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11월 3일(금) 시편 65:1-13 찬송 597장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1. 하나님이여 찬송이 시온에서 주를 기다리오며 사람이 서원을 주께 이행하리이다
2. 기도를 들으시는 주여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오리이다
3. 죄악이 나를 이겼사오니 우리의 허물을 주께서 사하시리이다
4.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살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이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
5.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땅의 모든 끝과 먼 바다에 있는 자가
의지할 주께서 의를 따라 엄위하신 일로 우리에게 응답하시리이다
6. 주는 주의 힘으로 산을 세우시며 권능으로 띠를 띠시며
7. 바다의 설렘과 물결의 흔들림과 만민의 소요까지 진정하시나이다
8. 땅 끝에 사는 자가 주의 징조를 두려워하나이다 주께서 아침 되는 것과
저녁 되는 것을 즐거워하게 하시며
9. 땅을 돌보사 물을 대어 심히 윤택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강에 물이 가득하게 하시고
이같이 땅을 예비하신 후에 그들에게 곡식을 주시나이다
10. 주께서 밭고랑에 물을 넉넉히 대사 그 이랑을 평평하게 하시며
또 단비로 부드럽게 하시고 그 싹에 복을 주시나이다
11. 주의 은택으로 한 해를 관 씌우시니 주의 길에는 기름 방울이 떨어지며
12. 들의 초장에도 떨어지니 작은 산들이 기쁨으로 띠를 띠었나이다
13. 초장은 양 떼로 옷 입었고 골짜기는 곡식으로 덮었으매 그들이
다 즐거이 외치고 또 노래하나이다 (개역 개정)
- 하나님의 권능과 은총에 대한 감사 찬양 -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권능과
그분이 인간에게 베푸시는 영적, 물질적 은총에 대하여 감사 찬양하는
본시는 장막절과 같은 이스라엘인들의 절기에 낭송된 감사 예배시다.
본시는 특정한 어느 한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 않으며
다윗이 자신을 신정 왕국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주시고
또 나라에 평강과 번영의 축복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크신 은총에 감사하여 지은 시일 것으로 추측된다.
이러한 본시는 그 내용상 세 단락으로 구분된다.
전반부 1-5절은 하나님이 당신의 택한 백성에게
베푸시는 영적 축복에 대한 찬양이다.
중반부 6-8절은 천지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권능에 대한 찬양이다.
종반부 9-13절은 하나님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베푸시는 일반 은총에 대한 찬양이다.
이상에서 보듯 다윗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베푸시는 은총을
두 가지 측면에서 즉 구속자(救贖者)로서 베푸시는 특별 은총과
창조자(創造者)로서 베푸시는 일반 은총에 대하여 증거하며 찬양하고 있다.
시인은 먼저 구속자로서 택한 성도에게 베푸시는 특별 은총으로서
하나님의 기도 응답(2절)과 죄의 용서(3절),
성전에서 나누는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4절), 의로운 구원 역사(5절) 등을
성도들의 기본적인 감사와 찬양의 조건으로 제시하였다.
그리고 창조자로서 성도는 물론 전(全)인류에게 베푸시는 일반 은총으로서
일용할 양식의 공급(9-10절), 사시 사철을 주관하시고
모든 피조물을 돌보심(11-13) 등을 제시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의 신앙 생활은 물론 일상 생활 전체를 돌아볼 때
알게 모르게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베푸시는 은혜는 실로 크고 풍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실을 깨닫고
진실로 하나님께 기뻐 찬양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오직 ‘시온에서 주를 기다리며’(1절), 날마다 ‘주께 나아가며’(2, 4절)
오직 주님으로만 ‘만족하는’(4절) 자들만이 그렇게 할 수 있을 뿐이다.
실로 우리 자신은 하나님을 찬양할 이유를 얼마나 많이 깨닫고 있는가?
만일 그 충분한 이유를 깨닫고 있지 못하다면
그것은 혹 우리 자신의 그릇된 신앙 태도 때문은 아닌가?
날마다 이를 돌아보며 우리의 영안을 밝히
열어 주시기를 위해서 기도해야 할 것이다.(엡6:18, 약5:13)
4절)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살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이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셨다’란 말은
인간의 구원이 인간의 힘이나 노력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택과 부르심 곧 소명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윗이 아직 하나님의 계시가 완성되지 않은
구약 시대의 인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구원론에 관해
얼마나 탁월한 영적 지식을 소유하였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다윗은 인간의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영의 사람이다.
성경은 너무도 분명하게 구원이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증거한다.
엡2:8을 보면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나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증거하고 있다.
구원은 인간의 힘이나 노력의 산물이 아니다.
인간은 구원에 관한한 전적으로 무능한 존재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전적으로 부패하여 스스로는 의를 행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류의 조상인 아담의 범죄 이래로 그의 자손으로 난 인류는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원죄의 영향으로 전적으로 부패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스스로의 힘으로는 의를 행할 수 없게 되었다.
전적으로 부패한 인간이 행할 수 있는 일이란 죄악을 행하는 것밖에 없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의를 행하는데 있어서 인간은 전적으로 무능한 존재이다.
따라서 인간이 스스로 자기를 구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직 인간의 구원은 하나님의 선택과 부르심으로만 가능하다.
세계의 종교들 가운데에는 자기 스스로 자신을 구원할 수 있다고 보는 종교가 있다.
그러한 종교의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불교이다.
불교는 자신의 노력으로 자신을 구원할 수 있다고 말한다.
즉 수련을 많이 하고 선행을 많이 하면 윤회의 업보에서 벗어나
해탈하게 됨으로써 열반(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누가 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을까?
아무리 수련을 많이 쌓는다고 해서 그가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성경은 마음에 악한 생각을 품는 것조차 악으로 규정하고 있다.
과연 오랜 세월 고행을 통하여 마음의 수련을 쌓는다고 해서
마음에서 악한 생각이 일어나지 않을까?
그리고 만약 그러한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했을 때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의에 이른 것인가? 아니다.
의는 소극적으로 죄를 짓지 아니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나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는 것이다.
특별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의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수련을 통하여 죄를 억제하는 능력을 가졌다고 해도
스스로는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없다.
그러한 이유로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단적으로 선언하고 있다.(롬3:10)
말하자면 인간은 스스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이다.
구원이란 인간이 노력한다고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구원은 인간이 이루는 것이 아니다.
구원은 이루는 것이 아니라 선물로 받는 것이다.
구원은 하나님이 택하시고 부르시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다.
그러기에 우리가 얻은 구원은 소중하다.
또 구원받은 것이 자기 자랑의 근거도 되지 않는다.
구원으로 인하여 자랑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에게는 어떤 자랑의 근거도 없다.
우리에게 자랑할 것이 있다면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신 하나님의 은혜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자랑하고
죄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던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딛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