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인턴 시절, 주말을 이용해 허락받고 집에 다녀온 우울증 환자(女)가 있었다. 그녀는 집에 다녀오더니 주말을 매우 즐겁게 보내 아주 흐뭇하다고 했다.
그런 중에 그녀의 남편이 전화를 걸어와 “아내 때문에 끔찍한 주말이었다”고 해서 필자를 어리둥절하게 했다. 그녀의 남편은 덧붙여 말하기를, 그녀가 주말 내내 짜증을 부리고 우거지상을 하고 있어 다른 사람들 기분을 잡치게 했다는 것이다.
선배에게 그 차이점에 대해 물었더니, 무슨 차이가 있다는 건지 모르겠다나. 양쪽 말이 다 맞다는 것이다.
그녀가 다른 사람들 기분을 잡치게 만든 것도 사실이고, 동시에 그것을 철저히 즐긴 것도 사실이었던 것 같다.
신체의 화학물질 불균형으로 우울증을 앓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심한 감정적 고통을 겪지만 대체로 남을 괴롭히겠다는 의도는 없다.
그러나 신체적 원인과 무관한 다른 유형의 우울증도 있다. 그런 환자는 다른 사람을 희생시킴으로써 자기 분을 풀자는 심리인 게 뻔하다. 괴팍스럽게 공연히 짜증을 부리고 우거지상을 함으로써 위안을 얻는 것이다. 그런 사람을 그냥 내버려두면 곤란하다.
화학물질의 불균형으로 우울증을 앓는 사람은 기분이 나아질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지레 가망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떤 일에 선뜻 대들지는 않겠지만, 구원의 희망이 보이는 일이라면 지푸라기라도 붙들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그러나 삐치는 방법으로 자기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은 기분이 나아지기를 원치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이런 유형의 우울증은 환자들에게 묘한 위안을 주는가 보다.
설사 화가 나더라도 골내는 방식으로 분노를 표출하지는 말자.
자기 주변에 우울증에 걸린 사람이 있으면 담당 의사의 안내에 따르도록 권하라. 당신의 배려와 도움이 꼭 필요할 때도 있겠지만, 환자의 비위를 맞춰주기 어려울 때도 있다.
어떤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제대로 알려면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좋은 것부터 시작하라
에이브러햄 J. 트워스키 지음
찰스 M. 슐츠 그림
최한림 역 / 이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