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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8개 구단 단장들. (사진 윗줄 왼쪽부터) KIA 김조호, SK 민경삼, 두산 김승영, 롯데 배재후 단장.(사진 아래 왼쪽부터) 삼성 김재하 부사장, 넥센 조태룡, LG 이영환, 한화 윤종화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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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프로야구에 떠도는 말 가운데 ‘감독 이기는 선수 없다’가 있다. 그만큼 감독이 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감독 눈 밖에 나면 출전은 고사하고, 유니폼을 벗을 수도 있다. 미 메이저리그에도 비슷한 말이 있다. ‘단장 이기는 감독 없다’는 것이다. 단장(General Manager) 중심으로 팀이 운영되는 메이저리그에선 단장이 감독의 생살여탈권을 쥔다. 자, 그렇다면 국내프로야구에서 단장은 어떤 존재일까. 팀 성적과는 또 어떤 관계가 있을까.
단장과 감독은 선박회사 책임자와 선장의 관계
야구단의 조직은 복잡하고 방대하다. 직접 경기에 뛰는 선수와 이들을 지휘하는 코치진부터 선수단을 지원하는 프런트까지 대개 한 구단마다 100명 넘게 근무한다. 이 가운데 프런트의 역할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프런트(Front Office)는 말 그대로 야구단이란 복잡한 조직을 앞에서 이끄는 존재다. 구단 운영서부터 회계, 마케팅 및 판촉, 구매, 구장 운영, 트레이너, 홍보 등 그라운드 밖의 모든 업무를 담당한다. 이 프런트를 이끄는 총책임자가 바로 단장이다.
흔히 단장을 구단의 ‘얼굴마담’쯤으로 아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단장은 프런트뿐만 아니라 감독과 코치진 등 현장 조직 구성에 관한 인사권을 쥐고 있다. 신인 지명과 방출, 트레이드 역시 단장의 몫이다.
최종준(대한체육회 사무총장) 전 LG 단장은 단장의 역할을 가장 잘 파악한 이였다. 그는 프런트와 현장의 권한과 책임을 선박회사의 경영에 비유하곤 했다.
“선박 회사(프런트)는 훌륭한 선장(감독)을 임명하고 선장을 도와 항해를 책임질 항해사와 갑판장(코치진) 등의 숙련된 전문가들을 잘 모집해야 한다. 이때 가능하면 선장과 호흡이 잘 맞는 전문가들을 구성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인사의 최종 결정은 역시 회사 경영자(단장)가 내리도록 한다. 왜냐하면, 선장은 어디까지나 한시적인 자리지만, 선박 회사는 그 수명이 영원하기 때문이다.”
선장이 한시적인 자리란 건 정확한 표현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선박회사 경영자도 별반 다르지 않다. 국내프로야구에서 감독과 단장은 공동운명체다. 팀 성적이 부진하면 동반 사퇴하거나 둘 가운데 한 명은 옷을 벗어야 한다. 대개는 감독이 희생양이다. 예외가 있긴 했다. 2007년 KIA다.
당시 KIA 최고위층은 정재공 단장에게 “서정환 감독을 해임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정 단장은 “꼴찌 책임을 감독에게만 물어선 안 된다”며 “계약기간이 1년이나 남은 감독을 자르면 앞으로 관행이 될 수 있다”고 버텼다. 결국, 정 단장은 그해 9월 감독 대신 자신이 먼저 잘렸다. 그 반대도 있었다.
지방 모 팀의 단장은 야구계에서 ‘망나니’로 불렸다. “자신이 살려고 남의 목을 자른다”고 붙여진 별명이었다. 별명처럼 그는 팀 성적이 나지 않으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감독의 목을 자르기 일쑤였다. 그런 연유일까. 단장에서 물러난 지 십수 년이 됐지만, 그를 찾는 야구인은 아무도 없다.
비(非)야구인 단장의 빛과 그림자
미 메이저리그는 선수 출신 단장이 많다. 유명 선수 출신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학생 시절 직접 야구선수로 뛴 이가 태반이다.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빌리 빈 단장이 대표적이다. 자신의 성공담을 그린 책 ‘머니볼’로 유명한 그는 1989년 오클랜드를 끝으로 유니폼을 벗었다. 그 뒤 스카우트와 구단 운영팀에서 일하다가 1997년 36살의 나이로 오클랜드 단장직에 올랐다.
주변에선 그의 성공을 반신반의했지만, 정확한 판단과 놀라운 예측력을 바탕으로 스카우트와 트레이드에 성공하며 팀을 4년 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로 이끌었다. 무엇보다 빈 단장은 현역 생활의 경험을 살려 선수들의 목소리에 항상 귀를 기울였다. 선수단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빠르게 알아챘다.
많은 국내 야구인은 “우리도 빈 단장처럼 선수 출신의 단장이 많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야구계의 생리를 정확히 파악하고, 선수단의 애환과 고충을 누구보다 잘 안다는 게 이유다. 그러나 국내프로야구엔 선수 출신 단장이 드물다.
OB와 해태에서 현역으로 뛰었던 박노준 서울산업대 교수가 2008년 히어로즈 단장으로 취임한 게 프로야구 사상 첫 선수 출신 단장의 등장이었다.
현재도 선수 출신 단장은 MBC(LG의 전신) 유격수였던 민경삼 SK 단장이 유일하다. 나머지 7개 구단 단장은 비야구인 출신이다. 물론, 비야구인 출신 단장이라도 야구에 대한 이해가 폭넓은 이가 많다.
삼성 김재하 부사장(단장)은 비야구인 출신이지만, 베테랑 단장답게 야구 판세를 정확히 읽는 이로 유명하다. 게다가 현장을 존중하면서도 프런트가 해야 할 일을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전용배 동명대 교수는 김 부사장을 "아무도 고민하지 않는 30년 뒤의 한국야구 미래를 걱정하는 이"라고 했다. 실제로 김 부사장은 각계 인사와 만나면 쉴 새 없이 자문한다. 조언 요청 내용은 삼성의 전력과는 무관하다. 전 교수의 표현대로 한국야구의 미래나 돔구장 건설, 유소년 야구의 활성화 등 주로 야구계의 거대담론을 묻고, 답을 듣길 원한다.
두산 김승영 단장은 야구인 출신은 아니지만, 선수단과 가장 유기적인 호흡을 맞추는 단장으로 꼽힌다. 구단 운영비가 상대적으로 적은 두산 같은 팀은 여차하면 뒷말이 나오게 마련이다. 그러나 김 단장은 선수단과의 지속적인 대화를 통한 ‘설득과 이해’로 뒷말과 불만을 되레 경기력 향상으로 이끈다는 평을 듣고 있다.
롯데 배재후 단장은 프런트에서 오랜 기간 근무하며 야구단의 생리를 잘 파악하고 있다. 실무를 직접 챙기고, 무엇을 챙겨야 하는지도 잘 안다. 황재균의 영입도 배 단장이 오랫동안 직접 공을 들인 프로젝트였다. 그래서일까. 야구계는 “황재균 트레이드가 의외로 조용히 이뤄졌다”며 “잡음과 억측도 다른 트레이드 때보다 덜했다”는 평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과거에는 야구의 ‘야’자도 모르는 데다 그다지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 비야구인 출신 단장이 수두룩했다.
1980년대 수도권의 모 팀 단장은 “그라운드가 저리도 넓은데 왜 담장만 넘기려는지 모르겠다”며 “타율 3할을 치려면 저렇게 넓은 빈 공간을 향해 공을 때리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골프광이었던 그 단장은 선수들에게 골프를 배우도록 권유했다. 그러나 선수들이 골프에 채 맛이 들기 전 성적 부진으로 물러났다.
지방의 모 팀 단장도 야구라면 담을 쌓던 이였다. 그러나 그룹의 지시로 야구단 단장을 맡게 되자 구단주에게 잘 보이려 무던히 애를 썼다. 그가 구단주에게 아부(?)하는 방식은 상식 밖이었다.
구단주가 좋아하는 선수를 기용하도록 은근히 감독을 압박했고, 구단주가 경기를 보러오는 날이면 "무조건 이겨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현장의 고유권한을 침범한 대가는 컸다. 팀 성적은 곤두박질 쳤고, 현장과 프런트는 등을 졌다. 이 단장은 오래지 않아 구단주의 눈에 띈 게 아니라 되레 눈 밖에 나면서 그룹을 영원히 떠나야 했다.
선수 출신 프런트가 중심인 팀이 강하다? 강팀은 선수들이 플레이할 때 프런트도 함께 한다. 그렇다면 약팀은 어떨까. 몇 해 전 모 팀의 사무실을 갔다가 프런트 직원들이 인터넷으로 스타크래프트와 고스톱을 하는 걸 보고 씁쓸했던 기억이 있다. 구단 사무실 바로 밖에서 선수들은 팀 승리를 위해 사투를 벌이는데 프런트 직원들은 인터넷 배틀에 사활을 걸고 있던 셈이다. 당시 그 팀은 결국 하위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렇다면 어째서 국내프로야구에선 선수 출신 단장이 드문 것일까. 이유는 간명하다. 모그룹이 야구단 운영의 특수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야구인은 전문경영인이 될 수 없다’는 왜곡된 인식이 자리 잡은 탓이다.
실제로 어느 단장은 “모그룹에선 야구단 운영을 ‘경영’으로 보지 않는다. 적자투성이인 프로야구단 정도는 누가 맡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SK 민경삼 단장은 본부장 시절 “무슨 야구인 출신이 구단 운영을 알겠느냐”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고려대 출신으로 LG에서 선수와 매니저, 코치를 거쳐 미국 연수까지 다녀왔던 그는 “세간의 편견을 극복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허구연 MBC 야구 해설위원은 “굳이 선수 출신 단장이 아니라도, 선수 출신 운영팀장과 본부장만 있어도 확실히 팀 색깔이 달라진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두산 김태룡 본부장, 삼성 최무영, SK 진상봉, 한화 김정무 운영팀장은 모두 선수 출신이다.
그 가운데 두산 김 본부장은 부산 동아대에서 선수로 뛰다가 1982년 롯데 기록원으로 입사한 뒤 두산에서 말단 매니저부터 시작해 이사까지 진급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지금의 ‘강팀’ 두산을 만든 숨겨진 주역이다. 3년째 팀이 포스트 시즌에 올라 선수단이 화려한 조명을 받을 때마다 묵묵히 2군 선수들을 이끌고 일본 교육리그에 다녀왔다.
삼성 최 팀장은 화려함 대신 음지를 지향하는 이다. 다른 팀 운영팀장들과는 달리 1군 경기를 거의 동행하지 않는다. 대구에 남거나 지방을 돌며 2군 경기를 살핀다. 유망주를 발굴해 육성하기 위해서다. 그의 노력으로 ‘유망주의 무덤’이었던 삼성은 단기간에 최고의 백업요원을 갖춘 ‘이상적인 강팀’이 됐다.
공교롭게도 선수 출신이 프런트의 중심인 SK, 삼성, 두산은 몇 년째 상위권을 유지 중이다. 한화도 순조롭게 팀 리빌딩을 진행하고 있다.
‘유명 선수’에 집착하던 각팀의 전력보강을 ‘선수 출신 프런트’로 눈을 넓힐 필요가 있다. 그게 어렵다면 선수 출신 못지않은 열정과 노력으로 야구를 더 깊이 이해하려는 프런트를 중용하는 풍토가 정착돼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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