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만 느끼기는 어쩐지 아까워서 권하는 텃밭 농사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마당으로 나가 밤새 달라진 작물을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다. 요즘 내 병증이다.
봄이 오면 꼭 하고 싶었던 농사 중에 마당 텃밭이 있었다. 집에서 멀리 있는 논이나 밭에는 다양한 작물보다는 일하기 수월하고 팔아먹을 만한 것으로 서너 가지 몰아 심고, 마당 텃밭은 아기자기하고 다양한 작물을 바로 뜯어 먹을 수 있게 키워보고 싶었다.
지난해 처음으로 마당 잔디를 걷어내고 네 평쯤 해서 마당 텃밭을 야심차게 시작했다. 그러나 집 지을 때의 공사판 흙에 그냥 심었더니 수확은커녕 가을까지도 자라지도 않는 바람에 정나미만 떨어졌다.
그렇게 와신상담하며 지난 한 해를 보내고 겨울 내내 시커먼 산 흙이랑 마사토를 파와 복토와 계량을 하고 넓이도 여섯 평으로 늘렸다. 화단이나 마당에서 풀을 뽑다가 지렁이를 만나면 잡아서 텃밭에 넣기도 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봄이 오기만을 학수고대했다.
내가 봄이 오기만을 기다린 이유
온 산에 꽃이 피는 3월이 왔을 때 산서 밭에는 감자를 심었지만, 내가 사는 해발 500m 송학골은 아침저녁으로 영하 4~5도를 오르내리는 통에 농사를 시작할 수 없었다.
남부 지방임에도 장수의 겨울은 중부지방처럼 길고 추운 까닭에 3월이 되도록 아무것도 하지 못해 조바심을 냈다. 3월 말일, 식당에서 나온 토마토 한 알을 먹고 씨앗을 발라 마당에 심으면서 그야말로 야심찬 텃밭 농사가 시작되었다.
먼저 텃밭 작물 구상에 들어갔다. 텃밭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재배 가능한 작물 선정이 중요했고, 짜임새 있는 재배 순서도 필요했다. 농촌진흥청에서 받은 영농일지 2년의 경험과 인터넷 자료를 활용해 텃밭 재배 구상도를 만들었다.
상추와 쌈채류, 오이, 당근, 호박, 고추, 가지, 토마토에 아내가 강력히 원하는 부추, 대파, 청경채를 심기로 했다. 여기에 사이사이 옥수수와 무, 들깻잎, 참외를 심기로 했다. 텃밭은 세로로 세 줄의 이랑과 두 줄의 고랑을 만들었다. 길게 놓인 세 줄의 이랑 가운데 맨 앞엔 풋고추, 청양고추, 오이고추, 가지를 심는다. 여름 장마 때 탄저병이나 병해충을 방지하기 위해 고추와 가지를 섞어 심자.
또 가운뎃줄은 맨 왼쪽에 부추 씨앗을 뿌리고 가운데에 상추, 치커리, 무, 청경채, 청겨자를 섞어서 뿌리자. 가운뎃줄 맨 앞쪽에는 당근 씨앗을 뿌리고 여름 내내 솎아 먹는 걸로 하고. 특히, 가운뎃줄은 좀 이른 4월 초에 씨를 뿌리고 작은 하우스처럼 비닐 덮개를 씌워 재배하기로 하자. 맨 오른쪽 줄은 호박과 오이 6주, 토마토 10주를 심고 사이사이 상추나 비트, 옥수수, 참외를 섞어 심자.
구상을 마친 후 종자를 사고(종자는 아는 사람들한테 토종 종자를 얻기도 하고 농협 마트에서 사기도 했다), 가운뎃줄부터 씨앗을 뿌렸다. 아침저녁 물을 주고 춥거나 서리가 올 땐 비닐을 덮어가며 애지중지 보살폈다. 영양분이 풍부하게 하려고 쌀뜨물을 따로 받아놓았다가 뿌려주기도 했다.
며칠 지나자 아주 작은 녹색 점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는데 상추와 청경채가 빨랐다. 이어 부추가 올라오고 청겨자도 올라왔다. 일 년 채소 중에 가장 많이 사 먹는 당근은 애를 태우더니 제일 늦게 올라왔다. 내가 원한대로 모든 싹이 올라오고 한 달쯤 지나면서 낮 기온이 18도 정도 되었을 때 비닐을 제거했다. 이제 노지의 힘으로 자연과 호흡하며 자라주길 바랐다.
기상예보에서 만상(이른 봄에 내리는 서리)이 온다고 할 때는 부랴부랴 비닐을 덮어주어 서리 피해를 막았다. 5월 첫날은 노동절인데 나는 나름의 농사 노동을 했다. 이랑 맨 앞에 청양고추 3주, 오이고추 3주, 풋고추 3주와 가지를 40~50cm 간격으로 넓게 섞어 심었다. 올해부턴 새로운 실험으로 한 종류의 종자를 심으면서도 사이사이 다른 종류 작물을 배치했다. 이른바 사이짓기와 섞어짓기의 시도이다.
섞어짓고 사이짓고 돌려짓고
섞어짓기는 서로 도움이 되는 동반식물을 대등한 숫자로 심어주는 것이다. 이를테면 부추와 당근을 붙여서 근처에 심거나 섞어 심는다거나 당근과 토마토를 섞어 심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경쟁 관계 작물도 있는데 시금치와 감자, 부추와 콩류 등이다. 경쟁 관계 작물은 피해야 한다.
사이짓기는 주 품종을 심고 거기에 상호 보완 관계나 병충해 예방에 도움이 되는 작물을 보조적으로 심는 것이다. 예를 들면 감자밭 둘레에 옥수수를 심거나 대파밭에 참깨를 심는 것이다. 진도는 우리나라 대파 주산지인데 대파밭에 가보면 사이사이 참깨 심은 광경을 흔히 볼 수 있다.
나는 동반식물과 병해충방제에 서로 도움을 주는 작물을 섞거나 사이사이에 심고 농약이나 제초제 없이 텃밭을 가꾸고 있다. 그러나 섞어짓기나 사이짓기가 완벽한 방제가 될 수 없다. 가끔 풀도 뽑고, 뽑은 풀로 멀칭(덮어주기)도 하고 자리공 같은 식물을 끓여 친환경방제도 해야 한다. 그런데도 구멍 숭숭 난 채소를 마주하기도 한다.
섞어짓기와 사이짓기에 이어 관심 있게 신경 써야 하는 것이 바로 돌려짓기다. 커다란 농장을 가지고 온갖 작물을 많이 심을 수 있다면 이어짓기가 불필요할지 모른다. 그러나 한 평에서 열 평 정도 텃밭을 하는 처지라면 이어 심을 작물을 잘 선택해야 한다. 가령 상추, 시금치, 열무, 청경채 등은 재배 기간이 두 달이면 먹을 수 있어 연내 수시로 이어짓기를 하면 일 년 내내 늘 먹을 수 있다.
오이나 당근, 옥수수, 감자 등은 봄과 여름 일 년에 두 번 재배해서 수확할 수 있기에 3월에 감자를 심어 6월 중하순 수확 후에는 그 자리에 콩이나 들깨, 열무, 시금치, 당근 등을 심을 수 있다. 지금 내 텃밭에서는 청경채나 들깻잎, 열무, 상추, 고추, 오이, 호박잎이 한창 제철인데 청경채나 무는 뽑아 먹고 그 자리에 씨를 뿌리면 한 달 만에 또다시 뽑아 먹을 수 있다. 며칠 전엔 지금 한창 뜯어 먹는 상추가 끝날 것을 대비해 여름에 먹을 상추씨를 뿌리고 수수를 모종으로 만들기 위해 포토에 뿌렸다.
무더운 한여름은 온갖 작물의 절정기다. 참외, 수박, 토마토, 호박, 고추, 오이, 가지, 비트···. 올해 텃밭은 딸랑 6평이지만 60평 부럽지 않게 먹을거리가 풍성하다. 그뿐만 아니라 하루가 다르게 파릇파릇 자라는 새싹은 삶의 에너지와 힘을 줄 뿐더러 마음에도 맑고 신선한 자연의 힘을 심어준다.
목구멍을 넘겨 신선하고 맛있는 녹색 채소로 육체적 건강을 챙겨주는 건 기본이다. 누구라도 마당이나 옥상에서 딸랑 한 평이라도 텃밭 농사를 지어보시라. 그 한 평, 또는 한 고랑이 주는 행복을 나 혼자 느끼기 아까우니 모든 분이 지금이라도 느껴보길 권유한다.
이종명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첫댓글 딸랑 6평 농사 지으면서 이렇게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마음에 듭니다.
사실 농사라는게 6평이나 60평이나 시간이 좀 더 많이 걸릴 뿐 해야할 일은 똑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