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깃든 시절>
여자는 신을 불러들였다. 반찬 하나 만들지 못하는 남편과 어린 첫 아이를 먹인다. 돌아서면 쌓여 있는 옷가지를 세탁하고 바삭하게 마른 옷을 보기 좋게 접어 갠다. 여자는 집에서 해가 드는 곳, 들지 않는 곳을 가리지 않고 화병을 놓는다. 그 화병마다 물을 담아 스킨답서스를 기른다. 여자는 스킨답서스를 무심하게 화병에 툭 꽂아놓는다. 스킨답서스는 왕성하게 물을 빨아들이며 새 잎을 내고 화병 모양에 맞춰 뿌리를 늘려 간다. 불어나는 스킨답서스를 분주해서 또다른 화병에 꽂거나 흙을 담은 화분에 옮겨 심는 동안 여자의 한 시절에 신이 깃든다. 무수히 반복되는 돌봄에 관성이 생긴 여자의 행동은 결과적으로 신을 불러들이게 된다. 그녀의 두 번째 아이는 신이 된다.
어미는 아이에게 걱정스런 눈길을 보낸다. 두 해 먼저 난 첫째 아이가 유별나게 잘 울고 또 울었던 까닭일까? 보채는 울음이 하나 없는 아이를 돌보는 일이 문득 낯설게 느껴진다. 말을 습득하지 못한 아이는 울음과 웃음으로 의사표현을 하기 마련인데, 영 울지 않는 아이의 이런 기질을 ‘순하다’ 여기며 넘겨도 되는 걸까? 정서에 어떤 결함이라도 있는 게 아닐까? 어미 눈길에 담겼던 걱정은 이런 내용이었다. 그러나 가난하고 바쁜 어린 여자는 걱정에 사로잡힐 시간이 없다. 어미는 아이를 거저 키웠다고 말한다. 돌이켜 보면 울어서 달래본 기억조차 없다. 아이의 한 시절에 신이 깃들었다. 때가 되면 재우고 때가 되면 먹인다. 때가 되면 자고 때가 되면 먹는다. 아귀가 잘 맞는 톱니바퀴 한 쌍이 굴러가듯, 서로 힘에 부치는 일 하나 없이 일상이 채워진다. 해가 들지 않는 오래된 빌라의 작은 방에서 언제나 부족한 통잔 잔액에 쫓기는 부산스러운 어린 여자에게, 울며 보채지 않는 둘째 아이는 은총이나 다를 바 없다.
신을 불러들인 어린 여자는 가뜩이나 얇아진 머리 털에 흰머리까지 성성해져 어떻게 보나 나이든 여자가 됐다. 신이 깃든 시절을 보내고 자란 아이는 제 어미가 본인을 낳았던 나이보다 더 나이를 먹었다. 신이 깃들었던 아이는 그대로 신으로 자라나진 못했지만, 스킨답서스를 기르는 어른이 됐다. 왜 엄마 집에서 자라는 스킨답서스는 갈 때마다 풍성하게 불어나 있으며, 내 집에서는 그 쉽다는 물꽂이조차 실패하는지 궁금해 하며.
첫댓글 순둥순둥 쉽게 잘 자라는 스킨답서스와 둘째 아이는 반려종의 운명으로 맺어졌거나 자매혼 관계이거나 한 걸까요? 그렇다면, 자란 뒤의 아이가 그런 스킨답서스를 제대로 돌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지 못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궁금해지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