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가 본다 월산회 산행 길 !
동기생 인 박봉수와 엄만섭이가 만나 상봉역 홈에서 9시2분 경춘선 전철를 탔다 강촌 전철역에 10시4분 도착하여 전철역사 뒷편 봉화산으로 이르는 안내판을 읽고 산에 들어서는 길은 호젖하고 깔끔하여 다수 등산객이 오르내렸씀을 짐작 할수있었다
기상 예보에 오늘 낯 기온이 섭씨 30도 에 이를 것이라 하며 습도 역시 80를 육박하고 그나마 바람 한점 일지않는 장마 끝 7월의 더위는 걸음을 무겁게 한다 초입부터 우거진 숲이 산야를 점령하니 몸을 낮추어 보조를 늦추기로 하였다
등산화를 고춰 맬 틈도 주지않고 앞선 친구[엄만섭]는 보이 질 않는다 처음엔 갖파른 길이 그리 높지 않아 공제선상까지 는 쉽게 올라 설수있었다 2~30m 앞에 친구가 보인다 차츰 보조를 맞춰 주길래 딸아 선 후부터 함께 걷기를 한숨배하니 체질이 행보에 적응하여 걸음이 가벼워 짐을 느낀다
바람은 잠들어 일지 않으니 가슴섶이 젖어온다 내가 먼저 "야 좀 쉬어 갈까" 첫 쉼터 벤취를 만나 가벼운 베낭이나마 벗어 그늘을 찿는데 만섭이 이 친구는 선체로 서성 거리기 만 할뿐 아무 말도없이 먼산을 훌터보며 쉼이 길어지면 별로라는 눈치였다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물병 반을 비웠으나 친구는 땀 한방울 훔치지 않는다
대단한 체질이라고 춧켜주고 싶으나 남은 길이 많이 남았기에 두고 볼 양으로 말없이 산야를 둘러보니 능선을 타고 진행[南]하는 방향의 오른편에 북한강이 흐르고 건너 삼악산 들머리에 의암탬이 장마 빗물을 가득담고 작열하는 햇살의 심술을 조용히 받아 드리며 휴식을 취하는 듯 고요하다
삼복중 이라 세내번 오가는 등산객을 마주 했을 뿐 한가하다 못해 쓸쓸하다 햇살이 머리꼭지 위에 쏫아질 즘[12시 30분]"봉화" 봉[峯]에 올라섰다 정상에는 먼저 온 남정내[男] 세냇과 잠시 후에 온 아주머니 두분이 함게 있었을 뿐 주위는 한가하고 이 일대의 좌장[봉화산]봉에 무게를 잡는 봉화산의 표말이 해발 526m를 들어내 보인다
봉화산[峯火山] 팻말을 사이에 두고 기념 사진을 찍었다 [이 정도의 산은~하는 친구, 별 말이 없다]
에너지 손실을 염려 해 말이 없는걸까 ! 배가 고파서 말씨를 줄이는지 ! 힘의 안배를 들어내지 않는 두친구 간에는 무언의 대화가 간단없이 오고 가는것을 서로 인지 하면서 걷고 또 걸어간다 [성격이 별로 재미는 없지만~~]
꼬장꼬장한 성격에 굳은 의지를 좀체 내색치 않는 친구가 이제야 갈증을 느끼는지 "야~ 물 있어" 하고 묻는다 베낭 옆에 찬 물병은 혼자 마셔 없고 베낭 속에 신문으로 둘둘 말은 물병을 꺼내면서 "어~ 너 물 없어" 막걸리를 사면서 물은 챙기지 못했다며 지금껀 인내 한 친구를 물끄럼이 처다볼 뿐이다
그래 너 죽으면 나도 죽겠지 빈 물병에 반씩 분처 담아 나누고 쉼터 자리 벤취에 베낭을 벗어 놓았다
정오 때가되니 출출하다 내려가 맛나게 먹을 맘에 베낭엔 옥수수 3자루와 천두 복숭아 2개가 전부다 물대신 주막에서 산 이천 막걸리 한통이 친구 베낭에서 나온다 자네 먼저 하는 냉 막걸리 한잔이 더운 복부를 타고 내리는 시원한 기분이야 말로 시야에 펼처진 산야가 모두 내 소유인듯하다
시장끼에 먹는 시골옥수수 맛 또한 진미다
정상에 춘천시장이 설치한 등산로 도형판을 왕년의 포병장교 출신 두 건각[健脚]이 지도정치를 할수없다니 다리품이라도 팔수 밖에 !! 엉성한 지형판을 춘천시장의 잘못탓으로 돌리자니 자신이 쫀쫀 해 질것 같고~ 주위에 있는 아주머니에게 물어 보자니 저 여자들이 뭘 알겠는가 싶은데 !
왠걸 같은 처지를 동감 하였는지 만섭이가 떠듬떠듬 한 말 재주로~
저~점심은 하셨습니까 ?
젊은 여인이 돌아보며~"그럼~요'
밝게 대답하는 아주머니는 한 50대 후반쯤 되어 보이고 말없이 멀거니 보는 아주머니는 60대 초반은 됄성싶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
묻는 친구의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시내[춘천]에 서왔쑤~우, 이북 억양이 조금배인 말씨나 친절이 깍뜩 한 시골 아낙으로 보인다
더위는 기성을 부리는데 쉽게 갈수있는 길을 물었드니~"여길 올라 와 보시우" 하면서 정상 중앙에 곤주 서서 오른팔을 들어 3시[北] 방향을 가리키 면서 저기 아랫 골짜기 을 보시요 허엿케 들어난 바닥이 구곡폭포 주차장이고 그길 윗 쪽으로 한 1km 오르면 구곡폭포 요 여기에 선 보이지 않소 그리고 1시 방향 큰 산넘어 빨간지붕 두채가 보입니까 ? 그곳이 문배마을 인데 마을 앞에 큰 저수지가 있습니다
문배마을 이란 동네를 통과 해 내려가면 구곡폭포 가 나옵니다 바로 앞에 가로질러 막아선 산 골짜기 로 흘러 내리는 물줄기 가 있지요 그 물이 구곡폭포 물을 조절하는 저수지 물 이랍니다 저 물줄기 우측편 산을 넘으면 가장 쉽게 갈수있는 길이 되지요 우리는 구곡 주차장으로 가니 중간 삼거리 까지 안내를 할태니 따으시요 !~
보병학교에서 "나를 따르라"는 구호를 상기하게 하는 젊은 아주머니의 지형설명에 한풀 꺽끼어 한마디 질문도 없이 뒤를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산 허리를 바로 내려오니 차도가 보인다 이 차도는 문배 마을로 드는 길인데 이길로 가면 길은 편하나 1시간 정도 더 걸어야 한다면서 샛길로 내려 삼거리 길에서 좌측을 가리키 면서 저 산을 넘으시요 하는 아주머니에게 "고맙습니다 안녕이 가십시요 하면서 도 무언가 염치없는 노인내로 보일까 싶어 베랑에 든 초코랫 몇개를 건낸뒤 빈 베낭을 들춰메고 장맛비가 할퀴고 간 개울 물을 건너 장맛비에 흘러내린 돌산 길을 헉헉 거리면서 산성에 오르니 몸은 땀으로 번벅이 되고 양식도 물도 떨어진 상태다
혼자 중얼거려 본다 "너가 있어 아무걱정이 들지 않는다~ 너도 그럴까 ? 편안하고 좋다
웃 옷을 벗어 나무 가지에 걸고 사타구니에 찬 더위를 시키려고 허리춤을 풀어 바람기를 찾았으나 햇살만이 그늘을 파고 들 뿐이였다
시간은 2시를 넘어서고 산 아래서 계집 아이들이 깔깔되며 웃는소리가 들린다 바닥이 멀지 않음을 감지하고 내려서니 저수지가 눈에든다 대충 어림잡아 천여평 정도인데 저수지 둘래엔 황토색 포장 길로 이어지고 저수지 중앙엔 분수대 꼭지가 나와있다
문배 마을를 들어서는 기분은 너무나 조용하고 등산객이나 피서객들의 한가한 걸음 거리가 눈에 들어올 뿐 주민이란 모습의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60년 전으로 되돌아 간 산속 외부와의 접촉이 없는 마을 처럼 시간을 잡어두고 통체로 마을를 내어주니 피서객이나 등산객들 만이 왁자짖껄하고 주민내 들은 안채에서 쉬고 있는 기분을 느끼게 하는 한가로운 마을이다
산 아래 마주보는 두세채 식당 [닭갈비 막국수] 간판이 그리 오래되지 않은 기간동안 객군 들을 맞아드린 정갈한 모습에 정을 느낀다
마을 뒷산 구곡폭포로 넘어가는 길에 사람들이 분빈다
여기서 사진 한장을 담았다 [숨어 살고 싶은 동네라~~]
해발이 높은 마을 뒷산이라 바람도 간간히 인다 여러 산객들과 뒤섞여 휴식을 취하는데 구곡폭포 [1kn 아홉구비 깔딱 길] 쪽에서 올라오는 중[重]늙은이가 숨을 내 쉬면서 주막을 찾는다~~좀 힘드는듯 해서 "힘드시요 나이 얼마나 되세요 ? 라고 하니
짱짱한 목소리로 "팔십둘이요 ~아차,
속으로 죄송합니다 연세라고 존칭을 서야 하는데 결례를 하였구나 !!
"만섭아 팔십둘 이 시래 너와 나 저 노인네 처럼 하고 살아야지" 하면서 노송 끝 솔닢에 이는 바람을 찾는다
허기에 찬 걸음으로 아홉구빗 길을 내려서니 바로 구곡폭포 가 시야에 든다
내려 꽂치듯 떨어지는 물줄기 가 잇끼서린 절벽에 부뒤처 산산으로 부서 지면서 흿푸연 물보라 안개로 깊은 골짜기 속을 운무로 피여올라 장관을 이루니 관객의 환성이 터져 나온다
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피서객들의 사진 촬영에 앞자리를 얻기가 어렵다
사이사이에 함께 끼여 서 라도 한장 찍었다 [물보라 가 얼굴에 스며든다]
오을 산행 길은 없다 이제 시장기를 체워야 할터인데 그래도 이 폭포의 정수에 손발이라도 씻은 후에 점심을 먹어야지 하는 친구의 제의에 응하면서 솜틀에 감겨 넘어오는 무명솜 같은 물에 멱을 감으니 전신에 소름에 돋고 순간에 피로가 싹 가신다
매표소를 빠져나와 명승지에 들고나는 길섶에는 오만 안내판과 식당들이 걸식자를 유혹한다
그러나 지금 부터가 여기를 온 본분을 정리 해야할 일이 있기에 8월에 있을 월산회 산행 동기생들이 편히 쉬면서 주안을 받을수 있는 식당을 찾아 나섰다
강촌 전철역 가까이 위치한 "강촌 우미숯불닭갈비" 을 찾아 들어갔다
늦었다 4시 30분 이야` 자 ~자 전화 그만 하고 한잔 하세나, 자네나 나 오늘 땀께나 흘렸내 ~ 허나 기분 좋구만! 이렇게 호젖한 산행을 동기생과 단 둘이 하는것도 할만하내 아마 전 부터 바램이 있었기에 이렇게 즐거운 행군을 하니 왕년에 동북 유격훈련 받던 생각이 드누만~~ 허 ~허허~~ 앞으로 또 어느 동기생과 넉넉한 산야를 다녀 볼는지 !!~~
말없이 함께 행군 한 엄만섭 동기생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서 이글을 올린다
2013년 7월 27일
동기생;박 봉 수
첫댓글 박봉수, 엄만섭 두동기생, 수고들 많이 했습니다.
나는 이런 기행문을 대할 때마다 비록 독서량이 태부족인 주제이지만 반세기전에 읽었던 불후의 명작 수필 (정비석 작가의 산정무한)이 떠오릅니다. 눈에 보이는 대자연의 이모저모를 어쩌면 그토록 감미롭고 정답게 표현했는지 지금까지도 감탄에 젖습니다.
생업 때문에 좀처럼 시간내기가 어려운 박봉수 동기생이 이 삼복더위에 춘천의 한 암 봉을 사전 답사한 얘기를 평소 품어오던 소박한 심경을 덧 붙여 쓴 장문의 글을 보니 자연을 읊으려는 충동을 느끼는 것은 옛사람이나 지금의 사람이나 또 아마추어든 프로 문인이든 간에 모두의 공통의 인지상정이 아닌가 생각 됩니다.
세세하게 풀어 논 봉수 동기생의 사전 답사기 때문에 정작 이번 8.16일에 있을 산행에선 눈감고 찾아올라갈 것 같습니다. 물만 한 서 너 병 꽁꽁 얼려가지고 비장한각오로 참여할 생각입니다. 비록 비지땀은 흘리겠지만 하산 후에 맛볼 소문난 춘천 숯불 닭갈비와 막국수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 벌써부터 많이 기다려집니다.
미리 땀을 빼고 온 두 동기생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하잔은 친구의 긴 글을 읽고 칭찬을 해주니 반갑고 좋구만, 누구나 글이란 걸 올려놓고 누가 봐주고 한마디 댓구가 있었으면 하면서도 오해나 핏잔의 빌미를 재공하는 글이 아닐까 하는 염려도 든다 허나 우리는 동기생이란 큰틀에서 는 무엇이든 덮고 이해 하리란 전제에 든다면 마음껀 쓰고 받으면서 새로움을 익혀 삶을 즐겁게 하고 져 하내 다소 긴 글이나마 읽어 주길 바라면서~~
카페에 정과덕을 싫어 서로를 어우르는 정재성 동기생을 부러워 하면서 8월 16일 월산회에 많은 친구 볼 생각한다,
재성 고맙다~지혜롭게 더위 이기 기를 바라면서.
장문의 글과 문맥의 핀트가 너무들 거창 해.......
오밀 조밀하면서 촌스럽게 가자 ㅎㅎㅎㅎㅎ
단세포요, 간명함을 원칙으로 살아온 김경수...........
이젠 나이도 좀 먹었으니 섬세 해야겠내...
몇 번 읽어 봤어요...
정재성 동기생 / 월산회장님 이래 저래 수고가 많으시내요...
꼭 어느땐간..엄청 광명처럼 밝은 빛이 발산 할 꺼에요........
댓글 밑에 답글을 달았으니 자내 나 나나 둘둘 넷 반짖그룻에 닮긴 실패꼬지에 꽂힌 바늘과 골무에 지나지 않으니 어쩜 이를 보고 정재성 동기생이 대박실소[大拍失笑]하지 않겠는가 !~ 나도 좋타 말았으니~~ 실소 할 밖에
그건 그렇고 글을 재치있게 달아 줘 고맙고 내일 경춘선 열차에 몸을 싫고 한바탕 웃어나 보세 꿈 잘 구시게나, !!
헐 ㅎㅎㅎ뉘귀래 허락없이 나의고향을 휘젖고 다녔지라이! 헌데 장문의 답사기를 읽고나니 내가 직접갔다온것 보다도 더정확하고 실감나고 점감넘치게 묘사했구려, 역시나 글솜씨가 감동이란께 묶은친구 고맙고 감사하고 삼복더위에 고생도 많이 했구랴,춘천은 나의 고향이면서 우리부모님을 지하에모신곳이고 현재도 두여동생이 잘살고 있지요,물론 정다운 옛친구들 많이 살고 있고 그옛날 힘들고 어려웠던 삶의 질곡속에서도 늘 향수를 달래면서 살아왔구랴 하여튼 정겨운 만섭 봉수두친구 막걸리 잔 기우림이 넘넘 행복의극치로소이다그려,헐 ㅎ아무쪼록 건강하게 오래 오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구랴 . 택규가
그제 창덕궁에 출몰한 멧돼지는 서울놈일 진데 ~! 수일전과 어제 [경수,상식,봉수] 춘천 [봉의산]에 드나든 멧돼지는 영호남 둘둘넷 돼지입니다 사전 춘천 캉가루멧돼지님게 아래었으나 모시지 못하고 아랫[경상,전라] 것 들만 다녀왔습니다
그래도 어르고 칭찬 해 금도[襟度]로 여겨줄 것이지람~~역시 춘천의 맏[兄]돼지 택규 동기생이 지람, 강원도 춘천 사람들은 하나 같이 친절합디다. [남여노소 길 안내를~감사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