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부는 날의 소고 / 송영미
꽃들이 지천으로 합창을 한다는 소식에 서둘러 달려왔다. 바람에 시달리는 꽃들이 허리를 휘청이며 겨우 지탱하고 있다. 저러다 꺾이면 어쩌지, 초조하게 바라보는데 제법 기가 세다. 탁 트인 벌판이라 바람이 잠시 휴식할 자리가 없다. 밀려오듯 흐르다 멈추지 못하고 애꿎게 꽃만 흔들고 있다. 저 오름 중턱에나 가서 머물면 좋을 텐데, 가슴 졸인다. 드디어 바람이 그쪽으로 흘러간다. 궁즉통(窮則通)이 진리인 순간이다. 오름 자락을 휘감은 바람은 잠시 뒤척이다가 골짜기에 머물러 고요하다. 꽃들이 한고비 넘긴다. 꽃은 시련이 지나간 자리에 희망을 피웠을까, 의연하다.
오름이 보이는 언덕에 자리한 꽃들의 터전에서 사람 구경까지 한다. 할머니 손을 잡은 아기가 꽃 사이를 뒤뚱거리며 누빈다. 그 뒤를 엄마와 아빠가 오직 자식을 철통같이 보호하려는 내리사랑으로 종종거리며 쫓아간다. 아기가 아장아장 걷는 걸음마의 과정은 부모들은 그 길이 성역과도 같아서 꽃 융단을 깔아 주고 싶다. 삶의 한 점, 티끌만큼 더듬거림에 불과할 뿐이어도 안쓰럽다. 혼자서 지탱할 수 있는 그때까지 바람막이가 되어준다. 막막한 행로에 순풍만 불어주기를 바랄 터이다.
꽃들에 묻힌 무리 속에서 언뜻 낯익은 얼굴이 눈에 닿는다. 한창 일할 나이에 사표를 내고 떠난 직장 동료다. 구체적인 이유는 소문만 무성해서 진실을 모른다. 말을 붙일까 망설이다가 떠올리기 싫은 과거일지 모르는데 조바심으로 살피게 된다.
인생의 바람결일까. 양쪽 뺨에는 옅은 빗살무늬가 새겨졌다. 이마의 골은 파이고 외까풀의 눈자위에 지난 아픔을 눈부처로 새겨 놓았을까, 상념에 젖은 듯 깊어 보인다. 좌절 속에서도 강인하게 견뎠을지 툭 불거진 광대뼈가 도드라진다.
살아오는 동안 사람들도 꽃처럼 색깔을 물들인다. 그건 화장을 하듯 덧칠을 하는 작업이 아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이 남긴 자국이다. 다시 흘깃 쳐다본다. 꽃과 화답하는 모습이 웬만해서 흔들리지 않을 듯 여유롭다. 인제 휘청거리는 누구이든지 손을 내밀어 줄 만큼이라고 가늠해본다.
바람, 피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행운인가. 혹독한 바람을 맞닥뜨린 사람은 주저앉기에 십상이다. 영원히 소생하지 못하는 패배자가 되기도 할 터인데, 그의 바람막이는 무엇이었을까.
흔들리지 않은 삶이 어디 있을까마는 예기치 않은 일이 돌풍처럼 몰아쳐 온 적이 있다. 같은 성당 신자들에게 당한 상처여서 한동안 감당할 수 없는 절망이 휘감는데 내 의지는 멈추어 버렸다. 추돌당한 자동차처럼 급제어를 한 채 망연자실할 뿐, 피해 의식 속에 말문은 닫혀버렸고 불면의 나날이었다. 고통은 전쟁을 치른 패잔병처럼 삶을 절뚝거리게 하고 그 흔적은 복원되기가 쉽지 않았다. 큰 나뭇등걸에 툭 기대고 싶었다. 누가 나를 따뜻이 보듬어 주었으면, 둘러보지만 모두 다 타인이었다. 사람들에게 당한 트라우마를 사람으로 위로를 받고 치유받기엔 그 누구도 두려운 존재가 되어 버렸다. 내밀한 모든 것을 가감 없이 드러낼 수 있는 존재, 황금률의 잣대로 판단을 내리시는 신께서 들려주는 구원의 응답으로 겨우 추스를 수 있었다. 아직도 상흔은 남아있다.
내 삶의 혹독한 내력이 각인되었다. 밑바닥까지 추락해 보았으니 이제 산전수전 겪는다는 게 무엇인지 절감한다. 돌풍이 지나간 자리에 단단히 지지대를 세운다. 나락으로 떨어져 방황하는 이와도 동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지금껏 내가 나를 본 것은 극히 일부분 외형만이었고, 세상이 후려치는 세파로 내 오류가 무엇이었는지 객관적으로 자각하는 시간이었다.
바람이 다소곳하다. 흔들거리던 꽃들도 바람이 만만해졌을까. 자태가 꼿꼿해진다. 저 꽃들은 바람이 휩쓸고 지나가면 미련 없이 삶을 마감 할 수 있다. 자연의 변화에 순응하여 시들어 버리기도 하고, 소생할 수도 있는 자유로움을 누린다. 다시 스스로 피워낼 수 있기에 절망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
꽃 속에 파묻혀 화색이 도는 사람들이 꽃이 된다. 그들은 간당거리는 꽃처럼 춤이라도 출 듯 모처럼 만의 설렘이다. 그동안 앉은자리가 가시방석처럼 까끌까끌하지는 않았을까. 가슴속 응어리를 품고 크게 소리 내어 웃는 날이 며칠이었을까. 자신만이 힘들었던 건 아니었으니, 누구나 그랬으리라 위로하며, 야속했던 시간 내려놓고 저 꽃들만큼만 바람에 의연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더운 여름날의 미풍은 신명 나는 찬가이다. 한 줄기 시원한 바람은 불어도 좋으리. 무디게 사는 나날, 순간 내리치는 죽비 같은 바람이면 달갑게 맞이하리라.
짧지도 길지도 않은 생, 바람의 매질은 혹독했다. 오늘 문득, 꽃들 사이로 감겨오는 바람이 어깨에 앉은 먼지마저도 거두는가. 살며시 돌아보는데 기척도 없이 잠잠하다. 지금만큼만 삶의 수위가 평탄하면 좋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