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20일 노회여전도연합회 설교
*잣나무와 역청(창 6:14)
*하나님은 홍수 전에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하시면서 방주를 만들 재료 활용법을 자상하게 가르쳐 주신다.
-재료는 잣나무와 역청, 두 가지다.
-먼저 잣나무를 베어다가 다듬어서 배를 만들고, 그 다음에 잣나무의 틈새를 역청으로 칠한다.
-역청은 아스팔트를 깔 때 뿌리는 시커먼 피치로 끈적끈적해서 잘 달라붙는다.
-가나안 땅에는 역청 덩어리가 뭉쳐있는 구덩이가 많아서 여기에 빠지면 사람이든 짐승이든 빠져나오기가 어렵다.(오늘날 중동 땅의 원유 생산지)
*이 역청이 방주를 만들 때 아주 요긴하게 쓰인다.
-잣나무의 틈새에 역청을 바르면 물이 스며들지 않는다.
-조선 기술이 오늘날처럼 발달하지 않은 시대에 안성맞춤이다.
-잣나무와 역청이 조화를 이루면 방주는 물에 가라앉을 염려가 없고 안전하다.
*여기서 생각해 보고 싶은 것이 있다.
-잣나무로 만든 방주에 틈새가 있듯이 사람에게는 누구나 약점이 있다.
-이런 약점을 대하는 태도가 다양하다.
-어떤 사람은 약점을 이용한다.
-야곱은 형 에서가 사냥하러 다녀와서 몹시 허기졌을 때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권을 흥정한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40일 금식기도를 마쳤을 때 배고픈 것을 기회로 삼아 사탄이 돌덩이를 떡으로 만들라고 유혹한다.
-사탄은 우리의 약점을 놓치지 않고 파고든다.
-우리가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중한 병에 들었을 때, 교회 일을 하다가 지쳤을 때, 부부 간에, 성도 간에, 이웃 간에 다툼이 있을 때 사탄이 어김없이 달려들어 우리의 신앙을 흔들어 놓는다.
-그래서 바울이 이렇게 권고했는지 모른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엡4:26-27)
*약점을 이용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약점을 보완하고 보충해주는 사람이 있다.
-바로 역청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사도 바울의 두 제자 디모데와 디도, 바울의 주치의 누가가 그런 사람이다.
-바울은 일을 벌여 놓기는 하지만 수습을 잘하지 못했다.
-음식은 잘 차리지만 뒷정리나 설거지를 못 하는 것과 같다.
-그 뒤치다꺼리를 디모데가 했다.
-또한 바울은 복음을 지키기 위해서 적대자들과 싸우다 보니 화해하고 다독거리는 일에 서툴렀다.
-이런 일은 디도가 맡았다.
-그리고 누가는 몸이 약한 바울을 평생토록 잘 보살펴주었다.
-마치 물이 새는 잣나무 방주에 역청이 발라져 방주가 배로서의 기능을 하게 한 것처럼 역할을 하였다.
*어제 우리 교회 추수감사주일 설교가 ‘감사자인가 감시자인가’였다.
-감사합니다=‘고맙습니다’와 ‘덕분입니다’가 반반씩 섞여 있는 말.
-복음서에 보면 바리새인들은 ‘범사에 감사’가 아니라 ‘범사를 감시’하는 사람들이었고, 예수님은 이런 바리새인들을 ‘회칠한 무덤’이라고 강하게 질책하셨다.
-예수님이 병든 사람들을 고쳐주었을 때도 바리새인들은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고 예수님의 행동을 감시했다.
-예수님이 혹시라도 안식일을 범하지 않는지, 혹시라도 율법에 합당치 않는 일을 하지는 않는지 감시의 눈을 번뜩이며 쳐다보았다.
#이 자리의 우리는 어떤가?
-감사자인가? 감시자인가?
-교회에서 성도 간에 은혜를 나누며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성도인가? 목사나 다른 교인들의 행동을 감시하며 비판을 일삼는 사람인가?
-가정에서도 남편에게, 아내에게, 부모에게, 자식에게 감사하며 사랑과 정을 나누는 사람인가? 이것은 이렇고. 저것은 저렇고 감시의 눈으로 살펴보며 질책하는 일에 익숙한 사람인가?
-감사자는 상대의 약점을 사랑으로 보완하며 함께 공동체를 세워가고, 감시자는 약점을 파고들어 공동체를 훼손한다.
*히브리어로 잣나무는 본문에 기록된 대로 ‘고페르’이고 역청은 ‘코페르’이다.
-묘하게도 발음이 비슷하다.
-고페르와 코페르가 발음이 조화를 이루는 것처럼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교회에서 목회자가 고페르가 되고, 성도들이 코페르가 된다면 그 교회는 방주처럼 안전하다.
-가정에서 부모가 고페르가 되고, 자녀들이 코페르가 된다면 그 가정은 평안하다.
-남편이 고페르가 되고, 아내가 코페르가 되면 그 부부는 행복하다.
#나는 목회자로서 늘 이런 꿈을 꾼다.
-고페르와 코페르가 어우러지는 교회, 고페르와 코페르가 온전히 합하는 가정을 꿈꾼다.(헛된 꿈인가?)
*우리 부경노회의 모든 교회들이 이런 교회가 되고, 모든 성도의 가정이 이런 가정이 되길 축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