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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미라지나이트 입니다.
무더웠던 7월도 이제 이번주면 끝이네요.. 어느새 마흔중년에 들어선 미라지도 마흔하고 3/4 을 먹고 가네요.. 해놓은일은 없는거 같은데.. 나이만 먹어가는거 같아 문득 서글퍼집니다.
각설하고 7월을 보내고 8월을 맞는 이번주에 간만에 비행기 정리좀 해보죠.. 8월이면 우리나라에 있어 일제치하에서 해방을 맞이한 815 광복절이 있는 달 입니다.
일본의 발광을 끝낸것으로 인류최초로 전쟁에 사용된 핵폭탄 펫보이와 리틀보이를 일본에 투하한 비행기가 바로 보잉사의 B-29 중폭격기 입니다. 우리에게는 수퍼포트리스 (Superfortress 아니면 B-29 라는 스낵명으로..) 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한 이 폭격기를 정리해보기로 하죠..
마침 8월에 아카데미 신제품으로 B-29A 가 예정되어 있기도 해서 기대가 큽니다.
B-29 Superfortress
[보잉사의 B-29A 는 그동안 보잉사가 만들어온 B-17 의 뒤를 잇는 4발 중폭격기로 종전이 얼마 남지 않은 1944년부터 투입되기 시작했다]
[B-29는 개발 당시 세계 최강 최대의 비행기. 물론 페이퍼 플랜이나 땅/물에서 살짝 점프만 해 본 항공기야 수두룩하지만, B-29는 1943년에서 1946년까지 고작 4년 동안 4,000대 가까이 생산되어 날아올랐다. 워낙에 기계적으로 복잡했기 때문에 개발과 실전배치 당시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특히 엔진과열 문제는 B-29를 계속 괴롭혔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초기의 기계적 결함을 상당부분 극복하고 우수한 전략폭격기로서 일본에 폭탄의 지옥을 퍼붓게 된다. 2차대전동안 실전에서 대량운용된 기체 중에서는 가장 큰 항공기이다]
[B-29는 1943년 부터 종전할때까지 고작 1년 좀 넘는 기간에 사용되었지만 총 생산대수는 4천여대가 넘는데 이는 이처럼 미국의 거대한 물량전에 기인한것이였다. 미군은 물량과 인원을 이용해 단기간에 수천대의 B-29 를 뽑아내였다]
[거대한 공장에 줄지어 조립중인 B-29 의 모습 전쟁이 한참일때는 거의 하루에 2~3대꼴로 B-29가 완성되어 뽑아져나오기도 하였다. 미국이 아니면 결코 불가능한 엄청닌 능력중 하나]
[완성되어 롤아웃을 환영하는 인파들.. B-29 의 크기가 얼마나 큰지 잘 알수 있는 사진중 하나]
[B-29는 전장 약 30.17m 전폭 43.05m 전고 8.46m 익면적 161.54㎡ 의 거대한 크기로 비행기 자체 무게만도 33톤이 넘었다 수퍼터보차져를 장착한 2200마력급라이트 R-3350-23/23A 복열 18기통 공랭식 성형엔진 (2,200마력) 4기를 장착하여 최대속도 시속 574km/h 를 낼수 있었으며 고도 1만미터 이상을 비행하여 당대 어떤 전투기도 이정도의 고고도를 올라올 비행기는 드물었다. 특히 항속거리는 무려 5200킬로가 넘으며 브라우닝 12.7mm M2 중기관총 - 2연장 원격 포탑 * 기체 4개소 와 브라우닝 12.7mm M2 중기관총 2정 & M2 20mm 기관포 1문 - 꼬리 포탑에 장착하며 폭탄창에 9톤 이하의 각종 폭탄을 장착가능한등 당시 어떤 폭격기도 이정도 사양을 가진 폭격기는 없었다 그야말로 괴물 폭격기를 만든것]
[B-29의 정면창을 바라본 모습 생각보다 시야가 넓은것을 볼수있다. B-29는 그전에 운영하던 B-17 이나 B-24 등의 경험을 살려 비행에 가장 적합한 최적의 조종환경을 가진 폭격기로 특히 폭격기로는 최초로 여압화 되어 있어 고공에서도 얆은복장을 입고도 활동이 가능했다]
[특히 B-29 는 대부분의 포탑운영이 무인화되어 있어 비교적 안전한 동체중앙에서 원격으로 조정이 가능하여 탑승 승무원의 수와 안전에 최선을 다한 기체이기도 했다]
[여압시설이 안되어 있던 B-17 같은 폭격기가 행동이 둔한 전용 방한복을 입고 작전에 임했어여하는 한편 여압시설이 완벽한 B-29 는 이처럼 얆은 승무원복을 입고도 통상적인 작전수행이 가능했다. 이는 승무원 입장에서 상당히 도움이 되는 시스템중 하나였다 특히 적기의 공격에 노출되지않고고 동체 중앙에서 원격으로 포탑제어가 가능하다는 점은 승무원들에게 큰 안심을 주는 부분중 하나였다]
[B-29 는 그전의 4발 폭격기인 B-17 의 경험을 살려 동체후방과 상면 그리고 하방에 총 10여정의 12.7~20밀리 중기관총을 장착하였다. 특히 B-29 는 적의 전투기로 부터 피해가 컸었던 동체하부와 상면의 포탑은 동체내에서 원격으로 조정이 가능한 리모트 시스템을 적용하였으며 파탄의 가능성이 높은 후방의 경우 20밀리 기관포를 장착하여 당대 어느 폭격기보다 강력한 방어가 가능했다]
[ B-29 의 방어무장도 충실해서 자동으로 목표를 향해 사격 가능한 다수의 기관총을 보유했다. 원래 B-17 및 B-24의 선회기총좌는 각각 한 사람씩 달라붙어야 하고 조준은 기총수의 감에 맡겨야 하는 안습한 상황인데다 허리 기총좌는 뚫린 큼지막한 구멍으로 찬바람이 휭휭 달려들고, 기체 하방의 볼 터렛이나 상방의 선회기총좌는 그 큼지막한 사이즈 때문에 항력을 발생시키는 등 이래저래 문제가 많았다. 이것이 B-29에 와서 사수가 중앙에서 각 터렛을 제어할 수 있는 중앙제어식 터렛으로 발전, 조준장치의 도움을 받는 사수가 다수의 터렛을 동시에 제어하여 하나의 목표에 집중포화를 퍼부을 수 있도록 개량되었을 뿐만 아니라 터렛 자체의 크기가 줄어들면서 항력이 줄어드는 부수효과를 낳았다. 그리고 이 중앙제어 체제를 제어하는데 컴퓨터가 사용되었다. 물론 현대 기준으론 전자계산기에 가까운 물건이지만 당시로선 엄청난 물건이었다]
[B-29의 진정한 방어력은 다름아닌 비행성능!!! 1만 미터가 넘는 순항고도에 5000킬로미터가 넘어가는 작전행동반경, 덤으로 최대속도가 570km/h, 순항속도 350km/h 등등, 2차 대전에 실전 투입된 중(重)폭격기들 중에서는 최고의 비행성능을 갖고 있었다. 덕분에 미국만이 보유한 원시적인 레이더 연동방식의 대구경 대공포를 제외한 타국의 대공포로는 요격이 거의 불가능 하였다]
[B-29의 뛰어난 성능의 핵심에는 출력이 2200마력(1640kW)에 달하는 18기통 공랭식 성형 엔진이 있었다. 이 물건이 4기가 장착되었다.[2] 물론 강력한 성능을 자랑하는 엔진이었지만 냉각계통에 문제가 많았고 설상가상으로 엔진 무게를 줄이기 위해 여기저기 마그네슘 합금을 사용하는 바람에 엔진이 과열되면 바로 불타오르는 일이 잦았다. 시제기도 비행테스트 도중 위의 문제로 추락, 급히 엔진커버를 더 잘라내 엔진에 더 많은 공기가 들어가도록 개량이 이루어졌지만 미봉책에 불과해서 B-29의 항공기관사들은 항상 엔진온도에 신경을 써야 했다. 그리고 대출력 엔진답게 엔진 자체의 수명도 짧다는게 문제였는데 쇼미더머니 미국은 쿨하게 75시간마다 엔진 교환으로 해결했다.]
[B-29 는 당대의 가장 뛰어난 성능의 폭격기였지만 이것은 무사히 이륙했을때 해당되는 내용있다 B-29 는 거대한 덩치와 불타기 쉬운 엔진으로 인해 이륙과 착륙하기 가장 어려운 기체중 하나로 실제로 이착륙중 사고로 손실된 기체가 전투중 손실된 기체보다 많을 정도였다]
[B-29 의 이런 이착륙시 문제는 종전시까지 해결되지 않았는데 그로인해 종전이후 빠르게 퇴역조치되는 이유가 되기도 하였다]
[B-29 는 1944년 4월부터 실전에 투입되었는데 이미 이때 유럽전선은 정리되어가는 중이였고 바로 일본과의 태평양 전선이 투입된다 B-29 초기에는 우리가 아는 은색도장이 아닌 올리브드랍색의 도장이 도입되었지만 태평양전선에 투입되면서 피아식별과 비행중 조금이라도 무게를 줄이기 위해 맨알루미늄에 간단한 기체번호만 도입한 우리가 잘아는 은색도장이 도입된다]
[최초로 작전이 투입된 B-29증 하나인 올드배틀러 기체 이번에 아카데미에서 제품화 한 기체가 바로 이 기체로 최초의 임무후 총 23번의 작전을 무사히 마친 기체이기도 하다]
[B-29의 놀라운 능력이 본격적으로 발휘되기 시작한것은 1944년 초 이미 그때는 유럽전선에서는 폭격할 마땅한 목표물이 없었고 유럽 전선에서는 이미 형뻘인 B-17과 B-24가 제3제국을 신나게 두들겨 부수고 있었다. 때문에 B-29는 생산되는 족족 끝내주는 항속거리를 살려서 일본을 공격하는데 집중되었다.[4] 처음에는 인도에서 뜨다가, 중국 청두로 옮겨가고, 태평양의 섬들이 하나씩 점령되는 시점에서 북마리아나 제도로 기지를 옮겨간다.[5] 점점 일본 땅에 가까워질수록 연료를 줄이고 폭탄을 많이 실을 수 있게 되었고, 초기의 정상적인 항공작전[6]을 수행하던 대신 커티스 르 메이의 소이탄 작전으로 도쿄대공습과 같은 절멸폭격석기시대이 시작되면서 일본의 대도시들은 전부 불바다가 되어버린다. 2차대전을 경험한 생존자중에서는 여전히 일본 하늘을 날던 거대한 은빛 기체를 기억하고 있으며 특히 이들이 폭격하면서 쏟아내던 엄청난 폭탄의 비는 지금도 치를 떠는 기억중 하나이다. 융단폭격이라는 단어를 도입하게 된 최초의 폭격기가 바로 B-29 이다]
[후지산을 배경으로 유유히 날고 있는 B-29 의 모습 B-29는 9톤의 폭탄 무장을 하고 무려 5300킬로의 항속거리를 가진 폭격기로 투입초기에는 인도에서 히말라야산을 넘어 중국내 일본군를 폭격하기도 하였고 이후 비행기지가 중국 청두로 옮겨가고, 태평양의 섬들이 하나씩 점령되는 시점에서 북마리아나 제도로 기지를 옮겨간다.[5] 점점 일본 땅에 가까워질수록 연료를 줄이고 폭탄을 많이 실을 수 있게 되었고, 초기의 정상적인 항공작전[6]을 수행하던 대신 커티스 르 메이의 소이탄 작전으로 도쿄대공습과 같은 절멸폭격석기시대이 시작되면서 일본의 대도시들은 전부 불바다가 되어버린다]
[폭탄의 비를 내리는 B-29의 폭격모습 B-29는 대당 약 9톤의 폭탄을 장착할수 있었으며 이는 B-17 폭격기의 두배에 해당되는 탑재량이였다. 이를 이용 편대를 이룬 B-29들은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융단폭격을 실시하였으며 일본내 주요도시는 이 공격으로 전투력을 상실해 갔다. ]
[일본의 항구를 폭격중인 모습 초기에는 통상폭탄을 사용하다 대부분의 일본도시들이 오래된 목조건물이라는 점을 발견 B-29 들은 소이탄을 탑재하게 된다 소이탄은 무게는 가벼우면서 폭격시 대부분 목조로 이루어진 일본내 도시건물들을 불질러 없애는 2차적인 피해를 불러일으킬수 있었다. 하지만 이로인해 민간인의 피해 역시 막심해 이에 대한 비판도 많았다]
[B-29의 일본본토 폭격은 일본의 전투의지를 꺽는데 충분한 일조를 했으며 특히 일본국내는 안전하다는 일본내 여론을 분쇄하는데 큰 일조를 하게 된다. 이당시 B-29의 폭격이 얼마나 대단했는데 하늘을 나는 전투기는 모두 B-29 라고 생각하는 당시 생존자들이 많을 정도였다]
[인도/중국에서 B-29가 출격하던 시기에는 B-29를 이용한 폭격 전술이 확립되어 있지 않았던데다 B-29 배치 초기의 각종 문제점들, 그리고 작전 거리상의 이유로 인한 작전고도의 문제가 겹치면서 일본 전투기들도 나름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북마리아나 제도에서 B-29가 출격하기 시작하면서 일본 전투기들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났다. ]
[폭탄을 탑재하는 지상요원들.. 250킬로급의 폭탄의 경우 30~36발의 폭탄을 탑재가능했으며 가벼운 소이탄의 경우 더 많은수의 폭탄을 장착가능했다. 당시 B-29 의 탑재량은 무려 9톤으로 이는 B-17의 두배에 해당되는 탑재량이였다. ]
일단 자기들이 가진 전투기가 고고도까지 올라가질 못하거나, 어찌어찌 올라가봤자 그 고도에서 쫓아가질 못했던 것.[10] 이런저런 이유로 B-29의 작전고도가 낮아지면서 일본군 전투기들에게도 어느 정도 기회가 열렸지만, 전반적으로 작전고도가 낮았던 일본기들에게는 여전히 부담스러운 조건이었다. 따라서, 일단 예상 진로에 대기했다가 줄줄이 일격 후 이탈하는 형태로 요격을 시도[11]했지만 이것 자체의 성공률이 떨어진데다, 간신히 접근에 성공한다 해도 폭격기의 자체 방어 체계에 당해서 격추되는 경우도 허다했다. 설상가상으로 쫒아가서 맞춘다 해도 일본의 후달리는 7.7mm 기총은 무용지물이었고, 12.7~13mm 기총이나 심지어는 해군의 구형 20mm 기관포[12]로도 좀처럼 효과가 없었다. 기존의 20mm기관포를 개량하고, 독일제도 수입[13]하고, 30mm기관포도 얹어봤지만 이래저래 역부족이었고[14], 이 때문에 아예 전투기의 무장과 장갑을 떼어내 버리고 B-29에 직접 충돌하는 가미가제 전술이 도입되기도 했다.[15] 미군 함정을 상대하는 것처럼 '작전 투입=무조건 인원 손실'같은 무자비한 조건은 아니었고, 기본적으로는 조종사의 생환을 전제[16]로 하는 것이었지만, 일단 기체는 100% 손실이었고, 인원 손실도 만만치 않았다.[17]
[편대를 이루면서 융단폭격을 실시중인 B-29의 모습 고도 1만미터 이상을 날으는 이 폭격기를 요격할 마땅한 전투기는 일본내에서는 없었다. 일본군은 자기들이 가진 전투기가 고고도까지 올라가질 못하거나, 어찌어찌 올라가봤자 그 고도에서 쫓아가질 못했던 것.[10] 이런저런 이유로 B-29의 작전고도가 낮아지면서 일본군 전투기들에게도 어느 정도 기회가 열렸지만, 전반적으로 작전고도가 낮았던 일본기들에게는 여전히 부담스러운 조건이었다. 따라서, 일단 예상 진로에 대기했다가 줄줄이 일격 후 이탈하는 형태로 요격을 시도[11]했지만 이것 자체의 성공률이 떨어진데다, 간신히 접근에 성공한다 해도 폭격기의 자체 방어 체계에 당해서 격추되는 경우도 허다했다. 설상가상으로 쫒아가서 맞춘다 해도 일본의 후달리는 7.7mm 기총은 무용지물이었고, 12.7~13mm 기총이나 심지어는 해군의 구형 20mm 기관포[12]로도 좀처럼 효과가 없었다. 기존의 20mm기관포를 개량하고, 독일제도 수입[13]하고, 30mm기관포도 얹어봤지만 이래저래 역부족이었고[14], 이 때문에 아예 전투기의 무장과 장갑을 떼어내 버리고 B-29에 직접 충돌하는 가미가제 전술이 도입되기도 했다.[15] ]
[B-29에는 기존의 폭격기들과는 달리 정교한 항법장비와 폭격장비 (아래) 를 장착하고 있어 다른 폭격기보다 정교한 폭격이 가능했다]
[사진에서 보듯 B-29의 폭격은 당시기술로는 상당한 정교한 폭격이 가능했는데 이는 뛰어난 항법장비와 폭격장비를 장착한 탓이 컸다. 더구나 더이상 이를 요격할 잔투기가 없던 후반에는 고도를 낮추어 폭격함으로서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수 있었다]
[B-29만으로도 피똥을 싸던 일본군에게 재앙이 닥쳤으니, 이오지마를 점령한 미군이 이곳을 기지로 하여 P-51,P-47을 호위 전투기로 딸려보내기 시작[18]하면서 전쟁이 끝날 때 쯤에 이르면 아예 B-29 요격에 사실상 손을 놓아버린다]
[종전이후 한국전에도 일부의 B-29 들이 평양폭격임무등에 투입되었다. 하지만 이때는 이미 전투기들도 제트엔진을 장착한 제트전투기 시대였다 당대 최고의 전투기로 불리던 MIG-15 등이 요격기로 등장하면서 B-29들은 막대한 피해를 입게된다 이후 B-29의 폭격은 야간에만 실시되었으며 하부에는 이처럼 검정색이 칠해지게 된다]
[구소련이 한때 운영하던 TU-4 폭격기는 과거 미군이 사용하다 불시착한 기체를 인수하여 역설계로 제작한 짝퉁 B-29 였다. 실제로 외형이나 성능이 대체로 비슷했으나 엔진은 더 문제가 많았고 기존의 소련 항공기보다 훨씬 복잡했던 B-29의 설계에 기술자들은 골머리를 썩었고 특히 엔진의 복제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결국에는 성능이 비슷비슷한 이 Tu-4를 복제해냈다. 이 복제 작업을 통해 소련도 대형 폭격기 설계 기술을 보유하게 된다.[28] 이 때 이 녀석을 통해 습득한 기술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활동하는 걸작 폭격기 Tu-95가 등장하게 된다]
[B-29 기체중 애놀라게이( Enola_Gay) 로 불리는 미육군항공대 393 폭격비행대대 509 혼성그룹 소속 B-29 기체는 세계최초로 원자폭탄을 투하한 기체로서 B-29 중에서 가장 유명하다]
[B-29 로 부터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발된 두발의 원자폭탄인 리틀보이와 펫보이는 현재까지 전투중 사용된 최초의 핵폭탄으로 이 두발의 핵폭탄으로 결국 일본은 무조건 항복을 받아내지만 이로인해 수십만의 인명이 사망 혹은 방사능 오염으로 피해를 입게 되었다 일본의 과거사의 반성없이 핵폭탄을 얻어맞은 불쌍한 나라로만 포장해 지금도 자국의 침략을 정당화 하고 있기도 하다 이것들 서너발 더 맞았어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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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늘도 좋은 자료 잘봤습니다
어떤 소설보다 재밌어요
정말 재미있게 보고있습니다..
좋은 자료 재밌게 잘읽었습니다. 원기체가 워낙 커서 1/72라도 작은 프롭기 1/48와 비슷하거나 클듯 싶네요. 핵폭탄을 투하한 폭격기라니까 급호기심이 생기는데요? 이번에 구매하고 싶기도 한데, 콧핏의 버드케이지가 도색시 손좀 갈듯하네요.
좋은 자료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