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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묻는 의인 한 사람
2025년 2월 9일 / 삼상 13:8-14
역대기는 하나님께 묻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하였다. 하나님께 묻는다는 말은 다라쉬(דרש)인데, 구약성경에 165회 나온다. 그런데 역대기에만 다라쉬가 43회 나온다. 하나님께 묻는 게 중요함을 알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성공한 신앙인의 특징은 하나님께 물었다는 것이다. 반대로 하나님께 묻지 않은 사람들은 자기 맘대로 했기에 하나님께 버림받았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매사에 하나님께서 뭐라 말씀하시는지 물어봐야 한다. 이게 믿음의 사람이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는 것이다.
여호와와 그의 능력을 구할지어다 항상 그의 얼굴을 찾을지어다(대상 16:11). 하나님께 묻는다는 ‘다라쉬’가 어떤 곳에는 ‘구한다’는 말로 번역되어 있다. 대상 28:9에는 ‘찾는다’는 말로 번역되어 있다. 결국 ‘묻다=찾다=구하다’이다.
왜 우리가 하나님께 최우선으로 묻고,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구해야 할까? 하늘은 기뻐하고 땅은 즐거워하며 모든 나라 중에서는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통치하신다 할지로다(대상 16:31)
역대기의 주제는 하나님께서 통치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다스림, 왕 되심이 주제다. 하나님이 왕이신데 하나님께 묻지 않고,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면 심각한 반역이다.
에덴동산에서 인간의 비극은 하나님께 묻지 않고, 하나님을 찾지 않음에서 시작되었다. 아무리 뱀으로 가장한 사탄이 유혹해도 하나님께 물었다면 쉽게 이겨냈을 것이다. 그런데 스스로 결정하고, 하나님을 의심하니 영원한 불행이 시작된 것이다. 사소한 것은 없다.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는 습관이 필요하다.
1. 사울 왕이 왕의 자리에서 폐하게 된 원인은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였기 때문이다. 원인을 살펴보자(삼상 13:5-14).
삼상 13:5-7 / 블레셋 족속도 이미 싸울 태세를 갖추고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왔다. 그들은 3천 대의 전차를 6천 명의 기마병들이 몰고 올라왔으며, 그 뒤를 따르는 보병들의 숫자는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들은 벧아웬의 동쪽 믹마스에 진을 치고 이스라엘과 대치하였다. 6) 이를 본 이스라엘 군인들은 엄청난 병력 앞에서 공포에 사로잡혔다. 그들은 자기들이 꼼짝없이 궁지에 빠진 것으로 알고 전의를 상실해 제각기 굴속이나 숲속이나 바위틈이나 무덤 속이나 우물 속으로 기어들어가 숨었다. 7) 그리고 주력부대들은 대부분 요단강의 얕은 여울을 건너서 갓 지역과 길르앗 지역으로 도주하였다.
삼상 13:8-14 / 사울은 여전히 길갈에 남아 있었고, 그를 따르던 군인들은 사기를 잃은 채 공포에 빠져 있었다. 사무엘은 본래 사울에게 길갈에서 7일 동안을 기다리고 있으라고 명령하였다. 그러나 상황이 아주 위급해져 가는데에도 불구하고 사무엘이 오지 않았기 때문에, 남아 있던 군인들마저 사울을 버리고 떠나기 시작하였다. 9) 그래서 사울은 할 수 없이 번제와 화목제에 쓸 짐승들을 가져오게 한 다음에 제 손으로 제물을 바치기 시작하였다. 10) 사울이 막 번제를 드리고 나자 사무엘이 도착하였다. 사울이 그를 맞으러 나가 인사를 하자, 11) 사무엘은 대뜸 ‘왕은 어째서 그토록 제멋대로 행동하였소?’하고 책망하였다. 사울이 길게 변명하였다. ‘블레셋 족속이 이미 믹마스에 와서 진을 치고 있는데, 우리 군인들은 놀란 나머지 산지사방으로 도주해 버리고 그나마 따르던 군인들도 점차 떠나가는데, 제사장님마저 약속된 시각에 오시지 않았습니다. 돌아가는 사정을 보니 12) 여호와께 번제를 드려 도와 달라고 빌기도 전에 적군들이 길갈로 내려와서 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감히 번제를 직접 드렸습니다.’ 13) 그러나 사무엘은 사울을 향해 여지없는 심판을 선언하였다. ‘그런 일은 절대로 하지 말았어야 하오. 어째서 그대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대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않았소? 아무리 위태로운 처지에서라도 그 명령만 지켰더라면 여호와께서 그대와 그대의 후손들에게 이스라엘을 다스리도록 영구한 왕조를 약속해 주셨을 것이오. 14) 그러나 그대가 여호와께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위대한 약속을 놓치고 말았소. 여호와께서는 이미 당신의 마음에 드는 사람을 골라서 당신의 백성을 다스릴 영도자로 정해 놓으셨소.’
사울 왕도 세상적으로 보면 사무엘 선지자에게 따질 수는 있었다. 7일 동안을 기다리고 있으라고 명령하였는데, 상황이 아주 위급해져 가는데에도 불구하고 사무엘이 오지 않았기 때문에, 남아 있던 군인들마저 사울을 버리고 떠나기 시작하였다.
2. 조급한 마음으로 자기 뜻대로 한 것이니 인내력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라
야고보 사도는 고난을 받고 있는 믿음의 성도들에게 이렇게 권고했다.
약 1:2-6 /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여러분이 많은 어려움과 시련을 겪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기뻐하십시오. 3) 험난한 길은 여러분에게 인내를 기를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4) 인내력을 기르십시오. 여러 문제가 닥쳐올 때 거기서 빠져 나오려고 몸부림을 치지 마십시오. 인내력이 충분히 길러지면 여러분은 완전히 성장해서 어떤 일에도 굴하지 않는 강한 성격의 소유자가 될 것입니다. 5) 만일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무엇을 바라시는가 알고 싶거든 하나님께 여쭈어 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기꺼이 여러분에게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혜를 구하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후하게 나누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 일로 결코 여러분을 꾸짖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6) 그러나 하나님께 구할 때는 반드시 응답해 주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구하십시오. 의심하는 마음은 바람에 밀려 파도치는 물결과 같아서 침착성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하나님께 묻는 사람을 통해 진행된다. 하나님께 묻는다는 것은 겸손하다는 표현이다. 하나님께 묻지 않는 것은 교만하다는 뜻이다. 다윗도 솔로몬도 왕이 되었다는 것은 전능하다는 뜻이 아니다. 권력을 가졌을 뿐이지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인간이다. 이것을 깨달으면 누구나 통치하시는 하나님 앞에 묻는 자가 된다. 하나님 앞에 묻는 삶이 영원히 하나님 앞에 기억되는 삶이다. 내 맘대로 살아가는 삶은 죄의 열매를 맺을 뿐이며 하나님과 반대되는 삶이 된다. 내 입장에서 세상과 문제를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 편에 서도록 해야 한다. 인간적으로 볼 때는 좀 부족함이 있어도 그게 가장 행복하고 복된 인생이다.
이런 경우가 우리 앞에 놓였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가? 우리는 상황이 어려워지더라도 사람을 붙잡기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어겨서는 안 된다.
사울은 백성들이 두려워 떨고 사방으로 흩어지자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제사장인 사무엘을 통해 번제를 드리고 그의 지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뜻을 어기고 말았다. 사울은 열악한 상황이었지만 사무엘이 하나님의 뜻을 붙들어 블레셋과 싸워 이겼던 일과(7장). 오래전 자기에게 있었던 잊지 못할 경험을 되살리며 오늘을 극복해야 했다.
그것도 자신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심을 받을 때 사무엘 선지자가 한 말이 있었다.
삼상 10:8-10 / ‘그 다음에는 당신이 나보다 먼저 길갈 성소로 내려가서 7일 동안 나를 기다리고 있으시오! 나도 그곳으로 내려가서 주께 온전한 번제물과 화목제물을 바치겠소! 당신이 그 다음에 하여야 될 일은 내가 그때에 가서 모두 알려 드리겠소!’ 9) 사울이 사무엘에게서 떠나려고 어깨를 돌리는 순간에 하나님께서 사울의 마음을 변화시켜서 새사람을 만들어 주셨다. 사무엘이 예고한 모든 징조도 그날에 차례차례로 다 이루어졌다. 10) 사울이 종과 함께 기브아에 이르자 과연 예언자들의 무리와 마주치게 되었다. 그 순간에 하나님의 영이 사울을 사로잡아 그 역시 예언자의 황홀경에 빠져서 기뻐하였다.
오래전의 경험을 되새겨보면서 사무엘 선지자가 조금 늦게 왔을지라도 기다려야 했다. 그것도 하나님의 영이 사로잡혀 예언자의 황홀경에 빠져 크게 기뻐했던 경험까지 있으면서 말이다. 언제부터 하나님의 영이 사울을 떠나갔었는지는 모르나 점점 식어 갔다. 그렇다면 이번 기회를 통하여 다시 잃었던 영적 경험들을 회복했어야 했다.
하나님의 뜻을 지키기 위해서는 야고보 사도의 권면처럼 오랜 시간 인내하는 것도 필요하다.
▶ 여기에서 하나님 마음에 합당하였던 다윗의 경우를 본다면 사울 왕도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을 추구했다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❶ 믿음으로 인내한 다윗 / 사무엘상 24:1-2의 기록을 보면 사울이 온 이스라엘 전국에서 선발된 최고 정예병들 삼천 명을 거느리고 다윗 일행을 제거하려고 엔게디 광야의 험한 산지에 이르렀다. 다윗을 따르는 사병들은 600명 정도이니, 그것도 사울 왕을 치려는 병사가 아니었다. 그런데 이보다 다섯 배가 많은 군대를 동원하여 일시에 다윗 일행을 섬멸하려고 작정하였다. 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의 은밀한 보호 아래 있는 다윗을 찾아내지는 못하였다.
다윗은 사울을 피하여 모두 15번이나 도피하였다. 다윗은 유다 광야를 중심으로 도피하느라 젊은 나날을 다 보냈다. 유다 광야의 날씨는 사해 옆에 있어서 이스라엘에서 가장 덥다. 보통 40-45˚ 가장 더울 때는 54˚가 된다고 한다. 하루 이틀도 아닌 십여 년을 피난민으로 살아야 했다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다윗은 해냈다. 15번의 도피 생활 중에 사울 왕을 원망하지 않았고, 절망하거나 인생을 포기하지도 않았다. 그만큼 인내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생에서 끊임없이 찾아오는 문제도 결국 믿음과 사랑, 인내의 문제라고 보아도 괜찮을 것이다(약 1:2-4).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문제들이 있는데 여러 가지 시련이다. 시련은 누구에게나 오며 피할 수 없다. 그것도 한두 가지 시련이 아니다. 내가 원하는 것도 아니고 기대했던 것도 아니다. 아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데 예고 없이 불쑥 찾아오는 것이다.
이럴 때 우리가 할 것은 인내(忍耐)이다. 참다 참다 도저히 못 참겠다는 순간이 있는데, 이것을 ‘포기의 순간’이라고 부른다. 인생의 문제는 이 ‘포기하고 싶은 순간을 어떻게 뛰어넘느냐?’이다. 누구나 거룩함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다. 더는 못 한다. 여기까지가 내가 할 수 있고 그다음은 못 한다.’ 이 포기하고 싶은 순간을 뛰어넘는 것이 진짜 인내이다. 물이 100°에 이르지 않으면 끓지 않는다. 증기기관차는 수증기 게이지가 212도를 가리켜야 움직인다. 99도, 211도에서는 절대로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고작 1도 차이일 뿐인데도 말이다. 용기는 집요함을 요구한다. 마지막 1%의 인내가 인생의 성패를 좌우한다….
❷ 처참한 상황에서도 다윗은 경건한 모습을 잃기는커녕 빛 된 삶을 살았다 / 다윗은 참으로 신비로운 사람이다. 인간적으로 보면 평범한 사람으로서는 이해조차 할 수 없는 거룩하고 신령한 사람인지? 아니면 바보같이 멍청한 사람인지? 자기에게 해(害)가 될지라도 그리고 남의 조언(助言)보다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에 기준을 두고 있는 다윗은 사울이 그처럼 그를 죽이려고 하는데도 한 번도 사울과 맞서지 않았다. 자기가 원하면 얼마든지 사울을 해칠 수도 있었다. 자기를 벽에 박으려고 사울이 던진 창을 주워 사울에게 던질 수도 있었지만, 창을 던지기는커녕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다윗의 마음 한쪽 귀퉁이에서는 ‘너도 사울을 향해 창을 던져라’라는 악마의 소리도 들렸을 것이다. 만약 그때 다윗이 창을 사울에게 던졌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나님 마음에 꼭 맞기는커녕 다윗 역시 사울 왕과 별로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사무엘상 24장이나 26장에 나오듯이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이 ‘사울을 죽이고 왕이 되시오.’라고 했다. 다윗이 사울을 죽인다 해도 정당방위로 얼마든지 변명할 수도 있다. 또 다른 사람이 사울을 죽이도록 가만히 있을 수도 있었지만, 다윗은 적극적으로 부하들을 만류하며 자기를 원수처럼 끈질기게 죽이려는 사울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피하기만 하였다.
❸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다윗은 원수 같은 사울 왕의 목숨을 맡기면서 자기는 결코 왕을 해치지 않으니 하나님께서 해결해 달라고 기도한 적도 없었다. 오히려 ‘하나님! 임금님의 마음에 평안을 허락하사 악한 영의 시달림에서 벗어나게 해 주십시오.’라고 눈물로 기도하였을 것이다. 성경에는 이런 말이 없지만 경건한 성도라면 당연히 그렇게 했을 것이다. 이 대목은 거룩하게 살고자 하는 우리에게 닥쳐오는 시험에 대한 모두의 모범 답안이다.
길보아 산에서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사울 왕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다윗은 즉시 자기 옷을 갈기갈기 찢고 슬퍼하기 시작하였으며, 그와 함께 있던 부하들도 모두 옷을 찢으며 행동을 같이하였다. 이리하여 그들은 사울과 요나단을 비롯하여 길보아 전쟁에서 전사한 이스라엘의 모든 군인을 위하여 슬퍼하면서 저녁때까지 단식하고 울었다(삼하 1:11-12).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이렇게 설명하고 싶다.
1. 곤경에 처해도 순종하는 사람
사울은 블레셋의 위협을 받으며 차분하게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지 못하고, 스스로 블레셋과 싸워 이겨 보겠다며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였다. 상황이 어려워지자 자기 생각과 의지를 더 중요시 한 것이다. 사울 왕이 제사를 드리지 않고 기다렸더라면 사무엘은 이스라엘을 위해 제사를 드리고 사울이 행할 바를 가르쳐 주었을 것이다.
삼상 10:8 / 너는 나보다 앞서 길갈로 내려가라 내가 네게로 내려가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리니 내가 네게 가서 네가 행할 것을 가르칠 때까지 칠일 동안 기다리라
상황은 더 나빠졌다. 이제 백성은 600명밖에 남지 않았다. 사울에게 있었던 1,400명의 군대가 도망을 쳐서 600명이 남았다. 이스라엘은 더욱 불리해졌다.
하나님은 성도가 강한 대적을 맞아 위기를 겪을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원하신다. 이것은 단순히 말씀의 어떤 부분을 지켰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를 떠나서,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인식하느냐에 대한 믿음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상황이 점점 어려워지고 힘들어질수록 눈에 보이진 않지만, 만물의 주관자이시고 크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어야 한다. 우리에게 어떤 어려움과 고통이 있는가? 하나님은 우리가 더 어려운 상황에 부닥치게 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원하신다. 자기 뜻과 의지를 내세우기보다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며 순종하기를 원하신다.
상황이 점점 더 어려워진다고 해도 불안해하거나 두려워하지 마시라.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인내할 때 하나님은 그를 기뻐하시고 전능하신 그분의 손으로 구원해주실 것이다.
2. 세상 능력이 없어도 순종하는 사람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은 자신이 가진 능력이 없어도 피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다.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를 잘 아실 것이다. 골리앗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삼상 17:4-7 /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가 왔는데 그의 이름은 골리앗이요 가드 사람이라 그의 키는 여섯 규빗 한 뼘이요 5) 머리에는 놋 투구를 썼고 몸에는 비늘 갑옷을 입었으니 그 갑옷의 무게가 놋 오천 세겔이며 6) 그의 다리에는 놋 각반을 쳤고 어깨 사이에는 놋 단창을 메었으니 7) 그 창 자루는 베틀 채 같고 창날은 철 육백 세겔이며 방패 든 자가 앞서 행하더라. 골리앗은 키가 2m 40-50 정도 된 거인이었다. 머리에 놋 투구를 썼고 몸에는 비늘 갑옷을 입었고 다리에는 놋 각반을 쳤고 어깨에는 놋 단창을 메었는데, 그 창 자루는 베틀 채 같고 창날은 철 육백 세겔이었고 방패든 자가 앞에서 행하였다.
이런 골리앗을 맞서 싸우는 다윗은 무엇을 준비하였을까?
삼상 17:40 /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서 자기 목자의 제구 곧 주머니에 넣고 손에 물매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
골리앗과 다윗이 게임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골리앗이 다윗에게 한 말을 보라
삼상 17:43 / 블레셋 사람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하고 그의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고
상대는 블레셋의 거인 장수였다. 그런 골리앗과 맞서 다윗이 싸워 이겼다.
▶ 사울이 블레셋과 이스라엘의 상황은 어떠하였는가?
삼상 13:22 / 싸우는 날에 사울과 요나단과 함께한 백성의 손에는 칼이나 창이 없고 오직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에게만 있었더라
군대는 다 흩어지고 나머지 600명밖에 남지 않은 상황인데, 무기는 단 두 개뿐이다. 사울과 요나단에게만 칼이 쥐어진 것이다. 이렇게 열악한 상황에서 블레셋과 전쟁을 치러야 했다. 블레셋은 병거만 3만이었다. 마병이 6천이었다. 군대도 해변의 모래와 같았다.
이런 군대와 어떻게 싸워 이길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들과 싸워야 하는 것은 분명한 하나님의 뜻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물러서지 말고 그들과 싸워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길 원하신다. 우리가 자신을 붙들지 않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길 원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능력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는 마음을 보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을까? 겸손히 순종하는 사람, 곤경에 처해도 순종하는 사람, 자기가 가진 능력이 없어도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분을 위해 많은 일을 하려고 하기보다 겸손하게 참고 끝까지 순종해야 한다.
▶ 아브라함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이삭과 이스마엘이다. 이들 사이에는 중대한 차이가 있었는데, 각각 배다른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 이스마엘의 출생은 아브라함과 사라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조급한 마음으로 취한 인간의 생각에서 발생한 결과였다.
창 16:1-4, 16 / [하갈과 이스마엘]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애굽 출신의 하갈이라는 몸종이 있었다. 사래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몸이었으므로 2) 남편인 아브람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여보,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자식 하나 점지해 주지 않으시는군요. 그러니 당신이 내 몸종과 잠자리를 같이하는게 어떻겠어요? 그러면 혹시라도 내 대신 그녀가 우리에게 자식을 안겨줄지 누가 알아요?’ 아브람은 사래가 하자는 대로 하였다. 3) 그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몸종인 애굽 여인 하갈을 남편에게 데려와 소실로 맞아들이게 하였다. 이때가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서 10년쯤 살았던 때였다. 4) 아브람이 하갈과 잠자리를 같이하여 하갈이 아이를 갖게 되었다. 16) 그때 아브람의 나이는 86세였다.
이스마엘이 태어났어도 하나님의 약속은 변치 않고 아브라함의 나이 100세 때 경수가 끊어졌던 사라를 통해 이삭을 얻게 하셨다.창 21:5 / 이삭이 태어날 때 아브라함의 나이는 100세 였다.
결론을 이렇게 맺는다.
다윗이 훌륭한 왕이요 신앙인이 된 것은 하루아침에 된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막상 그러한 일을 닥치면 자신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런 것은 아니다. 다윗은 소년 시절부터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자로 준비하였기에 사울을 폐하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신 것이다. 우리도 이제부터라도 힘쓰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도록 더욱 경건의 훈련에 집착하자.
눅 11:9-13 / 기도도 이와 같다. 구하라, 주실 것이다. 찾으라,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열어주실 것이다. 10) 누구든지 구하면 받고, 찾으면 얻고, 문을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11) 너희 가운데 아버지된 사람으로 아들이 생선을 달라는데 뱀을 주겠느냐? 12) 아들이 달걀을 달라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13) 너희가 비록 악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녀들이 원하는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사람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살전 5:14-19 /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게으른 자들을 나무라고 소심한 자들을 격려하며 허약한 자들이 있거든 돌보아주십시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인내로 대하십시오. 15) 아무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마십시오. 그보다는 언제나 서로 선을 베풀도록 힘쓰십시오. 또 모든 사람에게 선을 베푸십시오. 16) 항상 기뻐하십시오. 17) 언제나 기도에 힘쓰십시오. 18) 어떤 처지에 있든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마십시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뜻입니다. 19) 성령의 불을 끄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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