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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 믿음을 도우시는 주님
성경 : 삿 6:33~40
찬송 : 357장
저자 : 이삼규목사
출처 : 20221009 낙양교회 주일 낮 예배
삿 6:33 그 때에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 사람들이 다 함께 모여 요단 강을 건너와서 이스르엘 골짜기에 진을 친지라
삿 6:34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하시니 기드온이 나팔을 불매 아비에셀이 그의 뒤를 따라 부름을 받으니라
삿 6:35 기드온이 또 사자들을 온 므낫세에 두루 보내매 그들도 모여서 그를 따르고 또 사자들을 아셀과 스불론과 납달리에 보내매 그 무리도 올라와 그를 영접하더라
삿 6:36 기드온이 하나님께 여쭈되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거든
삿 6:37 보소서 내가 양털 한 뭉치를 타작 마당에 두리니 만일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주변 땅은 마르면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줄을 내가 알겠나이다 하였더니
삿 6:38 그대로 된지라 이튿날 기드온이 일찍이 일어나서 양털을 가져다가 그 양털에서 이슬을 짜니 물이 그릇에 가득하더라
삿 6:39 기드온이 또 하나님께 여쭈되 주여 내게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말하리이다 구하옵나니 내게 이번만 양털로 시험하게 하소서 원하건대 양털만 마르고 그 주변 땅에는 다 이슬이 있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삿 6:40 그 밤에 하나님이 그대로 행하시니 곧 양털만 마르고 그 주변 땅에는 다 이슬이 있었더라
어느 작은 교회에서 찬양 인도로 열심히 섬기던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 청년은 열정과 사명감으로 최선을 다해 섬겼지만, 여전히 부족한 자신의 실력에 열등감을 느끼고 불안해했습니다. 어느 날 교회 목사님과 찬양 인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던 그는 자신이 다른 사람과 비교되자 더욱 의기소침해졌습니다. 열심은 있었지만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생각하며 자기 자신에게 크게 실망했습니다. 이를 해결하고자 금식하기로 작정하고, 기도하기 위해 집에서 멀리 떨어진 기도원을 찾아갔습니다. 자신에게 실망하신 것 같은 하나님께 책망과 꾸중을 들을 각오를 하고 산속에 있는 기도원으로 들어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도착한 곳에서 버스에서 내려 몇 발짝을 내딛는데, 마음속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에게 한 번도 실망한 적이 없단다.” 처음으로 듣는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이 한마디에 청년은 마음이 녹아내렸고, 스스로 지고 있던 모든 마음의 짐을 벗어 버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하나님을 오해했고,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느끼지 못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자신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과 사랑을 깊이 체험한 후, 남은 기도의 시간 동안 마음껏 하나님을 찬양하고 돌아왔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시선과 다른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보실 때가 많습니다. 나 자신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과 하나님의 시선이 다름을 느꼈던 적이 있습니까?
기드온은 사사기에 등장한 다섯 번째 사사이자 6명의 대(大)사사에 속하는 인물로, 기드온 이야기는 사사기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다른 사사들에 관한 서술과 달리 기드온 이야기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전쟁의 전개, 이후의 상황을 상세하게 보여 줍니다. 당시 미디안과 아말렉, 동방 사람들의 침입은 이스라엘에 매우 위협적이었습니다. 그들은 서로 연합해 수확기가 되면 찾아왔습니다. 성경은 그들이 장기간 그 땅에서 진을 치고 약탈했으며, 메뚜기 떼같이 많이 쳐들어왔다고 표현합니다. 이러한 일이 매년 계속되자 이스라엘은 생존 차원에서 큰 위기를 겪게 됩니다. 하나님은 한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의 배교를 지적하시고,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말씀하시며, 사자를 보내 기드온을 사사로 부르십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매우 의심이 많고 소심한 인물로, 여러 차례 하나님의 구원과 함께 하심을 확인하고 표징을 구하며 하나님을 시험합니다. 기드온의 이야기는 적들의 손에서 이스라엘이 어떻게 구원받았는가에 초점을 두기보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보여 주는 데 중점을 둡니다. 즉, 기드온의 영웅적인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이 구원의 주체가 되시고, 하나님만이 유일한 경배의 대상이시며,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돌이키기 위해 열정적으로 일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을 부어 주심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 사람 연합군은 이스라엘에 너무도 위협적이고 두려운 존재였습니다. 기드온은 노략질하는 미디안의 눈에 띌까 두려워 포도주 틀에서 몰래 밀을 타작했습니다.
삿 6:11 여호와의 사자가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에게 속한 오브라에 이르러 상수리나무 아래에 앉으니라 마침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
√삿 6:33 그 때에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 사람들이 다 함께 모여 요단 강을 건너와서 이스르엘 골짜기에 진을 친지라
삿 6:34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하시니 기드온이 나팔을 불매 아비에셀이 그의 뒤를 따라 부름을 받으니라
미디안 사람과 아멜렉 사람과 동방 사람들이 다 함께 모였습니다. 그리고 요단강을 건너 이스르엘 골짜기에 진을 쳤습니다. 미디안과 그 연합군은 이렇게 매년 이스라엘을 침입했습니다. 이스르엘 골짜기는 비옥한 곳이었으며 주변 지역을 침입하기 편리한 지점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미디안 연합군은 이 지역에 진을 친 것입니다.
그러나 미디안과 싸워 이스라엘을 구원해야 하는 하나님의 때가 이르자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임합니다.
‘여호와의 영’은 옷니엘, 입다, 삼손 등의 사사가 하나님의 능력을 발휘할 때 사용되는 중요한 표현입니다. 다만 34절에서 기드온에게 여호와의 영이 ‘임하였다’(라바쉬)라는 표현은 ‘(옷처럼) 둘러싸다, 덮다, 감쌌다’라는 원어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표현은 성경 다른 부분에 나타나는 일반적인 표현이 아니라 구약 성경에서 세 번 나타나는 표현입니다(34절, 대상 12:18; 대하 24:20). 따라서 ‘여호와의 영을 옷 입다’의 문자적 의미는 기드온 자신에게 출중한 능력이나 자질, 담대한 믿음이 없지만, 여호와의 영이 친히 그를 둘러싸고 보호하신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이는 기드온은 이 전쟁의 대리인일 뿐, 이 싸움은 철저하게 하나님이 주체가 되어 행하신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 줍니다.
√삿 6:34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하시니 기드온이 나팔을 불매 아비에셀이 그의 뒤를 따라 부름을 받으니라
삿 6:35 기드온이 또 사자들을 온 므낫세에 두루 보내매 그들도 모여서 그를 따르고 또 사자들을 아셀과 스불론과 납달리에 보내매 그 무리도 올라와 그를 영접하더라
여호와의 영을 힘입은 기드온은 두려움을 이기고 그의 집안 아비에셀을 향해 나팔을 불어 군대를 소집합니다. 이어서 가나안 땅의 서북쪽 지파들인 므낫세와 아셀, 스불론과 납달리에도 사자를 보내 군사를 모집합니다.
여기에서 몇 가지 의문점이 제기 됩니다.
왜 기드온의 가문과 므낫세 지파의 사람들이 기드온의 부름에 응답할 준비가 되어 있었는가?
그들은 기드온의 지도력이나 용기에 깊은 인상을 받은 것인가?
기드온을 여호와의 사자가 언급한 ‘큰 용사’로 생각했기 때문인가?
하나님이 기드온을 군사 지도자로 부르시자, 그의 가문과 므낫세 지파 사람들은 그의 지위를 격상하여 인식한 것인가?
또는 기드온이 앞서 아버지 요아스의 집에 있던 바알 제단과 아세라 목상을 파괴한 일로 인해 기드온을 두려워했기 때문인가?
그렇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어지는 이슬과 양털의 이야기에서도 내부적으로나 개인적으로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듯합니다. 기드온은 여전히 주저합니다. 본 단락과 나란히 놓인 다음 단락에는 지도자의 역할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모두 시도하는 기드온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그 대답은 34절의 시작 구절에서 찾아야 합니다. 즉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기 전 기드온은 평범하고 소심한 청년이었지만, 하나님의 영이 임하자 그는 사사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문제는 무엇입니까? 그 두려움을 넘어서기 위해 나의 믿음 생활에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믿음의 반대말은 두려움’이란 말이 있습니다. 두려움은 믿음이 연약할 때 나타나는 가장 보편적인 감정입니다. 반대로 두려움을 이기는 것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믿음, 신뢰입니다. 기드온은 매우 소심하고 두려움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이스라엘을 향해 나팔을 불고 싸움을 준비할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임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영이 그를 감싸고 두를 때, 그는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선포하며 세상 앞에 설 수 있는 용사가 되었습니다. 우리 삶에 두려움과 염려가 찾아올 때 가장 먼저 점검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의 영으로 무장되어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모든 상황을 주목하시는 하나님은 우리가 그 상황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확신을 가지고 반응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말씀하시며, 우리가 하나님을 확신 있게 바라볼 수 있도록 성령으로 친히 옷 입혀 주십니다.
√약속 성취의 징표를 보여 주심
기드온이 여전히 망설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표증을 구했습니다.
√삿 6:36 기드온이 하나님께 여쭈되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거든
삿 6:37 보소서 내가 양털 한 뭉치를 타작 마당에 두리니 만일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주변 땅은 마르면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줄을 내가 알겠나이다 하였더니
하나님의 말씀은 이미 분명히 주어졌습니다. 하지만 기드온은 하나님이 자신을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인지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기드온은 주저하면서 표적을 요구하면서 계속 하나님을 시험했습니다. 기드온은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같이(36~37절)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을 사용하실지 확신을 요구했습니다. 기드온의 문제는 하나님과의 제한된 경험으로 인해 하나님이 항상 당신의 말씀을 성취하심을 믿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표적을 요구하는 것은 믿음의 표시가 아니라 불신의 표시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고, 하나님의 영으로 옷 입었으며, 백성을 소환하자 이스라엘 백성이 압도적으로 반응하며 하나님이 선택하신 지도자임을 확인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기드온은 자신이 군대를 지휘하는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드온의 입장에서는 하나님이 진정 자신을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원하시는지 알고 싶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불신의 태도이지만, 하나님은 믿음이 연약한 기드온을 꾸짖거나 물리치지 않으시고 그가 믿음을 확증할 수 있도록 도우셨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요청을 들어주신 것은 기드온이 여전히 두려움에 떨고 있음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다음 날 기드온이 아침 일찍 일어나 양털 뭉치를 짰더니, 양털 뭉치로부터 이슬이 나와 물이 그릇에 가득했습니다(38절). 기드온이 요구한 대로 하나님이 응답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여전히 망설였습니다. 다시 한 번 하나님께 표증을 구합니다. 이런 행동은 기드온이 지금의 상황을 얼마나 두려워하고 있는지, 또 얼마나 벗어나고 싶어 하는지 보여 줍니다.
√삿 6:39 기드온이 또 하나님께 여쭈되 주여 내게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말하리이다 구하옵나니 내게 이번만 양털로 시험하게 하소서 원하건대 양털만 마르고 그 주변 땅에는 다 이슬이 있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기드온은 처음에는 자신의 동기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는 자신이 여호와를 ‘시험하고 있음’을 언급합니다. 기드온의 이 표증에서 세부 사항을 정반대로 바꾼 이유는 양털이 타작마당의 땅보다는 훨씬 쉽게 이슬을 더 많이 흡수하고, 해가 뜰 때는 훨씬 더디게 마를 것이라 여겼기 때문인 것처럼 보입니다. 따라서 기드온이 반대로 요청한 표증은 더 큰 기적일 것입니다. 기드온이 하나님께 대한 신뢰가 부족하여 그분을 진노하시게 할 수도 있겠지만, 기드온은 필사적으로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확증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무 조건 없이 기드온의 요구를 두 번 모두 들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의심과 불신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신뢰를 회복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연약한 믿음을 책망하고 정죄하기보다, 믿음을 갖기까지 인내하시며 마침내 승리의 도구로 사용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나의 연약한 믿음을 아시고 도우시는 분임을 신뢰한다면, 내 삶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요?
본문의 기드온이 그랬던 것처럼 믿음이 없을 때마다 하나님을 시험해도 된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렇게까지 하면서 하나님과 행동했던 기드온의 두려움과 소심함을 강조하며, 이를 이해하시고 시험의 내용을 그대로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극명하게 드러냅니다.
사명을 받고도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인지했음에도 여전히 믿음의 발걸음을 힘차게 떼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할 때가 많습니다. 믿음이 연약할 때 그 연약함을 탓하실까봐 두려워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믿음을 갖도록 도우시는 분입니다.
귀신들린 아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나아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라는 말씀으로 믿음 없음을 지적 받았을 때,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막 9:24)라고 외쳤던 아버지처럼 성도는 믿음을 갖도록 도우시는 하나님 앞에 언제든 담대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영상-류태영박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두려움을 아시고 삶의 전쟁터에서 친히 싸워 주심으로 우리에게 승리를 주십니다. 그 하나님이 미디안의 압제 아래 부르짖는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기드온을 사사로 세우시고, 그에게 ‘여호와의 영’을 부으셔서 사명을 감당하게 하십니다. 또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기드온의 요청을 들어주시며 그분을 신뢰하게 하십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시선을 견고히 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견고해질 때까지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과 인내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아는 것이 믿음의 싸움에서 큰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