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영령이 깃든 고찰,
밀양 표충사.
월성중학교 3학년 3반 김민욱
어제 밀양으로 아버지 친구분들과 함께 펜션여행을 왔다. 아침에 일어나니 골짜기 사이로 해가 솟아오르고 있고 차에는 서리가 껴 있다. 정리하고 모두 헤어지고 가려 하는데 근처에 표충사가 있어 들르기로 한다. 차를 타고 골짜기 길을 따라 달린다.
20여 분 정도 달리니 중간에 표충사 관광지가 나오고 뒤로 매표소가 나온다. 매표소에서 일주문을 지나 주차장에 차를 세우니 재약산 기암괴석이 뒤로 보인다. 일주문을 지나긴 했지만, 그래도 절에 왔으면 일주문을 지나야 하기에 다시 걸어가 일주문을 보고 온다. 무위사도 그렇고 몇몇 절들이 일주문 안에 주차장을 만드는데 이건 무척 잘못된 것이다. 일주문은 경복궁으로 치면 광화문 같은 곳인데 그곳 안에 차를 주차하게 하다니. 되도록이면 주차장은 일주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만들었으면 좋겠다.
일주문을 지나서 수충루를 지나기 전, 앞에 작은 건물이 나온다. 예전 영주 부석사 선묘각보다 더 작은 정말 귀여운 건물이다. 이 건물의 이름은 영가각으로 절에 들어가기 전 영가(아마 영혼이란 뜻 같다.)가 속세의 때를 씻기 위해 목욕하는 곳이라고 한다. 절 들어가기 전부터 기대를 증폭시키는 단아한 건물이다.
(표충사 일주문.)
(표충사 앞 영가각. 정말 작다.)
일주문을 지나면 '표충사'이란 현판이 달린 문이 나온다. 왼쪽에는 '천황산제일루'란 현판이 있고 오른쪽에는 '수충루'란 현판이 있다. 여기는 엄밀히 말하면 '표충사(祠)'의 정문이지 '표충사(寺)'의 문은 아니다. 표충사는 우리나라 여느 절과 다르게 절 안에 표충서원이라는 서원이 있다. 여기는 절인 동시에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사명대사, 청허대사, 기허대사 등 스님을 모신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원효대사 때 죽림사란 이름으로 세워져 헌종 때 이 세 분의 위패를 모심으로써 비로소 표충사라 불리기 시작했다. 조선시대하면 숭유억불이라 하여 불교를 억압하는 것만 생각나는데 이렇게 유교와 불교가 융합된 경우도 있다.
누각을 지나면 왼쪽에 표충서원과 표충사(祠)가 보인다. 뒤로는 재약산의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펼쳐져 절경을 이룬다. 밀양에 이런 절경을 가진 산이 있을 줄은 몰랐다. 서원 구역은 생각보다 좀 작았다. 여기는 서원 철폐령 때 살아남았으려나?
(수충루.)
(표충서원 권역 전경. 뒤로 재약산의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표충사(祠). 갑자기 대흥사 표충사가 생각난다.)
(표충사 건물.)
표충서원에서 천왕문을 지나면 진짜 표충사(寺)로 들어간다. 먼저 보이는 마당에는 삼층석탑이 보이고 오른쪽에는 스님들의 요사채, 왼쪽에는 담으로 둘러싸인 기와집이 있다. 앞에 보이는 삼층석탑에는 지금까지 본 석탑 중 처음으로 상륜부부터 기단, 심지어 처마에 풍경이 달린 것까지 완벽하다. 예전 탑을 해체 수리하면서 석가탑과 마찬가지로 많은 유물이 나왔다고 한다. 탑이 있으니 고찰다운 분위기가 물씬 난다. 탑 앞에 있는 석등까지 이리저리 살펴본다. 보면 볼수록 너무나 아름답다.
(표충사 천왕문.)
(표충사 삼층석탑. 무척 아름답다.)
석탑을 기준으로 왼쪽에는 만일루라는 옛날 선방으로 쓰이던 건물이 있다. 일제강점기 때 새로 지어서 그런지 무척 깔끔해 보인다. 만일루 안에는 덩치 큰 개가 한 마리 있는데 생긴 것과 달리 순해 보인다. 석탑 앞 대광전 가는 계단 옆에는 신라 흥덕왕의 셋째아들 나병을 낫게 했다는 영정약수가 있다. 그래서 한때 표충사를 영정사라 부르기도 하였다. 약수 한 바가지를 떠 마시고 계단을 따라 올라간다.
(밖에서 본 만일루 전경.)
(만일루 안 개 한 마리.)
(영정약수.)
계단을 올라가면 두 번째 마당이 나온다. 표충사를 거닐면 절 규모가 상당하다는 걸 알 수 있다. 표충서원까지 합치면 표충문을 중심으로 안에 주요 권역만 네 개가 있는 셈이다. 오른쪽에는 범종각과 우화루라는 강당으로 쓰이는 건물이 있고 왼쪽에는 팔상전과 대광전이 보인다. 먼저 팔상전으로 들어간다. 팔상전은 부처님의 생애를 그린 불화가 있는 전각으로 아마 우리나라의 유일한 목탑인 법주사 팔상전을 통해 자주 들어본 전각 이름일 것이다. 전각 안에는 불석으로 만들어진 하얀 불상을 중심으로 팔상도가 그려져 있다. 다른 절에서는 흔히 보기 어려운 것이라 유심히 살피고 나온다. 팔상전 옆에는 대광전이 있는데 다른 것보다 대광전 누각 중간에 마치 첨탑처럼 뭔가가 뾰족하게 솟아나 있는 게 눈에 띈다. 왜 저런 게 있는지 알고 싶은데 안내판에도 없고 답답할 뿐이다. 대광전 안에서 기도를 드리고 나온다.
(표충사 팔상전.)
(팔상전 내 팔상도. - 내부촬영을 허락해주신 스님, 감사합니다.)
(표충사 대광전. 위에 저 첨탑 같은 건 대체 뭘까?)
(대광전 내부.)
대광전과 팔상전 사이로 들어가면 뒤로 대나무 숲이 나온다. 옛날에 여기가 죽림사라 불렸다는데 그 말을 증명해 주는 것 같다. 그리고 산신각과 독성전이 나오는데 특이하게도 두 건물이 따로 있는 게 아니고 한 건물에 두 개의 현판을 달고 방이 나뉘어 있다. 수많은 절을 다녀봤지만, 이런 구조를 한 산신각과 독성당은 처음이다. 그리고 올라가는 계단이 단과 단 사이를 마치 다리처럼 연결하고 있다. 정말 표충사는 지금까지 봐온 절과 다른 특이한 점이 많다.
(산신각, 독성당. 저렇게 붙어있는 경우는 처음 본다.)
대광전, 팔상전 권역 뒤로는 마지막으로 명부전과 관음전이 있는 마당이 나온다. 마당으로 들어가기 전 계단 옆에는 비석 같기도 하고 승탑 같기도 한 특이한 것이 서 있다. 한문을 더 잘 읽을 수 있다면 좋으랴만. 관음전과 명부전은 새로 만든 석등과 함께 있는데 약간 새로 지은 듯한 기분이 든다.
(명부전, 관음전 권역으로 가는 계단.)
(계단 옆 정체 모를 석조물.)
계단을 내려가면 우화루가 나온다. 꽃비라는 뜻을 가진 이 건물은 강당으로 쓰이는 건물로 보통 절에서 볼 수 있는 만세루와 비슷한 용도 같다. 햇빛이 정면이라 눈이 부셔서 정면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 없어 많이 아쉽다. 우화루 안에 있는 여러 불화를 보고 나온다.
(우화루와 범종루.)
(우화루 안.)
(우화루에서 바라본 대광전과 팔상전.)
대광전 가는 계단을 내려오자 어머니께서 팥죽 먹자며 요사채 쪽으로 부르신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일 년 중 해가 가장 짧은 동지다. 문을 나서자 식당처럼 보이는 건물 밖으로 줄이 쭉 늘어서 있다. 이렇게 사람이 많을 줄이야. 예쁜 굴뚝에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부뚜막에는 보살님께서 땔감을 넣어가며 어마어마한 양의 팥죽을 끓이고 계신다. 아버지와 나는 팥죽 솥을 나르며 바쁘게 움직였다. 그리고 기다리고 기다려 팥죽과 동치미를 받고 의자에 앉는다. 원래 팥죽 안 좋아하는데 그날따라 무척 맛있게 느껴졌다. 올해 쌓였던 액운은 모두 날아가고 내년에는 좋은 일만 있기를.
(연기가 피어오르는 표충사 굴뚝.)
(팥죽을 먹기 위해 늘어선 줄.)
(팥죽과 동치미. 동지 기분 난다.)
식당을 나와 모서리 쪽에서 대광전 권역을 바라본다. 대광전과 팔상전 뒤로 겨울에도 푸른 녹색 대나무숲이 절을 감싸고 있고 뒤로 재약산 능선이 보인다. 절도 많이 시끄럽지 않고 너무나 마음에 드는 절이다.
(표충사 전경.)
이제 천왕문을 빠져나와 표충서원 맞은편에 있는 유물관으로 간다. 유물관에는 표충사 소장유물과 해체한 표충사 삼층석탑에서 나온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안에 들어가니 정면에 무슨 현판이 보인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깨끗하게 펼쳐진 스님의 장삼과 내 고향 경주에서 온 옥돌로 만든 지장보살상이다. 특히 장삼을 보면 인자하면서도 근엄한 스님이 떠오른다. 절 안에 있는 유물관 치곤 귀중한 유물을 많이 전시해 뒀다는 생각이 든다.
(표충사 유물관.)
(표충사 소장 장삼. 소박하고 깨끗한 느낌이 든다.)
(경주 옥돌로 만든 지장보살상. 반가사유상인 게 특이하다.)
이제 표충사를 나오려고 하는데 수충루 옆에 못 보고 지나친 작은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처음에 본 영가각 만큼은 아니지만, 역시 작은 이 건물은 가람각이란 건물로 절의 신을 모시는 건물이다. 보통 이런 건물은 큰 절에 가야 볼 수 있는데 역시 표충사 사세가 크긴 컸나 보다.
수충루를 나와 주차장을 서성이고 있는데 멀리 전각들 사이로 산이 보이는데 얼어붙은 폭포가 보인다. 옆에 있는 지도를 보니 흑룡폭포 같기도 한데 과연 저 폭포의 정체는 뭘까? 절벽에 있어서 그런지 무척 신비롭게 보인다.
(가람각. 표충사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건물이다.)
(멀리 보이는 얼어붙은 폭포.)
만약 피곤하다고 여길 안 오고 바로 경주로 갔으면 무척 후회할 뻔했다. 이런 좋을 절을 놔두고. 게다가 동지라 팥죽도 먹고 보통 좋은 답사가 아니었다. 어머니께서도 이 절이 무척 마음에 드신다고 하셨다. 많은 여운을 남기며 차를 타고 영남루로 향한다.
호국영령이 깃든 고찰, 표충사. 재약산의 명찰로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여정- (2013. 12. 22. 日)
표충사 일주문→ 영가각→ 수충루→ 표충서원→ 표충사(祠)→ 천왕문→ 표충사 삼층석탑→ 만일루→ 영정약수→ 팔상전→ 대광전→ 산신각, 독성당→ 이름 모를 석조물→ 명부전→ 관음전→ 우화루→ 범종각→ 요사채 내 식당→ 표충사 유물관→ 가람각→ 표충사 주차장
새롭게 펼쳐라!
羅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