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7.28. 06/00경 오늘은 다른날보다 좀 늦게 길을 나섰읍니다, 새벽에 잠결에 기상 상태를 점검해
보니 비가 내리는 것이 장난이 아닌지라 잠시 눈을 감은 것이 그만 ,,,,,,
연 삼일째 새벽에 비가 내립니다, 아무리 고가의 방수 등산화를 신었다고는 하나 워킹이 끝날 무렵이
면 신발깔창 안에 온통 물바다 에 양말도 젖고 바지도 젖고 우아기 젖고 마음까지지도 빗물에 젖어 눅
눅 하기만 합니다,
우산을 들고 용화고등학교 를 거처 풍기동 육교로 향 하여 코스를 잡읍니다,
늘 그러하듯이 앞으로 의 지리한 워킹에 음악이 빠질수가 없읍니다,
즉시 선곡에 들어 갑니다, 분위기 에 맞는 레파토리 선정이 언제나 고민 입니다, 비바람 몰아치는 음
산한 장마길 새벽에 난데없시 뜸금 없시 미국사람 빙 크로스비 가 부른 " 화이트 크리스마스 "를 부른
다면 워치케 되겄읍니까,,,
하여 고심끝에 첫수를 선곡을 합니다, 제목은 "비내리는 호남선 " 입니다, 작사작곡 이 이미자 인지
나훈하 인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나 그건 중요한것이 아니니 하여간 불러 봅니다,
"목이 메인 이별가를 부을러야 옳으냐,,,, 돌아서서 누운물을 흘러랴 옳으랴 사랑 이란 이런가요
비내리는 호남선에,,,,,,,,,아싸루디야,,,, "
흐이그,,,, 맨정신에 그것두 반주도 자막두 없이 생음악을 더빙 하려니 애로가 막심합니다,
요즘이야 이 음악 감상이나 운동시에 건전가요 열창이 생활화 되었지만두 우리 가계에는 지금도
음악 공부에 소질이 있는 후손들이 전무 하다보니 그 유전적인 영향으로
그간 사회생활을 하면서 피해를 본것이 이루 헤아릴수도 없었으니 우선 그 눈물 겨웠던 비운의 세월
들을 회고해보면 ,,,
우선 본 거사는 초등학교 다닐때 부터 이 음악시간 이라는것이 죽기보다 싫었는데 60년대 전국의 모
든 초등학교가 그랬듯이 담임 선생님의 풍금 소리에 맞춰 동요를 따라 부르고 콩나물 대가리 악보 를
외우고 하여간 그것은 다 좋은데 실기 시간에 그동안 배운 노래를 여러 애들 앞에서 부르게 시키고
그것두 모잘라 노래 부르기 시험을 보고 ,,,,
가뜩이나 숙기도 없는데 여러애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려니 유전학전 으로 소질이없는 노래가 잘 될
리가 없고 음정박자 를 내 마음대로 작사 작곡을 하다보니 교실은 순식간에 봉숭아학당 이 되어 여
기 저기 에서 낄낄 대는 웃음 소리가 천지를 진동 했으니 결국 풍금을 치던 선생님 한티 꿀밤을 얻어
맞은후 상황이 종료가 되었던 적이 한두번이 이니 였답니다, 그런 모진 세월을 격고 중학교들 들어
가보니 이건 풍금이 피아노 로 바뀌었을 뿐이고
레파토리가 차원이 좀 높아 졌을뿐 음악시간 에 노래부르기 평가시험은 여전희 중담됨이 없었으니 ,,
그리하여 음악시간에 몰래 땡땡이 까다가 여러번 혼다고 ,,,,,,고등학교 때는 실업계 학교 이다 보니
다행희 음악 이라는 것이 없어져 음악 이라는 과목 자체를 잊고 살았는데
맙소사,,,, 비극은 아직 끝난것이 아니 였읍니다,
70년대후반 누구나 그러하듯이 어머님의 흐르는 눈물을 뒤로 한채로 논산 훈련소에 입소를 한것 까
지는 별다른 애로 사항이 없었는데 훈련이 끝나고 후반기 교육을 마치고 자대에 배채를 하고 나서는
평생 씻을수 없는 한 많은 세월이 기댈리고 있었읍니다,
거의 매일 일과가 작업이나 훈련이다 보니 군바리들이 재미있고 보람된 일이 무엇이 있으랴만
그래도 작업이나 훈련을 하는 와중에 휴식 시간이 되면 으례희 쫄병 들이 나서서 선임 고참병 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줄 의무가 있었는데
그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장기자랑,,, 장끼 자랑의 선두 주자는 역시 노래 ,,,,,,,
"야 ,,, 누구 노래 한곡조 뽑아 보래이 ,,,, " 선임 고참들의 말씀이 하달 되기가 무섭게
"빨리 튀,,,,, 시끼 들아 ,,,,,,"
중 고참 상병 들의 지시가 떨어지면 이병 에서 일병까지 의 쫄병들은 그 누구도 노래및 막춤 사역에서
자유로울수가 없었읍니다,
"충성 ,,,,, 이병 이남철 노래 ,,,, "한삽 " (각종 작업을 많이 하다보니 )
" 퍼 "
이구동성 근 100 여명의 중대원들이 노래한삽 "을 날리라는 승락 구호가 떨어지면
"잘나두 내청춘 못나두 내청춘 청춘이란 눈물이냐,,,," 았싸아,,,,,, "
"낄낄낄낄 ,,우헤헤헤헤,,, 으하하하핫,,, 오 히히히히히,,,, 아이구 배꼽이야,,,,"
갑자기 온 중대원들의 입가에는 함박웃음 이 가실줄을 몰르고 ,,,이윽고 ,,,
"야,,,, 저 새끼 노래 그만 하게해,,,,, 우히히히히히,,, 하이구 죽껏따,,, "
" 이남철 ,,,,,,너 일루와,,,, 야이,,,씨부랄 땡땡아,,, 그걸 노래라구 불러 ,,,,," 퍽" ,,,,에공,,에공,,,
그랬읍니다, 비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읍니다,
군대 가서 노래 못 부른다른 것이 그 얼마나 큰 죄악 인지는 그때서야 알았으니 까요 ,,,,,
그렇게 서너번을 온 중대원들의 귀여움을 독 차지 하고나니 그때부터는 싱어 (singer ) 에서는 열외
되었고 그때부터 상병 을 달때 까지 다른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면 그 옆에서 막춤 을 춰대는 임무를
맏았는데 좋게 말하면 무용단 이고 나쁘게 말하면 개다리춤 사역병 이였읍니다,
그런데 군대에서 제대를 하면 그 지긋지긋한 노래 사역에서 끝나는중 알았는데 사회 생활을 하다보
니 그게 또 아니 였읍니다,
다만 틀려 진것이 있다면 이제는 가라오케 반주가 있고 술과 안주가 좀더 고급스러워 졌다는것 외에는
달라진 것이 없었읍니다,
그러던 와중에 1990년대초 노래방 이라는 것이 드뎌 아산땅에 상륙을 하였읍니다,
( 투비 켠티니우즈 ,,,,,사정상 훗날을 기약 드립니다 )
첫댓글 ㅎㅎㅎㅎㅎ선운님 땜시리 주름살늘어 걱정유~~멀지않아 아짱방에서 가수 로 데뷔하세요..^^*
막춤 을 춰대는 임무를 맏았는데 좋게 말하면 무용단 이고 나쁘게 말하면 개다리춤 사역병을 맡아가면서 내공을 키우셨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