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논두렁에 노랗게 왕고들빼기 꽃이 핀다. 노란 들판 때문에 잘 보이지 않지만 키가 큰 이 야생화는 조금만 눈길을 주면 얼른 알아차린다. 여름에 작열하는 태양 빛에 잎을 키우고 낮의 길이가 짧아지면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만든다. 숲속 산길도 옷을 갈아입는다. 날씨가 쌀쌀해지면 단정히 옷깃을 여민다. 몸은 겸허해지고 경건한 자세를 한다. 지금 오지 않았던 사람이 오고 나도 간다. 서로 생각하는 사람이 생기게 된다. 따뜻한 아궁이 앞에서 이리저리 불길을 쑤셔 넣는 부지깽이가 생각난다. 숲 풀이 아무리 덮어도 10월의 산길은 더욱 선명해진다. 지금까지 차곡차곡 길을 걸어왔다 해도 서툰 데가 너무 많다. 나뭇잎이 비바람에 흔들렸다 해도 지나온 흔적이 어느 수채화보다 아름답다. 이른 봄에 산나물이 이제 꽃을 피운다. 우리는 짧은 기간이라 생각하지만 산나물은 긴 여정이었을 것이다. 아무리 때 묻은 세월이라 해도 경건하게 나를 바라보면 어깨를 다독이고 싶다. 낡은 옷을 입고 있어도 10월의 꽃과 씨앗들은 아름답다. 취나물과 부지깽이 꽃잎들은 각기 서로 다른 모습이다. 그러나 말쑥하게 핀다. 파란 하늘 속에 낮달처럼 깨끗하게 핀다. 비와 바람 그리고 별빛들이 주는 만큼 핀다. 야생화를 캐어 집으로 가져오면 꽃이 그리 아름답지 못하다. 산속 깊은 데에서 누가 볼까 두려워 조용하게 핀다. 환경을 탓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만 충분하다. 여기가 나의 자리다. 좋은 자리를 탐내지 않는다. 천한 이름을 가졌다고 한탄하지 않는다. 부모가 지어준 이름을 감사하게 여기고 평생을 기억하고 산다. 부뚜막에 부지깽이는 불을 다루는 도구다. 점점 달아져 몽당연필처럼 된다. 손때가 묻어 인간적이다. 한 집에서 제일 중요한 불을 다루고 있다. 모든 음식이 부지깽이부터 시작된다. 봄이면 봄나물로 최고의 음식이다. 취나물과 부지깽이가 비슷한 점은 모두 국화과다. 꽃과 열매도 비슷하다. 가을의 씨앗은 하얀 털을 단다. 산길 넘어 자손을 번식하기 위해서다. 취나물을 캐다가 부지깽이가 발견된다. 나물을 먹어보면 취나물 향기에 젖어 부지깽이나물을 못 느낀다. 울릉도 부지깽이나물은 겨울눈에 덮어 잎이 순해지고 풀 냄새를 없애주어 맛이 한층 더해주는 것으로 생각된다. 취나물 꽃은 서로 꽃잎 모양을 달리한다. 가을꽃의 정취는 이것이다. 마치 어린아이가 꽃잎을 그려놓은 것처럼 순수하다. 꽃잎의 차이는 가을의 느낌 자체다. 부지깽이는 취나물과 같은 친구다. 꽃잎이 아주 작지만 그런 가운데에서도 리듬 있게 핀다. 이런 곳에서 우리의 서정이 발현된다. 가장 촌스러운 이름을 부르면서도 오히려 마음은 한결 깨끗해진다. 부지깽이 꽃이 내 눈에 쏙 들어올 때는 가을의 서정이 가득 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