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66) 여포의 간계(姦計)
한편, 서주성 공략을 멈추고 자신의 본거지인 연주로 돌아가는 조조는 여포에 대한 원한이 불같이 치밀어 올랐다.
그리하여 연주가 가까워 질 수록, (내 이 놈을 절대 용서치 않으리라!) 하는 복수의 일념의 칼을 갈고 또 갈았다.
조조는 군사를 두 패로 나누어, 한 부대는 순욱을 딸려보내며, 조인(曺仁)으로 하여금 연주성을 공격하여 본토(本土)인 연주성을 회복 하도록 명령하고, 다른 한 부대는 자신이 거느리고 여포가 진을 치고 있다는 복양(僕陽)으로 쳐들어 가기로 결정하였다.
그리하여 군사를 이끌고 복양으로 가는 길에 들어온 소식에 의하면 여포의 휘하에는 처음 들어보는 문원, 선고, 학맹이라는 장수가 있고, 모사로는 진궁이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조조는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여포는 용기는 있어도 지략이 부족하고, 진궁 같은 책사는 문제도 되지 않는 인물이라고 얕보았기 때문이었다.
한편, 여포 역시 조조를 우습게 여겼다.
그리하여 그는 불과 오천 여명의 군사만으로 다섯 배(倍)에 달하는 조조군을 맞아 싸울 태세를 점검하고 있었다.
진궁이 전선(戰線)을 돌아 보고 여포에게 간한다.
"장군! 서쪽 진지가 약해 보이니 장군께서 그쪽을 수비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고 말했으나, 여포는 그 말을 듣지 않으며,
"염려 마시오. 조조 따위가 어디로 공격해 오기로 뭐가 두렵단 말이오!"
하고 인언지하로 묵살해 버리는 것이 아닌가?
과연 진궁의 말대로, 조조는 서쪽 진지가 부실함을 간파하고, 공격 목표를 그리로 집중시켰다.
그리하여 이전(李典), 조홍(曺洪), 우금(于禁), 전위(典韋)등의 맹장들과 함께 복양의 외곽성을 야간에 전격적으로 기습하여 조그만 성 하나를 손쉽게 점령하였다.
이런 소식은 복양성에서 잠을 자고 있던 여포에게 즉각 보고 되었고, 여포는 잠을 자다 말고 튕겨 일어나 무장을 갖추며 이렇게 말했다.
"그까짓 조그만 성 하나쯤은 나 혼자서라도 탈환해 버릴 것이니, 너희들은 적이 눈에 띄는 대로 잡아 죽여라!"
여포는 지리에 밝은 소수의 군사를 이끌고 그 밤으로 조조가 점령한 조그만 성을 공격하였다.
그러자 승리에 도취하여 넋을 잃고 휴식을 하고 있던 조조군은 불의의 기습을 받고 지리멸렬 하는 것이 아닌가?
<이거 안 되겠구나!>
그렇게 깨달은 조조는 부랴부랴 남쪽으로 도망을 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쪽에는 적병이 도처에 깔려 있었다.
그리하여 방향을 동쪽으로 돌려보았으나 거기에도 눈에 띄는 것은 적병뿐이었다.
조조는 할 수없이 간밤에 넘어온 북쪽 산을 넘으려 하였다.
그러자 적병들이 조조를 발견하고 소리를 치는 것이었다.
"저놈이 조조다! 저놈 잡아라!"
조조는 일순간, 도망갈 곳을 몰라 망설이며 소리쳤다.
"큰일이구나! 누구, 어디 없느냐?"
오만불손하던 조조는 이때만은 처량한 비명을 질렀다.
그러자 저편에서 누군가 <와아!...>하는 소리를 지르며 달려오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팔십 근에 달하는 철창을 좌우로 휘두르며 이리로 달려오고 있었다.
말과 사람이 모두 다 피투성이가 된 채, 핏덩어리로 달려오는 것이었다.
"주상 (主上)! 말에서 내려 땅에 엎드리십시오. 잠시 적의 화살을 피하셔야 합니다."
달려오며 그렇게 외친 사람은 얼마 전에 조조의 휘하로 들어온 전위(典韋)였다.
조조는 말에서 뛰어내려 땅에 엎드렸다.
그러자 전위는 팔십 근짜리 장창을 휘두르며 적을 향해 성난 호랑이 처럼 돌진해 나가는 것이었다.
그 바람에 적은 추풍낙옆처럼 쓰러졌고, 남은 군사들은 혼비백산하여 도망을 친다.
"주상! 이제 됐습니다. 빨리 몸을 피하십시다!"
조조는 있는 힘을 다하여 전위와 함께 성문을 빠져 나왔다.
그렇게 정신없이 도망쳐서 어느 산기슭에 도착하니, 부하 장수 하후돈(夏侯惇)이 십여 명의 군사와 함께 쫓겨오다가 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실로 참담한 패배였다. 죽지 않은 것만도 천행이었다.
"그대가 아니었다면 영락없이 죽었을 걸세."
조조는 전위에게 말했다.
이때쯤 부터 비가 많이 내리기 시작하였다.
조조는 비가 오는 덕택에 본진에 무사히 돌아왔다.
그리고 조조는 전위를 그날의 공로를 크게 치하하며 영군도위(領軍都尉)로 승진시켰다.
한편...
여포는 진류를 떠난 이후, 지금까지 연전연승을 거두었다.
조조의 본거지인 연주를 차지했고, 오늘은 복양성에서는 조조를 크게 물리쳤다.
얼마전에 낙양성에서 이각의 무리에게 쫓겨나 방랑객으로 떠돌아 다니던 그가, 이제는 당당한 복양성의 성주가 되고 보니, 따르는 군사들의 사기 또한 왕성해 질 수밖에 없었다.
"이 곳에는 전씨(田氏) 성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 장군께서는 알고 계십니까?"
모사 진궁이 묻는다.
여포는 진궁의 지모를 크게 믿고 있는 터인지라, 또 무슨 일인가 싶어서 이렇게 반문했다.
"이 지방에 전씨라는 대 부호가 살고 있다는 애기는 들었소. 하인만도 백여 명이나 된다면서요?"
"그렇습니다. 그러니 그 분을 한번 부르십시오."
"불러다가 군자금을 대게 하라구?"
"천만의 말씀입니다. 백성들에게 돈을 빼앗는 것은 인심을 크게 잃는 일 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을 불러다가 무엇을 하라는 거요?"
"그 사람을 이용해서 조조를 사로잡을 계책이 있습니다."
진궁은 그렇게 말하고 여포의 귀에 입을 대고 무엇인가를 속삭였다.
여포는 듣고 있는 동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좋은 계책이오! 공의 말씀대로 그리 합시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뒤,
허술한 차림의 장사꾼 하나가 삶은 통닭 몇 마리를 막대기 끝에 꿰어 가지고 조조의 진지 앞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저게 웬 놈이냐? ... 아무래도 수상한 자가 틀림없구나!"
군문을 지키던 병사들이 수상한 사내를 붙잡아 물었다.
"너는 적의 염탐꾼이 아니더냐?"
병사들의 묻는 말에 수상쩍은 사내가 말했다.
"아, 아닙니다. 실은 이 닭고기를 대장님께 전해 드리려고 왔습니다."
병사들은 그 말에 의문을 갖고, 그 사내를 조조 앞에 끌어다 보였다.
"너는 무슨 일로 나에게 닭을 가져왔다는 말이냐?"
조조의 질문에 사내는 다시,
"주위를 물리쳐 주십시오. 저는 밀정이 틀림없습니다마는, 장군님께 해로운 밀정은 아니옵니다."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조조는 가까운 부하 몇 사람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밖으로 내보냈다.
그러자 사내는 가운데 통닭의 배를 갈라 헤치고, 닭의 뱃속에서 한 장의 밀서를 꺼내 보였다.
그것은 그 지방에서 제일 큰 부호인 전씨의 밀서였다.
그 밀서는 여포의 횡포에 대한 중언부언이 쓰여 있었고, 마지막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지금 여포는 여양(黎陽)에 가 있고, 복양성에는 군사가 몇백 명이 남아 있을 뿐이오. 그러니 장군께서는 속히 공격해 주시오. 우리들은 내부에서 소란을 일으켜 호응하겠소. "의(義)"자를 쓴 백기를 성벽에 내걸 테니, 그것을 신호로 일거에 적을 섬멸시켜주기 바라오.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마소서.>
조조는 밀서를 읽어 보고 크게 기뻐하였다.
"하늘이 나를 도와주시는게다, 복양은 이제 내 손에 들어온 거나 마찬가지다."
조조는 심부름 온 사내를 후하게 대접해 돌려보내고, 복양성 공격 준비에 착수하였다.
그러자 모사 유엽이 간한다.
"주공, 모략일지 모르니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만일을 생각해 부대를 셋으로 나누어 한 부대만 보내는 것이 좋겠습니다. 여포는 우둔한 장수지만, 진궁은 얕볼 인물이 아니옵니다."
조조는 그 말이 옳다고 생각되어 부대를 셋으로 나누어, 복양성으로 접근하였다.
그러자 과연 성벽에는 수많은 적기 속에 백기 하나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는데, 그 깃발에는 분명히 <義>자가 씌어 있는 것이 아닌가?
조조는,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었다. 그러나 밤이 되기 전에는 깊이 전진하지 말고 소전투만 벌이도록 하라."
하고 명령하였다.
여기저기서 부분적인 전투를 하는 중에 어둠이 찾아왔다.
땅거미가 질 무렵에 농사꾼 하나가 조조의 진지로 달려와 그를 붙잡아 보니, 전씨의 심부름을 왔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조조가 그를 불러 물어 보니, 그는 품속에서 밀서 한 장을 꺼내 놓았다.
그 밀서에는 앞서 보았던 전씨의 필적으로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오늘밤 초경(初更: 오후 7~9시사이), 별이 찬연히 빛날 무렵에 성벽 위에서 풍악소리가 나거든 총공격을 개시하소서. 성안 백성들은 장군의 공격을 기다려 안에서 문을 활짝 열어, 복양성을 장군께 바치오리다.>
조조는 밀서에 쓰인대로 공격할 계획을 세웠다.
하후돈(夏侯惇)과 조인(曺仁)이 거느린 두 부대는 성문 밖에 대기시켜 두고, 선봉에는 하후연(夏侯淵),이전(李典),악진(樂進)등 장수를 내세우고, 조조 자신은 전위(典韋)와 더불어 선봉의 중앙에서 대장기를 휘날리며 서서히 성문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나 방어군으로 분주해야 할 성안이 너무도 고요하므로 이전이 의문을 기지고,
"소장이 성문까지 먼저 부딪쳐 보고 올 테니, 주상께서는 잠시 기다리고 계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조조는,
"그럴 필요 없으니 그냥 진군 하자! 싸움이란 기회를 놓치면 안 되니 전씨의 계획대로 실행하라!"
하고 말하며, 오히려 자기 자신이 선두로 달려나가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