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에 비 소식도 있다는데 그 넘의 등산은 꼬옥 가야 직성이 풀리느냐고 첫 새벽부터 눈알을 부라린다.
말대꾸 해 봐야 돌아 오는 건 매 밖에 없는지라 찍소리 내지 않고 현관문을 닫곤 아파트 경비실을 통과해서야
겨우 어깨를 펴면서 혼자서 궁시렁 거렸다.
이너무 웬쑤같은 예팬네야!
일주일에 엿새는 땅벌 구녕에 그시기를 드리 대고 살다가 화요일 딱 하루 압박과 설움에서 해방이 되는데
그깐 비 정도 쫴꿈 뿌린다고 산행을 포기할 얼간이가 세상에 어디 있냐구.
느림보 리무진이 영동 고속도로 대관령을 넘기 바쁘게 아랫쪽으로 기수를 돌리니 그림같은 동해안 해변도로가 장관이다.
비구름 가득 머금은 해안선에 끼룩이는 갈매기가 시야에 들어 오면서 내 가슴은 번뇌와 갈등으로 몸부림을 치기 시작한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오늘 따라 옆자리에 앉으신, 중후한 인품에 매너 캡쨩 좋으신 신사분 신 영수님께서 본의 아니게
남의 염장을 질르기 시작하신다.
일전에 사모님과 동해로 놀러 오셔서 놋대야보다 더 큼직한 영덕 대게 뚜껑에 밥 말아 드시던 얘기 꺼정은 갠신히 참고
넘어 가겠는데 입에 쩍 쩍 들러 붙는 오징어 물회를 통사발로 들이 키는 적나라한 장면 묘사까지 진도가 나아갈 즈음엔
난 이미 제 정신이 아니었다.
앙드레 총무님이 나눠 주신 인절미를 한 입에 무려 세개를 쑤셔 넣곤 두 손을 공손히 부여 잡으며 천지 신명께 간절히
빌고 또 빌었다.
기왕지사 비를 뿌릴 요량이면 천지를 구분치 몬할 정도로 세차게 뿌려서 강 대장님 입에서 느림보님들의 안전 운운하면서
만부득히 횟집으로 ...
느림보를 대표하는 A팀 세 분이 사곡리에서 하차를 하신다.
강 대장님이 사전 답사를 하시면서 공 들여 리본을 달아 두셨다고는 하지만 재량박골을 경유하는 산행길은 람보나
코멘도 정도는 되어야 통과할 수가 있는 인적 미답의 험한 숲길이란 안내를 듣곤 자리에 가만히 웅크리고 앉아
석봉 대장님과 수일님 그리고 신성님과의 응봉산 정상에서의 반가운 해후만을 조용히 기원드렸다.
덕구 온천마을 뒷편에 있는 산행 초입에 버스가 도착을 했는데도 빌어 먹을 비는 한방울도 뿌리지 않는다.
만사를 포기하고 산우님들을 따라 꾸역 꾸역 발길을 옮기기는 하는데 머리통엔 온통 막쌔주와 오징어 물회가 어지럽게
쌍칼질을 해 댄다.
배는 고푼데 길은 멀고, 아니 베낭은 무겁고 바지춤은 내려 오는데 똥꺼정 마려운 내 신세가 몹시도 가여워 보인다.
매주 일요 산행을 하는 동창 모임에 최근에야 처음으로 얼굴을 드리 민 내 친구가 하나 있다.
화학을 전공했던 지라 운 좋게 화장품 회사에 취업을 하여 생산을 담당하다가, 오래 전에 독립을 하여 인천 남동공단에서
자그만 공장을 운영하며 대기업에 주문자상표부착방식으로 납품키도 하고 일부는 자사 상표를 부착하여 시장에 뿌리기도
하는 가 본데,
아직은 손익분기점을 넘지 몬하여 고전을 하고 있다며 엄살을 떠는 이 친구의 상판떼기는 백화점에 근무하는 화장품 회사
판촉 여사원을 연상하면 크나 큰 오산이다.
반 대머리에 껌정 말젓처럼 거무티티한 얼굴까지는 그냥 보아 주겠는데 물항아리처럼 부풀어 오른 배시대기에 다리를 약간
절룩이며 스틱을 잡고 걸으면 그 모습이 리어카를 끌고 동네 골목길을 쏘다니는 고물장수 아저씨 판박이다.
오래 전에 심한 교통사고를 당하여 모든 의료진이 죽어서 나갈 것이라고 포기를 했었던 중환자실에사 무려 두 달을 버팅기며
사투를 벌리다 인간 승리를 했었다고 하는데 얼굴에는 아직도 그 흔적들이 뚜렸하다.
시커멓게 염색한 미군 작업모를 쓰고 목에는 항상 찜질방에서 훔쳐 온 큼직한 면수건을 둘르고 산행을 하는데 어쩌다 가까이
가게 되면 진동하는 땀냄새가 장난이 아니다.
친구 얼굴이나 몸이 그렇고 그런 것이 저하고 무신 상관이 있어 그리도 심하게 험구를 해대느냐구요?
물론 피해가 막심합니다요.
제 예팬네가 아무리 무섭다고는 하지만 저라고 해서 산에만 올르면 지척으로 눈에 띄는 아줌마 부대를 그냥이야
지나 치겠습니껴?
어렵게 말을 붙여 작업이 거의 끝날 즈음이면 영낙없이 나타 나는 고물장수 친구 덕분에 되는 일이 없지 멉니껴?
참다 못해서 어느 날은 정색을 하고 한마디를 던졌는데 몹시도 후회를 하긴 했지만 이미 시위를 떠난 화살이었습니다.
이 다음부터 우리 친구들 산행 모임에 따라 올려면 우선 괜찮은 고어텍스 등산모를 하나 사서 쓰고 그 다음에 얼굴은
최소한 반쯤은 가릴 수 있는 시커먼 썬글래스를 필히 착용하고 산행에 나오라고 했었다.
이 친구가 입만 벌리면 하는 소리가 덕풍 계곡에서 단독 산행을 하다 길을 잃고 절벽 한 구퉁이에서 웅크리고 앉아 날밤을
보낸 얘기인데 횡설수설하는 말을 간추려 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산에서 나는 천연 버섯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송이를 떠 올리는데 사실은 일 능이 이 송이버섯이라고 하여 능이 버섯이
으뜸이고 송이가 버금이라고 한단다.
덕풍 계곡을 경유하는 응봉산에는 능이가 많이 난다고 하여 매년 철마다 덕풍 계곡을 혼자서 오르는데, 하얗게 탈골이 된
산양의 사체도 두번이나 보았다고 한다.
산양의 뼈는 줏어 오면 약재로 꽤 큰 돈을 받고 팔 수가 있다는 말은 한참후에야 민박집 쥔장으로 부터 들었다며
몹시도 아쉬워 했었는데 문제는 내가 험구를 한 이후론 이 친구가 등산 모임에 나타 나질 않는다.
고물장수라고 부르는 것 보단 헐 나을 것 같아 아호를 덕풍 도인이라고 붙여 준 이 친구를 만나기 위해 산행친구들이
약간의 돈을 추렴해서 찾아 간 곳은 인천에 있는 인하대 병원 입원실이다.
의식이 없는 상태로 한동안을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이다 며칠 전에야 일반 병실로 옮겼다는 소식을 동창회 총무로 부터
듣고 황급히 달려 갔는데 6인실 병동에서 반쯤은 벗겨 진 대머리가 우선 눈에 띈다.
반가운 마음으로 다가 가서 두 손을 부여 잡았는데도 나를 쳐다 보는 두 눈의 촛점이 흐릿하다.
아직은 사물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는 간병인의 말을 듣곤 내가 울먹이며 인사를 건넨다.
덕풍아! 발기는?
친구들 말에 의하면 덕풍이는 화장품 회사에 다닐 즈음 사귀던 미모의 여의사가 고무신을 꺼꾸로 신은 이후론 지금까지
여자 비슷한 것도 쳐다 보지 않고 오직 손빨래만을 하면서 살고 있다고 한다. 혼자 사는 덕풍이가
금요일날 거래처 접대를 하면서 과하게 술을 마셨는데 토 일요일 이틀을 방치되어 있다가 출근을 하지 않는 사장님이
이상한 생각이 들어 찾아 간 부하 직원이 119에 신고를 하여 문을 따고 들어 가 보니 이미 의식이 없는 상태였는데
일명 중풍이라고 하는 뇌졸증이다.
휠체어에 앉혀서 병원 입구에 있는 잔듸밭에 덕풍이를 데리고 나와 한 친구가 어린 애기 마냥 걸음마를 시켜 본다.
두어 걸음을 간신히 걸었을 뿐인데 모든 친구를이 환호를 하며 박수를 친다.
같이 도봉산을 오르며 덕풍 계곡 얘기에 정신이 없던 덕풍이 모습이 불현듯 떠 오르자 주체할 수 없는 눈물 콧물이
달구똥처럼 흘러 내린다.
간병인 아주머니가 아무래도 병실로 올라 가는 것이 좋겠다고 하신다.
내려 다 보니 이미 바지를 타고 내려 온 오줌이 실내화 속에 그득 하다.
산행 대장이 추렴해 간 봉투를 덕풍이 손에 쥐어 주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마지막 인사를 던진다.
덕풍아! 우리 정말 저엇같이 오래 오래 살면서 함께 원 없이 많은 산행을 하잔다.
이 세상에서 죽었다가 살아 나는 건 딱 두가지다.
죽었다가도 아침이면 영낙없이 이불 밑에서 솟구치는 그시기와 바둑에서 죽었던 돌이 패에 걸려 살아 나는 것.
응봉산 정상석에서 여러 산우님들과 증명 사진을 박고 나니 성녀 도미니카님께서 베낭에서 펫트병 참이슬 한빙과 돼지 족발을
꺼내시더니, 산행 실력은 개판이지만 입은 톡 까져서 매번 산행 후기로 여러 사람의 눈을 즐겁게 하느라 노고가 많으시다며
특별히 나를 위해 준비해 오셨노라는 말씀과 함께 내 코 끝에 드리 대신다.
난 살아 오면서 내 주둥아리에 먹거리 집어 넣어 주는 손길보다 더 아름답고 성스러운 건 본 적이 엄따.
내려 가서 몬시뇨르 도미니카님 옆지기님이신 두발로님께 걷어 채일 망정 일단 목구녕에 들이 붓고 나니 하늘이
돈짝 만하게 보인다.
몬시뇨르는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 지위가 높으신 성직자에게만 내리는 특별한 칭호인데 우리에게 친근한 분으로는
흔히들 소 신부님이라고 부르는 소 알로에시오 신부님이 계신다.
우리나라에 오셔서 수 없이 많은 선행을 하셨던 신부님은 오래 전에 부산과 서울에 소년의 집이란 것을 만드신다.
불쌍한 아이들을 가르키고 돌 보는 곳인데 이곳 출신으로 유명하신 분이 국가대표 축구 골키퍼 김 병지 선수이다.
쌔주 한빙에 약간의 족발 안주로 몬시뇨르라는 특별한 칭호를 부여 받을 수 있는 짭짭한 장사를 할 수 있는 곳은
느림보 산악회가 이 세상에서 유일 무이한 곳이다.
느림보님들! 재차 말씀드리지만 앞으로 알아서들 잘 하세욤. 히 히.
뒷풀이 준비로 바쁘신 강 대장님이 먼저 하산을 서두르시고도 한참을 정상에 머무르며 쌔주와 족발을 깨끗하게 거덜을 낸
이후에야 억지 춘향으로 덕구 온천에 있는 느림보 리무진으로 발길을 향한다.
다음 주 임자도 섬산행은 만두득히 불참케 됨을 너무도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하편은 임자도 산행 후에 더욱 더 새롭고 발전된 모습으로 올리겠습니다.
하편에는 A팀 산행에 참가하여 멀고도 힘든 산행길을 어느새 마친, 헌칠한 키에 핸섬한 마스크의 소유자이신 신성님이
하산길에 강의하셨던 듣도 보도 못한 세상사 얘기와 강 대장님이 손수 준비하신 산나리표 천하 일미 냉콩국수를 비롯하여
여러 젬나는 썰레발이가 항거석 음전하게 기달리고 있습니다.
개봉박두를 고대해 주시고 다음 주 임자도에서 즐거운 하루를 보내시고 원한의 백합조개 양껏 드시길 간절히 빌어 보겠습니다.
탄천변에서 창공의 보라매같은 돌삐 드립니다.
첨언 ; 모진게 사람 생명이라는 말이 있듯이 며칠 전에는 인하대 병원을 퇴원한 덕풍이가 산행 총무에게로
연락이 왔다고 합니다.
젊은 시절 준비해 둔 음성에 있는 폐분교에서 그간 혼자서 힘겹게 투병 생활을 했던 덕풍이가 거의 정상인처럼 회복이
되었다고 하는 반가운 소식입니다.
오래지 않아 산행에도 참여를 하겠다고 하는 말도 들리더군요.
전 아푼 덕풍이를 위해 달리 해 줄 것이 아무것도 없는지라 그간 형편이 어려워서 손빨래하느라 죽을 고생을 했던 덕풍이가
지난 번 우리가 병문안을 갔을 때 추렴해 준 돈으로 중고 드럼 세탁기라도 하나 장만했으면 하고 마음 속으로만
빌었을 뿐입니더. 흐 흐.
열놈의 효자 나부랭이 보단 빌어 묵을 악처 한분이 헐 낫다고 하니 말입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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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정신없이 재미있게 읽다가도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덕풍님의 병환과 진한 우정에 아쉬움과 기쁨이 교차합니다...다행히 산행을 하실 정도로 회복 되셨다니 마치 제일 같이 흐뭇하고 기쁘기 한량없습니다...어제 돌삐님을 처음 뵙고 정상에서 반드시 막걸리 한잔 올리겠다고 결심을 했건만 못 기다리고 그냥 하산한걸 용서하십시요..무려 45분이나 돌삐님과 고옹님을 기다렸건만 당최 감감 무소식이라...ㅎㅎㅎ 덕분에 내려오다가 아리수 대장님을 많이 드려서 조금 과음하지 않으셨나 염려스러웠답니다...ㅎㅎㅎ 후기가 기다려집니다...여름철 건승하시길요~~~
돌삐님의 재치있는 입담에 이번에도 깜빡 죽습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맛깔난 글 솜씨는 느림보의 자랑입니다.
이러다간 느림보산악회보다 돌삐님이 더 유명세를 탈것같은 불길한 예감이...ㅎㅎ
덕풍도사가 깨어나신건 하늘이 도우신겁니다.
많이 회복 되셨다니 느림보에도 꼭 모시고 오셔요.
산나리가 특별히 에스코트 하겠습니다.
임자도 같이 가시면 더 많은 재밌는 얘깃거리가 무진장 나올텐데 아쉽습니다.
엄처시하..무작정 오시랄수도 엄꼬...ㅋㅋㅋㅋ
다음 편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