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버스터미널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1시간 20분이 걸려 산방산에 내렸는데,
이쪽 날씨 분위기는 제주시와 완전히 달랐다. 거센 바람이 우산도 모자도, 비옷마저
날려버릴 태세로 휘몰아쳤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산방산, 그러나 올라가 볼 마음은 없어 내려가기로 했다.
화장실서 만난 중국계 관광객들만 웃어대며 즐거이 올라가고 있다.
이제 저 아래로 내려가야하는데, 아무래도 해안 길은 막혀버렸으리란 짐작이
들었다. 유채꽃 만발하던 터전 아래로 말 한마리만 비맞고 서 있었다.
핸드리크 하멜이 타고 있었던 동인도회사 소속의 큰 상선...이 배를 조형해
두기전에 왔었으므로 처음 보았다. 2003년 8월에 준공하였다고 한다.
역시 해안길은 통제되어 있어서 그 주변만 돌기로 했다. 바람은 아주 거세게
불었지만, 아직 미친 바다는 아니었다.
하멜씨가 바다를 등지고 외로이 앉아 있다.
그가 난파해서 조선에 흘러들어 온 13년간 조선은 그를 어떻게 대접했는지
소상히 읽었던 적이 있다. 조정에서는 그 서양인을 격에 맞게 이용하여 실리를
챙기지도 않았고, 대접도 하지 않았다. 그와 그의 동료들을 여수 전라좌수영의
문지기로 고용했을 뿐이다.
1653년 8월 제주에서 표류!
폭풍을 만난 일행 64명중 28명은 익사하고 36명만이 구조되었다. 54년 6월
포승줄에 묶여서 한양으로 압송,...56년 3월 강진 전라병영으로 다시 압송...
(효종이 왕이었던 시기였다. 효종은 그들을 왕의 친위대로 삼고저 했는데, 마침
남한산성에 청나라 사신들이 오자, 하멜 일행의 선원들이 그들을 따라 청나라로
가서 고국으로 돌아가고저 그 사신들 대열에 합류하러 하다가, 강진으로 내쫒김을
당했다. 조선은 한번 들어 온 서양인을 절대 내보내지 않는다는 정책을 가지고 있
었음을 그들이 알 리 없었다.)
애초에 구조되었던 36명중 살아남은 22명은 여수에 12명, 순천에 5명,
남원에 5명이 분산 수용되었다. 여수에 수용된 하멜외 12명은 1663년 2월부터
탈출까지 3년간 당시 전라좌수영이었던 여수 진남관에 배치되어 3년간 문지기
노릇을 하였다.
-언덕에 오래전부터 있었던 하멜 표류 기념비
1666년 음력 9월4일 여수탈출 나가사키로 ...현재 하멜등대가 세워져 있는
여수에서 오동도로 나가는 포구 앞바다 선착장에서 소형범선을 타고 탈출에
성공해 10일후 나가사키에 도착했다고 전해진다.
나가사끼로 탈출한 약 2년후인, 1668년 7월에 네델란드 암스테르담에 귀향한
하멜은 체류생활 동안 겪었던 일을 기록했다. 조선의 지리.풍속.정치.군사.교육.
교역 등 '하멜보고서'를 통해 은둔의 왕국 조선은 유럽에 알려지게 되었다.
용머리해안의 이런 지질은 약 1백만년전, 바다에서 마그마가 터져나올 때,
마그마와 바닷물이 만나 격렬히 폭발하여 뿜어져 나온 화산재가 분화구 주변에
쌓여 있다가 만들어진 바위 형태라고 한다.
하멜 표류기는 하멜을 포함한 일부 승무원들이 1666년 탈출할때까지의 기록으로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에 밀린 임금을 청구하기 위해 보고서로 제출한 기록이
그 목적이었다.
그들은 어떻게든 고국으로 돌아갈 날을 애타게 기다리며, 땔감을 구하러 산속을
누비고 다녔고, 옷과 먹을 것을 얻기 위해 구걸도 했다. 그들에게 호의적인 좋은
관찰사를 만나면 돈을 아껴서 좀 모으고, 못 된 관찰사를 만나면 일만 고되게
시키고, 먹을 것도 모자랐다. 조선에서의 삶이 더이상 아무 희망도 없다고
느꼈던 그들...두번의 탈출 실패 끝에 탈출을 실현하였다.
나가사키에서 1년을 머문후 그들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나가사끼 등
일본의 여러 항구는 이미 해상무역이 성행하여 선진문물 교류를 하고 있었다.
이미 이미....아, 이미....
사진에서는 산방산과 붙어 보이지만, 하멜 기념비는 봉수대(?)와 이어져 있고,
산방산과의 사이에는 버스도로가 있다. 나는 이제 서귀포쪽으로 가서, 아무 유명
호텔 앞에서 제주공항으로 가는 리무진을 기다려야 할 시간임을 계산하고
이곳을 떠나기로 했다. 1시 35분 발 아시아나를 타고 귀경했다.
첫댓글 못말리는 금지님 입니다.
이런날씨에 어떻게 갈 생각을 했으며 가서 사진 찍을 용기가 났는지
정말 대단합니다.흐린날씨에도 사진이 잘 나왔읍니다.
제주도라면 서귀포,유채꽃 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낯선 구경 잘했읍니다.
재경홈덕에 이런 호사도 하여 올려준 금지님 감사합니다.
언니, 빛때문에 사진이 잘 안나와서 보정을 거쳤습니다. 제주도는 자본이 좀 들어야하는 곳이므로...밑천.ㅎㅎㅎ
불순한 일기에 그런데로 잘 다녀 왔으니 비 바람 치는 제주를 기억하겠네요. 제주와 하멜 얘기 관심있게 잘 읽었어요.
고마워.
언니, 건강하세요.^^
우리 동호회의실한 리포트인 금지 아우, 제주에서 자세한 사진 설명 정말 잘 보았어요. 작년에 신라호텔에 머물러 4박 5일을 보내면서 하멜 표류기를 보면서 배 위에 선원들이 섬떡하리 만큼 실물 크기의 인형들도 보았지만 이렇게 자세한 글을 보니 금지아우의 글 솜씨가 대단해요.머리에 속 들어오네요.사진을 보니 제주의 절경인 용머리 해안길을 힘들게 걸었던게 생각나요.
언니, 가족여행하셨군요. 정작 저는 배 위의 전시관을 못보고 돌아왔습니다...
세계사 수업시간에 아주 중요한 부분이라며 밑줄 그어가며 외웠던 그 하멜 표류기의 저자 하멜이군요. 외웠던 그 시절이 그래도 그립습니다.
수박 겉핥기식으로 제목과 저자만
내용을 알고나니 훨씬 이해가 빠릅니다.
그들이 많은 고비를 넘기며 어렵게 지냈군요..
그래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인정도 많은데, 어쩌면 그렇게 서양인인 상대방 입장을 이해도 못하고,
이용도 못했는지, 안됐지요..
사진속의 풍광으로도 폭우가 몰아치는 비바람의 스산함으로 색다른 멋을 느낍니다 ^^*
바람소리 대단하더군요. 우산 카메라 모두 덜덜 떨렸습니다...
40여년전에 제 큰언니네가 모슬포에서 병원을 하셔서 그때 처음 가본 제주도하고 요즘의 제주도는 딴나라 같지요...
그래도 그때 제주도가 더 좋게 생각되네요...
모슬포에서...제가 저기 갈 때 모슬포가는 시외 버스 타고 갔습니다. 나도 여기저기 다니면서 자꾸만 옛기억이
더 좋아질 때가 많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