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목살주먹고기/돈장군주먹고기, 독산동
입맛은 변하기 마련입니다.
갑판장은 국민학생 시절까지만 해도 돼지고기는 거의 입을 데지 않았었습니다. 특히 털이 숭숭 박혀 있거나 핑크색 도장이 찍힌 돼지의 껍데기나 비계는 기피음식 1호였을 정도였습니다.
중학생 때쯤이었을 겝니다. 부모님께서 지인의 집들이 모임에 초대를 받아 다녀오신 이후로 갑판장네에서도 상추와 쑥갓에 더해 날깻잎이 쌈재료로 추가가 됐고, 로스구이 대신 삼겹살이 밥상에 오르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고등학생 때는 달콤짭짜름한 양념돼지갈비구이의 촉촉한 맛에 푹 빠졌었고, 술맛에 눈을 뜬 스므살 무렵에는 (돼지)곱창볶음의 녹짐함에 거의 정신줄을 놓았었지 싶습니다.
세월이 흘러흘러 하늘의 뜻을 깨우칠 정도의 나이에 이르니 (돼지)목살이나 갈매기살 처럼 식감이 좋으면서도 (기름짐 대신)정육의 맛이 물씬 풍기는 부위를 더 선호하게 되었습니다.
돈장군주먹고기, 독산동
'돈장군 주먹고기(이하 돈장군)'라는 상호에서 파악할 수 있듯이 돼지목살(주먹고기)을 얼굴마담으로 내세운 고깃집입니다. 강구막회 근처의 최대포집도 주먹고기가 맛나기는 한데 거기는 메뉴명만 주먹고기지 실상은 잘게 조진 깍두기고기를 내주는 것을 아쉬워하던 참이었습니다.
돈장군은 열원으로 성형탄을 제공하기는 하지만 비교적 양호한 화력을 제공하기에 성인 여성의 손바닥 크기(두께)로 제공되는 두툼한 목살을 굽기에 적당한 환경입니다. 다만 하절기에는 냉방시설이 미흡하여 1970년대 동시개봉관(변두리 극장)에서나 사용했음직한 대형 선풍기 두 대를 연신 가동하기에 화력이 흩어지기도 하고, 고기의 수분이 금세 증발하는 등 맛있는 고기구이를 기대할 만한 상황이 아닙니다.
덜 익었다구요?
두툼한 고깃덩어리를 맛있게 굽기 위해선 그에 적당한 화력과 함께 굽는 이의 스킬도 필요합니다. 얇은 고기를 굽듯이 빈번하게 뒤집으면 겉만 탈 뿐 두께감 있는 속살까지 충분히 가열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고기의 윗면에 육즙이 살짝 비칠 때까지 진득하게 아랫면을 구워야 합니다. 다만 화력이 일정치 않기에 고르게 고기를 굽기 위해서 간간히 고기의 위치를 바꿔줄 필요는 있습니다.
이렇게 굽다보면 열원과 대면한 쪽의 근섬유가 수축을 하여 지글거리며 노릇노릇하게 갈변을 합니다. 이 반응을 통해 고기 특유의 향과 맛이 살아납니다. 여기서 겁 먹지 말고 조금 더 구워도 됩니다. 뒤집어서 반대쪽 면을 굽다보면 속살의 육즙이 상승하여 수축된 표면을 다시 재생(?)시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태우는 것은 금물입니다. 타는 과정에서 발암성 물질이 생성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고기의 향과 맛을 해칩니다. 누릉지에 비유를 하자면 노릇노릇하게 잘 구워진 누룽지는 달큰하면서도 구수한 맛을 내지만 꺼멓게 탄 누룽지는 불쾌한 향과 맛이 베어 전체의 맛을 해치는 것과 같습니다.
양쪽 면을 충분히 구웠다면 고깃덩어리를 석쇠의 가장자리에 놓고 방치하는 것이 좋습니다. 갓 구워진 고깃덩어리에는 육즙이 액체상태로 내부에 담겨 있는데 이 때 고기를 자르면 육즙이 유실됩니다. 방치해둔 고깃덩어리의 온도가 서서히 식으면서 자연스레 안에 갇혔던 육즙이 살에 다시 스며들기 때문입니다.
딱 맛있게 익은 상태입니다.
돼지고기는 기생충 감염의 위험이 높기 때문에 완전히 익혀 먹어야 한다는 둥, 같은 이유로 생고기를 젓가락으로 집으면 안 된다는 둥의 속설이 있읍니다만 이는 시대착오적인 속설입니다. 갈고리촌충의 종숙주인 인간의 똥을 돼지에게 먹이던 시절에는 갈고리촌충에 대한 위험이 높았지만 이에 대한 위험성(갈고리촌충의 유충이 심장이나 뇌로 들어가서 여러 증상을 유발)이 알려지며 사육방식이 완전히 개선되어 1990년도 이후로는 대한민국에서 갈고리촌충에 감염된 사례가 거의 없습니다.
드물게 갈고리촌충에 감염된 경우는 한국에서 감염된 것이 아니라 아직도 비위생적인 방식으로 돼지를 기르는 지역(나라)을 여행하며 감염된 경우였답니다. 기생충학자로 유명한 서민 박사도 여러 경로를 통해 돼지고기를 미디엄 정도로 익혀 먹어도 된다고 설파하였습니다.
입맛이야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니 굳이 강요할 생각은 없으나 쇠고기의 템포를 레어~미디엄웰던으로 즐기시는 분이시라면 (겉은)와삭 (속살은)몰캉한 돼지고기 씹어먹기에 도전해 보시길 권합니다.
<갑판장>
& 덧붙이는 말씀 : 대개의 고깃집에서는 목살을 주문하고도 목살을 제공받는 것은 복불복입니다. 전지(앞다리)를 목살처럼 정형한 목전지를 내주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명백한 기망행위입니다. 요즘 전지의 시세는 목심의 반값입니다.
첫댓글 쐬주생각이 간절 ㅎㅎ
어젯밤에도 댕겨 왔구먼...어제는 목전지였 ㅡ.,ㅡ
담에 양식당에도 그리 부탁드려야겠네요.
와삭몰캉한 돼지고기는 쇠고기를 마구 뺨칩니다.
목욜밤 부천에서 이베리코 목살을 저렇게 구워 먹었는데,,, 독산동도 가봐야겠군요 ^^
석구네가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