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한번 낳아서 한번 죽는 것은 정해진 것이라고 하였다.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
이러한 인생을 성공적으로 산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의 성공적인 삶이 영속적이고 영원한가?
인생 승리 성공은 끝에 가보아야 확인할 수 있다. 오늘의 말씀의 현장에서 무덤에 붙여진 별명은?
탐욕의 무덤, 욕심쟁이 무덤이다. 무덤의 이름은? 기브롯 핫다아와 : 탐욕의 무덤이라는 뜻이다,
내가 남긴 무덤에 쓰여질 별명은 무엇일까?
주님을 섬기다 떠난 성도, 영혼을 사랑한 성도, 헌신의 성도, 의로운 성도, 진실한 성도,
충성된 성도, 믿음의 성도. 나를 아는 사람들이 나의 무덤을 보고 무엇이라 부를까??
얼마전에 조용기 목사님 묘지 앞에 가 보았다. 묘지 앞에 목사 조용기의 묘 라고 비석이 서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조용기 목사님. 온 세계의 여러 사람들이 알고 있는 목사님, 주님께서 알고 있는 종.
다양한 별명으로 부르며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보좌에서 하나님 아버지께 받은 별명도 있을 것이다.
오늘 본문에는 기브롯 핫다아와 : 탐욕의 무덤을 소개한다.
나와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이 적어도 탐욕의 무덤, 욕심쟁이 무덤이라고 불려지지 않기를 원한다.
그러기에 백전 백승을 탐하지 말고 백전 불태로 살아가기를 원한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 (百戰百勝)이라고 한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 백번 승리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백전 백승을 소원할른지 모른다. 그래서 전심전력 할 것이다.
목적을 위해서 가진 수단 방법을 다 사용할른지 모른다. 혹시 부정이라도 거짓이라도 불법이라도
옳지 않은 것이라도... 그렇게 해서 정말 백전백승이 가능한가? 그 승리가 영속적이고 영원할까?
그런데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 (白戰不胎)라고도 한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게 되지 않다고 하는 말이다. .
나의 인생은 다양한 패배를 통해서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게 되는 삶과 사역을 배웠고 단련하게
되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내 속을 바라보며 정직하게 고백하므로 이루는 백전불태는 영속적이고
영원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 금년도 후반에 들어섰다. 그동안 우리는 행복하게 살았는가?
현재 나의 인생은 성공에 이르고 있는가? 혹 실패 했어도 바라는 것은 위태롭지 않게 되기를 원한다.
나의 인생 결론은 끝 날에 하나님께서 성공했다고 인정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는 후대에 진실로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한 주님의 제자라는 별명을 무덤에 남기게 될 것이다.
오늘 본문에는 한번의 소중한 일생의 인생에 실패하여 탐욕의 무덤을 남겼다고 기록하고 있다.
기브롯 핫다아와 저들은 430년 동안 애굽에서 노예로 살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해방을 받아 자유의
몸으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새출발했던 사람들이다. 저들은 처음에 기쁨과 감격으로 충만하였다.
해방 되었다고 독립 만세를 소리쳤을 것이다. 처음 출발은 완전 무장을 하고 일사각오로 길을 나섰던
사람들이다. 저들은 홍해를 하나님의 능력으로 건넜고 광야에서 하나님이 공급해준 만나를 먹었으며
반석에서 솟아나는 생수를 마시면서 행진하던 자들이다. 저들에게는 분명한 목적지가 있었다.
가야 할 길에 들어섰다. 그런데 저들은 그것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저들은 목적지를 생각하지 않았다.
어느 사이에 저들은 과거에 묶여있었다. 그리고 지금 눈에 보이는 현실에 영향을 받았다.
먹을 것이 넉넉했던 애굽, 다양한 메뉴가 있던 애굽을 생각하며 불평 불만을 터뜨렸다.
심령에 탐욕이 일어났다. 민11:5-6절-- 4절에 보면 섞여사는 자들이 있다고 하였다.
그들이 탐욕을 품으니까 이스라엘 백성들도 덩달아 탐욕으로 구하였다. 영향을 받았다
섞여사는 무리들로 인해 불평이 전염되었다. 모세가 안타까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호소한다.
10-11 답답함을 털어놓는다. 12-15 힘겨워하는 모세의 호소이다.
그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16-20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모세가 너무 어이없고 기가막혀
하나님께 반문한다. 23- 그리고 오늘 본문 31-32에서 말씀하신 기적을 나타내셨다.
사방 하룻길 : 40키로 두 규빗 : 90쎈치 두께로 주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각각 10호멜씩 거두었다.
한호멜이 18말이다. 10호멜이면 18가마이다. 그들이 밤낮으로 모아들였다
그런데 어떻게 요리했는지 날 것으로 뜯어먹었다. 잇 사이에 씹히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혼을 내셨다.
33절 그들이 탐욕을 부리다가 죽어 무덤이 되었다. 그 이름이 기브롯 핫다아라 이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무덤. 오늘도 현대인들은 탐욕으로 무덤을 만들고 있다.
인류의 시조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은 탐욕이 바로 인류의 최초 무덤을 만들었다.
오늘도 여전히 탐욕의 무덤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공동묘지화 되어가는 세계 세상이다.
서구 사람들은 무덤을 평평하게 만든다. 흙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 사람들은 무덤을 봉을 크게 만들어 드러낸다. 자랑하려는 것이다. 가문을 자랑하고 공로를
드러내려는 것이다. 살아생전 불효한 자식이 무덤의 봉우리는 더 크게 한다는 말이 있다.
자신의 불효함을 가리고 조상을 잘 섬겼다는 말을 듣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차이
귀족과 천민의 차이를 무덤 크기로 높이로 알게 하려 하였다. 탐욕의 무덤 표본이다.
오늘 그리스도인들의 관심은 어디에 있을까? 무덤을 크게 만드는 경쟁을 하지 않나?
예배당 크기 경쟁. 돈 많은 경쟁, 자동차, 아파트, 모두 크기로 경쟁하지 않는가?.
처음에는 주님의 은혜로 시작을 했는데, 열심을 내는 것도 모두 주님 영광이라고 했었는데..
어느 사이에 바뀌었나! 주님의 은혜는 간곳 없고, 하나님 영광도 가려지고... 자기 것이 되었네.
끝이 안좋으네. 그것이 탐욕으로 욕심으로 한 것이라면 그것은 욕심쟁이 무덤을 만드는 것이다.
기브롯 핫다아라 탐욕의 무덤이다. 탐욕이 만드는 영혼의 무덤 하나님을 반역하는 무덤.
자신의 무덤을 자신의 교만 불순종으로 만든다. 탐욕이 만드는 두 번째 무덤 비양심의 무덤이다.
도덕성 상실, 부패, 부정의 원인 양심의 무감각 때문이다. 탐심이 만들어낸 무덤이 마비된 양심의
무덤이다. 탐욕이 만들어낸 세 번째 무덤은 불행의 무덤이다. 탐욕은 행복을 깨뜨려 불행하게 한다.
자신 있어야 할 자리와 분수를 알지 못하고 교만과 탐심으로 눈이 멀어 보지 못하는 것이다.
목적지를 향해 끝을 보고 현실을 감당하면 광야에 무덤을 남기지 않았을 것이다.
약속한 곳,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천국에 들어가서 영원히 영존하며 살게 될 것이다.
에녹과 같이... 엘리야와 같이... 여호수아 갈렙 그리고 믿음의 새로운 세대들과 같이..
나와 우리들이 남길 무덤의 별명은 아버지 앞에서 결론이 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