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16;13-20 교회설립17주년 감사예배. 더 큰 은혜를 위한 순종과 감사. 2023. 10. 29.
주님은 주님의 보혈과 십자가위에 이 히메지 비전교회를 세우시고, 이모로 저모로 여러분을 택정하시고 불러서 교회인 여러분을 통하여 주의 선하신 뜻인 복음을 이 땅에 전하게 하셨습니다. 이 것은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고 또한 calling 하신 이유입니다. 뿐만 아니라, 내 자신이 복을 받고 나의 삶의 미래를 열어 갈 소망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하신 주님의 뜻을 알고 이것이 기도의 근거가 되어 내 삶을 맡겨드릴 수 있는 교회, 설립 17주년 기념 감사주일이 되었으면 합니다. 여러분, 베스트 프렌드를 줄여서 베프(Best friend)란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비전교회가 베스트 프렌드가 되고, 여러분과 여러분들이 서로 best friend 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런데 베스트 프렌드의 영어 이니셜을 보면 그 의미가 더욱 크고 더욱 깊습니다. B는 believe 항상 서로를 믿고 E는 enjoy 같이 즐길 수 있고 S는 smile 바라만 봐도 웃을 수 있고 T는 thanks 서로에게 감사하며 F는 feel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고 R은 respect 서로를 존경하면서 I는 idea 떨어져 있어도 생각하고 E는 excuse 잘못을 용서하고 N은 need 서로를 필요로 하고 D는 develop 서로의 장점을 개발해 주고, 어느 상황에서도 여러분 각자를 믿어 주고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면 위로해 주고 낙심하고 절망할 때 찾아와서 손 잡아주고 일으켜 세워주는 정말 그런 교회와 그런 교우들이 되는 것이 Best friend입니다. 그러면 여러분과 비전교회가 어떤 기초 위에? 어떻게 세워졌고, 그리고 이제 17주년을 지나면서, 앞으로 어떻게 복음을 전하고 선교를 해야 할까요? 15주년을 기념하는 비전교회와 교회를 받들고 주님을 섬기는 여러분들이 어떻게 복을 받아야 할까요?
먼저 오늘 본문의 배경과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가신 곳은 어디인가요? 왜 그곳에 가셨나요? 마가복음은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가시기 전에 벳새다를 갔습니다. 막 8:22-27, 벳새다에 이르매 사람들이 맹인 한 사람을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손을 대시기를 구하거늘 예수께서 맹인의 손을 붙잡으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 가사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시니 쳐다보며 이르되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가는 것을 보나이다. 하거늘 이에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시매 그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모든 것을 밝히 보는지라 예수께서 그 사람을 집으로 보내시며 이르시되 마을에는 들어가지 말라 하시니라 예수와 제자들이 빌립보 가이사랴 여러 마을로 나가실 새 길에서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마가는 이 장면을 왜 가이사라 빌립보 상황 앞에 놓았을까요? 원래 마가는 제자들에 대하여 부정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존재로 보았습니다. 늘 예수님과 함께 동행을 하고 함께 사역을 하고 함께 다니고 있지만 늘 엉뚱하게 대답을 하고 늘 다른 것에 관심을 가지는 존재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의 영적인 안목과 복된 삶이 안 보이다가 조금 보이는 은혜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확실하고 분명하게 볼 수 있는 심령의 혜안을 요구했습니다. 사람이 보이고 나무 같은 것이 걸어가는 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밝히 볼 수가 있어야 합니다. 이런 의도에서 마가는 오늘 본문 앞에 이 사건을 기록해 놓았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떤 신앙의 삶을 살아야 할까요? 대충 알고 대충 보는 것이 아니고, 대충 복을 받고 대충 은혜를 받는 것이 아니고, 대충 길이 열리고 대충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삶의 모든 것을 확실하고 분명하게 알고 보여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께서 베푸시는 온전한 복과 은혜의 삶을 경험하면서 살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가신 가이사랴 빌립보는 어디인가요? 행10;1절에 나오는 지중해 연안의 항구 도시인 가이사랴가 아니고 본문의 가이사랴 빌립보는 갈릴리 호수 북방 약40km 지점의 헬몬산 기슭 해발 약 345m에 위치한 아름답고 조용한 마을입니다. 요단강은 헬몬산에서 시작이 되는데 이 마을은 원래 조그만 도시이었으나 헤롯 대왕의 아들, 빌립에 의하여 확장이 되었고, 거기에 로마의 황제 시저를 기념하는 의미에서 가이사랴로 불렀으며 거기에 자기 이름을 추가하여 가이사랴 빌립보라고 했습니다. 백성들은 황제의 신전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도시의 이름대로 삶의 모든 미래와 현재가 로마의 황제인 시저에게 달렸다고 고백하는 도시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곳을 지나면서 제자들에게 첫 번째의 질문을 하는데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예수님의 질문은 멀리서 시작을 합니다. 객관적인 시각을 먼저 살펴보시는데 일반 대중들과 제자들의 시각을 물었습니다. 마16;14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무엇을 의미하나요? 세례 요한은 그 시대의 최고의 인물입니다. 엘리야라는 이스라엘 최고의 선지자였고 승천까지 한 사람입니다. 예레미야는 그 시대에서 가장 가까운 선지자 중 가장 뛰어난 사람으로 이스라엘의 회개와 장래의 소망을 주었던 선지자입니다. 그런데 이 대답은 세상 사람들이 하는 일반적인 대답입니다. 두 번째의 질문을 하시는데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마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인데 어떤 그리스도인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되시는 그리스도라고 고백을 합니다. 원래 유대인들은 구약 성경에 나오는 예언의 인물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예언의 인물을 히브리어로는 메시야 이고 헬라어는 그리스도라 입니다. 그리스도의 뜻은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누가 기름부음을 받습니까?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입니다. 그래서 대하 6:42 다윗도 자신을 향하여 여호와 하나님이여 주의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서 얼굴을 돌리지 마시옵고 주의 종 다윗에게 베푸신 은총을 기억하옵소서. 유대인들은 꿈을 꾸었습니다. 로마의 압제에서 구해 줄 다윗과 같은 기름부음 받은 분이 나타나기를 소망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메시야는 그런 분이 아니고 고난의 메시야이었습니다. 이사야53:1-6.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이런 메시야 이고 이런 그리스도이었습니다. 사실 베드로는 알지 못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정확하게 그리고 분명하게 고백을 했습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로마의 황제 시저를 바라보고 시저를 소망하지만 베드로는 예수님을 소망하고 예수님만 계시면 모든 것이 해결이 된다는 신앙고백입니다. 그런데 이 베드로의 대답에 예수님이 무엇이라고 하였나요? 마16;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그런데 여러분, 예수님께서 이런 베드로의 고백을 가능케 하신 분을 누구라고 하십니까?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라고 말씀합니다. 마19;26,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대답과 생각과 고백하는 것 까지도 하나님은 다하실 수가 있고 만드실 수가 있고 가능하고 완전하게 하십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이런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무엇의 기초로 삼았나요? 18-20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이에 제자들에게 경고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지상의 교회를 세우신데요. 지금 예루살렘 성전이 있고 회당이 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신앙고백위에 교회를 세운다고 합니다. 이 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오늘 비전교회의 설립 15주년 기념주일에 이 본문을 중심으로 간단하게 몇 가지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1. 비전교회는 어떤 기초위에 세워졌는가? 어디로 향하는가? 2007년 10월 28일 설립되었던 비전교회는 예수님께서 오늘 말씀하셨던 내용과 함께 예수님의 보혈과 십자가 위에 세워졌습니다. 18절,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원래 베드로의 이름은 바요나 시몬입니다. 그런데 이때부터 베드로가 됩니다. 베드로의 뜻은 반석입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반석입니다. 이 반석인 신앙고백위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 교회는 예수님의 교회입니다. 내 교회를 세우리니. 예수님께서 내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세우신 초대교회는 어떤 기초 위에 세워집니까? 신앙의 고백위에 세워졌습니다. 이 신앙의 고백은 예수님의 생명과 십자가입니다. 나를 위하여 죽으신 구속의 은혜입니다. 생명을 내어주신 은혜입니다. 이 것이 십자가의 은혜이고 예수님의 보혈의 은혜입니다. 반석입니다. 이 위에 비전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세워진 교회는 예배를 드리는 공동체이고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 자신입니다. 여러분, 자신인 비전교회는 예수님이 세우신 예수님의 교회입니다. 그러면 이 교회는 어떻게 보존이 됩니까?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교회와 여러분이 있습니다. 섭리라는 단어는 하나님만이 사용하시는 표현입니다. 그러면 섭리가 무엇입니까? 섭리란 라틴어로 프로비덴시아(Providentia)인데, 이는 피조물들이 계속 존재하도록 지지해 주고, 행동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며, 완성으로 이끄는 하나님의 보살핌입니다. 섭리는 피조물을 그 구원의 목표에 인도하시려는 영원한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그래서 섭리는 모든 미래의 사건에 대한 예지를 하고, 우리의 자유 행위까지 포함하는데 이 것은 우리에 대한 배려와 애정으로 그 뜻을 이루어 가시기 위함입니다. 그런 면에서 오는28일이 히메지 비전교회 설립 17주년이기 때문에 오늘 감사 예배를 드리지만 교회가 세워진 것과 앞으로 굳건히 세워지는 것과 우리가 세워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마10; 29절에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세워지고 떨어지는 것조차도 하나님이 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섭리는 어떤 것을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까? 전 피조물과 우주 전체가 대상이기 때문에 비전교회와 여러분의 삶의 생애 속에 능력과 약속과 측량할 수 없는 지혜와, 무한하신 선이 저와 여러분과 비전 교회 위에 나타납니다. 오늘 예배를 드리는 여러분의 삶에 그런 주님의 각양의 은혜와 은총이 나타나실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섭리는 이 땅의 전체를 보시는 일반 섭리와 특별 섭리가 있습니다. 비전교회와 여러분 개인을 위한 일반 섭리와 특별 섭리가 있습니다. 다 같은 은혜를 받는데 어느 때는 특별한 사람에게 특별하게 나타나는 은혜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불공평하다고 합니다. 특별섭리는 특별한 은혜이기 때문에 각 개인이 다르게 주어지고 다르게 나타납니다. 교회가 그렇고 여러분이 그렇습니다. 그러면 섭리는 무엇으로 나타납니까요? 무엇보다 보존하심으로 섭리를 이루어 가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주의 백성을 삼으셨습니다. 그런데 삼으신 그대로 붙드시고 보존케 하심으로 계속 주의 친 백성의 상태를 유지하시고 활동하게 하십니다. 그러니까? 예수그리스도의 보혈과 고난과 영광의 십자가 위에 세워진 비전교회와 여러분들을 붙드시고 보존하십니다. 언제까지요?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보존하시기 때문에 오늘 감사예배는 오늘과 내일과 미래까지 보존하심과 유지하심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염려와 근심의 어떠한 세상의 권세와 정사에도, 사탄 마귀의 권세에도 비전교회와 여러분을 보존하시고 지키시고 유지하시고 복을 주시고 창대케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또 무엇으로 나타납니까? 합력하여 선을 이룸으로 나타납니다. 빌2;12-13절에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이 말씀에서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와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는 말씀이 잘 설명하여 주는데, 이미 하나님이 내 안에서 행하시고, 동시에 내가 또한 소원을 갖게 하는데 이것이 조화되어 있습니다. 오늘 비전교회가 17주년 감사하는 것도, 지금 이렇게 세워져 있는 것도, 앞으로 또 다시 더 굳세게 세워가는 것도, 성도 여러분의 수고와 땀 흘림과 기도와 순종과 헌신과 드림위에 하나님의 더하심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와주심이 없이 비전교회와 여러분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도와주심이 없이 교회인 여러분의 미래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 행하시는 분이 주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소원과 꿈을 갖게 하시는 것도 주님이십니다. 그러나 앞으로 비전교회와 여러분들이 그 꿈과 비전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은 우리의 몫이고, 여러분의 몫입니다. 그래서 오늘 감사예배는 우리의 몫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면서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소망하면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주님의 뜻을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하나님의 통치하심이 있는데, 이 통치는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에 맞고, 각각의 존재의 목적에 맞도록 다스립니다. 교회와 성도들을 사랑과 은혜와 말씀으로 통치하시고 다스리십니다. 그 통치는 사각지대가 없고 제외되는 것이 없습니다. 비전교회가 제외되지 않고 여러분이 제외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각자의 특성과 목표와 각자의 삶의 영역 안에서 하나님의 더하심과 여러분의 소원이 하나가 되어 이 땅에 세워진 교회로서의 역할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는 복된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이 것이 베드로의 고백위에 세워진 예수님의 교회, 내 교회입니다.
2. 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에는 특권이 있습니다. 어떤 특권이 입니까? 3가지인데 먼저는 예수님이 붙드시는 교회가 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것입니다. 여러분의 사업과 직장과 삶의 모든 것이 예수님의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예수님의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눈동자로 살피시고 사방팔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구름기둥과 불기둥과 생명싸개로 보호하십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이 세우신 모든 교회와 여러분들은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합니다. RSV 영어성경에는 본문의 구절을 사망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사탄의 권세 중 가장 큰 권세가 사망의 권세입니다. 그런데 이 사망의 권세가 이길 수 없습니다. 여러분, 사망은 사실 궁극적인 문제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사망의 문제를 거뜬하게 극복하시고 해결하셨고, 부활과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때로는 실패하고 무너지는 것처럼 보이고, 어두움이 깔리는 것 같지만 이 신앙고백으로 세워진 사람들과 교회는 사망을 이기듯이 모든 일에 승리를 합니다. 실패도 떠나고 어두움과 사망도 떠납니다. 죽어도 살고 살아도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교회와 여러분을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합니다. 세상이 주는 것으로 여러분을 넘어뜨리지 못합니다. 왜요? 이 교회와 여러분들은 천국의 열쇠를 손에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천국의 열쇠가 무엇입니까? 땅에서 하는 일과 하늘에서 하는 일이 일치합니다.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하는 일이 하늘에 연결이 됩니다.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는 열쇠입니다. 풀면 풀리고 매면 매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의 열쇠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대치되는 표현 속에 전통적인 랍비들의 용어 사용법에 의하면 매다는 뜻은 금지하다와 금지하여 잘못을 선포하다는 뜻입니다. 또 풀다 는 뜻은 허락하다와 허락하여 합법임을 선포하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주님은 우리의 허물을 보는 것이 아니고 무엇을 행하든지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십니다. 원하는 사랑으로 보십니다. 천국의 열쇠를 주셨습니다. 대단한 특권입니다. 롬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비전교회와 여러분은 세상에 살지만 천국의 열쇠를 가지고 삽니다. 그래서 하늘의 것을 누립니다.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축복을 하면 축복이 되고 잘못을 말하면 풀려지지 않습니다. 연약하고 부족하고 선하지 못한 것 까지도 합력하여 주의 뜻을 만들어 가도록 하십니다. 여러분, 나를 위하여 매실 것입니까? 푸실 것입니까? 다른 사람을 위하여 매실 것입니까? 푸실 것입니까? 동서남북의 놀라운 복을 받을 수 있는 특권이 여러분의 손과 비전교회의 손에 쥐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비전교회를 섬기고 세우고 보전해야 하는 일에 하나님께서 목자로 저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모든 성도님들에게 천국 열쇠를 가지고 푸는 것입니다. 제가 천국열쇠를 가지고 세워주는 것은 누구에게 상처가 되고 누구의 앞길을 막는 것이 아닙니다. 더 나은 여러분과 교회를 세워가기 위하여 주님이 주신 명령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고백과 생명과 십자가로 세워진 교회의 3가지 특권이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이 특권으로 여러분의 삶의 모든 현장에서 사용되고 적용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3. 그러면 복 받은 인생과 교회는 어떤 실천이어야 하는가? 그 것은 순종과 감사입니다. 무엇보다도 순종을 원하십니다. 먼저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이어야 하고 그리고 나의 삶을 드려서 감사가 되어야 합니다. 왜 순종입니까? 왜 감사입니까?
3-1. 순종은 예수님께서 내개 내어주신 생명에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하실 때에 오늘은 교회로 표현을 하셨습니다. 또한 친구로 표현했습니다. 이는 교회와 친구가 모두 생명에 연결이 됩니다. 메시야로소 생명을 바치셨습니다. 요15;11절,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가 가져야 할 기쁨은 예수님의 기쁨입니다. 그 기쁨은 하늘에 속한 기쁨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세상을 살다 보면 어려운 일과 괴로운 일을 많이 만나지만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사람의 심령에 있는 기쁨은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요15;12절,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사랑하라. 이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것을 안 것과 같이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을 우리가 사람들에게 나타냄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눈으로 보지 못하는 예수를 알게 하라는 의미입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은 이와 같이 예수님의 계명입니다. 여기에 순종을 해야지요? 그리고 이어서 예수님은 요15;13절,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4-15절,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으니 내가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 헬라어로 친구를 휠로스 라고 합니다. 이는 왕이 자신의 인간적인 약점을 모두 드러내고 고민을 함께 상의할 수 있는 친구와 같은 관직을 의미합니다. 일반적으로 왕을 섬기는 종들은 왕의 마음을 알지 못하지만 왕의 휠로스는 왕의 침실에까지 들어가 왕과 귓속말로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도 여러분과 저를 친구로 삼아주셨다. 그러면 교회는 어떻게 창대케 됩니까? 순종과 감사로 더 큰 은혜를 받고 순종과 감사로 더 큰 복을 받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러분이 세워지고 교회가 세워지는 환경과 여건은 항상 변합니다. 이전이나 이후가 다 같지 않습니다. 언제나 변합니다. 시간의 변화가 있고 사람의 변화가 있고 환경의 변화가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주위에 일어나는 변화에 대하여 성경은 무엇을 말씀하실까요? 롬12;2절,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고후서 3;18절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헬라어로 변화란 나쁜 것에서 좋은 것으로의 바뀜입니다. 변화는 무언가가 바뀐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변화는 겉으로 드러난 것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본성이나 형태까지 바뀌는 것입니다. 여러분, 바뀌고 변해야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선하심을 알게 됩니다. 이런 변화의 과정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의 존재에 더하여 집니다. 그러면 주의 영으로 생명 안에서, 생명과 함께 변화가 드러나고 그 변화가 순종하고 감사한 사람의 영광으로 나타납니다.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좋은 교회와 든든한 교회와 이름이 창대케 되고 능력이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자 하더라도 하나님은 그 것 위에 또 다른 계획을 가지고 계실 수도 있고, 더 나은 계획을 가지실 수 있습니다. 내가 무능하고 비관적인 신앙인이라도 하나님은 나에 대한 귀한 계획을 세우시기 때문에 모든 일을 내 자신의 욕구에 맞추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시든지, 그 일에 순종하는 믿음과 해석이 필요합니다. 환경을 탓하지 말고, 나의 부족을 탓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지금 내 상황에서 어떤 계획을 시행하실지 해석을 하고 살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순종해야 합니다. 친구를 위하여 생명을 내어주어야 합니다. 여러분,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이 있습니까? 이 것을 실천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비전교회와 여러분이 주의 생명으로, 주의 영으로 세워지는 온전한 교회와 온전한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3-2. 다윗의 감사가 있습니다. 그 감사로 다윗은 위대한 삶을 살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됩니다. 대상17;16-20의 내용인데 16절에,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를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나이까. 감사인데 질문입니다. 여호와 앞에서 나는 누구입니까? 여호와 앞에서 나는 무엇을 하였습니까? 여호와 앞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합니까? 감사의 시작을 다윗은 3 가지 물음에서 시작을 합니다. 내가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나이까? 다시 주께 무슨 말씀을 하오리까? 땅의 어느 한 나라가 주의 백성 이스라엘과 같으리까? 이 다윗의 질문 같은 감사는 그가 하나님께 드리고 싶은 고백과 인정을 담아냅니다. 이 질문은 정말 궁금해서 묻는 질문이 아니라 자신이 갖고 있는 확신을 하나님으로부터 확인하는 질문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감사는 하나님 앞에서 나는 누구인지? 나는 무엇을 하였는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물어 보십니까? 다윗은 역대 상17;18-20, 주 여호와는 나를 아시고 내가 그것을 압니다. 그리고 주 외에는 신이 없습니다. 주 여호와는 주의 종을 아시오니 다윗이 다시 주께 무슨 말씀을 하겠습니까? 주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주의 뜻대로 이 모든 큰일을 행하사 주의 종에게 알게 하셨나이다. 그런즉 주 여호와여 이러므로 주는 위대하시니 이는 우리 귀로 들은 대로는 주와 같은 이가 없고 주 외에는 신이 없습니다. 나는 여호와 앞에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는 여호와 앞에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나는 여호와 밖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맡긴다는 고백입니다. 다윗은 지금 자신이 누리고 있는 평안과 명성과 칭찬과 존경과 부귀와 영광이 어디서 주어진 것인지 분명히 알았습니다. 자신이 세운 나라가 아닌 하나님이 세우신 나라이며 하나님이 그 나라와 백성의 참된 왕이심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신실함을 부여잡고 감사를 합니다. 25,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주의 종의 귀를 여시고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세우리라 하셨으므로 주의 종이 이 기도로 주께 간구할 마음이 생겼나이다. 바꾸면 비전교회와 여러분들이 주님을 위해서 한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과 비전교회가 하나님 앞에서 아무 것도 아닙니다. 비전교회와 이 시간 예배를 드리는 여러분은 주님 외에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교회와 미래의 삶을 세우시기에 감사할 마음과 기도할 마음뿐 입니다. 3가지 감사의 인정이 담겨있습니다. 당신이 나를 아시는 것을 제가 압니다. 당신이 나를 위해 하신 일을 제가 압니다. 당신이 나의 집을 견고케 하시고 복 주실 것을 제가 압니다. 다윗은 자신의 삶을 하나님이 어떻게 이루어가고 만들어가고 계시는지 분명히 인정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그 자리와 평안이 어디에서 흘러나오고 있는지를 인정합니다. 이후에 자신의 집과 나라의 견고함이 누구의 손에 달려있는지를 인정합니다. 자신에게 삶에 복을 주시는 복의 근원이 누구인지도 인정합니다. 여러분, 오늘 이 다윗의 감사가 우리 비전교회의 감사가 되어야하고, 여러분의 감사가 되어야 합니다. 질문과 고백과 인정이라는 3가지 패턴을 갖고 있는 이 다윗의 감사는 그 기도의 중심에 자기의 욕심이나 자기의 중심이 담겨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마음만 담겨 있습니다. 자신의 삶의 안전과 평안이 왔을 때 다윗은 하나님을 향한 흔들리지 않은 중심으로 그의 전존재와 전 생애가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인정하며 감사를 드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합심하여 감격하면서 비전교회 설립 15주년 기념 감사예배를 드립니다. 무엇으로 감사예배를 드려야 할까요? 여호와 앞에서 나와 교회는 누구입니까? 나와 비전교회는 여호와 앞에 아무것도 아닙니다. 주님이 나와 교회를 아시는 것을 제가 압니다. 여호와 앞에서 나와 교회는 무엇을 하였습니까? 나와 교회는 여호와 앞에서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주님이 나와 교회를 위하여 하신 일임을 제가 압니다. 여호와 앞에서 나와 교회는 어떻게 살아야합니까? 나와 교회는 여호와 밖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주님이 나와 교회의 삶을 견고케 하시고 복 주실 것을 제가 압니다. 이 말씀이 무엇입니까? 여러분, 동행입니다. 누구와 동행을 할까요? 지금까지 주님께서 동행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비전교회와 여러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면서 앞으로도 지난 온 15년을 지금부터 다시 17년을 동행하실 것을 기대하면서 예배를 드립니다. 주님 오실 그 날까지 영원까지 동행하실 것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인생은 동행이고 함께 길을 걷는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걷는 것보다 더 기쁘고 즐거운 동행이 없습니다. 그래서 다윗처럼 사명자의 삶을 살아가는 비전교회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