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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여 기도를 가르쳐 주소서(5)
마태복음 6:9-13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1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하나님의 이름과 주의 나라와 뜻을 위해 기도하기를 가르치신 우리 주 예수님은 이제 주의 백성을 위한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첫째가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라는 기도입니다. 이 기도를 드릴 때 신자의 마음은 이미 하나님의 이름과 나라와 그분의 뜻을 가장 소중히 여기는 상태에 있습니다. 즉, 진심으로 온 마음을 실어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하였다면 그 마음은 이 땅에 있지 않고 하늘에 있습니다. 따라서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않는”(골 3:2)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사실, 성경은 하늘에 마음이 가 있지 않고 땅의 것만 생각하는 자들에 대해 경고합니다.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빌 3:19).
예수께서도 베드로의 마음이 땅에 치우칠 때 강력하게 경고하셨습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마 16:23).
이에 우리 주 예수께서는 우리가 이 땅의 것에 욕심을 갖지 않도록 필요한 것만을 기도하도록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소서.”
그러면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를 좀 더 깊게 상고해 보겠습니다. 이 기도를 원어로 보면, (톤 아르톤 헤몬 톤 에피우시온 도스 헤민 세메론)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주시옵고”라는 헬라어 동사는 (도스)인데 이는 과거 2인칭 능동 단수형 명령형으로써 앞에서 3인칭 과거 단수 명령형으로 쓰인 것과는 크게 다릅니다. 3인칭 단수 명령형은 아버지 하나님께 어떤 단수의 목적 대상이 이루어지도록 역사해 달라는 기도로서 기도하는 주체가 자기 책임에 참여함으로 그 기도 내용이 이루어지는 것인 반면, 과거 2인칭 능동 단수형 명령형은 기도하는 신자 또는 신자들이 하늘 아버지를 2인칭으로 부르며 그분이 우리 또는 어떤 신자 개인의 간구가 이루어지도록 역사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그래서 앞의 3가지 청원은, “당신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당신의 나라가 임하시오며 당신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번역이 되지만,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에서 “주시옵고”는 하늘 아버지께서 나 또는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나 또는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기를 바란다고 하며 나 또는 우리와 관련하여 직접 응답하시기를 바라는 간청입니다.
또한 “오늘”이라는 원어는 (세메론)입니다. (세메론)을 원어 사전을 찾아보니 ‘오늘’, ‘이 날’ 또는 ‘지금 이 시간’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개역 개정 신약 성경 전체에서 (세메론) 모두를 일관성 있게 ‘오늘’이라고 번역했는데 전혀 하자가 없어 보입니다.
그리고 이 기도는 (헤민)이라고 대상을 말하는데 그 뜻은 복수형으로 “우리에게”라고 번역됩니다. 이 부분 때문에 기도의 주체가 단수인지 복수인지 알 수 없습니다. 즉, 제가 혼자 기도하더라도 여러분을 마음에 두고 기도할 때는 ‘우리에게’라고 기도할 것입니다. 또는 우리가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를 ‘함께’ 드린다면 그때 기도의 주체는 복수로서 ‘우리’가 될 것입니다. 아무튼 기도의 주체가 단수인지 복수인지에 대해서는 상황에 따라 둘 다 가능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무튼 기도 주체가 단수인지 복수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의 기도 응답 대상은 복수입니다. 물론 그 복수 속에 나 개인을 따로 넣을 수 있습니다. 즉, 이 기도의 의미가 “오늘 내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원어에 따라 나를 포함한 복수의 개념으로, 즉 공동체의 개념으로 이 기도를 드리는 것이 더욱 안전한 해석으로 사료됩니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그렇다면 우리가 이 기도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 일용할 양식을 주셔야 하는 대상은 나를 포함한 ‘우리’가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 공동체 내에 일용할 양식이 필요한 지체들이 있을 경우 그 지체에게 일용할 양식을 공급해야 할 책임이 공동체에 있게 됩니다. 또한 그런 책임은 마땅히 성도들이 성도들 간에 나타내야 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
17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19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라
](요일 3:17-19)
[
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요 13:34-35)
[
25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
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는 … 그것이니라
](약 1:25, 27)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약 2:15-16).
사도들의 이러한 권면은 일차적으로 공동체 내에 고아와 과부처럼 일용할 양식이 없을 경우 교회 지체들이 가장 먼저 도와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바로 경건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사랑의 실천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능력으로 인하여 복음의 삶을 사는 신자들에게 바울이 권면합니다.
[
8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10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갈 6:8-10)
이제 우리는 ‘일용할 양식’만 확인하면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라는 기도의 의미를 충분히 알게 됩니다.
먼저 “일용할 양식”은 원어로 (톤 아르톤 헤몬 톤 에피우시온)입니다. 개역 개정으로 번역은 짧은데 원어로는 매우 깁니다. 우리는 주께서 언급하신 ‘일용할 양식’에 대해 정확하게 알기 위해 이 원어를 정교하게 풀어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 ‘양식’으로 번역된 (톤 아르톤)은 헬라어 사전으로 보면, 빵, 영양분, 양식을 말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톤 아르톤)이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는지를 보면, 놀라운 비밀을 알 수 있습니다. 너무 용도가 많아서 몇 가지만 추려 보겠습니다.
첫째, 바울은 사람이 주 앞에서 성실하게 일함으로 얻는 것을 (톤 아르톤)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도다”](살후 3:10)
여기서 ‘먹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주의 백성이 수고한 결과물입니다. 그렇다면 ‘양식’은 주의 백성이 수고하여 일한 결과물로서 음식을 포함해서 사람이 이 땅에서 살아가며 필요한 기본 생필품을 뜻합니다.
둘째로는, ‘양식’ 또는 ‘떡’으로 번역되는 (톤 아르톤)은 히브리서 9장을 보면 진설병을 말할 때 사용되고 있습니다.
“예비한 첫 장막이 있고 그 안에 등잔대와 상과 진설병이 있으니 이는 성소라 일컫고”(히 9:2).
그리고 예수께서는 다윗이 굶어 죽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 그가 진설병을 먹은 사실에 대해 합당하다고 주장하셨습니다.
[
3 예수께서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4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 한 자들이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
](마 12:3-4)
즉, 진설병은 거룩한 제사장들이 먹는 떡으로서 거룩한 성막 및 성전에 놓여 있던 하늘의 떡이었지만 제사장을 비롯한 사람들이 먹는 ‘양식’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진설병의 실재이신 예수께서는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고 하셨는데 이때 (톤 아르톤)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하실 때의 문맥은 실제로 사람들이 먹어야 할 떡에 대해 고민할 때였습니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요 6:5-6).
그리고 예수님은 아이가 내놓은 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로 광야에 있던 수만 명의 큰 무리를 먹이셨습니다.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요 6:11).
그러자 그들은 입으로 먹는 떡을 위해 예수님을 왕으로 삼고자 하였지만 예수님은 거절하셨습니다.
[
2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27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요 6:26-27).
그리고 우리 예수님은 영생을 주는 떡을 소개하셨습니다.
[
3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
33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34 그들이 이르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 6:32-35)
그리고 영생의 떡을 먹는 비결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라고 알려주십니다.
[
47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48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49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50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요 6:47-51)
주께서는 다시 한번 예수님 자신이 영생의 떡으로서 나를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산다고 선포하셨습니다.
[
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58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요 6:57-58)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에서 (톤 아르톤)의 사용 목적은 사람이 먹는 양식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늘의 떡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여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한편, 구약의 진설병을 가리키는데 (톤 아르톤)이 사용된 반면 신약에서는 성찬 및 예배를 나타낼 때 (톤 아르톤)을 사용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행 2:42).
여기서 떡을 함께 뗀다는 것은 (톤 아르톤)을 함께 나누며 먹는다는 것인데 이는 예배 공동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으로 하나된 가족인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심지어 (톤 아르톤)은 먹을 양식이지만 예배와 함께 연보로 바쳐질 때 그것은 의의 열매가 된다고 알려줍니다. 즉, 하나님은 (톤 아르톤)을 즐겨 내는 자를 믿음의 행위로 보시고 복을 베푸십니다.
[
7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8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9 기록된 바 그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10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11 너희가 모든 일에 넉넉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그들이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
](고후 9:7-11)
셋째로는, 예수님은 (톤 아르톤)을 교훈과 연결시키셨습니다. 즉, 사람을 영원히 죽이는 떡이 있고, 사람을 영원히 살리는 떡이 있다는 것인데 그 떡은 생명을 주는 교훈인지 아니면 영혼을 망치는 교훈인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
막 8:15 예수께서 경고하여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16 제자들이 서로 수군거리기를 이는 우리에게 떡이 없음이로다 하거늘
17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마 16:9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바구니며
10 떡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광주리였는지를 기억하지 못하느냐
11 어찌 내 말한 것이 떡에 관함이 아닌 줄을 깨닫지 못하느냐 오직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12 그제서야 제자들이 떡의 누룩이 아니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삼가라고 말씀하신 줄을 깨달으니라
](막 8:15-17; 마 16:9-12)
넷째로는, 부활하신 예수님과 관련해서 특이하게 (톤 아르톤), 즉 떡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엠마오로 슬픔 가운데 내려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게 됩니다”(눅 24:30-31).
[
35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36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들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
37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눅 24:35-37)
부활하신 예수님은 무엇보다 자신의 부활의 실제성을 나타내시기 위해 떡을 드셨습니다. 물론 생선도 드셨습니다.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니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눅 24:41-43).
그리고 부활의 예수님이 하신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는 제자들에게 떡을 주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요 21:12-13).
그리고 더 신기한 것은 그 직후 베드로에게 하신 우리 주님의 말씀입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요 21:15).
이처럼 ‘양식’으로 쓰인 원어의 단어의 의미는 떡, 빵, 양식 등이지만, 성경은 그 용어를 매우 다양한 차원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물리적인 떡으로도 사용하고 비유적으로 영적인 양식을 의미하기도 하고, 심지어 교제와 예배와도 연관되어 사용하며 부활의 확실성을 나타내는데 이 용어가 사용됩니다. 나아가 영적인 양식을 나타낼 때도 이 단어가 직접 사용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마귀가 하와를 무너뜨린 것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양식’이었습니다. 하와는 금지된 그 (톤 아르톤)을 먹음으로 인류의 첫 번째 죄를 짓고 타락했습니다. 그리고 첫째 아담은 아내가 준 그 실과를 ‘먹음으로’ 인류에 죄가 들어오게 하였습니다.
동일하게 마귀는 예수님을 시험할 때도 가장 먼저 (톤 아르톤)으로 합니다. 즉, 떡으로 합니다.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마 4:3).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신명기의 말씀으로 답변하심으로 시험을 이기십니다.
자, 다시 원어로 돌아가서 “일용할 양식”을 봅시다. “일용할 양식”은 원어로 (톤 아르톤 헤몬 톤 에피우시온)입니다.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헤몬)이 들어 있기 때문에 “우리의 일용할 양식”입니다. 즉, “오늘 우리에게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라고 직역이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일용할’로 번역된 원어는 (에피우시온)인데 “매일 필요한 몫”, “하루를 위해 부족하지 않은 충분한 몫”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떡과 함께 (에피우시온)을 붙이면 “매일 우리에게 우리 각자에게 필요한 만큼 그 날 하루 하루의 부족하지 않은 양식을 주시옵소서”라는 기도가 됩니다. 그리고 이 개념은 놀랍게도 구약의 만나 사건과 연결됩니다.
출애굽기 16장을 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를 지도자로 하여 애굽을 떠나 신 광야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때는 애굽에서 나온지 한 달 되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그곳 신 광야에서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합니다.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출 16:3).
그들은 광야에서 과연 하나님이 먹을 것을 주실지를 의심하였습니다. 그렇게 의심이 드니 광야에서 그들의 불안은 고조되었고, 그들의 불신앙에서 나온 불안은 곧바로 원망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도리어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는 그들을 구원하신 하늘 아버지의 사랑과 능력과 보살핌과 공급하심을 믿지 못한 것입니다.
이에 모세가 여호와께 나아가 아뢰고 주께서 곧바로 답변해 주셨습니다. 이때 이들의 불만과 두려움과 의심에 대한 하나님의 조치는 하늘의 만나였습니다. 하나님은 만나를 통해 친히 자기 백성을 광야에서 매일 보존하시고 지켜 주셨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불신앙과 원망에 대해 분노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여섯째 날에는 그들이 그 거둔 것을 준비할지니 날마다 거두던 것의 갑절이 되리라. …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원망함을 들었노라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해 질 때에는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부르리니 내가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인 줄 알리라 하라”(출 16:4, 12).
주께로부터 답변을 들은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었고, 이스라엘 백성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양식을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날 저녁에 메추라기가 와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고 있는 천막들을 덮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아침이 되자, 이번에는 이슬이 천막 주위를 덮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슬이 마른 후 광야 지면에는 작고 둥글며 서리 같은 것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그것을 보고 무엇인지 몰라서 서로 말했습니다.
“이것이 무엇이냐” (바로 이 질문이, 만나입니다.)
이에 모세가 대답했습니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어 먹게 하신 양식이라.”
그리고 모세는 그 만나를 어떻게 거두어서 먹어야 하는지 주의 명령을 전달합니다.
“너희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거둘지니 너희 사람 수효대로 한 사람에 한 오멜씩 거두되 각 사람이 그의 장막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거둘지니라”(출 16:16).
바로 이 개념이 ‘일용할’로 번역된 헬라어 (에피우시온)의 개념입니다.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그같이 하였더니 “그 거둔 것이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나 오멜로 되어 본즉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거두었습니다”(출 16:17-18).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에 정착할 때까지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각 사람은 아침마다 만나를 거두면서 하루 양식으로 조금도 부족한 날이 없었습니다.
이처럼 오늘의 기도는 구약 광야 생활에서의 만나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즉,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와 주께서 가르치신 일용할 ‘양식’을 연결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양식으로 번역된 (톤 아르톤)은 실제 음식물이지만 만나와 같은 개념의 ‘양식’입니다. 즉, 신자들의 믿음이 동반되어야 받을 수 있는 양식으로서 하나님의 약속이 담긴 하루의 양식입니다. 따라서 그 양식은 주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신뢰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목숨의 유지와 관련된 ‘양식’을 매일 주께 구한다는 것은 나의 죽고 사는 문제를 하나님께 의탁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는 양식은 우리 인간의 근본적인 필요를 의미하며 하나님의 공급과 뗄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동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는 우리의 필요에 대한 요구이지만 탐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기도가 아니라는 것을 뚜렷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탐욕을 위한 기도는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와 전혀 상반되는 기도입니다.
[
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4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약 4:3-4)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하늘의 떡인 만나의 기적으로 광야의 구약 백성을 먹이신 것처럼, 지금 새언약 시대의 주의 백성에 대해서도 변함없는 신실하심 가운데 그들을 먹이시고 보존하신다는 확신을 주셨습니다.
또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라는 기도는 우리가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시험을 믿음으로 이기도록 해 달라는 간구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늘의 떡인 만나는 주의 백성을 향한 뚜렷한 믿음의 시험이었기 때문입니다.
[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11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오늘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12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13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14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
17 … (행여)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까 두렵도다) …
19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따라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면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멸망할 것이라
20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멸망시키신 민족들 같이 너희도 멸망하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함이니라
](신 8:2-20)
그러므로 차고 넘치도록 만나의 복을 받게 될 때 우리는 주께서 주신 양식이 진정으로 우리에게 복이 될 수 있도록 ‘믿음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기도는 양식과 관련하여 우리가 믿음으로 깨어 있기 위한 간구이기도 합니다.
사실, 우리 중에도 하루의 일용할 물질을 위해 기도하기가 민망한 지체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기도 역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라는 기도로서 그 기도의 의미는 주께서 이미 차고 넘치도록 주신 양식이 남아 돌아서 썩어 문드러지는 부패한 양식이 되지 않도록 우리의 양식이 우리에게 진정한 복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양식이 우리의 믿음을 파괴할 경우, 그 양식은 참으로 비참하고 끔찍한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사실 그리스도께서 이 기도를 가르쳐 주시면서 가장 염려하신 것 중 하나는 주께서 우리에게 충분한 양식을 주실 경우 행여 주의 백성이 믿음을 잃고 하나님을 망각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양식을 쌓기만 하는 어리석은 사람은 사실 아무것도 얻지 못한 사람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는 탐욕의 죄성으로 인하여 주께서 주신 일용할 양식마저 항상 썩게 만드는 가장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아무든지 아침까지 그것을 남겨두지 말라 하였으나 그들이 모세에게 순종하지 아니하고 더러는 아침까지 두었더니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난지라 모세가 그들에게 노하니라. 무리가 아침마다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거두었고 햇볕이 뜨겁게 쬐면 그것이 스러졌더라”(출 16:19-21).
양식과 관련하여 주의 지시를 따르지 않은 사람들은 그 양식으로 인하여 도리어 슬피 울게 될 것입니다. 양식은 차고 넘치되 먼저 주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지 않을 때 찾아오는 비참은 작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양식의 공급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공급된 양식에 대한 인간의 탐욕, 의심, 불안, 염려가 근본적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양식은 충분히 있는데 전쟁하여 싸워 죽고, 가정에서도 불화가 생기고, 우정이 깨어지고, 심지어 맹세로 언약한 결혼 언약까지도 깨뜨려지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입니다. 더욱이 하루가 아니라 10년 및 죽을 때까지 먹을 것을 쌓아놓고도 염려로 고민하다가 우울증에 걸려 죽는 어리석은 사람들도 한 둘이 아닌 것입니다.
[
16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7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18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눅 12:16-23)
이처럼 우리 주님께서 주시는 하늘의 복을 잃은 자들에게는 이 땅의 양식이 복이 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시기와 질투와 비교와 착취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일용할 양식을 통해 우리에게 주와 교통하는 법을 배우게 하시고, 그 교통 안에서 영원한 가치가 있는 하늘의 것들을 누리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지만 주께서 복으로 주신 양식이 썩는 양식이 되는 이유는 영원한 가치를 추구하지 않는 악한 교만과 불신으로 인한 것입니다.
한편, 양식은 재물로 구입이 가능함으로 양식과 ‘재물’은 같은 맥락에서 서로 통용되곤 합니다. 예수님은 재물 즉, 맘몬을 하나님과 겸하여 섬기지 말 것을 당부하시며 결코 이 땅에 재물을 쌓아놓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
19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21 네보물있는그곳에는네마음도있느니라
](마 6:19-21)
따라서 우리는 이 기도를 드리면서 탐욕을 철저하게 경계할 것을 항상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
22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23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
28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29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30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
31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2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눅 12:28-32)
그러므로 ‘주시옵고’라고 기도할 때 우리는 내게 주어진 선한 모든 것들이 주 여호와 하나님이 주셨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 바랍니다.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시 16:2, 5).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고전 4:17).
“참새 다섯 마리가 두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는도다 너희에게는 심지어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니라”(눅 12:6-7).
그러므로 우리는 주께서 가르치신 이 기도를 드리며 오늘 내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이 있으면 족한 줄로 알아야 합니다.
[
6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7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8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딤전 6:6-8)
아무튼 “일용할 양식”과 관련하여 우리 주께서 주신 가장 중요한 교훈은 결국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 8:3)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믿음은 예수님으로 하여금 마귀가 던진 첫 번째 시험을 넉넉히 이기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용할 양식’과 관련해서 하나님의 말씀과 연결해야 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양식을 '주신다'는 생각 때문에 우리가 일해야 할 책임을 회피하라는 말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교훈은 예수의 제자들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자들이라는 것(6:34)을 전제할 뿐만 아니라, 노동으로 우리의 양식을 벌 수 있는 능력 역시 하나님의 손길로부터 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수고하며 먹을 것을 구해야 하며,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먹을 것을 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수고하지 않으며 이 기도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우롱하는 것이고, 수고하지 않으면서 이 기도만 드리는 신자는 양식은 물론이고 아무 선한 것들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사람이 수고함으로 떡을 먹도록 정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
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19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창 3:17-19)
사실 아담이 타락하지 않았더라도 그는 성실하고 부지런히 일을 해야 떡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
4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5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6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
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창 2:4-6, 8)
그러므로 성경은 부지런히 일할 것을 교훈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조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살후 3:12)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 여름에 거두는 자는 지혜로운 아들이나 추수 때에 자는 자는 부끄러움을 끼치는 아들이니라”(잠 10:4-5).
즉, 복을 베푸시는 분은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은 부지런한 자에게 복을 베푸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게 주신 소명, 즉 직업을 통해서 ‘일용한 양식’을 공급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정직하고 근면하고 성실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충성하기 바랍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옵고”라고 기도하며 갖는 신앙 자세입니다.
또한 우리는 ‘일용할 양식’과 관련해서 항상 ‘매일’ 하나님의 공급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아무리 부지런히 일하여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단 한 입의 양식도 허락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즉,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는 것은 저절로 되는 것도 아니며, 내가 노력했기 때문도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성실하게 일하는 근면에 보상하시는 방법으로 양식을 주시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성실하게 일하면 반드시 보상 받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양식은 보상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속한 주권입니다. 영적인 양식은 더더욱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이 기도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공급하심만이 내가 오늘도 생명을 유지하며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원인인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시 127:1-2).
무엇보다 영적인 일용할 양식을 그날 그날 반드시 받아야 먹어야 합니다. 그래야 죄와 세상과 마귀와 싸워 이길 수 있습니다. 아무리 믿음이 강한 자라도 일용할 영의 양식을 빠뜨리다 보면 어느새 교만과 불만과 함께 세상 유혹에 무너지게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늘 매일 ‘일용할’ 영적 양식을 하나님의 말씀에서 받아 먹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일용할 양식”과 관련해서 우리는 배워야 하는 것은 자족에 대한 교훈입니다. 우리는 이 기도를 드리면서 진수성찬의 진미를 꿈꾼다면 매우 어색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기도를 드리면서 자족을 배울 수 있습니다. 즉, 오늘 한끼 주어지면 그것으로 족한 것입니다.
성경은 자족하지 못한 탐욕스런 마음을 여러 모양으로 묘사하였습니다.
“앞니는 장검 같고 어금니는 군도 같아서 가난한 자를 땅에서 삼키며 궁핍한 자를 사람 중에서 삼키는 무리가 있느니라 거머리에게는 두 딸이 있어 다오 다오 하느니라 족한 줄을 알지 못하여 족하다 하지 아니라. 그중 스올이 있느니라”(잠 30:14-15).
“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요 그들은 몰지각한 목자들이라 다 제 길로 돌아가며 사람마다 자기 이익만 추구하느니라”(사 56:11).
[
28 네가 음욕이 차지 아니하여 또 앗수르 사람과 행음하고 그들과 행음하고도 아직도 부족하게 여겨
29 장사하는 땅 갈대아에까지 심히 행음하되 아직도 족한 줄을 알지 못하였느니라
](겔 16:28-29)
“그는 술을 즐기며 거짓되고 교만하여 가만히 있지 아니하고 스올처럼 자기의 욕심을 넓히며 또 그는 사망 같아서 족한 줄을 모르고 자기에게로 여러 나라를 모으며 여러 백성을 모으느니라”(합 2:5).
그러므로 결론적으로 우리는 오늘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와 함께 야게의 아들 아굴의 잠언을 늘 마음에 새겨두고 동일하게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
7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8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9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잠 30:7-9)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오늘의 기도와 재물을 쌓는 어리석음에 대해 경고합니다.
[
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
17 (세상 재물을 향해)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18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라
](딤전 6:9-10, 17-18)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히 13:5-6).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하신 분깃에 만족하며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여야 합니다. 내게 주신 아내, 내게 주신 건강, 내게 주신 나라, 내게 주신 용모와 지식과 능력 등에 만족해야 합니다. 내게 주신 직장과 먹을 것 등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주의 나라와 주의 뜻을 구하면 됩니다. 주의 뜻은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의 성품에 자라나는 것입니다. 주의 뜻은 우리 주변의 멸망으로 향하는 안타까운 영혼들을 주께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몫, 즉 주께서 주의 주권 가운데 베푸시는 복과 성령의 은사에 만족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양식’ 및 재물 등은 많이 추구하지 말 것이며 더 쌓으려 하지 말 것입니다. 다만 자족하며 선한 일에 힘쓰면 주께서 차고 넘치게 주실 것이고 계속 자족하며 더욱 선한 일에 힘쓰게 될 것입니다.
오늘 주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옵고”라고 기도할 때마다 항상 오늘 주일에 주신 교훈을 마음 속에서 떠올리며 복음적으로 바르게 기도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pyright@스데반 황 목사,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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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귀한 설교 감사합니다.