이 계단에서 구족계를 받을 것이다.”고 적었고 또 남조 양나라 말기에 진체(眞諦) 삼장 법사는 계단 곁에 보리수 2그루를 직접 심고 사람들에게 “뒷날 120년이 지나고 큰 보살(大開士)이 이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무상승법(無上乘法)을 강연하고 많은 중생을 제도(濟度)할 것이다.”고 말하였습니다. 혜능 선사가 구족계를 받아 스님이 된 뒤에 이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사조 도신(道信) 선사와 오조 홍인(弘忍) 선사의 참선 방법을 설명하였는데 정말로 두 스님의 예언과 똑같았다.
이듬해 2월 8일 갑자기 여러 사람에게 “저는 여기 법성사에 머물지 않고 먼저 숨어지냈던 곳(舊隱)에 돌아가고 싶습니다.”고 말하였다. 인종 법사를 비롯하여 스님 수백 수천 명이 혜능 선사를 보림사(寶林寺)로 돌라가는 길을 배웅하였다. 뒤에 소주 자사(韶州剌史) 위거(韋據)가 대범사(大梵寺)로 모셔와서 설법을 요청하고 무상금강심지계(無相金剛心地戒)를 받았다. 대범사 문인 스님들이 혜능 선사의 설법을 기록하여 『단경(壇經)』(법성사 계단에서 구족계를 받은 육신보살의 불경)이라고 이름 지었는데 당시에 널리 유행하였다.
『五燈會元』(宋、普濟),卷一,東土祖師,「六祖慧能大師者」︰
(六祖慧能,638-713)至儀鳳元年丙子(676年,38살)正月八日,屆南海,遇印宗法師於法性寺講『涅槃經』,祖寓止廊廡間。暮夜,風颺剎幡,聞二僧對論,一曰幡動,一曰風動,往復酬答,曾未契理。祖曰︰“可容俗流輙預高論否?(此句話出自『金剛經』)直以風幡非動,動自心耳。”印宗竊聆此語,竦然異之。明日,邀祖入室,徵風幡之義。祖具以理告,印宗不覺起立曰︰“行者定非常人,師爲是誰?”祖更無所隱,直敘得法因由。於是印宗執弟子之禮,請授禪要,乃告四衆曰︰“印宗具足凡夫,今遇肉身菩薩。”乃指座下盧居士(六祖慧能,俗姓盧氏)曰︰“即此是也。”因請出所傳信衣,悉令瞻禮。
至正月十五日,會諸名德,爲之剃髮。二月八日,就法性寺智光律師授滿分戒。其戒壇,即宋朝求那䟦陀三藏之所置也。『三藏記』云︰“後當有肉身菩薩在此壇受戒。”又梁末眞諦三藏於壇之側手植二菩提樹,謂衆曰︰“却後一百二十年,有大開士於此樹下演無上乘,度無量衆。”祖具戒已,於此樹下開東山法門(四祖道信、五祖弘忍俱住東山說法,稱東山法門),宛如宿契。明年二月八日,忽謂衆曰︰“吾不願此居,欲歸舊隱。”即印宗與緇白千餘人,送祖歸寶林寺。韶州剌史韋據,請於大梵寺轉妙法輪,并受無相心地戒。門人紀錄,目爲『壇經』,盛行于世。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