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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비공개 입니다
오늘 들리는 곡은 RCA리빙스테레오 아홉번째 판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외
챠옹,보로딘, 카발레프스키 ,글린카의 곡들이 있다.
무소르그스키의 곡은 하르트만이란 건축설계사의 그림들 전람회라는데
며칠 전 난 샤갈의 판화들이 곁들여진 롱고스의 아주 오래 된 연애소설을 읽었다.
기원 2 세기 라니 이천년 전 글이란다.
세월은 모든 걸 변화 시키는듯 하지만
기실은 변 한 게 하나도 없는듯 하다.
쉐익스피어니 궤에테도 보고 영향받았을 꺼라지만
젊은 남녀의 사랑 얘긴 다 그리 생겼을 꺼 같다.
샤갈이 첫부인을 보내고 두번째 결혼을 했을 때 출판업자의 의뢰로 그렸다는데
이천년 전의 내용을 그렸어도 가슴 콩닥이는 아쉬움 그리움 염려 등등
사랑의 느낌들이 다 있다.
마침 오늘 들린 무소르그스키의 이곡은 들을 때마다
무슨 유작 전람회가 행진곡 같냐고
러시아 국민악파 오인조라더니
그리움을 표현한 곡으로는 잘 매치안된 좀 서툰 기분이다 싶더니,
이천년 전의 연애담도 세월의 행진에 사옹이니 궤옹이니 샤갈에게 흘러도
저런 인류의 머릿속을 흐르는 잔 물결 행진이상은 아니겠다 싶다.
허고 판을 듣노라니 판의 제작도
오페라의 서곡이나 작곡가의 행진곡 들이다.
그뿐이건만 모두들 애면글면 장면장면 행진하는 게
한장 한장 너머가는 삶의 판화닮았다 싶다.
오늘은
내 아주 젊은 날의 짝사랑 이야기를 여기에 매치 시켜볼까?
롱고스의 목동들의 사랑 얘기나
샤갈의 사랑 판화나
무소르그스키외 작곡가들의 행진곡이나
다 그이상은 아무 것도 없건만,
자기들 것만 소중히 여기는 건 뭘까?
이천년 전이라지만
정말 그 이전도 사랑 얘기가 남아있었다면 이렇게 생겼으리라....
난 그걸 인간이란 동물의 자기애라고 폄하할 생각이 전혀 없다.
만일 인간이 뭐냐면 밥먹고 똥싸다 죽어야 하는
우스꽝스런 잔상 아니겠는가?
그곳에 의미를 주고 소중히 여김
그것가치만이 가치 아닐까?
뭔 꽃이 아름답겠는가?
그저 자신들의 생명을 영속하려는 식물의 수단 일 뿐 아닐껀가?
생명이란 무언가?
삶이란 어떤건가?
그건 보잘 것없이 한계 진
그 환영을 지나는 동안 있을
아름다운 시,
고운 음악,
예쁜 그림을 사랑하는 것 아닐까?
롱고스의 이 '샤갈의 다프니스와 끌로에' 이야기는
별 재미도 없는 사연들로 설명된 남녀사이를
우리가 아는 합궁전의 상황을 그린
정말 어리고 작은 사랑 이야기다.
헌데 사랑 얘기란 요약하면 정말 보잘 것 없다.
아무리 대서사적 사연을 덮어씌웠어도
한 줄 한 단어면 그 다음은 없다.
이책 제주도 도서관 그 어느곳에도 없다.
세종도서관서 빌려다 소포로 받아 읽고
이 주 내 돌려주어야 했었다.
허구만 난 보고 너무 고와 하나쯤 갖으려 하니
이 책은 절판되어있다.
조그만 사랑이야기/ 古今
| 1. 여러분은 인턴을 어디서 어떻게 하셨나요? 출신 학교에서 하셨나요? 다른 커단 병원에서 하셨나요? 난 아주 작은 도시 조그만 병원에서 했답니다. 설을 맞아 기억 난 내 인턴 때의 조그만 사랑이야기.... 공부도 중간치기로 설렁설렁 얼렁뚱땅 했으니 그당시로는 별로 학교에 남을 가능성 없을 난 그래도 소아과가 하고 싶어 작은 수련병원을 찾고 있었습니다.... - 古今아 우리 고향에도 작은 기독병원이 있어. 거기도 소아과가 있는데,거기 지원해 보려므나. 친구는 내게 내 소망을 이룰 기회를 일러주었습니다. 공부를 못했다고 꿈조차 없는 건 아니었으니까요. 늙은 이비인후과 의사였던 원장님의 -왜 우리 병원을 선택하셨슴매까? 라던 면접시 질문에 공부는 잘 못했지만 그래도 소아과를 해서 저처럼 평생장애로 살아야 하는 아이는 없게 도와주는 의사가 되고 싶은데 이 병원에도 소아과가 있다고 해서 지원했노라고 거의 면접관이 만점을 주도록 백점 가까운 답을 했고 거기에 함께 계셨던 소아과 과장님께도 좋은 눈도장을 찍으며 인턴생활을 시작했었지요. 이월 말경 인턴으로 생활을 시작하니 네명의 직턴이 있었고 오월이 가차와 지며 네명이 군대에서 와 여덟명이 일년간 함께 뒹굴며 희노애락을 나눴습니다. 2. 우리중 여자 인턴이 한 명 있었는데, 아주 예쁘고 상냥했습니다. 모 여대를 나온 그녀는 여름이면 수박 화채를 만들어 소도둑같은 남자 인턴 숙소로 가져다 주기도 하고 가을엔 지나가는 감 장사에게 감을 사 그 퀴퀴한 남자 인턴숙소서 방글방글 웃으며 감으로 가을내음을 선사하기도 했습니다. 여덟명중 나와 함께 이월에 들어온 남자인턴 둘은 학교에 들어오기 전에 군대를 다녀왔고 네명은 군의관 복무를 마치고 오월에 왔으니 그여샘과 나만이 동갑내기여서 난 그녀에게 언제나 상냥히 대해주었고 병원서 그녀가 어려운 일이 있으면 많이 도왔습니다. 물론 그녀도 아주 쪼끔이지만 내가 힘든 일이 있으면 도와 주었었지요. 내가 그녀에게 그저 평범하지 않은 감정이 생길 즈음 함께한 남자 인턴샘들- 그러나 나보단 나이 많은- 그들은 내게 자기네 학교의 여의대생들이 얼마나 억센지를 이야기 하며 여자 의사는 관심없다며 -꺼꺼꺼꺼 아주 커단 시조새처럼 웃었습니다. 그러며 나더러도 잘 대접받고 잘 지내려면 여자의사는 고르지 말라 했지만 못생기고, 장애있고, 가난한 나로선 애쌔 여자를 골라서 장개를 간단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저 그녀도 날 좋아해줬으면... 하고 속으로 짝사랑만 했지요..... 참 젊음이란 좋은 것입니다,그죠? 그리 바쁘고 힘든 가운데 지내는 인턴 생활 중에도 그런 어줍잖은 사랑을 꽤 많이도 꿈 꿀 수 있었다니 말입니다. 지금도 아이들에게 무얼하라면 그들이 바쁜 일이 있는듯 말하지만 그러면 난 화부터 납니다. 도대체 바쁘다는 말이 핑게처럼 느껴지거든요. 당시 인턴 봉급은 육만원 정도였는데, 집에 사만원 쯤은 매달 동생 학비로 보내고 나는 이만원 정도로 한 달을 살았습니다. 만원씩은 인턴회비로 모아 매일 저녁의 술값으로 썼으며 만원은 담배값이며 속옷 등을 사며 지냈지요. 하니 당직 인턴이 아닌 날도 집에 잘 못가는 빡빡한 용돈이었지만 여름이 지나며 부터는 군의관을 했던 선배 인턴중에 주말의 아르바이트를 주선해 주어 하루 저녁에 삼만원쯤 하는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하고 그 짬짬 목돈 맛도 보았고 인턴으로는 못해보는 수기나 환자를 보는 법도 익히곤 했지요. 3. 눈치보랴 일배우랴 곯은 배와 잠을 메우랴 아시죠? 걸신, 등신, 귀신, 삼신의 시절이요? 여러 샘들이 아무리 잘 난 척하셔도 난 샘들의 그 삼신 시절을 다 알고 있답니다. 무신 굉장한 거나 아시는 듯 난 그런 때 없었다는 듯 뻐겨 보았자, 개구리 올챙이 시절 없는듯 잊고 계시는 거지, 당신들도 먹는덴 걸신이고, 일하는덴 등신이고, 잠자는덴 귀신이었잖아요? 샘들께서 그러시거나 마시거나 이야기로 다시 돌아갑니다. 그런 어려운 시절 내게는 그녀를 보는 게 가슴 콩닥이는 유일한 일이었고, 그녀는 내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언제나 누구에게나 상냥했고 고왔답니다. 난 그녀의 맘에 들기위해 내게 여자 의사는 사내새끼보담도 더 사내같단 다른 선배 인턴들 이야기를 말해줘 그들 일은 돕지말고 나만 도와 달라고 나만 좋아해 달라고 하고 싶었습니다. 아니 나만 그녀의 일을 도와도 좋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누구와도 잘 지냈습니다. 군대 다녀 온 선배중 내게 그녀가 엥 몹쓸 여자라고 강변하는 샘이 계셨습니다. 씀씀이가 헤프다느니 과일도 너무 두껍게 깎는다느니 그녀도 소아과를 하고 싶어하는데 나 몰래 소아과 과장에게 인사를 다닌다느니 틈만 나면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는 시척하면 가소롭다는듯 -푸커커커 칠면조처럼 웃었습니다. 허나 그녀를 위해서면 난 소아과 안해도 다른 과를 해도 좋다고 다른 걸 하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해 다른 과의 모든 일들을 열심히 익혔습니다. 씀씀이가 헤퍼도 내가 그만큼 많이 벌 수 있기위해 멋진 의사가 되려 틈나는대로 의학 책도 많이 보아 아마 학생 때도 내가 그렇게 열심히 했다면 톱은 몰라도 내가 하는 과를 학교서 할 수 있었을 꺼라 생각되도록 열심히 공부했고 학생 땐 잘 보두 않던 세실이니 크리스토퍼 텍스트를 병원 도서실서 맨날 찾아보아 나를 병원 어디서도 찾지 못하면 간호사들도 도서실로 나를 찾아올 정도였습니다. 또 그녀가 과일을 두껍게 깎지만 그래 그녀가 깎아만 준다면 과일이 뼈만 남아 씨앗을 먹어도 좋을 듯 싶었답니다. 4. 말턴... 이젠 대충 병원 돌아가는 일에 잘 적응되고 웬만한 환자를 케어 할 수 있게 되자, 레지던트 샘들이 엔간한 일은 맡기게 되고 우리를 관리 감독하던 눈길이 헐거워 졌습니다. 우리는 우리대로 조금씩 일에 농땡이도 배워 여덟명중 세명만 남고 다섯명은 퇴근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한명은 응급실을 맡고 한명은 병동을 맡고 다른 한명은 응급 수술이나 어느 곳에서 손이 모자라면 백업하고 인턴 셋이서 어느과를 막론하고 온병원을 카바하는 것입니다. 조금쯤 겁도 났지만 선배 인턴들은 내가 겁나 하는 게 내가 아직 어려서 일 뿐이지 정작 어려운 일은 각과 과장님께 연락하면 되니 뭐 못할 일이란 없을 터란 그들 말이 옳은 것 같았고 게다가 아까 말씀 드렸던 다른병원 당직도 많이 할 수 있어 나도 어머니께 돈도 좀 더 보내드리고 동생들에게도 용돈을 좀 더 줄 수 있게 될 뿐 아니라 나 또한 풍족해지니 좋다고 두려운 마음을 누르고 동의해 그리 일하게 되었지요. 그렇게 그렇게 해서 어렵고 힘들던 일년이 다가고 설이 찾아왔습니다. 5. 까치 설날 아시죠? 설 전날 말입니다. 세명의 인턴이 병원에 남았고 나는 마침 당직은 아니었으나, 다음날 오전부터 응급실 당직이 있어 어프인데도 그냥 병원에 남아 도서실서 책을 보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눈이 안오네요. 그날은 눈이 많이 왔습니다. 눈이 탐스럽게 온다며 여샘이 저녁 무렵 나를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 시내 영화관에서 '뜨거운 양철지붕위의 고양이'를 상영하는데 내게 봤냐고 물었습니다. 아니라고 했습니다. 엘리쟈베쓰 테일러와 폴뉴만이 나오는 영화라고 자기 서울에 있는 친구가 이야기해줬는데 꼭 보고싶다고 말했습니다. 아아 난 어땠겠습니까? 나랑 그 영화를 보자는 건가? 하니 가슴이 터질듯 했습니다. 난 알퐁스 도오데의 '별' 이란 글을 참 많이 사랑하는데 그가 무슨 알자스 로렌 지방의 배반자처럼 이야기되도 그 글 만은 그 이야깃속 목동아이의 가슴에 있는 사랑만은 이늙은 나이에도 좋아한답니다. 그 샘은 그런 말 한 마디도 안했는데 난 혼자 그 소설같은 상황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도오데의 그 소설은 아가씨가 목동의 어깨에 기대어 잠드는 아름다움으로 끝을 맺었지만 내가 마음속에 그리던 소설은 아무 감동없이 다음같은 말로 금방 끝이 났습니다. 자기가 응급실 당직이라는 겁니다. 세시간 정도 대신 응급실을 보아줄 수 있냐는 겁니다. 아아 그런 거 였군요. 그렇담 저랑 구경가자는 이야긴 아니었군요. 그녀가 함께 구경가자는 게 아니란 걸 알자 마음이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해도 얼마나 그영화가 보고싶었으면 부탁까지 하며라도 보고 싶었을까? 나는 그러는 그녀의 고 감성조차 고와 보여 그러마고 하고 응급실로 내려갔습니다. -내일은 세시간 늦게 나와요. 세시간 내가 더 근무할께요. - -세세세세 날렵한 참새가 기분좋게 날고 있었습니다. 그영화 혹시 아시나요? 아니 아니 나도 그영화 못보았습니다. 대충 줄거리는 압니다만, 그 영화 그 때까지도 못 보았고 이후로는 볼 수도 있었으나 보지 않았었습니다. 6. 그날은 웬 응급실에 환자가 그리 많았는지요. 눈이 와 눈길 사고 환자가 잔뜩 왔습니다. 콜레씨 골절 환자, 교통사고 환자.... 허나 그 샘이 영화를 보며 즐거워 할 껄 그리며 열심히 환자들을 봤습니다. 아니 혼자 당직을 바꿔 준 일이 고맙다고 내게 데이트를 신청해 줄 듯 상상하며 바쁘게 일하는 걸 견뎌 저녁시간도 놓치고 그 여샘이 약속한 세시간이 지나가서야 잠깐의 말미를 얻어 병원옆 골목 포장마차서 떡볶이로 저녁을 때웠습니다. -애고 우리 젊은 의사선상님 당직이신 갑다. 포장을 들치고 들어서자 맘씨 좋은 주인 아주머니는 오뎅 국물에 무우도 넣어 내주었습니다. -당직 아냐요. 잠깐 봐주는 거얘요. 응급실로 환자가 올라가는가 온신경을 쓰며 떡볶이로 저녁을 대신한 후 매운 입을 오뎅 국물로 헹구며 떡볶이 값을 치루고 있었습니다. 마차 밖에서 두런두런 아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떡볶이라도 사다 줄래요. -아니 사주지 말아요. 그 친구 샘에게 특별한 감정 갖는 거 같아요. -피이 내가 아무 반응 없는데도요? -아냐요, 샘만 보면 얼굴벌개지는 거 보면 알지요. 남자가 남자들 마음 알지 여자들이 어떻게 알아요? -미안 하잖아요. -내일 늦게 나오라고 했다며? 그럼됬지요. -그래도요. 목소리는 병원쪽으로 멀어지고 있었습니다. 돈을 거슬러 받고도 가지않고 섰는 나를 아주머니는 왜 그러는지 모르는 채 이상하다는듯 쳐다보았습니다. 아주머니 눈길에 떠 밀리듯 포장마차 문을 천근만근 되는듯 밀치며 나섰습니다. 멀리 병원 불빛에 두사람이 병원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나는 느릿느릿 병원을 향해 걷기 시작했습니다. - 비용 비용 비용신 노고지리가 쏜살같이 눈밖으로 사라집니다. 7. 섣달 그믐. 일찍 잠을 자면 눈썹이 쇤다는 그날 난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내일 병동당직이라며 들어와 있던 언제나 여샘을 아내로 갖지 말라던 선배인턴샘 얼굴을 맑은 정신으로 쳐다보기 어려워 그냥 누워 있었습니다. 그러곤 술 한잔 하자는 그에게 아니 오늘 눈이 와 내일 응급실 당직도 바쁠 꺼 같으니 일찍 자련다고 퉁명스레 대답하곤 모포를 얼굴까지 덮었습니다. -키들키들키들 그 남의 둥지에 알을 낳고 그 둥지속 다른 새알은 밀어떨어뜨린다는 꾀꼬리 같은 그 선배의 웃음소리가 귓전을 맴돌았습니다. 아아 그런 거였구나. 그와 내가 무슨 피가 섞여 내게 진정한 충고를 해 주었겠는가? 내가 여자라면 나같은 가난뱅이를 좋아하겠는가? 그런 줄 알고 그런 건 줄 충분히 이해가 되도 슬프기만 슬프기만 했습니다. 8. 그여샘은 소아과 과장님께 소아과 하겠노라고 했더니 과장님께서 내가 들어 올 때부터 소아과 하겠다고 했노라며 그녀를 안뽑아줘 그녀는 마침 모교에 산부인과에 자리가 있어 모교에 들어간다고 헤어졌습니다. 나처럼 모든 일에 결과를 알고 싶어 하실 분이 계셔 마져 이야기하자면..... 그 두 샘이 결혼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여샘은 딴 분과 결혼했고 그 선배분은 연예인과 결혼 했습니다. 뭐 여자의사를 부인으로 삼지는 말라고 무슨 인생의 금언같은 이야기를 해주더니 별로 연예인과 사는 것도 훌륭하지 않았는지 신문 가십란에 오르내리곤 하더니 이혼 했더군요. 그여샘이요? 다른과 샘과 결혼해서 잘 삽니다. 그 여샘은 가끔 의사회에서 만나는데 선배샘은 아무 곳에서도 흔적을 찾을 수 없네요. 옳다 라고 믿는 것이 언제나 옳음 아니고, 좋다라는 말이 언제나 좋음이 아닌 것을 알게 해 주었고, 보이는 아름다움이 참 아름다움의 정체는 아니며, 슬프다는 것이 온통 세상을 망치는 절대적 힘이 아니란 걸 알게 해줬던 , 어린시절의 쌉사레한 추억이지요.... 그 생각을 하면 머릿속에선 많은 종류의 새들이 합창을 하듯 정신이 머엉청 해집니다. Mussorgsky - Pictures at an Exhibition / Yunchan Lim ; Verbier Festival 2024 <iframe width="1367" height="769" src="https://www.youtube.com/embed/PCyUfnTxZAI" title="베르비에 페스티벌 2024 임윤찬 전람회의 그림 / Yunchan Lim plays Mussorgsky - Pictures at an Exhibition" frameborder="0" allow="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 referrerpolicy="strict-origin-when-cross-origin" allowfullscreen></iframe> |

첫댓글 알퐁스 도오테의 별 -
별 이야기는. 인류의 동감과 함께 -
나에게도~
우연 인연 계시처럼 ~
아름다운. ?
그래도 혼자
소중하게 간직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