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두 의학박사의 요양병원 이야기(62)
어머니, 어머니, 우리 어머니
박경순 씨는 93세(1931년 생)로 2017년 11월에 오셔서 7년째 입원 중이다. 요양병원에서 90대 할머니는 흔하게 볼 수 있다. 회진할 때 이분 등을 늘 두드려드린다.
“왜 등을 두드리우?”
“네, 모습이 제 어머니를 너무 닮으셔서 어머니 생각이 나서 그럽니다. 조금 안정되어 봉양을 하려고 하니 벌써 가시고 안 계셔서 늘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어머니는 나를 마흔다섯에 낳았다. 나는 열 번째로 태어났는데 나의 동생을 임신했을 때 큰누나가 시집을 가면서 동네 사람 부끄럽다고 어머니를 억지로 끌고 읍내에 가서 유산을 시켰다고 한다.
요즘 우리나라 합계출산율 0.7이 붕괴되었다고 우려하는 뉴스를 들었다(합계출산율 : 한 여성이 평생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 어머니의 출산율은 두 자릿수 11이었으니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를 홀로 두었는데 그만 치매에 걸리고 말았다. 노인을 혼자 두면 치매가 빨리 온다는 것을 미처 몰랐던 것이다. 옆집에 살던 형님 내외가 어머니를 모셨지만 치매가 온 이후 잘 먹지를 못하고 잘 못 드시니 변을 잘 못 보고 변을 잘 못 보니 먹지를 못하는 악순환이 겹쳐 결국 쇠약해져 돌아가셨다.
• 할머니의 음덕(陰德)은 손주에게
해운대신도시에서 20년간 개업을 하였다. 개업 초와 중간중간 큰 위험과 고비가 몇 번 있었지만 나의 능력을 뛰어넘어 문제가 잘 해결되고 극복이 되어 신기하게 생각한 적이 많다. 병원에 오는 환자 중 한 분이 신내림을 받은 분이 있었는데 이분이 병원에 들어서면서 ‘어허, 이 집은 할머니가 잘 보호해 주시는구나’하고 말한 적이 있다. 할머니는 나를 아주 귀여워 해주시고 나를 데리고 동네 마실도 자주 다니시곤 했다. 할머니가 하늘나라에 가셨어도 나를 보호해 준다고 생각하니 아주 든든하면서도 날 지켜보시는구나 싶어 할머니 기대에 어긋한 행동을 할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가 손주들에게 힘이 되어주지만, 위험에서 보호해 주시는 분은 할머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곳 요양병원에서 노인 환자들을 보면 어머니와 할머니 생각이 자주 난다. 70세가 넘으면 모든 것이 평준화된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키가 큰 사람도 등이 굽고 뼈가 위축되어 키도 고만고만 비슷해지고, 얼굴 주름살도 많아져 예쁘나 미우나 그냥 노인일 뿐이다.
할머니들에게서 우리 어머니나 할머니 모습을 언뜻언뜻 보며 이분들에게 어머니에게 미처 못해준 감사와 위로의 손길을 주고 싶은 마음을 자주 느낀다. 세월이 많이 흐르고 시대가 변해도 어머니 마음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
며느리가 손자에게 대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무한한 정성과 사랑을 쏟는 것을 알 수 있다. 아기가 칭얼대며 밤새 잠을 못 자게 해도, 어떤 어려움도 다 참아내고 어머니가 나를 키운 것처럼 사랑으로 키운다.
이곳에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그렇게 정성을 다하여 자식을 길러내셨을 것이다. 치매에 걸렸어도 젊었을 때 아기를 낳고 키웠던 기억이 나는지 아이들 배고프겠다며 집에 가야 한다고 말하기도 하고, 늦게 일어나면 시어머니에게 혼난다고 이른 새벽에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고 직원을 괴롭히는 할머니도 있다. 아기를 업었다며 베개를 업고 다니는 할머니도 있고, 베개를 아기 머리로 여기며 어루만질 때 그 사랑스러운 표정을 보면 어머니의 얼굴이 떠오르기도 한다.
아들딸들이여, 이곳에 누워있는 어머니, 아버지를 자주 찾아 뵙고 서러운 마음 들지 않게 않게 감사의 말을 해보자.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부모님에게 보답하는 마음을 가져보자. 돌아서서 눈물 훔치는 그런 날은 우리 어머니도 아버지도 우리를 이렇게 키웠다고 느낄 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